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美, 서해 수중에서 15㎝ 오차로 6분 만에 베이징 타격한다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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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12-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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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중발사 극초음속 무기는 對中 게임 체인저

    • 중거리미사일 한반도 배치 사실상 거부한 韓

    • 육상에서 수중으로! 미국의 전략 변화

    • 지상발사보다 수중발사 먼저 전력화하기로

    • 韓 전략적 가치 급속도로 떨어져

    미국 해군이 육군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활공체 [미국 해군 유튜브 캡처]

    미국 해군이 육군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활공체 [미국 해군 유튜브 캡처]

    2020년 12월 초,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이 랴오닝(遼寧)성 다롄 인근 덩샤허(登沙河) 소재 비행장에 신형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을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이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은 육상에 설치하는 일반적 대형 레이더가 아닌 비행선에 설치한 형태였고, 주임무는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 감시라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중국은 왜 조기경보 비행선을 띄웠을까

    중국이 공중 기반 레이더를 탑재하기 위해 개발한 위안멍 비행선. [오리엔탈 데일리 뉴스 홈페이지]

    중국이 공중 기반 레이더를 탑재하기 위해 개발한 위안멍 비행선. [오리엔탈 데일리 뉴스 홈페이지]

    교도통신은 또 중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 비행선의 작전 고도는 약 20㎞로 장기간 체공하면서 공중에서 레이더 감시 임무를 수행하며, 저고도로 접근하는 미사일 탐지에 특화된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즉, 이 레이더 비행선은 공중에 설치된 조기경보 시스템인 셈이다. 

    이 조기경보 레이더는 교도통신이 12월 그 존재를 처음 보도했지만, 2019년 9월부터 덩사허 북동부 지역 군용 비행장에 설치돼 시험 가동에 들어간 레이더 조기경보 비행선이다. 길이 약 50m의 비행선에 접근하는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탐지하기 위한 레이더가 탑재돼 있다. 주임무는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 감시가 아니라 베이징으로 향하는 미사일에 대한 조기경보 제공이다. 

    이 비행선은 중국이 2015년 개발해 네이멍구자치구에서 실험한 위안멍(圓夢) 비행선을 개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시간 체공하며 공중 기반 레이더, 통신 중계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이 비행선은 4년여간의 시험평가를 마치고 2019년 랴오둥반도에 처음으로 배치됐다. 중국은 레이더의 성능과 신뢰성을 평가한 뒤 배치 지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중국은 해안선 곳곳에 다수의 레이더를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수송기를 개조해 레이더를 얹은 조기경보통제기도 다수 운용 중인 나라다. 지상과 공중에 이미 대량의 레이더를 돌리고 있는 중국이 이 같은 비행선 탑재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 배치한 이유는 10월,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무서운 경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포츠머스 해군조선소를 찾아 버지니아급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개조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 그는 해군의 극초음속 무기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가장 먼저 배치될 것이며, 그 전력화 시기 역시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중국으로 하여금 365일 24시간 조기경보가 가능한 새로운 무기체계 필요성을 느끼게 한 것이다.


    美 수중발사 극초음속 무기는 게임 체인저

    극초음속 무기 개념도 [Raytheon Technologies]

    극초음속 무기 개념도 [Raytheon Technologies]

    비행선을 이용해 공중에 365일 24시간 띄울 수 있는 조기경보 레이더 기지를 만드는 것은 사실 미국에서 먼저 시도한 개념이었다. 미국은 2015년 ‘JLENS(Joint Land Attack Cruise Missile Defense Elevated Netted Sensor System)’로 명명된 비행선 탑재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한 적이 있다. 미국은 계속된 시행착오와 높은 비용 때문에 결국 이 사업을 접었는데, 이를 눈여겨보던 중국이 위안멍이라는 이름으로 유사 시스템 개발에 나선 것이다. 

    중국이 비행선 기반 공중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저위력 핵무기의 적극적인 사용 의지를 천명했고, 오바마 행정부 시기 사실상 돈좌(頓挫·일이나 계획이 갑자기 틀어짐)돼 있던 육·해·공군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부활시켰다. 각 군의 극초음속 무기 가운데 중국이 가장 경악한 것은 해군의 재래식 즉시 타격(CPS·Conventional Prompt Strike) 개념에 따라 개발에 들어간 잠수함 발사 극초음속 무기였다. 

