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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자멸, 남양유업 몰락史

[유통 인사이드] 사명 바꿔 반전 꾀하나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브레이크 없는 자멸, 남양유업 몰락史

  • ● 57년 만에 경영권 넘기다
    ● 터무니없는 ‘불가리스’ 실험
    ● 유행어 “남양이 또 남양했다”
    ● 인수가 3107억, ‘헐값’이냐 ‘제값’이냐
    ● 추후 CJ·SPC·농심 인수설 솔솔
5월 27일 남양유업이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에 팔린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모습. [뉴스1]

5월 27일 남양유업이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에 팔린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모습. [뉴스1]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고심 끝에 저의 마지막 자존심인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결국 이렇게 마무리됐다. 국내 2위 우유 업체인 남양유업이 사모펀드(PEF)에 경영권을 넘겼다. 홍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대부분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지난 1964년 이 기업을 창업한 이래 57년 만이다.

사태가 벌어진 직접적 계기는 지난 4월에 남양유업이 개최한 한 심포지엄이었다. 당시 박종수 항바이러스 면역연구소 박사가 남양유업의 발효유 ‘불가리스’가 인플루엔자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던 게 문제가 됐다. 

실험 자체가 억지스러웠다. 실험은 원숭이 폐 세포에 불가리스 내 유효성분을 침투시킨 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바이러스가 원숭이 폐 세포에 영향을 덜 미쳤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세포에 대해 이런 식으로 실험할 경우 변수가 많아 실제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동물이나 인체에 적용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양이 또 남양했다”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를 발표한 박 박사는 남양유업이 지난 2월 만든 항바이러스 면역연구소 소장이자 남양유업의 미등기 임원이었다. ‘남양유업 사람’이라는 의미다. 굳이 전문가들의 소견을 묻지 않아도 믿음이 가지 않는 발표였다.

실험 결과가 알려지자 남양유업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일부 대형마트 등에서는 불가리스 품절 사태도 벌어졌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발표가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긴급 현장 조사에 나섰고,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 및 고발 조치했다.

파장이 커지자 홍 전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최후의 카드인 듯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 통하지 않았다. 비판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홍 전 회장은 기업 자체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남양유업의 주가는 말 그대로 폭등했다. 투자자들은 오너가 회사에서 손을 떼자 남양유업의 ‘암흑기’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남양유업의 이번 발표는 욕심이 과해 내놨던 결과물로 여겨진다. 명백한 실책이다. 하지만 오너가 회사를 팔아야 할 정도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칠 만한 일도 아니고 실제 누군가가 큰 피해를 본 것도 아니다. 소비자 역시 이번 사건 자체에 이 정도의 분노를 표한 것은 아니었을 터다. 

대신 소비자들은 이번 발표가 논란이 되자 지난 수년간 지속해 온 ‘불매운동’을 또 한 번 떠올렸을 뿐이다. 남양유업에는 가장 뼈아픈 일이었다. 통상 불매운동은 누군가가 깃발을 든 뒤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혹여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 불매운동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남양유업의 경우 소비자에게 ‘불매운동’의 대명사 격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누군가 깃발을 들 필요도, 공감할 필요도 없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면 잘 사그라지지도 않는다. 이번 발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소비자들은 곧장 “남양이 또 남양했다”며 일제히 남양유업을 비판했다. 금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남양유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2013년 이후로 여겨진다. 당시 남양유업의 한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었다.  남양유업이 대규모 불매운동에 직면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문제는 당시 남양유업이 ‘사건’을 제대로 매듭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양유업의 실질적 주인인 홍 전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경영인들만 앞세워 고개를 숙이게 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영이 정상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당시 ‘갑질 사건’이 알려진 직후인 2014년 남양유업 매출이 전년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2015년부터는 다시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듯했다.

당시 시장에는 남양유업 제품을 대체할 만한 게 없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1991년 내놓은 불가리스를 비롯해 맛있는우유GT와 임페리얼 분유 등 인지도 높은 제품을 다수 보유한 기업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시장에서 쌓은 탄탄한 지위 등을 고려하면 불매운동 한 번으로 크게 흔들릴 기업은 아니었다.

