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배달 로봇’ 택배 노동자 돕거나 일자리 뺏거나

  • 입력2019-08-01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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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 로봇을 활용하면 집배원 수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우체국 직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택배 노동자 대신 로봇이 트럭에 물품을 싣고, 내린다. 배달 로봇을 실은 자율주행 트럭이 거리를 누빌 날도 머지않았다.
    인간과의 상호관계는 AI 개발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Pexels]

    인간과의 상호관계는 AI 개발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Pexels]

    6월 25일 SKT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ai.x2019’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콘퍼런스는 인공지능(AI) 석학을 초빙해 미래의 방향성을 강의하는 자리였다. 톰 그루버 시리 공동 창업자, 제임스 랜디 스탠퍼드대 교수, 김윤 SKT AI센터장이 강연했다. 

    ai.x2019 주제는 ‘인간 중심 AI’다. 석학들은 AI가 인간을 돕는 방향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하나같이 강조했다. 그루버 박사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유익한 영향을 줄 AI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랜디 교수는 “AI는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조하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격무에 지친 배달 노동자

    우체국 집배원 노조(우정노조)가 7월 9일로 예정됐던 파업을 철회했다. 과중한 업무량이 집배원에게 부과된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집배원들에 따르면 쉴 틈조차 없다. 배송할 물량이 계속 쏟아져서다. 점심을 제때 먹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다. 

    우정노조는 집배원 2000명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우정사업본부는 500명만 증원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980명을 증원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집배원만 과로하는 게 아니다. 택배 노동자도 격무에 시달린다. 택배 업무는 기피 직종이 된 지 오래다. 알바몬이 2017년 1453명을 대상으로 ‘극한 아르바이트’를 조사한 적이 있다. 택배 물품 상하차 아르바이트(알바)가 1위로 꼽혔다. 응답자 중 21.6%가 상하차 알바가 가장 힘들다고 지목했다. 

    배달 대행 산업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5월 1일 라이더 유니온이 출범했다. 창립 목적은 배달 대행 기사 권익 보호다. 라이더 유니온은 6월 배달 앱 ‘부릉(VROONG)’을 운영하는 IT 기반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매쉬코리아가 배달 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았다는 게 라이더 유니온의 주장이다. 

    언뜻 배달 기업이 ‘갑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도 최소 가해자는 아니다. 피해자일 수도 있다. 메쉬코리아를 우선 살펴보자. 이 회사는 필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IT(정보기술) 분야 스타트업 중 하나다. 2년 전 메쉬코리아를 처음으로 알았는데, 서비스 개발 취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메쉬코리아는 배달 대행 기사의 복지를 향상한다는 명목으로 배달 앱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최적의 배달 거리를 계산한 후 기사에게 알려준다. 배달 노동자의 업무 효율이 자연스레 향상되는 것이다.

    제 살 깎는 배달 산업

    그뿐 아니라 메쉬코리아는 기사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 오토바이 구매 비용을 12개월간 무보증 및 무이자 할부로 제공할 뿐 아니라, 이륜차 보험에도 가입해 사고 시 손실을 최소화하게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쉬코리아는 배달 단가를 기사들과 협의 없이 3500원에서 3200원으로 깎은 ‘악덕 기업’으로 비판받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문제는 산업구조에 있다. 배달 산업 전체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제 살 깎기 식으로 운위된다. 딜로이트(Deloitte)가 2015년까지의 택배 물류 추이를 통합물류협회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택배 물류량은 2005~2015년 연평균 13.2% 성장했다. 5억3000건(2005)에 불과하던 물량이 18억2000건(2015)으로 늘어난 것이다. 언뜻 봤을 때 특이한 문제는 없다. 시장이 성장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송 단가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5년 택배 운송 단가는 2975원. 그렇다면 2015년은 어떨까.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운송 단가가 상승하는 게 맞는데, 신기하게도 2230원(2015년)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기업 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수익률이 하락한 것이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보면, 택배 기사 업무가 과거보다 더 힘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수익률이 떨어졌기에 매출이 증가한 만큼 인원을 충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당일 배송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택배 기사 업무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를 확인할 대표적 사례가 쿠팡의 ‘로켓배송’이다. 로켓배송은 1만9800원이 넘는 상품을 자정 전까지 구매하면 다음 날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말 그대로, 로켓처럼 빠르게 배달한다. 소비자에겐 더없이 좋은 서비스다. 로켓배송이 거둔 실적은 엄청나다. 지난해 9월 쿠팡은 로켓배송을 통해 4년간 상품 10억 개를 배송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은 2018년 기준 4조4000억 원. 그렇다면 수익은 어떨까 