    미국 해군은 버지니아급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에 VPM(Virginia Payload Module)이라는 장치를 설치해 다양한 무기를 탑재하고 있는데, 현재 여기에는 아음속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가 탑재된다. 미국 해군은 이르면 2022년부터 이 VPM에 육군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공용 극초음속 활공체(CHGB·Common Hyper Glide Body)를 탑재할 예정이다. 이것이 실전에 배치되면 미국은 세계 최고의 수중 침투 능력을 가진 잠수함을 이용해 보하이만, 즉 중국의 코앞에서 베이징을 6분 이내에 타격할 수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사실상의 게임 체인저를 손에 넣게 된다. 

    중국이 랴오둥반도에 조기경보 비행선을 배치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서해는 대잠(對潛) 작전 환경이 세계 최악인 곳으로 이 해역으로 침투하는 미군 잠수함을 중국이 탐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군 잠수함이 산둥반도를 지나 보하이만 인근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미사일 발사 후 일정 고도까지 상승하기 전에는 기존의 레이더 시스템으로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베이징의 중국 국가 지도부는 대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즉, 중국의 이 레이더 비행선은 중국 지도부가 미국의 ‘게임 체인저’로부터 대피할 시간을 벌기 위한 조기경보 장비다.

    현존 무기체계로 대응 불가능

    국내외 언론 보도만 보면 극초음속 무기(Hypersonic weapons) 분야에선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는 것처럼 비친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아방가르드(Avangard) 미사일을 직접 소개하며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고, 중국은 일본은 물론 괌까지 타격할 수 있는 DF-17을 열병식에서 공개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아직 이렇다 할 극초음속 무기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각 군에서 다양한 유형의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적극적인 핵무기 감축과 일명 시퀘스터(Sequester·자동예산삭감제도)를 통해 미군의 전략적 능력을 약화시킨 오바마 행정부 8년을 거치며 거의 모든 극초음속 무기 개발 사업이 공중 분해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된 사업을 부활시켰고, 4년간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개발을 진척시켰다. 공군은 폭격기에 탑재하는 마하 20급 극초음속 공대지 미사일 AGM-183A ARRW(Air-launched Rapid Response Weapon)의 시제품을 완성해 실험 중이며, 육군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탄두에 실어 2000㎞ 밖을 타격하는 LRHW(Long Range Hypersonic Weapon)를 2021년 하반기까지 완성해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다. 

    미국 공군과 육군의 극초음속 무기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해군용 극초음속 무기다. 해군은 육군의 LRHW에 탑재되는 극초음속 활공체 CHGB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파트너지만, 이 극초음속 무기를 군함의 수직발사관에 탑재하기 위해 소형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 해군이 개발 중인 7m급 2단 고체추진 방식 로켓은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설치될 예정인 개량형 다목적 모듈에 탑재되는데, 해군이 밝힌 개발 스케줄에 따르면 이 무기는 이르면 2022년에 등장할 예정이다. 즉, 앞으로 2년 이내에 잠수함 탑재 극초음속 무기가 첫선을 보인다는 것이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극초음속 무기는 현존 무기체계로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론이다. 공군이 개발 중인 AGM-183A는 B-52H나 B-1B와 같이 거대한 폭격기에 탑재되므로, 장거리 레이더나 조기경보기를 이용해 일찌감치 접근을 파악할 수 있어 어느 정도 대응 시간을 벌 수 있다. 육군의 LRHW는 거대한 트레일러에 실려 있고, C-17A나 C-5M과 같은 대형 수송기를 통해 전개되므로, 발사 움직임을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극초음속 무기는 다르다. 미군이 극초음속 무기를 탑재하려는 플랫폼은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15㎝ 오차로 베이징 중심부 타격 가능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이 2020년 10월 밝힌 바와 같이 미국 해군의 극초음속 무기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가장 먼저 탑재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 해군은 12월 초, 기존의 오하이오급 순항 미사일 원자력 잠수함 4척에 2025년까지 극초음속 무기 전력화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미국 해군의 주력 공격원잠으로 최신 잠수함 기술이 모두 녹아 들어간 고성능 잠수함이다. 특히 수심이 얕은 천해(淺海) 작전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중국의 현존 기술로는 서해로 잠입하는 버지니아급을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해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흘러드는 여러 하천에서 대량의 담수(淡水)가 유입되고, 수중 쓰레기와 갯벌 등 음파를 산란·왜곡시키는 요소가 많아 잠수함 탐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해역이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산둥반도 인근의 보하이만 입구까지 진출할 수 있는데, 이 해역에서 베이징까지는 불과 600㎞로 극초음속 미사일이 6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 육군이 밝힌 CHGB의 실사격 명중 오차는 15㎝. 이 무기가 잠수함에 탑재된다면 미국은 6분 이내에 베이징 중심부를 15㎝ 오차로 초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 핵태세보고서와 2018년 발표된 합동참모본부의 핵무기 운용 지침에 따라 CHGB에는 저위력 핵무기 탑재도 가능하므로, 이러한 무기의 배치는 미·중 경쟁에서 전략적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최근 1년간 잠수함 발사 극초음속 무기와 같은 게임 체인저의 개발과 배치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당초 미군의 타격 자산 가운데 대(對)중국 군사 압박 수단으로 각광받은 것은 육군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었지만, 최근 그 무게중심이 해군의 잠수함 발사 극초음속 무기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미군이 이처럼 기존 계획을 대폭 수정해 중거리 타격 자산의 핵심 전력을 육군의 지상 기반 플랫폼에서 해군의 수중 플랫폼으로 바꾼 것은 최근 수 년 동안의 동아시아 지역 정세 변화 때문이었다. 

