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1층에 슈퍼마켓 넣었다” 신세계-롯데百 ‘영등포 리뉴얼 大戰’

[기업언박싱] 신세계 ‘식품관’ 롯데 ‘운동화 편집숍’…1층의 파격 변신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9-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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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 만에 롯데·신세계 리뉴얼 ‘리턴 매치’

    • 가족·MZ세대 고객층 잡으려 백화점 층별 공식 깨

    • 신세계, 건물 전체를 리빙관으로

    • 롯데, 유아·아동관 확대

    • 현대, 내년 여의도 오픈…양강 구도 흔들까

    서울 영등포구 롯데 영등포점이 12월 완료를 목표로 점포 리뉴얼이 한창이다. [롯데백화점 제공]

    서울 영등포구 롯데 영등포점이 12월 완료를 목표로 점포 리뉴얼이 한창이다. [롯데백화점 제공]

    서울 영등포 상권이 백화점 업계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영등포점 후신)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11개월에 걸쳐 리뉴얼을 마친 데 이어 롯데 영등포점이 12월 완료 목표로 점포 리뉴얼이 한창이다. 맞대결을 펼치는 두 대형 점포는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간격은 직선거리 100m에 불과하다. 또 인근 여의도 복합시설 파크원에는 현대 여의도점(가칭)이 2021년 1월 오픈할 예정이다. 현대 여의도점에서 롯데·신세계 영등포점은 2㎞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영등포는 ‘젊은 상권’

    1984년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 영등포점은 36년 만에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으로 점포명을 변경했다. [동아DB]

    1984년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 영등포점은 36년 만에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으로 점포명을 변경했다. [동아DB]

    롯데와 신세계가 영등포 상권에서 승리하고자 강도 높은 리뉴얼에 나선 이유는 20, 30대 인구 비중이 31.9%에 달하는 지역 특수성 때문이다. 영등포 지역은 ‘홍대 앞’ ‘강남’ ‘건대입구’의 명성을 잇는 ‘젊은 상권’ 중 하나다.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상권이라는 점도 주목할 요인이다. 영등포 일대의 일평균 유동인구는 약 15만 명. 금융·정치 중심지인 여의도와도 가까워 주중에는 식사와 간단한 쇼핑을 하려는 직장인으로 붐빈다. 또 영등포역은 지하철역과 기차역이 함께 있는 교통의 요지다. 따라서 양사 모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롯데와 신세계의 영등포 대전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한 상권에서 두 백화점이 점포 층별 매장 구성을 싹 바꾸는 리뉴얼에 나섰기 때문이다. ‘영등포 백화점 대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가족 단위 고객층은 물론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고객층을 확보하고자 업계 통념을 깬 파격적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영등포 대전에 먼저 불씨를 지핀 곳은 신세계다. 11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점포 전체를 새로 단장했다. 눈에 띄는 큰 변화는 간판을 아예 바꿔 달았다는 점이다. 1984년 개점 이래 36년 동안 사용하던 점포명을 올해 6월 ‘신세계 영등포점’에서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으로 변경했다. 

    윤지상 신세계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점포를 방문한 고객의 거주지를 분석했더니 서울은 물론 부천·인천 등 수도권 서남부지역으로 상권이 확대됐다. 기존 구 단위 점포명으로 광역 상권을 아우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타임스퀘어점으로 변경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백화점 얼굴인 1층에 슈퍼마켓… ‘업계 최초’

    재탄생한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한국에서 그간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점포다. 원래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건물 세 동으로 구성됐다. 1984년 오픈한 B관(지하 2층~지상 7층)과 2009년 경방과 함께 리뉴얼한 A관(지하 2층~지상 10층), 2009년 개장한 타임스퀘어 1층 명품관이 그것이다. 건물은 구름다리와 영등포역 지하 통로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변화 폭이 큰 건물이 기존 B관이다. 이 건물의 파격은 1층부터 시작한다. 백화점 대다수는 보통 1층에 화장품·명품 매장을 집어넣는다.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동시에 매출 확대에도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층별 매장 배치는 업계 공식이자 불문율로 통했다. 

