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中과 운명공동체? 事大로 돌아가는 것”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의 일침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입력2020-05-0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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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 무역전쟁 이어 ‘코로나19’ 대전

    • 美, 21세기도 ‘인구’ 바탕 국제질서 유지

    • 한미동맹 없었다면 한국은 中 변방일 뿐

    • 인민 통제 기반한 中 사회주의 성공할까

    • 수천 년 역사 겪고도 ‘사대외교’ 회귀 움직임

    • 文 참모들, 학생운동 국제관으로 美 적대시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지난해 일단락된 미·중(美中) 무역 갈등의 불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으로 옮겨 붙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우한서 발병한 중국산 바이러스”라며 의도적으로 중국 책임론을 띄우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코로나19 근원을 파악하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이에 대해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미·중은 코로나19를 둘러싼 상황 전개가 향후 양국의 패권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신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외교부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에서 33, 34대 원장을 지낸 외교통. 3월 25일 원격 강의를 준비 중인 윤 교수와 그의 연구실에서 마주 앉았다.

    美·中 코로나19 책임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6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6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코로나19 사태가 미·중 간 신경전을 넘어 책임론으로 비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만 해도 시진핑 주석은 내부 단속을 강화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여서 우한 봉쇄 등 ‘차단’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중국도 타격을 받고 미국도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부딪치고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19를 둘러싼 상황 전개가 향후 패권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다.” 

    - 미국은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고, 법적 소송 이야기도 나온다. 

    “우선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 대상이 중국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도 일정 부분 사실을 은폐한 책임이 있다. 사태 초기에 중국이 은폐를 시도해 다른 나라들이 대비를 느슨히 하게 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는 거 같다.” 




    미국이 키운 중국

    - 전염병 발병에 대해 특정 국가가 책임지라는 건 이례적인데. 

    “그렇다. 지난 2014년 세계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상대로 책임론을 일으키는 것은 중국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고 ‘중국제조 2025’(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발표한 산업고도화 전략으로 2025년까지 제조 초강대국이면서 기술 자급자족 달성을 목표로 한다)나 5G 등 최첨단 산업에서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나라인데, 방역·보건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문제 제기를 한 거다. 물론 국제사회 일원이 됐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 G2인 미·중 관계를 ‘신냉전’으로 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견인했다. 소련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1980년대 미국은 ‘잠자는 사자’ 중국을 깨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자유시장 체제에서 중국을 일정 부분 미국의 ‘공장’으로 활용한 거다. 글로벌 가치사슬(글로벌 밸류체인·상품과 서비스의 설계,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범위에 이르는 기업 활동이 운송 및 통신의 발달로 세계화되는 것을 의미) 속에서 중국을 생산기지로 만든 게 미국의 국제 경제 시스템이다. 

    중국이 성장하니 과거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이해관계자)’로 두려고 했다. 쉽게 말해, 회사 경영에서 임원 자리를 주겠다는 건데 중국이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후 중국은 산업 분야에 도전장을 내고 제1도련선(일본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 보르네오를 연결하는 방어망), 제2도련선(일본 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방어망) 등 군사적으로도 한반도를 포함한 태평양 진출을 노리고 있다.” 

    - 미국도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펴는 등 전략적 변화가 있었다. 

    “오바마 정부 후반기부터 ‘아시아로의 회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했고,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 기조가 더욱 강화됐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주변국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 중국은 굉장히 센 나라 같지만, 외교적으로는 상당히 고립돼 있다. 중국 주변 15개국 중 8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또한 15개국 중 9개국은 과거 중국과 전쟁을 한 나라다. 중국을 에워싼 나라를 합하면 중국만큼의 경제력이 되고, 중국만큼 군사비를 지출한다. 인구는 더 많다. 미국 처지에서는 그 나라들만 관리를 잘해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중진국의 함정, 민주화가 관건

    -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차츰 하향 곡선을 그린다. 외형적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거 같은데. 

    “중국이 처한 문제점은 ‘중진국의 함정’이다. 개발도상국이 소득 1만 달러 정도 되면 선진국 문턱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케이스 조사를 해보면, 소위 선진국 문턱에 도달하거나 선진국이 된 나라로 한국, 대만, 홍콩 등이 거론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이 된 나라의 공통점은 민주화였다.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는 키워드가 민주화인데, 중국공산당이 이를 수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우리도 이 과정을 겪었다.” 