    유사시 베이징에 대한 신속한 화력 투사는 원래 미국 육군이 가장 먼저 추진했다. 미군은 중국 시진핑 체제가 대외적 팽창에 나서며 서태평양의 질서를 크게 뒤흔들 것이라고 진작부터 내다보고 있었고, 이에 대비한 군사전략을 10여 년 전부터 구상했다.


    美, INF 탈퇴 선언

    미군은 이른바 반접근지역거부(A2/AD·Anti Access/Area Denial) 전략으로 불리는 중국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2012년 합동작전접근개념(JOAC·Joint Operational Access Concept)을 만들었다. JOAC은 해군과 공군을 주축으로 해 A2/AD를 돌파하는 공해전투(Air-Sea Battle)가 골자다. JOAC은 지속적 수정 보완을 거듭해 2015년, 국제 공역에서의 합동접근-기동 개념(JAM-GC·Joint Concept for Access and Maneuver in the Global Commons)으로 발전했다. 이 개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육군이 지상군의 전략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 이른바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이다. 

    데이비드 퍼킨스 당시 미국 육군 교육사령관이 제창한 이 개념은 지상군이 전통적 영역을 벗어나 그 작전 영역을 크게 확대해 해양-공중-우주-사이버 영역에서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부가 이 개념을 채택하면서 미국 육군은 타격 범위를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육군은 2016년부터 각 제대의 타격 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 20~30㎞ 수준이던 포신포병 타격 범위는 100㎞ 이상으로 확장하고, 300㎞ 이내로 묶여 있던 전술 탄도미사일의 타격 범위는 1차적으로는 499㎞, 장기적으로는 700㎞ 이상으로 확장한다. 여기에 더해 기존에 없던 무기체계인 장거리 전략 캐논(Long-Range Strategic Cannon)을 개발해 1600㎞급 거리를 포신 포병으로 타격하고, 전략화력미사일(Strategic Fire Missile)을 개발해 2200㎞ 범위 내의 표적을 타격한다는 것이다. 

    미국 육군의 이러한 신무기들은 러시아는 물론 21세기 미국의 최대 위협인 중국을 겨냥해 대단히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소련과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그것이다. 

    INF에 따라 미국은 사거리 500~5500㎞ 범위 내의 지대지 미사일을 보유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10월, 러시아가 동유럽 접경지역에 9M729 지대지 순항미사일을 배치한 것을 빌미로 INF 탈퇴를 선언했다. 러시아가 9M729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육군의 장거리 타격 자산 전력화를 가로막던 INF라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명분으로 러시아의 9M729를 제시한 것이다. 

    미국의 INF 탈퇴는 러시아 처지에서는 대단히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최근 미군 병력이 주둔하기 시작한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 등에 미군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배치될 경우, 모스크바가 2~3분 타격권 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INF 탈퇴 카드는 미국 육군이 장거리 타격 자산을 확보할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다급해진 러시아로 하여금 INF를 대체하는 새로운 레짐 도입에 중국까지 엮는 명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에 상당한 전략적 이니셔티브를 가져다주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는 동안 필자는 미군의 작전 개념 변화에 따라 대(對)중국 압박 자산의 핵심으로 떠오를 지상 발사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한국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당시 전략화력미사일(SFM)이라는 개념 명칭으로 불린 이 탄도미사일이 완성되면, 미국은 베이징을 가장 빠르게 기습 타격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가진 곳에 이 미사일을 배치하려 할 것이고,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이러한 입지조건을 가진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중거리미사일 한반도 배치 사실상 거부한 韓

    함상욱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오른쪽)이 2020년 9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마셜 빌링슬리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 대통령특사와 면담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함상욱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오른쪽)이 2020년 9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마셜 빌링슬리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 대통령특사와 면담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의 태평양 거점을 겨냥한 중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움직임을 조기경보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레이더가 방패라면, SFM은 중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창이다. 

