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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통신

실리콘밸리는 로봇 경비원이 대세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평 않는 강철 노동자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실리콘밸리는 로봇 경비원이 대세

  •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인간이 하던 일을 점점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 특히 저숙련 업무에서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로봇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 기술혁신을 이끄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 직업으로는 경비원이 있다.
미국 나이트스코프사가 제작한 경비로봇이 삼성전자 미국법인 본사 외부를 감시하고 있다.

미국 나이트스코프사가 제작한 경비로봇이 삼성전자 미국법인 본사 외부를 감시하고 있다.

9월 2일 월요일 오후 6시,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Santa Clara) 시에 있는 웨스트필드 밸리페어 쇼핑몰을 찾았다. 루이비통, 살바토레 페라가모, 프라다, 구찌 등 명품 상점이 많아 실리콘밸리에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상점가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부, 한눈에 봐도 연인이란 걸 알 수 있는 다정한 커플 등으로 북적였다. 월요일이지만 노동절 휴일을 맞아 큰 폭의 할인행사를 하는 상점이 많았다.


쇼핑몰의 인기스타

미국 실리콘밸리 웨스트필드 밸리페어 쇼핑몰에서 백화점 건물 주위를 순찰하고 있는 경비로봇.

미국 실리콘밸리 웨스트필드 밸리페어 쇼핑몰에서 백화점 건물 주위를 순찰하고 있는 경비로봇.

쇼핑몰 2층에 있는 메이시백화점(Macy’s) 앞.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드로이드 알투디투(R2-D2)를 연상케 하는 빨간색 경비로봇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드르륵 드르륵’ 하는 바퀴소리가 났다. 귀에 거슬릴 정도의 소음은 아니었다. 원뿔 형태의 빨간색 몸체엔 카메라 4대가 달려 있었다. 머리 부분에선 응급차 비상등 같은 물건이 빙빙 돌아가는 게 보였다. 자율주행차에서 ‘눈’ 같은 기능을 하는 라이다(lidar) 장치였다. 로봇 몸체에는 ‘KNIGHTSCOPE(나이트스코프)’라는 회사 이름과 더불어 쇼핑몰 이름이 크고 눈에 잘 띄는 서체로 새겨져 있었다. 

이 경비로봇은 쇼핑몰의 스타였다. 옆을 지나는 꼬마들은 거의 모두 로봇을 만지거나 말을 걸었다. 로봇이 답을 하지 않아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거부감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한 여자아이는 로봇을 쓰다듬으며 “안녕, 너 뭐 하니?”라고 물었다. 바로 뒤에서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금세 엄마 쪽으로 돌아서 “엄마, 얘가 대답을 안 해” 하면서 재잘거렸다. 아이가 한참 로봇에 빠져 있자, 결국은 오빠로 보이는 소년이 그 소녀를 잡아끌었다. 그제야 가족이 같이 자리를 떴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종종 로봇 옆으로 지나가며 로봇의 머리 부분을 연신 쓰다듬곤 했다. 

8월 29일 오전 11시 20분, 새너제이에 있는 삼성전자 미국법인 본사에서도 로봇을 봤다. 이 건물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핵심 인재가 일하는 곳이다. 거대한 조형물 같은 빌딩 1층엔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 정원처럼 조성돼 있다. 바로 그곳에서 삼성이라는 로고를 붙인 하얀색 로봇경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정원 바닥은 쇼핑몰 내부의 매끈한 바닥과 달리 표면이 거칠다. 그 위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로봇은 10여 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삼성전자 헤드쿼터의 로봇 경비원

실리콘밸리는 로봇 경비원이 대세
이 로봇 제작사는 웨스트필드 밸리페어 쇼핑몰에 배치된 로봇 제작사와 같은 곳이었다. 삼성전자 경비로봇은 360도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하고 몸체에 달린 전구에서 불빛을 뿜어내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녹음, 녹화 기능을 갖춘 이 로봇 사진을 찍으려 하자, 로봇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을 촬영하려는 수상한 인간을 쳐다보며 “대체 이 인간은 누구인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위험 요소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좀 더 자세히 쳐다보니 로봇 몸체 맨 밑부분에 “주의. (로봇에게) 장난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육중한 로봇과 부딪치면 다칠 수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같았다. 



실리콘밸리 웨스트필드 밸리페어에 로봇경비원이 처음 등장한 건 2017년 1월경이다. ‘구글의 도시’ 마운틴뷰에 있는 회사 나이트스코프가 만든 로봇이 이 시기부터 실리콘밸리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미국 본사에 경비로봇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키 150cm, 무게 180kg 정도인 이 로봇에는 카메라와 각종 센서가 장착돼 있다. 그것을 이용해 주위의 수상한 활동을 감지하면, 즉각 인간 경비원에게 보고하는 게 로봇 역할이다. 쇼핑몰에서는 소매치기 또는 도난사고 현장을 촬영해 범인 검거를 돕는 구실도 한다. 