    쿠팡은 적자다. 2018년 영업 손실이 1조970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적자가 71.1% 늘어난 수치다. 쿠팡은 핵심 인프라 투자 등으로 인해 계획적으로 발생한 ‘의도된 적자’라고 해명했으나 로켓배송 운영으로 인한 영업적자도 포함됐다고 봐야 한다. 요컨대 현재 상황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 손해 보는 구조다. 기업은 제 살을 깎고 있으며, 근로자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육체노동 줄여주는 AI

    오토스토어가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위키미디아]

    오토스토어가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위키미디아]

    소비자 처지에서 모든 상품에 택배비가 따로 붙는다고 가정해보자.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게 망설여질 것이다. 2000년대 초반처럼 배송에 2일 넘게 걸린다고 생각해보자. 당일 배송에 익숙한 소비자는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배송 시스템에 적용되는 4차 산업혁명은 어떤 모습일까. AI 기반 로봇을 활용해 배달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배달 과정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상품을 고객별로 분류한다 △분류된 물품이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배달 기사에게 배분한다 △배달 기사가 고객에게 물품을 전달한다. △분류 △배분 △배송을 통틀어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한다. 모든 배달 산업이 이 세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퀵서비스는 물품 인수와 전달, 그러니까 배송 과정만 있다. 

    라스트 마일 전 과정에서 ‘배달 로봇’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자. 오토스토어(AuutoStore)는 분류 과정에서 활용되는 시스템이다. 오토스토어는 사각형으로 이뤄진 육면체가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돼 있는데, 필요에 따라 육면체 너비를 줄이거나 넓힐 수 있다. 이 육면체 위로 로봇이 돌아다닌다. 로봇은 각 육면체 안에 물품을 넣는 분류 작업을 한다. 또한 배송품을 육면체에서 꺼내는 일도 한다. 로봇이 분류 작업자의 육체적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배분 작업에도 로봇이 활용된다. 시그리드(Seegrid)는 우체국 같은 공간에서 배송품을 내부의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미국 우체국들이 시그리드를 도입해 우편물을 목적지별로 배분하고 있다.

    아파트 계단 오르는 ‘배달 로봇’

    스타십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배달 로봇’. [위키미디아]

    스타십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배달 로봇’. [위키미디아]

    배송 과정에서도 AI를 적용할 수 있다. 분류, 배분보다 배송과 관련한 로봇이 더 많이 개발돼 있다. 스타십 테크놀로지(Starship Technologies)는 작은 박스처럼 생긴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물건을 싣고 시속 6.4㎞ 속도로 이동한다. 우체국과 피자 회사 등이 이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C버클리대학에서는 로봇이 학생 있는 곳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키위봇이라고 하는 이 배달 로봇은 이용료가 4000원 수준으로 저렴하지는 않지만 인기가 상당하다. 키위봇의 단점은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장거리를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타십 테크놀로지는 배달 로봇뿐 아니라 메르세데스 벤츠와 협력해 배달 로봇을 운반하는 스타십 밴(Starship Van)을 개발했다. 스타십 밴은 배달 로봇을 싣고 이동하는 차량이다. 배달 로봇의 모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송 기사가 스타십 밴에 로봇을 싣고 특정 장소로 이동한 후 최종 단계에서는 무인으로 배달하는 구조다. 택배 노동자 대신 로봇이 물품 상하차를 하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배달 로봇도 등장했다. 아파트 현관 앞까지 물품을 배달한다. 애니보틱스(Anybotics)가 콘티넨털(Continental)과 협력해 개발한 강아지 모양의 배달 로봇이 그중 하나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로봇 강아지가 물품을 실고 집 앞까지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포드는 한술 더 떠 사람처럼 관절을 가진 배달 로봇을 개발했다. 가파른 계단도 자유자재로 오르내린다.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됨에 따라 직접 물건을 배달하는 인간의 노동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배달 로봇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배달 로봇을 활용하면 집배원 수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우체국 종사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반면 우체국과 택배 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 배달 로봇은 집배원과 택배 노동자에게 약일까 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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