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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 오명 벗은 P2P, 5조 원 기업 탄생하나

“법 믿고 수익률만 노리다 투자 손실 날지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무법’ 오명 벗은 P2P, 5조 원 기업 탄생하나

  • ● ‘P2P 금융법’ 발의 2년여 만에 법제화 눈앞
    ● 기준금리 인하로 성장 가속도 붙을 듯
    ● 그간 ‘부동산 담보대출’ 의존 등 부작용 속출
    ● 테라펀딩 220억 유치 등 투자자 몰릴 조짐
2월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P2P 대출의 해외 제도 현황 및 국내 법제화 방안 모색 공청회 모습. [뉴스1]

2월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P2P 대출의 해외 제도 현황 및 국내 법제화 방안 모색 공청회 모습. [뉴스1]

“만세! 만세! 만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8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만세 삼창을 외쳤다. 박 회장이 전해 들은 소식은 그의 피로를 눈 녹듯 없어지게 했고, 순간 울컥해 눈물까지 나게 했단다. 

이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소위에서 P2P(Peer to Peer·개인 간 거래) 금융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2017년 7월 처음 발의됐다. P2P 금융법(‘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현재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사위와 본회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소위에서 여야 간 의견 조율이 이뤄진 터라 최종 법제화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44곳 평균 연체율 7.5%

박 회장은 그간 ‘규제 개혁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그는 스타트업들이 기존 규제에서 벗어나 새 영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쏟아왔다. 7월에는 공유 주방 관련 규제를 완화한 데 대해 감사하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찾기도 했다. P2P 금융 역시 주목받는 벤처 사업으로 꼽혀 박 회장의 관심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P2P 금융이란 기업이나 개인이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대출 신청인이 P2P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웹사이트를 통하면, 다수의 투자자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빌려준 뒤 이자를 받고 만기가 되면 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P2P 금융 서비스가 등장한 지는 10년이 넘는다. 2006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관련 업체들이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2015년쯤 금융권에 이른바 ‘핀테크 열풍’이 불면서 P2P 금융업체가 줄줄이 등장했다. 



이후 P2P 금융은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해 현재 대출 잔액이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덕에 P2P 금융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가 내려가면서 대체 투자처를 찾는 투자자가 많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P2P 금융은 그간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처음 P2P 금융업체가 등장했을 때는 금융 당국이 ‘금융사가 아니다’라며 영업을 제지했다. 이후에는 업체들이 대부 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해 대부업법에 의거해 관리해왔다. P2P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을 하는 ‘플랫폼 법인’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 근거가 없어 행정지도 성격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관리했다. 

그러나 행정지도의 경우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부작용이 많았다. 일부 업체가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횡령·부도 등 사고가 이어진 것. 이와 함께 연체율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출이 연체된다는 것은 해당 대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돈을 못 받고 있다는 의미다. 

6월 말 기준 한국P2P금융협회 소속 업체 44곳의 평균 연체율은 7.5%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평균 연체율 4.84%보다 크게 상승한 수치다. 또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P2P 금융 관련 민원은 2017년 62건에서 이듬해 1867건으로 30배가량이나 증가했다. 

국내 P2P 금융 시장의 경우 부동산 담보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P2P 금융업체가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신용 평가 능력이다. 개인 또는 법인의 신용도와 상환 능력 등을 자체 평가해 그에 맞는 금리를 책정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업체가 줄줄이 생겨났다.


“국내 P2P, 선진국에 10년 뒤처져”

‘무법’ 오명 벗은 P2P, 5조 원 기업 탄생하나
부동산 담보대출은 부동산이라는 담보가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처럼 보이고 투자 수익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무법지대’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이 줄을 설 가능성이 있고, 이는 산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박 회장이 P2P 금융 법안 통과에 만세 삼창을 부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P2P 업체들이 8월 8일 내놓은 공동 입장문에는 이런 인식이 잘 담겨 있다. 업체들은 “국내에는 P2P 금융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없어 전통적인 금융 규제의 관점으로 관련 스타트업을 옭아매고 있다”며 “국내 P2P 산업은 금융 선진국과 단순 비교해도 10여 년 뒤처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융의 새로운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경직적 규제는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업체들의 바람대로 법안에는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방안이 담겼다. 앞으로 P2P 금융 영업을 하려면 최소 5억 원 이상 자기자본을 갖고 인적·물적 설비와 임원·대주주, 사회적 신용 등 관련 요건을 충족해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아울러 P2P 금융 시장을 키울 방안도 마련됐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사도 P2P 금융에 건당 최대 40%까지 투자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의 한도도 현 가이드라인 수준보다 높이기로 했다. 현재 일반 개인은 대출 건당 500만 원, P2P 금융업체당 1000만 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구체적 한도는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통해 확정된다. 

P2P 금융업체의 한 관계자는 “앞서 금융 당국이 주도해 만든 가이드라인은 개인 투자금 한도가 지나치게 낮고 금융사의 투자도 제한하는 등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많았다”며 “법제화 이후 P2P 금융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시장 자체도 더 빠르게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소파이

업계에서는 법안 통과로 ‘한국판 소파이(SoFi)’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소파이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5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투자해 화제가 된 P2P 금융업체다. 소파이는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 등에 다니는 학생들이 설립해 학자금 대출로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 기업 가치는 43억 달러(약 5조126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법제화 가능성이 높아지자 투자금도 몰리고 있다. 국내 주요 P2P 금융업체 중 하나인 테라펀딩은 최근 22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 KB인베스트먼트와 하나벤처스, IBK기업은행, 유니온투자파트너스 등 기성 금융사들이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일각에서는 P2P 금융업체가 경쟁력 강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P2P 금융 투자는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 이에 P2P 금융업체들의 ‘신용 평가 능력’이 떨어질 경우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금융사 관계자는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P2P 금융업체들의 경쟁력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업체들의 경우 연체 가능성보다는 높은 수익률만 강조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 경우 투자 손실로 인한 소비자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며 “장기적인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이런 영업 행태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동아 2019년 10월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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