    필자는 한국이 이 두 가지를 함께 유치하면 미국에 대해 상당한 발언권을 얻어 한미 간 핵심 현안이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한미 원자력협정, 한미 미사일양해각서 등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창과 방패를 쥐고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해 사드 보복과 같은 불합리한 압력을 분쇄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이러한 전략 변화를 읽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는 한반도에 미국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이 제기되기가 무섭게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보였다. 

    9월 말 미국은 마셜 빌링슬리 국무부 군비통제 담당 대통령 특사와 토머스 부셰 전략사령부 부사령관을 한국에 보냈다. 외교부는 빌링슬리 특사가 함상욱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과 만나 면담했으며, 국제 군축·비확산 체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지만, 빌링슬리 특사가 한국을 떠나기 전 미국대사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밝힌 방한 목적은 외교부 보도자료와는 전혀 달랐다. 

    빌링슬리 특사는 “한국 정부와 중국 핵전력 증강에 관한 비밀 정보를 공유했고, 한국도 이런 위협의 속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방한의 목적이 중국을 겨냥한 공조체제 논의에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빌링슬리 특사는 또 “중국은 핵으로 무장한 깡패(Nuclear armed bully)”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중국의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전력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지, 그러한 전력이 한국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한국을 향해 얼마나 많은 탄도미사일을 겨누고 있는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 특사급의 고위급 인사가 미국의 핵무기 전력을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2인자를 대동하고 중국의 미사일 위협을 한국 정부에 일러주기 위해 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빌링슬리 특사와 함께 온 부셰 부사령관은 공군 중장이다. 그가 일하는 전략사령부는 미국의 핵무기 운용을 관장한다. 즉, 그의 방한은 전략사령부에서 관장하는 전략 자산의 주한미군 배치와 관련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함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추측건대, 당시 빌링슬리 특사와 부셰 부사령관은 한국 정부에 2022년부터 배치되는 극초음속 무기의 주한미군 배치와 관련된 제안을 했을 것이고,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떠나기 전 언론을 불러 중국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아느냐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육상에서 수중으로! 미국의 전략 변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실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10월 27일 동아시아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거나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남중국해 등의 군사 훈련에 합류할 경우 중국은 한국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면서 “중국이 둥펑 미사일을 한국을 향해 겨냥하고, 한국 방공식별구역은 물론 서해에서 군사 도발을 할 것인데, 이 경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할 것이냐? 보호할 능력은 되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한국 배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빌링슬리 특사의 방한은 한국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유치할 수 있었던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미국은 한국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 거부 의사를 밝혔을 것으로 예상되는 9월 말 이후 전략을 수정했다. 빌링슬리 특사가 한국을 다녀가고 정확히 3주 후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군의 극초음속 무기 배치 스케줄 변화를 직접 공표했다. 당초 2021회계연도 실전배치라는 가장 빠른 일정이었던 육군의 LRHW 대신 해군의 잠수함 발사 극초음속 무기 전력화를 먼저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은 특사 파견을 통해 한국의 의사를 물어보고 주한미군에 지상 발사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한반도라는 지상 대신 서해라는 해저를 극초음속 무기 투발 거점으로 변경하고 잠수함 발사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서두르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韓 전략적 가치 급속도로 떨어져

    이 같은 변화가 있고 나서 미국의 대외전략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주한미군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마크 밀러 합참의장은 주한미군을 콕 찍어 주둔 비용과 위험성 문제를 들며 영구 주둔보다는 순환 배치와 일시적 주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주한미군 감축에 회의적이던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조차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이 포함된 미국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군사력 재배치 검토는 현명한 일이라며 기존 견해를 뒤집었다. 

    심지어 미국 의회는 중국의 화웨이 네트워크를 쓰는 나라에는 미군을 파병하지 않을 수 있다 경고하며 주한미군을 언급했고, 새 국방수권법안에 주한미군 현행 유지를 조건부로 규정하는 등 기존 입장과는 완전히 달라진 기조를 취하고 있다. 

    정치학에서 동맹이란 공동의 적, 공동의 목표가 있고 상호 이익이 발생해야만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역시 상호방위(Mutual Defense)라는 이름으로 명확하게 그 존재 이유를 규정하고 있다. 동맹의 창을 함께 들자는 제안을 모른 척하는 대한민국이 과연 미국의 동맹국 목록에 언제까지 그 이름을 걸치고 있을 수 있을지, 더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닌 나라가 됐을 때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작금의 위정자들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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