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실물·금융 동시 충격…2008년 능가하는 위기 올지도”

前 금융위원장 등 전문가 6人이 본 금융위기 가능성

  • 고재석 기자 문영훈 기자 이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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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3-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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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광우 前 금융위원장 “미국 내 확산 속도가 분기점”

    • 신제윤 前 금융위원장 “글로벌 분업 생산체계 깨져”

    • 김동원 前 금감원 부원장보 “경제적 의사결정 구조 달라질 것”

    • 김상봉 한성대 교수 “사태 장기화하면 국내 부동산 버블 붕괴”

    • 성태윤 연세대 교수 “한국, 실물경기 악화가 금융위기로 전이”

    • 김소영 서울대 교수 “재난 기본소득·쿠폰 발행은 비효율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에 세계경제가 절벽까지 내몰렸다. 3월 5일(현지시간) 세계 주요 금융사 약 500곳이 가입한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세계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6%에서 1.0%로 낮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이다. 이번에도 금융시장이 극심한 유동성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증시도 패닉에 빠졌다. 3월 13일,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는 주가 지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매매 거래를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CB)와 사이드카가 모두 발동됐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날 하루에만 코스피·코스닥을 합해 시가총액이 56조 원 이상 증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금융시장의 악몽’이 가시화하리라는 우려가 스멀스멀 터져 나오고 있다. ‘신동아’는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금융 전문가 6인에게 금융위기 가능성을 물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분기점, 미국 내 확산 속도

    전광우(70) 전 금융위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을 선언한 상황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경제 충격이 올 수 있다”며 “결정적인 분기점은 미국 내 확산 기간과 속도”라고 주장했다. 전 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융위원장으로 사태 해결을 진두지휘했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등을 두루 거친 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그의 설명이다.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먼저 터지고 실물경제가 위축됐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때문에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동시에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 파장은 잠재적으로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 일로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6월까지도 코로나19가 잡히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의 1분기 경제 실적이 심각한 상황에 처하리라 예측된다. 이미 그 파장이 올해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텐데, 여기에 미국·유럽의 위기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올해뿐 아니라 내년 글로벌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은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s)을 만들었다. 기업은 비용 절감과 기술력 확보를 공히 충족해 줄 거래처를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예컨대 한국 기업은 일본산 부품·소재를 들여와 중간재를 만들어 미국·중국 등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은 이를 활용해 첨단 전자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팔았다. 팬데믹 상황으로 번진 코로나19 위기는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가 위기에 빠졌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신제윤(62) 전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탓에 중국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글로벌 분업 생산체계가 깨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신 전 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으로 위기 상황 대책반 역할을 수행했다. 그 뒤 금융위 부위원장과 기재부 제1차관을 역임했고, 2013년 금융위 수장이 됐다. 그가 경고했다. 

    “마스크 시장도 중국에서 원자재 수입이 안 돼 문제가 생겼다. 중국에서 수입을 못하면 로컬(국내 차원)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 국제 분업에 비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전체 생산량 자체가 떨어지고 수요도 줄어든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으면 그들이 갖고 있는 채권이 부실화한다. 그 영향이 금융권으로 옮겨 붙을 수 있다.” 

    이어 신 전 위원장은 “미국에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경제 충격은 V자를 그리며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게릴라전처럼 계속 산발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의 불확실성을 우려했다.

    금융시장 폭락하면 부동산 버블 붕괴

    3월 13일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3월 13일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김동원(67)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역시 “길게 보면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 상실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경제적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했다. 

    “현재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코로나19가 잡히는 추세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의료 사정이 좋지 않은 유럽 국가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유럽에는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많다. 코로나19가 여름까지 이어져 관광업 등 서비스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경기 침체가 앞당겨지고 금융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설상가상 감염병 탓에 주요 교역 대상국 간 입국제한 조치가 확대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 연구에 천착해 온 김상봉(45)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교역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여전히 오프라인 시장이 큰 상황에서 사람 간 이동이 금지되면 거래가 끊긴다”며 “수출과 투자가 줄어들면 그 영향이 금융으로 옮겨 붙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주요 자산인 부동산 시장 역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김상봉 교수는 “한 달 동안은 소비와 생산이 줄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수출과 투자가 줄어든다. 사태가 장기화해 금융시장 폭락으로 이어지면 한국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것”이라 경고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마지노선은 2분기다. 코로나19 확산이 2분기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컨설턴트와 국제통화기금(IMF) 방문학자를 지낸 김소영(53)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중론을 펴면서도 위기를 경고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 이후 각국에서 금융 시스템에 안전장치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여파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는 적을 것”이라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이다. 2000년대 미국에서 유동성 과잉과 저금리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각종 모기지 업체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줬다. 그러다 버블 붕괴 후 집값이 곤두박질치자 연체율이 급상승했고, 그 여파는 이내 미국 금융권과 국제금융시장에까지 미쳤다. 시장에서는 한국에도 같은 사태가 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 부연구위원과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정책분과 위원을 역임한 성태윤(50)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지금이 크나큰 위기라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미국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괴리가 존재한다”며 “이에 코로나19와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더블 쇼크’로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이라 말했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두고는 “실물경기 악화가 금융위기로 전이됐다”면서 “코로나19 이전에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데다, 코로나19로 소비가 줄고 대외 여건까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인다고 하더라도 현재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하다. 특히 중국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해야 하는 산업이 크게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에 국내 경기가 쉽게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중소기업 위한 적재적소 추경해야”

    코로나19에 세계 각국이 휘청거리면서 추가경정예산 등 정부의 재정정책 규모가 더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광우 전 위원장은 신중론을 폈다. 

    “재정을 확대하는 방안은 국가 부채를 늘릴 위험이 있고 경기부양책은 가계 부채를 늘릴 위험이 있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상황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3월 4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11조7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심의·확정했다. 특히 추경안에서 눈길 끄는 부분은 소비 진작을 위한 쿠폰(교환권) 지급이다. 정부는 2조 원 규모의 소비 쿠폰을 저소득층·노인·아동에게 공급한다. 이에 대해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지금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코로나19 확산이 저지되지 않으면 쿠폰을 발행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재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모든 시민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보조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난 기본소득의 효과를 낮게 점쳤다. 

    김소영 교수는 “재난 기본소득이 소비로 이어질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쿠폰 발행과 같은 맥락에서 비효율적”이라며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곳에 재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도 “재난 기본소득에는 많은 예산이 드는데 지금도 정부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적재적소에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광우 전 위원장은 “자영업자·중소기업에 지원하기 위한 추경 재정확대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제윤 전 위원장도 “관광·문화산업은 제조업처럼 재고 관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이 분야에는 현금 살포에 가까운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는 “항상소득가설에 따르면 ‘임시소득은 임시소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오히려 의료·방역에 예산을 더 많이 사용해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소비를 늘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전 교수는 “현재 정부가 중소기업·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만든 정책의 집행률이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10%밖에 안 된다”며 “비상 시기에는 심사 문턱을 낮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빨리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파산 막지 못하면 회복 불가”

    코로나19는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중심으로 줄도산이 발생하면 이내 가계부채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건은 기업의 도산을 막을 수 있느냐 여부다. 김소영 교수는 “기업 파산을 막지 않으면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든다고 해도 경기 회복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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