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美 or 中 아니라 美 & 中이 답!

[한반도 지오그래픽]

  •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입력2022-03-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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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中 신냉전 도래로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

    • 갈등 상황에서 양자택일 아닌 조화 꾀해야

    • 북핵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최대 안보 위협

    • 中에 北은 전략적 자산이자 부채

    • 한미동맹 기반으로 한중 관계 발전 추구해야

    1월 25일 북한이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노동신문=뉴스1]

    1월 25일 북한이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노동신문=뉴스1]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한때 미국은 중국을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이라고 부르며 세계질서를 함께할 파트너 국가가 되길 기대했다.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며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고, 자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권 형성 움직임을 보이면서 갈등이 점화됐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 미·중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중국은 미국과 전면적으로 맞서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갈등 점화로 한국은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근 70여 년간 한국 외교의 상수였던 미국과 공세적으로 부상하는 중국 간의 전략경쟁 과정에 한국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상황이 자주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양 강대국 사이에서 현재 한국은 어떠한 위치에 서 있으며, 향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미·중 갈등, 군사경쟁에서 경제안보 경쟁으로 확산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금까지 한국이 취해 온 선택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고 안보 측면에서도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접근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첨단기술 경쟁 등 새로운 외교 환경의 변화 또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미국이 영원히 한국의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지역 전략이 변하면 한미동맹도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한국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업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은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나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며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북한 문제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최근 보여준 7차례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북한은 핵 능력을 강화해 왔다. 북학은 한국과 미국의 지속적 노력에도 협상을 거부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고자 애쓰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북핵 문제조차 교착상태에 빠지며 한국 외교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탈냉전 이후 이어져 온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 질서는 중국의 공세적 부상과 함께 양극화 혹은 다극화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또한 과거 전통적 의미의 군사경쟁 시대가 저물고, 경제경쟁이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첨단물자, 전략물자 등의 확보가 중요해지고, 기후변화·환경·재난·전염병 등 초국경적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미·중 전략경쟁은 첨단기술, 전략물자 등의 영역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핵심 물자의 공급망(supply chain) 문제가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반도체, 배터리, 필수 광물, 의약품 등에서의 미·중 경쟁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자국 중심의 새로운 지역권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군사 외교적 경쟁에서 경제안보 경쟁으로 전장이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반도체, 고성능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내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야만 하는 23개의 산업 영역이 존재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일상적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미·중 경쟁은 한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행보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안보가 중요해진 시대에 자기 진영을 더 많이 더 넓게 확보하는 쪽이 경쟁에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모두 활발한 외교적 노력을 보이고 있다. 상황을 동북아로 좁혀서 살펴보면 다시금 냉전기가 도래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미국·호주·인도와 함께 적극적으로 쿼드를 추진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의 공세적 행보에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경쟁 구도를 형성해 온 만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유럽에서는 중국이 러시아를, 동북아에서는 러시아가 중국을 지지하는 협력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북한은 철저한 친중 행보 속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과거 냉전기 상황처럼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반면 한미일 연대는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한국은 제1 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뀐 이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의식해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중국의 사드 보복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3불’ 입장을 표명하는 등 중국에 기울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하며 중국에 대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미·중 관계가 연관된 사안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켜왔다. 결과적으로 동북아 국가들 간에도 미·중 전략경쟁을 대하는 태도에 확연한 차이가 목격된다.

    한일 관계 악화와 한미일 안보협력 이완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유사 동맹관계로,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미일 협력에 뜻을 같이한다. 하지만 한일 갈등은 한미일 공조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9년 한일갈등의 여파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가 종료될 뻔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는 이를 언제든지 종료할 수 있다는 전제로 조건부 연장을 하며 GSOMIA 파동은 마무리됐지만, 당시 종료를 결정했던 한국에 미국은 큰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이처럼 강제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 한일 갈등은 한미일 협력의 약한 고리다.

