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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통신

미국 자전거 보호도로 가보니…

‘자전거 천국’ 쉽지 않네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미국 자전거 보호도로 가보니…

  •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서울을 ‘세계 최고 자전거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서울 전역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고, 자전거 고속도로, 자전거 특화지구 등을 만들 방침이라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정책의 시사점을 살펴봤다.
3월 자전거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교차로 주변에 설치된 자전거 보호도로. 차량 진행 방향 기준으로 맨 오른쪽이 녹색으로 칠해진 자전거 보호도로다. 자전거도로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왼쪽에 마련된 노상주차장에 자동차들이 일렬로 주차돼 있다. 이 주차장 왼쪽이 차도다.

3월 자전거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교차로 주변에 설치된 자전거 보호도로. 차량 진행 방향 기준으로 맨 오른쪽이 녹색으로 칠해진 자전거 보호도로다. 자전거도로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왼쪽에 마련된 노상주차장에 자동차들이 일렬로 주차돼 있다. 이 주차장 왼쪽이 차도다.

샌프란시스코는 명실상부한 ‘자전거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시가 공개한 통계를 보면, 인구 88만 명인 이 도시에서 2017년 평일 기준 하루 약 1만 9000명의 주민이 자전거로 직장을 오간다. 2018년 10월 조사에서는 하루 피크타임(오전 7~10시, 오후 4~8시)에 목격된 ‘자전거족’이 4만5000명에 달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전거도로는 시내 곳곳으로 연결돼 있다. 3000곳이 넘는 장소에 한꺼번에 자전거 1만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규모의 자전거 거치대도 설치돼 있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고, 도로가 잘 연결돼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안전’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7월 28일 일요일 오후 3시, 샌프란시스코 하워드가(Howard St)와 6번가(6th St)가 만나는 교차로에 갔다. 이 근처에는 트위터, 우버, 에어비앤비 등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 기업이 몰려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과 자전거가 몰려 크게 북적인다. 휴일인 이날은 교차로가 다소 한산했다. 일방통행인 하워드가 도로 일부가 녹색으로 칠해진 게 보였다. 그 뒤로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조성된 주차장이다.


도로 중간 안전지대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자전거도로와 차도 사이에 안전지대(버퍼존·buffer zone)를 만들고 있다. 이 주차장이 바로 그것이다. 주차장 오른쪽은 자전거도로, 왼쪽은 차도다. 차도와 자전거도로가 주차장 공간만큼 떨어져 있어 자전거와 차량이 주행 중 접촉할 여지가 없다. 안전지대 구실을 하는 주차장과 자전거도로 사이에는 플라스틱 보호 기둥도 있다. 자전거 안전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조치다. 이런 도로는 일반적인 자전거도로와 구별해 ‘자전거 보호도로(parking-protected lane·보호도로)’라고 한다. 

교차로에 서서 잠시 지켜보니 보호도로 위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갔다. 캘리포니아에선 18세 이상 성인은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날 눈에 띈 사람도 상당수가 헬멧을 쓰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길 복판에 있는 주차장이 주행하는 차량으로부터 자전거를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다만, 보호도로가 시내 전체에 조성된 건 아니다. 이 구역 보호도로도 우회전 지점에서 끝났다. 우회전을 하려는 차량은 이 구간에서 자전거 앞뒤로 끼어들 수 있었다. 

이 교차로에 보호도로가 설치된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이곳에 일반적인 자전거도로가 있었다. 자동차와 자전거가 뒤섞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3월 8일, 전기자전거를 타고 가던 30세 여성이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피해자는 사고 현장에서 자전거로 6분 정도 걸리는 에어비앤비 본사 직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이 여성은 오른쪽 길가에 서 있던 차량 운전자가 갑작스레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자 그걸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어 뒤따라오던 차량에 부딪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뒤 여론이 들끓었다. 이미 시내 일부에 설치돼 있던 보호도로가 이 교차로에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얼마 후 사고가 일어난 그 구간에 보호도로가 만들어졌다.


자전거 이용자의 비극

샌프란시스코 포트레로힐 지역 도로에서 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의 왼쪽으로 바닥을 녹색으로 칠하고 차도와의 사이에 플라스틱 보호 기둥을 세운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다. 반면 그의 오른쪽 자전거도로는 바닥만 녹색으로 칠했고 플라스틱 보호기둥은 설치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자전거도로가 혼재한다.

샌프란시스코 포트레로힐 지역 도로에서 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의 왼쪽으로 바닥을 녹색으로 칠하고 차도와의 사이에 플라스틱 보호 기둥을 세운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다. 반면 그의 오른쪽 자전거도로는 바닥만 녹색으로 칠했고 플라스틱 보호기둥은 설치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자전거도로가 혼재한다.

사실 이 교차로 일대에선 이전에도 교통사고가 빈발했다. 샌프란시스코 마켓가 남쪽에 있어 소마(SoMa·South of Market)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는 하워드가와 폴섬가(Folsom St)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도시교통국(SFMTA) 통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나는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70%가 바로 이 두 도로에서 발생한다. 그런데도 사고 전까지 보호도로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교통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언론 스트리츠블로그(Streetsblog) 보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자전거도로 길이는 720km다. 그중 보호도로는 약 30km로 전체의 4%에 불과했다. 8월 현재는 보호도로가 조금 더 확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하워드가와 6번가 교차로를 떠나 좀 더 남쪽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포트레로힐(Potrero Hill) 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자전거도로가 있다. 차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에는 플라스틱 보호 기둥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보호도로와 달리 차도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하는 노상주차장은 없었다. 자전거 운전자가 자동차를 신경 쓰지 않고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안심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자전거도로도 샌프란시스코 전체 자전거도로의 1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플라스틱 보호 기둥조차 설치되지 않은 자전거도로다. 안전한 자전거 도시로 가는 길은 아직 먼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도로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자전거 운전자를 위협하는 구간을 만나게 된다. 필자는 2년 전쯤 토요일 오전 페이스북 본사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 홈구장)까지 약 56km 구간을 달린 적이 있다. 4시간가량 주행하며 가장 긴장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구간이었다. 일부 도로엔 철로가 있어 방심하면 그대로 미끄러져 큰 사고로 이어질 듯했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뒤엉키는 구간도 많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 후 다시는 자전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가지 않았다. 언젠가 보호도로만 이용해 시내를 달릴 수 있게 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다.


갈 길 먼 ‘자전거 도시’

현재 보호도로는 실리콘밸리 등 다른 도시로도 확대되고 있다. 새너제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기존 도로 일부를 보호도로로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 보호도로 사이에 주차 공간을 만들자 혼란이 일기도 했다. 헷갈린 시민들이 도로 중앙 주차장이 아니라 자전거 보호도로에 차를 세우는 일도 생겼다. 

지난해 9월 새너제이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도로 오른쪽에 있던 주차 공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녹색으로 칠해진 보호도로가 들어선 상태였다. 주차 공간은 도로 한가운데 흰색 페인트로 표시돼 있었지만 선뜻 차를 세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주차 공간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시민들이 불만을 표출하자 시는 새로 바뀐 도로에서는 한동안 주차 위반 단속을 하지 않았다. 

차가 다니는 길을 좁히고, 주차 공간을 도로 중앙으로 옮기며, 자전거가 다닐 공간은 넓히는 방향으로의 변화.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갈 길을 가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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