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민주당 이익공유제 촌극에 은행도 주주도 뿔났다

[금융 인사이드] 금융위는 ‘돈 아껴라’ 여당은 ‘돈 내라’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3-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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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분고분’했던 은행의 불만

    • 금융 당국 “보수적 자본 관리 필요”

    • 코로나 수혜 기업 겨냥한 與

    • 4월 보궐선거 앞둔 다급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기업 이익공유제를 위한 화상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기업 이익공유제를 위한 화상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재무건전성을 위해 배당을 줄이라고 해놓고, 한쪽에서는 이익공유제를 하자며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국내 대형 금융지주 관계자)
    국내 대형 은행 지주사들은 정부와 금융 당국의 지침이라면 눈치를 볼지언정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편이다. 외풍에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오랜 기간 관치금융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역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정치권이 민간기업들을 동원해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려 할 때마다 가장 앞장섰던 곳이 바로 은행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와 금융위원회가 은행 지주사들에 권고한 배당 축소를 두고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주주 배당 자제 권고한 당국

    이익공유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피해를 본 서민들을 기업이 이익을 나눠 돕자는 취지를 내세워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이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화두를 꺼내 들면서 더욱 주목받는 분위기다. 

    배당 축소는 금융위원회가 최근 은행 지주사와 은행에 코로나19로 인한 리스크에 대비해 주주 배당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것을 지칭한다. 국내 은행의 최근 5년 평균 배당 성향은 24%가량인데, 이를 20% 이내에서 실시하라는 내용이다. 



    이런 두 가지 정책이 금융 당국과 정치권에서 비슷한 시기에 거론되자 은행권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행권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적은 바로 정부와 여당이 이익공유제를 추진하기 위해 배당 축소를 권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한쪽에서는 돈을 쓰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돈을 아껴두라고 하니 의심할 만한 분위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정책을 연결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치권이 선심성 정책에 은행을 동원하면서 이처럼 ‘세심하게’ 자금 사정을 미리 챙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금껏 정치권이 그런 식으로 일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은행 배당은 내부 사정에 따라 각자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은행 관계자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정치권과 당국의 입김에 오랜 기간 시달려온 이들이다. 두 정책을 꺼내 든 주체가 다른 만큼 그 성격도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일단 배당 축소의 경우 금융 당국이 내놓을 만한 전형적인 정책이다. 정치권이 관심을 둘 만한 영역이 아니다. 절대적인 수가 적다고 해도 주주들이 반발할 만한 일을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배당 축소 권고에 대한 논란이 지속하자 2월 8일 추가 설명 자료를 내놨다. 금융 당국은 이 자료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도 국내 은행은 양호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 불확실성과 실물경제 어려움이 장기화할 경우 건전성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라며 “특히 최근 (은행이 거둔) 이익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보수적인 자본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대 실적 거둔 금융지주 겨냥?

    코로나19 사태는 백신 접종 등으로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게 사실이다. 오랜 기간 전 세계를 강타한 터라 ‘코로나 이후’ 시대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이에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배당 제한 등 엄격한 자본관리를 권고하고 있다는 게 금융 당국 설명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순이익의 15% 이내 배당을 권고하고 있다. 주요 EU 은행의 평상시 배당 성향이 4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격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월 1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금융 당국의 배당 제한 권고가 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금융 당국은 또 이번 권고가 한시적 조치일 뿐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 정도면 금융 당국이 배당 축소를 권고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향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의무가 있다. 예기치 못한 사태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기라도 할 경우 그 책임을 금융 당국이 전부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은행 처지에서도 크게 반발할 만한 일은 아니다. 배당 제한 수준을 일괄적으로 20%에 못 박은 것 등 정책적인 세심함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부를 비판하기에는 명분이 크지 않다. 전 세계 은행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만큼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배당을 늘려 주주를 달래면 될 일이다. 실제 금융지주사들은 이후 줄줄이 금융 당국의 권고를 수용해 배당률을 정하기도 했다. 

    이런 데도 은행들이 너도나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익공유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배당 축소 권고라는 다소 모순적인 정책까지 나오니 이를 싸잡아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에 되레 더 많은 이익을 거둔 기업들이 어려운 서민들을 돕도록 하자는 이익공유제의 취지에 은행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을 주요 계열사로 두고 있는 대형 금융그룹들은 지난해 대부분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거뒀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3조414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찍었고, KB금융지주도 순이익 3조4552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지난해 최대 규모인 2조637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처럼 너도나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대출이 늘어난 데다 최근 주식 투자 열풍으로 비은행 부문 수익 역시 늘어난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되면 이익을 피해 계층과 나누자는 정치권의 요구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쪽에서 배당 축소 카드까지 꺼내니 불만을 터뜨릴 수 있던 셈이다. 

    은행 내부뿐 아니라 주주들도 반발하는 모습이다. 주주들은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던 자신의 몫이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니 충분히 반발할 만한 일이다.

    與 ‘다급함’이 빚어낸 촌극


    결국 여당과 정치권이 사전 조율 없이 같은 시기에 다른 방향의 정책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벌어진 셈이다.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당의 ‘다급함’이 빚어낸 촌극으로도 볼 수 있다. 금융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전 세계 은행은 여전한 불확실성에 대비해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 실물경제도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금융사의 이익 공유는 불확실성이 걷힌 이후에 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되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은행들 역시 정치권의 압박 없이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익을 나누려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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