로봇은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 경비 지역 내에 설치된 충전소에 찾아가 스스로 충전한다. 인간처럼 지칠 일이 없다. 강도와 맞닥뜨려도 기껏해야 고장이 날 뿐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총기 사고가 발생하는 이 나라에서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사용자 관점에서 볼 때 경비로봇은 비용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경비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로봇을 판매하지 않고 임대한다. 엄밀히 말하면 경비로봇을 배치해 감시 보고 시스템을 운영하며 서비스 요금을 받는다. 이 시스템에 MAAS(Machine-as-a-Service·서비스 형태로 이용하는 기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이트스코프의 경우, 쇼핑몰과 빌딩 외부, 주차장 등에 배치하는 K5라는 이름의 경비로봇을 시간당 9달러 정도(기본요금)에 임대하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 지역의 노동자 최저임금은 보통 시간당 15달러 수준이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2018년 5월 현재)를 보면, 경비원 임금은 미국 전체 평균 15.41달러,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5.90달러였다. 실리콘밸리에서 경비 업무에 사람 대신 로봇을 쓰면 비용이 40%쯤 절감되는 셈이다. 

물론 시간당 9달러는 딱 기본요금이다. 로봇경비원에게 빌딩 안팎을 돌아다니며 주위를 감시하고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해 보고하는 것까지만 시킬 수 있다. 여기에 실시간 비디오 스트리밍 및 일정 기간 데이터 저장 서비스, 자동차 번호판 분석 서비스 등을 더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그렇다 해도 사람 경비원을 고용할 때 제공해야 하는 건강보험, 실업급여, 휴가 등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다.


로봇이 가져올 미래

미국 헤이워드 경찰이 도난사고가 빈발하는 시내 주차장 건물에 배치한 경비로봇(위). 8월 3일 헤이워드 시내 주차장에서 경비로봇을 발로 차 쓰러뜨리고 도망친 폭행 용의자. 경찰은 쓰러진 경비로봇이 촬영한 이 사진으로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다. [헤이워드 경찰 페이스북 페이지]

미국 헤이워드 경찰이 도난사고가 빈발하는 시내 주차장 건물에 배치한 경비로봇(위). 8월 3일 헤이워드 시내 주차장에서 경비로봇을 발로 차 쓰러뜨리고 도망친 폭행 용의자. 경찰은 쓰러진 경비로봇이 촬영한 이 사진으로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다. [헤이워드 경찰 페이스북 페이지]

경비로봇 증가는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8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도시 헤이워드(Hayward)에서는 ‘경비로봇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헤이워드 경찰이 도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이 도시 주차장에 경비로봇을 배치했는데 겁도 없는 한 청년이 달려와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 모습은 생생히 촬영돼 용의자 수배 사진으로 사용됐다. 

아마 그 청년은 로봇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촬영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그렇게 생각 없이 달려들 수 있었을까. 쇼핑몰이나 삼성전자 사옥에서 만난 사람들 태도도 비슷해 보였다. 사방을 실시간 감시, 촬영, 보고하는 장치가 바로 옆을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한 장난감 쳐다보듯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로봇이 이렇게 환영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6월 로봇과 일자리를 다룬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에서 발표한 ‘로봇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How robots change the world)’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로봇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저임금 일자리 상당수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제조업의 경우 2030년까지 세계 일자리 2000만 개를 로봇이 차지할 것이라는 수치도 제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12월 미국 백악관 대통령실이 내놓은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Artificial Intelligence, Automation, and the Economy)’라는 보고서에도 유사한 전망이 담겼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자동화로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고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백악관 대통령실은 인공지능과 자동화에 투자해야만 하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을 위해 직업교육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동화, 그리고 인간

앞서 실리콘밸리 쇼핑몰에서 경비로봇이 있는 장소를 찾던 도중 1층의 한 보석 매장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사설 경비업체 직원을 만났다. 쇼핑몰의 경비로봇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2층에 한 대 있기는 한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소. 어딘가 돌아다니고 있겠지.” 

20~30분쯤 쇼핑몰 2층에서 경비로봇을 찾다가 백화점 앞에서 마침내 로봇을 발견했다. 문득 쇼핑몰 보석 매장 앞에는 언제까지 인간 경비원이 서 있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보석 매장에서 밀려난다면 그에겐 어떤 기회가 제공될까. 과연 제공되긴 할까.




신동아 2019년 10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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