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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헬기 ‘수리온’ 국내 입찰서 역차별, 항공산업 발전에 역행

“자국산 우선 구매 제도 관련 법 국회 조속히 통과해야”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국산 헬기 ‘수리온’ 국내 입찰서 역차별, 항공산업 발전에 역행

  • ●文정부 제조업 부흥 코로나19로 내상
    ●고부가가치 항공제조업 미래新산업 주목
    ●지역 소방본부서 국산 헬기 외면당해
    ●각 소방본부 입찰 규격 달라 비효율
    ●외국 헬기 입찰가 저렴해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
    ●해외서도 자국 제품 쓰는데… 관련 법안 통과해야
    ●新산업 발전하려면 정부가 믿고 지원해야
응급환자 이송, 화재 진압 등에 사용되는 수리온. [KAI 제공]

응급환자 이송, 화재 진압 등에 사용되는 수리온. [KAI 제공]

6월 17일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16개국 주한 대사가 경남 남해군 상공을 날았다. 국산 헬기 ‘수리온’을 경찰 기동용으로 개조한 ‘참수리’에 탑승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 방위산업 전시회가 줄줄이 취소되자 수출을 늘리고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주한 대사들을 초청해 홍보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듯 해외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항공업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공공기관 입찰에서는 수리온이 역차별 받고 있다. KAI 측은 지방 소방본부에서 새 헬기를 입찰할 때 국산 헬기가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기관에서 관용헬기를 구입할 때 국산 제품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항공은 미래 新산업

2019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뉴스1]

2019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뉴스1]

제조업은 한국경제의 근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9.5%로 독일(21.1%), 미국(20.7%)에 비해 높은 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철강‧금속‧화학 등 주력 제조업의 성장세가 둔화했다. 신(新)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제조업 르네상스’ 계획을 통해 제조업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19일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 연설에서 “미래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내 투자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산업은 미래 신산업 중 하나다.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경제적 파급 효과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일례로 수리온 제작에는 250여 개 넘는 협력업체가 참여한다. 헬기 수주 여부에 따라 KAI는 물론 협력업체의 일감과 일자리 수요가 결정되는 것이다. 정부는 제조업 르네상스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항공산업을 18조2000억 원 규모로 키우고자 한다. 



올해 항공산업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국내 항공산업 생산량 총액은 2017년 40억 달러(4조7000억 원)에서 2019년 51억 달러(6조 원)로 상승 추세였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탓에 생산량 총액이 2019년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산품을 사용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제조업 르네상스’에 다가갈 수 있다. 국내 사용 선례가 많아져야 해외 바이어를 설득하기 용이하다. 항공 시장에서는 생산 국가 내 제품 운용 실적으로 수입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미국‧프랑스 등 항공산업이 발달한 국가는 자국산 헬기를 우선 사용해 수출 증진을 도모하고 있다.

국산 헬기 ‘수리온’ 역차별

정부의 국산 헬기 사용 비율은 아직 저조한 수준이다. 경찰청‧국립공원공단‧산림청‧소방청‧해양경찰청에서 121대의 관용헬기를 운영한다. 이 중 국산헬기는 12대에 불과하다. 관용헬기의 노후화로 향후 5년 간 헬기 45대의 입찰이 진행될 전망이다. 

항공업계는 국산 헬기가 공공기관 입찰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중앙119구조본부(중앙119)를 비롯한 각 지방 소방본부는 2019년 이후 5건의 소방헬기 입찰을 진행했다. 이 중 KAI는 두 번의 입찰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KAI 관계자는 “지방 소방본부에서 해외 기종만 통과할 수 있는 입찰 규격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전남·전북·광주 소방본부가 입찰 참여 기준으로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비행 시 장애물 유무를 파악해 미리 경고하는 기능)를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장비는 이탈리아 업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전남 소방본부는 2019년 소방 헬기 입찰에서 이탈리아 업체 레오나르도의 헬기 AW-139를 선택했다. 

전남·전북·광주 소방본부는 헬기 입찰에서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는 필수 요소로 지정했지만 오히려 업무에 필요한 장비는 선택 사항으로 남겨뒀다. 조달청 ‘나라장터’ 입찰공고에 따르면 중앙119 입찰에서는 산불 진화 및 예방에 사용하는 물탱크, 기상 악화 시 사용하는 기상레이더‧응급의료장비‧결빙방지장치를 필수 장비로 두고 있지만 전남‧전북 소방본부의 경우 선택 항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본적 임무장비는 미설치 상태로 구매하면서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 장착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소방청 “예산 따로 사용해 일괄 기준 적용 어려워”

항속거리(최대 적재량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거리) 기준도 KAI가 지역 소방본부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다. 전남‧전북‧광주 소방본부는 항속거리를 700㎞ 이상으로 정했지만 경남소방본부와 중앙119는 항속거리 제한을 500㎞ 이상으로 뒀다. 외부연료탱크 장착 시 수리온의 최대항속거리는 680㎞다. 

