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무너지는 ‘수출 신화’

“시차 두고 연말부터 민생에 치명타”

  • 김재현 (재)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kjh@pi-touch.re.kr

    입력2019-09-24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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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개월 연속 마이너스 수출

    • 13개 주력 업종 중 10개 타격

    • 고용 감소, 보너스 미지급

    • 내수-서비스 연쇄 불황

    • “살림 팍팍해졌다는 말 더 자주 들릴 것”

    8월 27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스1]

    8월 27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스1]

    올해 들어 수출이 급속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신화’ ‘제조업 신화’가 무너진다는 탄식이 들린다. 관세청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1~7월 수출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8.9% 감소했다. 6월과 7월에는 각각 전년 동월과 비교해 13.8%, 11.0%나 줄었다. 8월 통계도 마이너스 수출이 확실시된다. 

    특히 주력 업종의 수출이 크게 줄고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3개 주력 업종 중 일반 기계, 자동차, 선박 등 3개 업종 수출만 증가했고 반도체, 석유화학 제품, 석유 제품, 철강,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섬유 제품, 컴퓨터, 가전 제품 등 10개 업종의 수출은 감소했다.

    ‘경제 견인차’ 반도체 수출 22.5% 급감

    이 중 수출이 대폭 감소한 업종은 ‘경제 견인차’인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대폭 하락해 2018년 상반기 대비 수출이 22.5%나 줄었다. 다른 제품들도 사정이 안 좋다. 석유화학 제품은 글로벌 수요 부진과 미국의 공급 물량 확대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으로 2018년 상반기 대비 수출이 13.0% 감소했다. 

    석유 제품은 수출 단가 하락과 중국과 대만의 석유 제품 정제설비 증설로 2018년 상반기 대비 8.5% 하락했다. 철강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수입 규제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2018년 상반기 대비 4.9% 감소했다. 

    자동차부품은 중국의 경기 둔화로 중국 내 자동차 소비가 위축돼 2018년 상반기 대비 2.3% 감소했다. 디스플레이는 액정표시장치(LCD) 공급 과잉으로 디스플레이 가격이 하락해 2018년 상반기 대비 12.7% 줄었다. 무선통신기기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돼 2018년 상반기 대비 24% 감소했다. 섬유 제품은 주요 수출 지역인 아세안(ASEAN)과 중국에 대한 수출 부진으로 2018년 상반기 대비 7.7% 감소했다. 컴퓨터는 SSD에 대한 기업용 서버 수요 감소로 2018년 상반기 대비 35.1% 내려앉았다. 가전 제품은 중국-일본과의 경쟁 심화 및 미국의 가전 제품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인해 2018년 상반기 대비 4% 감소했다. 



    국가별로는, 대중국 수출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2019년 7월 중국으로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6.6% 떨어졌다. 메모리 반도체, 액정 디바이스 등 반도체 산업의 충격이 가장 컸다. 

    중소기업의 수출도 줄어들었다.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7% 감소했다. 대기업보다는 수출 감소 폭이 작지만, 중소기업의 수출 감소는 고질화하고 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화장품(14.2%), 합성수지(11.0%), 계측제어분석기(8.7%), 반도체(8.1%) 순으로 낙폭이 컸다. 

    이러한 급격한 수출 감소는 중소기업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다. 서울 구로구 온수산업단지에서 지게차 부품을 생산하는 A사의 대표는 “수출이 줄어드니 매출과 공장가동률이 지난해의 반 토막 정도로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부족한 자금을 대출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수출도 감소

    수출 충격의 여파로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업의 대출 연체율(0.68%)은 전월 대비 0.08%p 상승했다.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0.66%)은 전월 대비 0.10%p 증가했다. 이는 2018년 7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수치다. 