    신세계는 과감하게 통념을 깼다. 백화점의 얼굴인 1층에서 화장품과 명품 매장을 빼고 슈퍼마켓을 넣었다. 슈퍼마켓에서는 과일, 채소, 고기 등을 판다. 매장에 들어서면 장보러 나온 인근 주민이 대부분이다. 국내 백화점 가운데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신세계가 처음이다. 

    신세계도 처음에는 1층에 슈퍼마켓을 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애초에 구상은 이랬다. 기존 A관, B관으로 불리던 건물 두 동 가운데 크기가 작은 B관 전체를 리빙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혁신적 발상이었다. 지금까지 백화점은 고객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한 건물 상층부에 리빙관을 꾸몄다. 신세계는 최근 백화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군이 가전, 가구, 인테리어 등 생활 장르라는 점에 주목하고, 이런 소비 트렌드를 적극 반영해 아예 B관 전체를 리빙관으로 구성했다. 백화점 역사상 리빙관을 별도 건물로 운영한 사례는 지금껏 없다. 

    리빙관 취지대로 1층에 가전이나 가구 매장을 두려니 애매해졌다. 1층에 진열하기에는 구매율이 높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신세계는 대안으로 생활 장르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상품군을 찾기 시작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식품관을 방문한 고객 가운데 절반이 생활 장르 매장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상 대리는 “가구·가전·생활용품 구매와 장보기, 쇼핑을 한 공간에서 한 번에 하는 방향으로 점포를 구성했더니 최근 가전과 생활용품은 물론 식품 매출도 오르고 있다. 여기에 백화점 문턱이 낮아지는 부수적 효과까지 얻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잡으려 백화점 층별 공식 깨

    신세계는 타임스퀘어점 다른 건물 곳곳에도 새로운 소비 트렌드 변화를 적극 반영했다. ‘플렉스(Flex·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뜻)’ 문화를 주도하는 MZ세대를 겨냥해 고가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대거 들였다. 과거 A관으로 불리던 패션관 2층에서 캐주얼 브랜드를 걷어냈다. 그 대신 지미추, 알렉산더왕, 막스마라, 비비안웨스트우드, 바오바오, 에르노 등을 입점시켰다. 모두 기존 영등포 상권에는 없던 브랜드다. 

    스트리트 브랜드도 크게 늘렸다. 패션관 지하 2층에 33개의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만 모아 ‘하나의 큰 편집숍’으로 꾸민 영(Young) 패션관을 선보였다. 이들 브랜드 상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매출을 크게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젊은층이 좋아하는 브랜드라면 가리지 않고 입점을 권했다. 10~30대 고객 비중이 30% 이상인 타임스퀘어점 고객층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봤다. 윤지상 대리는 “2030세대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불러 모으고자 업계의 통념을 깼다”면서 “전국 점포 중 타임스퀘어점의 20대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롯데 영등포점은 12월 완료를 목표로 리뉴얼이 한창이다. 1991년 영등포역 민자역사에 매장을 연 이래 19년째 사업을 이어오다 지난해 신규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운영권을 다시 거머쥐었다. 향후 10년간 이곳에서 롯데의 백화점 사업이 더 유지될 예정이다. 

    롯데는 영등포점을 리뉴얼하면서 가장 먼저 아동·유아전문관부터 손봤다. 7층에 있던 아동·유아 매장을 8층으로 옮겼다. 여기에 리틀그라운드·마이리틀타이거·잇다·요기보·탑텐 등 유명 아동·유아 브랜드가 입점했다. 아동·유아 브랜드 중심으로 구성했지만, 부모도 아이와 함께 쇼핑할 수 있도록 리빙·SPA 브랜드도 추가했다. 심지어 키즈 체험 공간까지 조성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체험형 키즈카페다. AI 로봇 브랜드인 ‘휴머노이드’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아동·유아전문관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뭘까. 영등포 일대는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만큼 영·유아 비중 또한 다른 곳보다 높다. 영등포구를 포함한 서울 서남권의 영·유아 수는 지난해 기준 약 16만 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많다. 여기에 2021년 경인로 일대에 2만 가구의 신흥 주거타운이 들어서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가족 단위 고객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층에 화장품 대신 운동화 매장

