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임기 1년 남은 대통령의 약속? 뉴딜펀드, 내년 초 공모인데 “벌써 피로감”

[금융인사이드] 흔적도 없이 증발된 녹색펀드·통일펀드… ‘관제펀드 잔혹史’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0-10-13 14: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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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외압으로 증권사 리포트 삭제’ 소문

    • ‘세금으로 손실 보전’ 비판에 입장 바꾼 정부

    • 임기 말 내놓은 탓에 흐지부지 가능성

    • 외국계 증권사 “文이 펀드매니저 데뷔” 비판

    • “대통령은 세금으로 손실 메울 수 있는 경쟁 펀드매니저”

    9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9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위기 발생 시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정책에 대한 지원 및 참여는 금융회사로서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다. 하지만 증권·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 중소기업·소상공인 유동성 지원 등에 이어 뉴딜펀드까지 각종 정책에 은행들이 활용되면서 주주들의 피로감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 4일 국내 한 증권사가 내놓은 리포트 내용이다. 이 리포트는 ‘뉴딜금융, 반복되는 정책 지원으로 주주 피로감은 확대 중’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됐다. 그런데 이 리포트는 발행 당일 바로 삭제됐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정부의 외압으로 리포트가 삭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증권사 측은 외압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리포트의 의도와 달리 이슈화하니 연구원 본인이 직접 회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정부나 여당의 외압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혹여 외압이 없었더라도 리포트가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비쳤다는 점을 해당 연구원이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판 뉴딜’은 이번 정부가 집권 후반기 경제 분야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내세운 정책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책에 민간 금융사가 ‘딴죽’을 걸어버린 모양새는 아무래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을 터다.

    정부가 투자 원금 보장해 준다?

    뉴딜펀드란 이른바 ‘한국판 뉴딜’에 들어가는 자금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조달하고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펀드를 지칭한다.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관제 펀드’다. 뉴딜펀드는 크게 ‘정책형 뉴딜펀드’와 ‘뉴딜 인프라펀드’ ‘민간 뉴딜펀드’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가장 논쟁이 되는 게 공공자금이 직접 들어가는 ‘정책형 뉴딜펀드’다.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20조 원 규모로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3조 원, 정책금융기관이 4조 원 등 공공자금으로 총 7조 원을 투입한 뒤 민간자금 13조 원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9월 말 투자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 분야에서 총 40개 투자 대상을 선정했다. 세부 항목으로는 197개 품목을 사례로 제시했다. 디지털 뉴딜의 경우 △로봇과 항공·우주 △에너지 효율 향상 △스마트팜 △친환경소비재 등이 포함됐고, 그린뉴딜로는 △신제조 공정 △차세대 동력 장치 △바이오 소재 등을 선정했다. 

    가장 논란이 된 점은 정부가 마치 펀드 투자의 원금을 보장해 준다는 식으로 정책을 ‘홍보’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성 투자 상품이라 해도 원금을 보장해 준다는 식의 언급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원금 보장’을 운운한 이유는 이렇다. 이 펀드에 들어가는 공공자금은 주로 후순위 투자를 맡게 된다. 손실이 날 경우 가장 먼저 떠안는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다. 리스크가 큰 투자를 공공자금을 통해 하게 되면, 민간의 투자 위험성은 줄어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공공과 민간의 투자 비중이 35%대 65%인 점을 고려하면 평균 35%까지는 손실이 나도 민간 투자에는 영향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책금융이 평균적으로 한 35% 정도의 후순위 채권을 우선적으로 커버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성격·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펀드가 투자해서 손실이 35% 날 때까지는 손실을 다 흡수한다는 얘기”라면서 “원금 보장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사후적으로 원금이 보장될 수 있는 충분한 성격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기 얼마 안 남은 정권의 관제 펀드

    이를 두고 세금으로 투자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다시 “후순위 투자 비중은 10% 안팎이 될 것”이라면서 입장을 바꿨다. 공공자금이 모두 후순위 투자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20조 원의 10%인 2조 원만 정부가 후순위 투자해 손실을 떠안는다는 의미다. 남은 5조 원은 중(中)순위 혹은 후순위로도 들어갈 수 있고, 그 비중은 펀드에 따라 다 다르다는 설명이다. 

    정부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공공자금 7조 원 중 4조 원은 정부가 아닌 정책금융기관이 투자하는 금액이다. 아무리 공공기관이라도 정부가 공개적으로 후순위에 투자하라고 못 박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결국 정책금융기관 역시 대부분 후순위에 투자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결국 홍 부총리와 은 위원장의 설명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7조 원 중 상당수가 후순위로 갈 가능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홍 부총리는 이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원금을 보장하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는 지적에 “원금 보장은 하지 않는다”라고 답해야 했다.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수장으로서 머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제 펀드’ 자체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통 관제 펀드는 정권 후반이 되면 힘을 잃게 마련이다. 20대 대통령선거는 2022년 3월 9일 치러진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정책형 뉴딜펀드는 내년 초 운용사를 선정하고, 이후 펀드를 결성해 운용할 계획이다. 실제 상품이 출시되는 시점은 대통령선거가 1년 안팎 남았을 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녹색펀드’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역시 정권이 바뀐 뒤 애물단지가 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관제 펀드의 경우 정권이 힘이 있는 임기 초반에 내놔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임기 후반기에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탓에 금융사들이 최대한 부담을 떠안지 않는 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펀드매니저들이여 조심하라”

    9월 3일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참여형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뒤쪽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한 금융계 관계자들.  [청와대 사진기자단]

    9월 3일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참여형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뒤쪽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한 금융계 관계자들. [청와대 사진기자단]

    금융위는 설명 자료를 통해 “과거 녹색펀드, 통일펀드 등은 사업의 실체가 상대적으로 모호했다”라면서 “이에 반해 한국판 뉴딜은 차별화된 강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디지털’과 ‘그린’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신산업 분야고, 사업 구체성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국내 증권사에서 ‘피로감이 커진다’는 문구가 포함된 리포트를 당당히 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신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외국계 증권사가 뉴딜펀드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홍콩계 증권사인 CLSA는 지난 9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펀드매니저 데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CLSA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형 뉴딜펀드는 이미 크게 오른 업종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면서 “정부는 버블 조장에 앞장섰고, 우리 모두는 버블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라고 작심 비판했다. 이어 일부 기업은 혜택을 받겠지만 뉴딜펀드에서 소외된 기업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자본과 정부의 지원이 몇몇 성장 산업에 집중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CLSA는 그러면서 “펀드매니저들이여 조심하라, 당신의 대통령은 당신의 경쟁자”라면서 “세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는 펀드매니저와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뉴딜펀드가 자본시장의 질서를 교란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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