5월 4일 홍원식 당시 남양유업 회장이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회장직 사퇴를 밝혔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5월 4일 홍원식 당시 남양유업 회장이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회장직 사퇴를 밝혔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57년 오너경영의 마침표

하지만 남양유업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소비자들이 기를 쓰고 불매운동을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양유업의 ‘갑질 사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 이후 남양유업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떠올렸다. 창업주의 외조카인 황하나 씨의 마약 사건을 비롯해 ‘아이 주스 곰팡이 사건’과 이른바 ‘코딱지 분유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댓글로 경쟁사를 비방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주스 곰팡이 사건이나 비방 댓글 사건은 명백히 남양유업이 잘못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황씨 사건의 경우 남양유업이라는 기업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게 사실이다. 코딱지 분유 논란도 루머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제나 수년 전 ‘갑질 사건’을 떠올렸다. “남양이 남양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급기야는 ‘남양유없’이라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카메라로 제품의 바코드를 인식해 남양유업 제품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준다는 사이트다. 소비자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일상화’하려 하고 있었다. 기업 처지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불가리스 사건’은 마지막 한 방이 됐다. 업계에서는 남양유업이 이번 발표를 결정하게 된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단번에 알아챌 만한 부실한 실험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할 때까지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조직 분위기가 문제라는 의미다. 남양유업은 경직된 조직문화와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다.

57년간 이어진 오너 경영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남양유업은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오너 일가 지분 53%를 3107억 원에 팔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 가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일단 홍 전 회장 등 오너가 오랜 기간 이끌어온 기업을 넘겼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경영 실패에도 불구하고 3000억 원 이상을 ‘챙겼다’라는 점에서 홍 전 회장 일가가 잘 팔았다며 비아냥거리는 지적도 있다.

한앤컴퍼니는 사모펀드인 만큼 남양유업을 사들인 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한앤컴퍼니가 과연 ‘적정가’에 남양유업을 인수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도 나온다.

남양유업의 자산 규모는 지난 3월 말 기준 9894억 원이다. 연간 매출은 1조 원에 달한다. 국내 식품업계에서 연매출 1조 원은 ‘꿈의 숫자’다. 남양유업은 지난 2009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뒤 2019년까지 11년간 ‘1조 클럽’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기업을 3000억 원에 인수했다는 점에서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남양유업의 가치는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 평판 리스크가 워낙 큰 기업인 만큼 3000억 원도 비싸다는 분석이다. 남양유업의 매출액만 보면 지난 2016년 1조2390억 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해 줄었다. 지난해에는 9489억 원으로 1조 클럽에서 탈락했다. 앞으로도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남양유업과 같은 ‘우유 업체’의 경우 저출산에 따른 시장 축소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성장성이 높지 않다는 의미다.

한앤컴퍼니의 되팔기?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을 인수하면서 이런 부정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사모펀드는 철저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한앤컴퍼니는 지난 2013년 웅진식품을 인수한 뒤 5년 만에 두 배 가격에 되판 경험도 있다.

한앤컴퍼니는 인수와 동시에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과정에서 남양유업의 사명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양유업이 불매운동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만큼 사명을 바꾸는 것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안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남양’이라는 이름에는 기존 오너 일가의 본관인 ‘남양 홍씨’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만큼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남양유업의 재무 상황이 아직 탄탄하고 제품력이 뛰어난 만큼 조직문화만 개선하면 성공적인 매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벌써 CJ그룹이나 SPC, 농심 등 국내 주요 식품 업체가 남양유업을 인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국내 우유 시장을 이끄는 업체라는 점에서 기업이 무너질 경우 국가적 손실로도 볼 수 있다”며 “한앤컴퍼니가 이런 점을 고려해 남양유업을 제대로 되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얼마나 빨리 완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남양유업은 경직된 조직문화로 잘 알려진 기업인 만큼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양유업 #한앤컴퍼니 #불매운동 #신동아



신동아 2021년 7월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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