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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망측한 美선거제도 탓 트럼프 불복? 어불성설!

[노정태의 뷰파인더⑧] 韓 ‘선거법 날치기’ 수준 퇴행 아냐… 우리가 진짜 위기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괴상망측한 美선거제도 탓 트럼프 불복? 어불성설!

  • ●승자독식제, 바꿀 수 있어도 안 바꾸는 까닭
    ●선거인단 통한 간접 선출, 역사적 맥락과 합리성 지녀
    ●각 주 대표성 보장, 인구 적은 내륙주에 가중치
    ●민주·공화 양당 처지에서도 現제도 합리적
    ●집권당 중심 선거법 개정 韓, 법적·민주적 정당성 팽개쳐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1월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AP=뉴시스]

11월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AP=뉴시스]

전 세계인이 4년에 한 번씩 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여기서 ‘전 세계인’에는 상당수의 미국인도 포함되는데, 아무튼 그렇다. 대체 왜 미국의 대통령선거 제도는 이런 식인가? 무슨 이유로 미국 건국 당시 만든, 낡아빠졌고 사람 헷갈리게 하는 제도를 여태 유지하고 있는가? 심지어 2016년 대선에서와 같이 전체 득표수에서 앞선 후보자가 선거인단 숫자에 밀려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이상한 선거 제도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지 않은가?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대답은 이렇다. 물론 그 제도가 완전히 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은 연방국가다. 대통령은 50개 주로 이뤄진 연방국가 미합중국의 수장이므로 인구가 적은 주를 소외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이유와 역사성이 있으므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 

2000년대까지의 나도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2010년 10월 군 입대를 하고, 2011년부터 경기 동두천시 소재 미 육군 2사단 1여단에서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결론이 바뀐 건 아니다. 달라진 건 그 결론을 이끌어낸 과정이다. 전역 후 2016년 미국 대선을 지켜보며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4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이 괴상망측한 선거 제도와 그것이 운영되는 방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까울지 모른다.

‘플라이오버 스테이츠’라는 멸칭(蔑稱)

11월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 전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 짓고 있다. 이날 그는 “우리가 승자가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고 말했다. [AP=뉴시스]

11월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 전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 짓고 있다. 이날 그는 “우리가 승자가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고 말했다. [AP=뉴시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 LA의 영화와 TV 산업, 실리콘밸리의 IT(정보기술)를 떠올리는 건 쉽다. 하지만 텍사스의 석유와 중부 평원의 엄청난 농업 생산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초강대국일 수 없다. 옛 소련도 중국도 오늘날의 러시아도, 식량과 에너지를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동부와 서부 해안에 사는 미국인, 그리고 미국 중상류층의 눈높이로 미국을 바라보는 일부 한국인이 쓰는 표현이 있다. ‘플라이오버 스테이츠(fly-over states)’.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 실제로 그곳에 내릴 일 따위는 전혀 없다는 뉘앙스가 깔린 멸칭(蔑稱)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정한 힘은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플라이오버 스테이츠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자원, 그런 ‘촌 동네’ 출신 군인들이 연방국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유지해주고 있다. 미국이 미국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수많은 ‘플라이오버 스테이츠’ 덕분이다. 군대에서 수많은 ‘레드넥’(Redneck·미국 남부의 빈곤한 백인 농민, 노동자를 칭하는 말)과 ‘힐빌리’(Hillbilly·미국 중부의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에 사는 백인 하층민을 칭하는 말)들을 만나본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다. 

미국 민주당에 정서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고학력 한국인들은 본인도 뉴요커나 LA의 셀레브리티라도 된 것처럼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진보 성향의 고학력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주류 언론을 통해서만 미국을 이해한다면 편향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뤄진 연방국가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강력하다. 각 주의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밖에 없다. 각 주에서 상원 및 하원의원 수에 따라 선거인단을 배정받고 주민들의 투표에 따라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것은 그 나름의 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합리성 또한 지닌다. 

그럼에도 2016년 대선처럼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떨어지는 일은 부당하지 않을까? 나는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기를 바라던 사람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클린턴의 패배(즉 트럼프의 승리)는 단 한 표라도 이기면 그 주 전체의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선거인단 승자독식제’의 폐해가 극에 달한 사례였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20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61%가 선거인단 제도의 폐지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원 중에는 89%가 선거인단 제도의 폐지를 원한다. 그래도 각 주별로 선거인단을 뽑는 간접선거제와 선거인단 승자독식제를 민주적이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승자독식제, 바꿀 수 있어도 안 바꾸는 까닭

1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반(反)트럼프 성향 시민들이 ‘모든 표를 집계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였다. 이들 뒤로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간판이 보인다. 같은 날 트럼프 캠프는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조지아 등에서의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AP=뉴시스]

1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반(反)트럼프 성향 시민들이 ‘모든 표를 집계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였다. 이들 뒤로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간판이 보인다. 같은 날 트럼프 캠프는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조지아 등에서의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AP=뉴시스]

선거인단 승자독식제를 비판하기에 앞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선거인단을 통한 대통령 선출은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승자독식제는 헌법 규정 사항이 아니다. 네브라스카 주와 메인 주는 완전 승자독식제를 버렸다. 상원의원에 해당하는 선거인단은 주 전체 득표 승자가 가져가되, 하원의원에 해당하는 선거인단은 해당 하원 선거구의 승자가 가져가게 돼 있다. 메인은 1969년, 네브라스카는 1992년 제도를 변경했다. 