    중소기업의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하반기 투자 확대나 신사업 진출 계획을 세우는 중소기업은 10곳 중 1곳 정도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6.4%의 기업은 신규 투자에 유보적이었다. 이들은 “현상을 유지하면서 내실을 다지겠다”(60.2%)와 “사업 축소를 고려하겠다”(26.2%)로 응답이 나뉘었다. “투자를 확대하겠다”(5.6%), “신사업·신기술을 도입하겠다”(8.0%) 등 성장을 위한 적극적 경영전략을 고려하는 기업은 13.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외환경 악화에 따라 안정적인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황 악화로 투자 꿈도 못 꿔”

    부산 장림공단에서 50여 년간 기계 부품을 생산해온 B사는 공단 내에서 알짜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B사의 대표는 “업황 악화로 당분간 투자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플라스틱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C사의 대표도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이 투자 계획을 못 세우고 답답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출 감소는 시차를 두고 민생에도 치명타를 준다. 수출 감소 시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수출 감소는 우선 고용을 줄인다. 2017년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수출이 국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수출이 1% 감소할 때 제조업 고용이 약 0.1% 감소하고 서비스업 고용도 비슷한 수준으로 감소한다. 수출 감소가 서비스업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은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순으로 컸다. 

    수출이 줄어들 때 임시직뿐만 아니라 상용직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수출 감소는 고용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를 반영하듯 7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무려 2.1%포인트나 감소했다. 1월 이후 제조업 취업자 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9년 8월 한국은행의 ‘제조업 고용 부진의 원인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 고용 부진은 30~40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중 연령대별 고용률 증감을 보면 30~54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2%p 감소했고, 이 중 30~49세는 0.4%p 낮아졌다. 

    업종별로는 2018년엔 조선과 자동차 업종이 고용 감소를 주도한 데 비해 올해는 전기·전자 업종이 고용 감소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반도체 수출 부진 등에 따른 전기·전자 업종의 부진 때문이다. 이 같은 30~40대 일자리의 감소는 한창 경제활동을 영위해야 할 이 연령층의 실업 및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 감소에 따른 중소기업 경영난은 일자리 감소뿐만 아니라 종사자들의 추석 자금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추석을 앞두고 83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추석 자금 수요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5%는 자금 사정 곤란을 호소했다. 자금 사정이 원활하다고 답한 곳은 8%뿐이었다. 자금 사정 곤란 원인으로는 인건비 상승(56.5%)이 가장 많았다. 이어 판매부진(54.7%), 판매대금 회수 지연(25.3%) 순이었다. 

    이들 기업이 올해 추석에 필요한 자금은 평균 2억1200만 원이지만, 확보하지 못한 자금은 평균 5900만 원이었다. 필요 자금 대비 28.3%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결제 연기나 금융기관 차입 등의 방법으로 추석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 심지어 대책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도 많았다. 올해 추석상여금을 지급할 예정인 중소기업은 전체의 55.4%에 그쳤다. 상당수 중소기업 근로자는 추석상여금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감소에 따른 제조업의 불황은 내수산업과 서비스업의 불황으로 전이된다. 봉급생활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자영업자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법인세 등 세금이 덜 걷혀 정부가 풀 돈도 줄어든다. 곳곳에서 “살기 어렵다”는 한탄이 쏟아지게 된다.

    ‘단기간에 활로 찾기 어렵다’

    몇몇 경제 전문가는 “1~8월 수출 감소 영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민생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일자리 없다’ ‘경기 안 좋다’ ‘장사 안된다’ ‘살림 팍팍해졌다’는 말이 더 자주 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수출 감소 타격을 완화하고자 중소기업 혁신 기술개발자금, 창업기업자금, 신성장기반자금 등의 정책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분쟁에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겹치면서 단기간에 이를 극복할 활로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의존성이 높으므로 대기업의 수출 감소가 중소기업 경영에 직격탄으로 작용한다. 일본산 대체나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위한 중장기적 지원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당장 떨어지는 매출을 회복할 수요처가 제공돼야 수출 감소에 따른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 

    정부는 수출 감소의 직접적 원인을 해결해주는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수출 감소는 반도체 가격 하락 같은 시장 요인과 중국의 수요 감소, 일본의 수출 규제 등 대외 위험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정부는 일본과 협의해 일본의 대한국 부품 수출 규제를 해소하는 등 정치 문제로 인한 대외적 위험을 줄여주어야 한다. 

    또 기업에 대한 기술자금 지원에 앞서 기업의 국내외 판로를 열어주기 위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완화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수출 감소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어 우리 경제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지금도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정부는 수출에 부담을 주는 정치·정책 요인을 제거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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