    - 민주화 요구로 시진핑 체제와 중국식 사회주의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중국도 우리 사회가 성장하던 상황과 유사하게 성장했다. 다만 중국은 ‘박정희 체제’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3억 대의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얼굴 인식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전자화폐도 발달해 돈을 쓰면 어디에 썼는지 정부가 알 수 있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니 동선(動線)도 드러난다. 즉 인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국은 박정희 체제에서 극복할 수 없었던 민주화 요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 국민 통제 시스템이 성공한 사례는 없는 거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인민 통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중국식 사회주의가 성공적으로 발전한다면 민주주의가 지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동서고금 그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처럼 세계경제에 편입된 나라가 통제 시스템을 활용하고, 심지어 그러한 시스템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나라는 중국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군사, 경제, 금융…미국의 패러다임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 향후 미·중 패권전쟁의 양상은. 

    “내가 보기에는 21세기 역시 미국이 세계를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등을 이야기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은 다른 나라의 기술을 좇아간 것이지 스스로 만들어낸 영역은 없다.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단계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중국이야말로 미국이 만들어놓은 글로벌 가치사슬 혜택을 많이 본 나라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 독자적인 것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그동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강국의 입지를 유지해 왔다. 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적으로,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는 경제적으로, 일본의 제조업 도전에는 파이낸셜(금융)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겨냈다. 석유라는 자원 전쟁에서도 미국은 셰일가스를 추출하면서 세계 원유 가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원유 증산과 감축을 두고 싸우지만 미국은 별 관심이 없다. 지금 미국은 IT라는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했다. 미국 상장회사 시가총액 1~5위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IT 기업이다.” 

    - 군사, 경제, 금융에 이은 미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이라고 보나. 

    “향후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미국의 결정적인 힘은 ‘인구’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2050년 한국 인구는 5000만 명에서 4000만 명, 일본은 현재 1억3000만 명에서 9500만 명, 중국도 15억 명에서 12억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 다만 미국은 현재 3억 명에서 4억50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 이유는 뭔가. 

    “젊은 인구의 유입이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장벽과 이민 제한 등으로 인구 유입을 막고 있지만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유수의 대학으로 세계의 젊은 인력이 모인다. 금융, IT 산업 중심지도 여전히 미국이다. 시진핑 주석 자녀를 비롯해 중국 지도부 자녀들도 미국에서 생활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유능한 인력 10명이 미국에 가면 2~3명만 본국으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 결국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유지된다면 한미동맹은 앞으로도 유효하겠다. 

    “그렇다. 한미동맹의 공고함이 건전한 한중관계를 유지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한국을 중요시한 것도 한미동맹 덕이다. 혼자인 한국은 중국에 별 효용가치가 없다. 과거처럼 변방의 한 나라일 뿐이다. 사실 중국은 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과거 중국 내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발생한 ‘톈안먼 사태’로 중국이 세계적으로 고립 됐을 때, 서방세계와 이어주는 통로 역할도 우리가 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도 도움을 줬고. 중국은 우리가 미국과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를 활용할 수 있었던 거고, 우리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만큼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제1 무역국인 것은 맞다. 우리나라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그런데 중국이 그 반도체를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생산해 미국에 되판다. 현재의 글로벌 가치사슬 아래서 일상적인 상황인데, 우리는 마치 미국과 중국을 별개로 생각한다. 중국이 성장했으니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조선시대 명청(明淸) 교체기에 우리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명나라를 선택해 전란을 겪었으니 이번에는 성장하는 새로운 강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서도 당시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면 한국은 망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사드 보복 이후 대중 수출은 14~15% 증가했다. 전 세계 경제는 연결돼 있다. 한 가지 사안으로 양국 관계가 어그러지기 어려운 구조다.”

    문재인 참모들의 현실 인식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우리의 외교 현실은. 

    “지금 대한민국은 고조선 건국 이래 최고의 강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3국을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이제 우리가 도전하기 어려울 만큼 발전했고,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훨씬 강하다.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막강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엄중한 지정학적 환경을 잊고 살았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해방 정국에서 한미동맹이 생겼기 때문에 주변 세 나라의 힘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 이런 때일수록 엄중한 상황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이다. 요즘은 북한과 관계 개선만 되면 한미동맹은 필요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지만. 핵심 참모들은 과거 학생운동 시기의 국제관을 버리지 못했다고 본다. 북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미국을 적대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중국의 성장에 따라 ‘동북아 균형자론’을 말했지만,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거 아닌가. 현재 문재인 정부 참모들은 노 전 대통령의 현실 인식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 우리가 친중 노선을 견지한다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면서 우리 정부가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독자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힘이 있는가. 역사적으로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 우리는 마치 중국과 ‘뭐가 되면’(기자에게는 ‘짝짜꿍’으로 들렸다) 운명공동체가 되고 여러 일을 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수천 년 한반도 역사에서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우리 바람대로 된 적이 있는가. 왜 21세기에도 예의 바르고 사대(事大)를 잘하는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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