즉 승자독식제는 주 단위로 수정 가능하다. 실제로 두 군데는 승자독식제를 폐지했다. 2004년 11월 콜로라도에서 승자독식제 폐지를 두고 투표가 벌어졌지만 결과는 승자독식제 존속이었다. 외부의 눈으로, 혹은 미국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비합리적인 그 제도를 정작 해당 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지하길 원했다. 

게다가 현 상황에서는 승자독식제 유지가 정치인이나 정당의 처지에서 더 합리적이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곳, 혹은 텍사스처럼 공화당의 아성으로 여겨지는 곳 또한 실제 득표를 보면 한 정당을 향한 지지가 60% 선에서 오가는 게 보통이다. 승자독식제를 포기하면 100%를 가져갈 수 있던 것을 60%만 취하고 나머지 40%는 상대방에게 넘겨준다는 말과 같다. 차라리 승자독식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격전지 스윙 보터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승리자가 되는 길을 도모하는 편이 낫다. 

헌법을 만들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인 채 선거에 임하고 있다면 그 제도를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선거의 정당성은 특정 제도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인뿐 아니라 유권자 스스로가 기존의 선거 제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은 특유의 복잡한 방식을 통해 인구가 적은 내륙주에 더 큰 가중치를 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은 보통의 경우 8년 주기로 계속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규칙에 적응함으로써 민주적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비례대표 없는 영국의 역동성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하원 선거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단 한 명의 비례대표도 없이 오직 단순다수제 소선거구제로만 총선을 치른다. 한국의 정치학자, 정치인,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중 상당수가 비난하는 바로 그 소선거구제다. 

영국의 정치는 비례대표제가 있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역동적이다. 20세기 들어 보수당은 2020년까지 120년 중 67년을 집권했다. 나머지 53년 동안 노동당이나 그 밖의 정당이 집권에 성공했다. 보수당을 전통적인 여당의 위치에 놓는다면 여야 간 정권 교체가 거의 동등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영국독립당(UKIP)이나 스코틀랜드국민당(SNP) 같은 신흥 세력이 등장해 제3당의 위치를 위협하거나 빼앗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경쟁이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선거가 끝난 후 규칙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식을 사놓고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며 환불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의 승복 연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선거인단 제도와 승자독식제가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동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제도 하에서 승리했다면 대통령에 취임했을 사람이, 자신이 졌다는 이유로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로 압축될 수 없다. ‘우리 편이 더 많으니 우리 편 뜻대로 하겠다’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승자 못지않게 패자 역시 동의할 수 있는 규칙에 의해 선거를 치르고, 승자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갖지만 패자에게도 다음 선거에서 부활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때 민주주의는 정상 작동한다.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뒷받침돼야 민주주의도 제 기능을 한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 탓에 ‘독재’라는 말을 들으면 군사독재만을 떠올리지만 세계 각국에는 문민독재의 사례가 숱하게 존재한다. 독립운동가에서 독재자로 변신하고 죽을 때까지 군림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정권, 대를 이어 집권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정권, 결국 쿠데타로 쫓겨난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투표를 통한 다수 지지의 확보가 민주적 정당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제도를 통해 선거를 하느냐도 민주주의의 본질과 필연적 관련이 없다. 참여자가 동의하는 규칙, 승자에 대한 존중, 패자에 대한 배려. 이 세 요소가 작동할 때만 선거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제 기능을 한다. 세 요소가 살아있다면 아무리 낡고 ‘사표’가 많이 나오는 제도라고 해도 선거는 민심을 반영하고 새로운 국가적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사건으로 올바로 작동할 수 있다.

美대선 보며 농담 주고받을 때 아니다!

한국은 어떤가. 미국보다 한국의 선거와 민주주의가 더 큰 위기에 빠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21대 총선 과정을 보며 든 생각이다. 

심상정 정의당 당시 대표는 비례대표 의석이 늘면 정의당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 하에 ‘민심 그대로 비례대표제’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했다. 정치부 기자들도 혼란스럽게 하는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한 선거법이었다. 거대 양당은 선거용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심상정은 결국 선거가 끝난 후 눈물을 쏟았다. 

20대 국회의 문희상 의장은 선거법을 ‘패스트 트랙’에 올렸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다. 모든 참여자의 동의하에 바꿔야 마땅하다. 그것을 집권 여당과 여당의 편을 들어 이득을 보려는 군소 야당의 동의만으로 개정해버린 것이 현행 선거법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사사오입 개헌’에 버금갈 만큼 황당한 일이다. 비례대표를 늘려 민심을 반영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선거의 법적·민주적 정당성을 내팽개쳤다. 

이 엉터리 선거법으로 22대 총선을 또 치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21대 국회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 듯하다. 제1야당에 법제사법위원장을 양보한다는 관례도 내다버렸다. 멋대로 만든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르고, 소수자를 보호하며 의견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례마저 무시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거를 통한 다수의 독재에 더욱 가깝다. 

미국 대선을 보며 우리가 비웃거나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아니다. 우편투표를 비롯한 다양한 잡음이 있긴 하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수준으로까지 퇴행하지는 않았다. 영국은 선거법을 바꾸는 대신 각 정당이 인적·지적·담론적 쇄신을 거듭하며 역동적 정치 지형을 만들어나간다. 미국 대선을 바라보며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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