    한국에 있어 일본과의 역사 갈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안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한일 관계 뿐만 아니라 한미일 안보협력, 대북정책 공조와 관련해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반일적 국민감정에 편승하거나, 국민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국익을 저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은 이들의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다름 아닌 북핵 문제 때문이다. 올해 1월 북한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안보리 제재 리스트 추가 시도가 무산된 것은 미·중 전략경쟁이 북핵 문제의 해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 북한 비핵화 문제만큼은 어느 정도 협조를 보이던 중국이 미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북한의 가치를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중국은 북한이 필요하게 됐고, 이는 북·중의 밀착관계로 이어졌다. 2018년 이후 중국은 대북지원을 강화했고, 베이징의 든든한 후원을 확보한 평양은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중국에 북한은 전략적 자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채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중 압박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북한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정으로 인한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중 전략경쟁 심화가 중국에 단기적으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각인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8년 이후 5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외교적 지원을 받아냈다.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느슨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미·중 경쟁 심화가 북한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 안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미·중의 영향력은 북한 핵능력 고도화에 따라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한미동맹 기반 미·중 동시 관리해야

    수년 후를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와 중국을 이웃으로 둔 지정학적 요인을 고루 고민해야 한다. 최근 70년간 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한 동맹국 미국과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야 한다.

    물론 향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지 모를 이웃이 잠재적 혹은 현실적 위협의 상대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공존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 발전 과정에서 ‘상호 존중’의 원칙을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한중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를 조화시키는 비율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체적인 사안의 성격을 고민해 가면서 답을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략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발전시켜 나가는 외교 전략의 틀을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해 나가며 발전시켜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은 소위 집토끼를 상대방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당분간 중국은 북한에 치우친 정책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이나 핵실험과 같은 행위를 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상황이 그렇다. 따라서 중국의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의존하기보다는 지금 확실히 우리 편에 서 있고,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미국과의 협력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1월 북한이 연이은 미사일 도발을 하는 과정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북한에 외교 문제에 복귀할 것을 계속해서 종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자 간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후 고위급이 만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비핵화 협상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과거 트럼프 행정부의 정상 간 신뢰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조건 없이 대화에 복귀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전에 미국이 대북제재를 완화하거나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핵능력 강화를 보여주고 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며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미 간 대화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북한의 대화 거부와 미사일 도발로 인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비핵화의 협상 의제와 조치, 이를 위한 미국의 상응 조치는 무엇이며, 북한 비핵화의 변수는 무엇인가.

    비핵화 협상 의제 알아야 해법 보인다

    비핵화 협상은 북·미 관계 개선, 평화체제, 북한 비핵화라는 세 가지 의제를 동시에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북·미 관계 개선은 외교 정상화 방안에 관한 문제이고, 평화체제 논의는 종전 선언 문제와 연결되며, 북한 비핵화 문제는 비핵화 방안과 과정, 순서에 대한 사안이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 북한은 낮은 수준의 비핵화 조치와 높은 수준의 상응 조치를 기대할 것이다. 반면 미국은 가급적 높은 수준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고 싶어 한다.

    구체적 협상과 관련해서는 단계적 협상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포괄적으로 일괄 타결할 것인지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는 결국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를 얼마나 묶을 것인지의 문제다.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비핵화 조치의 첫 단계로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참관과 시료 채취 등 실질적 검증의 수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 단계로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신고, 검증, 폐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영변 핵시설은 플루토늄을 생산해 내는 5MW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및 농축우라늄 시설 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있다면 북한 핵능력 수준 및 핵물질 확보와 관련해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다. 과거 6자회담 역시 영변 시설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 과정에서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 만큼 그간 도달하지 못했던 북한 비핵화의 새 장을 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한 핵물질의 총량을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시설을 폐기하고 이를 참관하는 수준의 검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철저한 신고 및 검증 결과를 얻어낸다면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이 신고한 핵 활동 일지와 시료 채취를 통한 확인 작업이 일치될 경우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철저한 검증 방식은 다음에 있을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에 대한 검증에도 일관되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상당하다.

    영변 핵시설 이후의 비핵화 조치는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의 활동 동결, 신고 및 검증, 폐기, 핵물질 및 핵무기 폐기, 기타 생화학무기 폐기 등을 들 수 있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포함돼야 할 중요한 과정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는 북·미 관계 개선과 경제적 지원, 그리고 안보 차원의 양보로 이뤄진다. 특히 북한이 원하는 제재완화, 한미동맹, 주한미군 문제가 그 본질을 이룬다.