전북 소방본부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정한 규격이다. 특허를 받은 이탈리아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가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추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수리온 입찰에 제한을 둔 것은 소방 헬기 지원에 필요한 형식증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받는다면 수리온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 소방본부마다 기준이 다른 소방청과 달리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은 중앙에서 물품 조달을 일괄한다.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관용헬기를 구입하는 것이다. 소방청 역시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만들어진 소방헬기 표준규격을 가지고 있지만 각 지방 소방본부가 별도의 규격을 정하는 관행을 유지하는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소방관은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소방청은 여전히 중앙과 지방관청이 분리돼 있다. 각 지방 소방본부별로 예산을 따로 받기 때문에 일괄적 기준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유지‧보수비용 고려하지 않은 입찰 방식

2019년 6월 27일 문승욱 당시 경상남도 경제부지사가 경남 사천시 용당지구 항공 MRO 산업단지 조성사업 착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6월 27일 문승욱 당시 경상남도 경제부지사가 경남 사천시 용당지구 항공 MRO 산업단지 조성사업 착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수리온이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체급이 낮은 외국 헬기에 비해 가격 면에서 불리하다. 이탈리아산 헬기 AW-139는 최대이륙중량이 6400㎏이지만 수리온의 최대이륙중량은 8700㎏이다. 체급 차이는 가격 차이로 이어져 AW-139가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관용헬기 재입찰을 진행하는 중앙119는 최대이륙중량 제한을 AW-139와 같은 6400㎏으로 정했다. 중앙119 역시 이탈리아산 AW-139를 관용헬기로 선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구매 가격만을 비교해 해외 기종을 선택할 경우 더 많은 세금이 관용헬기를 유지‧보수하는 데 사용된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8월 3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방청이 보유한 수리온의 정기 검사 비용에 비해 해외 기종의 정기 검사 비용은 최대 8.1배(에어버스 EC-225 기준)다. 전남 소방본부가 구매한 AW-139의 5년(2016~2020년) 간 평균 검사 비용이 1대당 4억4565만 원인 반면 수리온은 1억6489만 원이다. 학계의 방위산업 전문가는 “한 번 구입한 헬기는 30~40년 간 사용되는 터라 유지‧보수비용을 감안하면 입찰 시 가격만을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해외 기종의 경우 수리 자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헬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장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산 헬기는 전국 13개 기지에 상주하는 기술전담 요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해외 기종은 제조사마다 부품이 달라 정비 기술 지원이 어렵다. 결함 발생 시 대응도 느릴 수밖에 없다. 

항공산업 육성에서 정비산업도 중요한 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항공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항공기 기체‧엔진‧부품 등에 대한 제반 정비 산업)는 항공산업 성장 및 미래 교통수단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필수적인 사업이다. 현재 국내 MRO사업은 초기 단계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는 외국에서 MRO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산 헬기 사용 증가는 MRO 사업 발전에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 노력에 정부 지원 더해져야

제조업 성장에 힘을 싣고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조달 계약에서 국산품을 우선순위로 두는 법안도 발의됐다. 7월 16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가‧지자체가 맺는 조달 계약에서 국산 제품 사용을 우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중국‧브라질 등 30여개 국가가 자국 산업 기반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Buy National’(자국산 우선 구매)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공공의 목적으로 생산된 제품은 정부가 해외 생산품보다 우선 구매‧조달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WTO가 국산품 우선 조달에 대한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만 해당 조항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다. 항공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물품을 구입할 때 예외 규정에 해당되는지 의무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고자 만든 법이다”라고 설명했다. 항공기 부품 업계 관계자는 “관용 헬기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공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만큼 해당 법이 조속히 통과돼 국산 헬기 사용이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조선산업이 성장하는 비결 중 하나로 공공부문의 역할을 들었다. 이 교수는 “중국 정부가 조선업계에 해양플랜트를 계속 발주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의 질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일정 단계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1975년부터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포니’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포니가 내수시장을 선점한 뒤 수출 활로가 트이고 한국 자동차산업이 발달했다. 시작 단계인 수리온이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면 항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정부가 관용헬기 구입에 대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국산 제품을 일괄 구매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헬기를 한번 구입하면 30년 이상 운용하기에 국산제품을 사용해야 MRO 인프라 역시 자리 잡을 수 있다.”



신동아 2020년 11월호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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