    MZ세대를 겨냥한 브랜드도 대거 입점시켰다. 보통 백화점 저층부는 화장품 및 잡화 판매 층으로 인식됐다. 롯데는 영등포점을 리뉴얼하면서 1층을 운동화 재판매(리셀) 편집숍 ‘아웃오브스틱’과 축구 유니폼 레플리카 브랜드 ‘오버더피치’, 분식·간편식을 판매하는 요식업 브랜드 ‘고잉메리’ 등 SNS 유명 브랜드로 채웠다. 2층엔 패션·잡화·K팝 등 44개 브랜드가 들어왔다. 무신사·지그재그·W컨셉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가 검증된 브랜드다. 지금까지 일부 편집매장이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운영한 적은 있지만, 백화점 한 층 전체를 온라인에서 널리 알려진 브랜드로 구성한 건 전례가 없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건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밀레니얼 트렌드 테이블(MTT)’ 멘토링 프로그램 덕분이다. 문호익 롯데쇼핑 홍보실 팀장은 “지난해부터 롯데백화점에 근무하는 24세~39세 직원을 연구원으로 선발해 경영진에게 젊은 문화를 전수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와 공간을 이해하고, 이를 백화점 현장에 적용시켜 미래 쇼핑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멘토링의 궁극적 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세계와 롯데의 영등포 리뉴얼 대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8년부터 2년간 롯데와 신세계는 영등포를 포함한 서울 서부 상권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였다. 

    당시에도 공격의 포문을 먼저 연 건 신세계였다. 신세계는 1984년 5월 1일 영등포에 입성한 뒤 24년 만에 대대적 리뉴얼에 나섰다. 영업 면적이 작아 열세를 보이던 상황에서 2008년 경방필백화점과 합쳐 몸집을 불렸다. 신세계는 기존 영등포점과 경방필백화점 건물의 지하 1~2층과 지상 3층, 6층 등 총 4개 층에 연결통로를 만들었다. 이로써 영업면적도 종전 1만㎡에서 4만3306㎡로 4배 넘게 커졌다. 상품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당시 신세계가 꺼내든 카드는 명품 전략이었다. 타임스퀘어 1층 전체 6270㎡(1900평)를 명품관으로 꾸며 롯데 영등포점에는 없는 프라다·루이비통·구찌·까르띠에·불가리 등 20여 개 해외 브랜드를 유치해 고객 확보에 나섰다. 

    이에 질세라 롯데도 개점 후 처음 외벽공사를 하는 등 대대적인 리뉴얼로 맞불을 놓았다. 지상 8층 건물에 2개 층을 새로 올리고 낙후된 건물 외관을 새롭게 꾸몄다. 명품을 간판 상품으로 내세운 신세계와 달리 롯데는 ‘영 패션 1번지’를 지향했다. 1층 전체를 화장품 매장으로 구성하고 2층은 구두·핸드백 등 패션잡화 매장으로 꾸몄다. 영 패션 의류와 잡화를 대표 상품으로 내걸어 차별성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현대百, 롯데-신세계 양강 구도 흔들까

     2021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파크원에 들어설 현대 여의도점(가칭)은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이다. [동아DB]

    2021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파크원에 들어설 현대 여의도점(가칭)은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이다. [동아DB]

    두 백화점은 현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는 타임스퀘어와 연계 이후에도 매출이 롯데 영등포점에 한동안 근소한 차로 뒤졌으나 올해 상반기는 신세계(2168억 원)가 롯데(1727억 원)를 역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2021년 여의도 파크원에 들어설 현대 여의도점이다.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다. 지하 7층, 지상 8층의 영업면적만 8만9100㎡ 규모로, 현재 서울 최대 규모인 신세계 강남점(8만6500㎡)보다 넓다. 입점 브랜드와 층별 구성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협업해 무인 식품관 등 혁신적인 공간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11년 만에 재현된 롯데와 신세계의 리뉴얼 대결은 서로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현대를 염두에 둔 선제적 대응이기도 하다. 2021년 초부터 영등포에서는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강(强)의 유례없는 근접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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