    구체적으로 인도 지원,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종전 선언, 부분적인 경제제재 완화 등이 있다. 이 중 미국이 가장 쉽게 해줄 수 있는 조치는 ‘인도적 지원’이다.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는 북한이 대화에 복귀하거나 복귀하기 이전에라도 가능한 상응 조치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시료 채취를 포함한 신고 및 검증을 수용할 경우 미국은 경제지원을 하거나 경제제재의 일부를 면제해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제재 면제는 원유 공급량 확대, 철도 연결사업 개시, 개성공단 재개 등이 검토될 것인데, 특히 철도 연결사업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포괄적 승인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한다.

    이 밖에도 북한은 유엔 대북제재의 완전한 해제, 주한미군 감축 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경우 안보리 제재는 물론이고 미국의 독자 제재도 해제될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의 경우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 폐기와 맞물려 요구할 경우 미국이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이며, 평화협정도 비핵화 조치의 완료와 함께 검토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핵화 협상 변수와 바람직한 협상 방향

    2020년 6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이 하루 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2020년 6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이 하루 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 비핵화 협상의 가장 큰 변수는 미·중 전략경쟁과 북·중 관계의 변화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북·중 관계가 밀착되는 상황은 북한 비핵화 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중의 밀착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당분간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북한 비핵화 협상의 재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중요한 타협점을 찾는다면 다시금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북한 비핵화 문제에 중국이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북한은 다시 절대적인 고립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에 비핵화 협상에 더욱 진지하게 임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미·중 전략경쟁과 북·중 밀착은 비핵화 협상에 중대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또 다른 변수는 비핵화 협상 재개 후 북한과 어떤 협상을 전개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다. 미국에서는 ‘작은 거래(small deal)’와 ‘큰 거래(big deal)’ 두 가지 접근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작은 거래’는 북한 비핵화 단계를 잘게 나누어 협상하는 방식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신고·검증·폐기 이전 단계에서 관련 핵시설 동결만을 약속하고 미국도 낮은 단계의 경제제재 완화라는 상응 조치를 제공하는 합의를 의미한다. 누구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쁜 거래는 아니지만 비핵화의 진전이 더뎌진다는 점과 경제성장의 계기가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큰 거래’는 적어도 북한이 영변이나 비공개 핵시설의 철저한 신고·검증·폐기를 수용하고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나쁜 거래(bad deal)’도 유의해야 한다. ‘나쁜 거래’란 북한이 제대로 된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데도 경제재재가 완화되거나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너무 많은 경제제재 완화가 보장돼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이어갈 동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완화돼 북한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에 나설 동인이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북한의 도발이나 무력 충돌, 한반도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 문제 해결은 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일관된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주변국 공조, 그리고 일관된 대북정책을 위한 국론 통합이 우선돼야 한다.

    바람직한 북한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는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각 단계에서 어떤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교환할 것인지에 관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는 상호주의적이고 대칭적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하며,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이행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에 따른 신고와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선다면 이에 상응하는 보상 조치도 신의 성실하게 이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비핵화 협상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해서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작은 거래보다는 큰 거래가 바람직하다.

    북한이 끝내 비핵화 협상을 거부할 경우, 장기적으로 체제 유지 비용이 증가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고집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더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도 암울한 상황이 지속돼 궁극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해칠 정도가 될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다만 이는 군사적 방법이 아닌 외교적 방법을 통한 압박이어야 할 것이다.

    국익 극대화 외교 전략

    미·중 전략경쟁은 한국의 안보 이익, 경제 이익, 가치에 대한 도전, 세계질서에 대한 기여 등 다양한 차원에서 한국에 고민을 안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다양한 대안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익의 실현이기에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감정적 대응보다는 합리적 이성을 기반으로 해 갈등보다는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쪽에 편승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편승에 따른 이익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기회비용에 압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는 역설적으로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국이 중심이 돼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당위성과 시급성을 재확인해준다. 즉 미·중 패권경쟁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한국 스스로 중심을 잡고 양자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미국 or 중국)’가 아니라, 자강의 노력을 통해 ‘미국과 함께, 중국도 함께(미국 and 중국)의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아니라, 다양한 국가 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 낼 것인지의 균형 감각이다. 나아가 우리가 가진 외교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외교적 지혜를 기르고,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도록 국가경쟁력과 역량을 키워나가며,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와 같은 현안도 이러한 큰 틀의 변화를 이끌어내면 궁극적으로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한국 외교의 부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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