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누가 언급(tweeted about it)했다는 이유로 코인 사지 마라”

[박원익의 유익한 IT] 몰락 5개월 전부터 ‘경고등’ 루나 사태가 남긴 것

  • 박원익 더밀크 뉴욕플래닛장

    wonick@themilk.com

    입력2022-06-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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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동성 공격에 취약한 테라-루나

    • 다른 스테이블 코인에 견줘 사용가치도 적어

    • 유명 투자자 따라 무지성 투자 안 돼

    [Gettyimage]

    [Gettyimage]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History never repeats itself. Man always does).”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남긴 말이다. 한국 대표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일컬어진 ‘테라(Terra·운영업체: 테라폼랩스)’의 몰락은 암호화폐 업계와 크립토(Crypto) 투자자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시가총액 50조 원에 달하던 테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루나(LUNA)’의 가치가 고점 대비 99% 증발했다. 3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변동성을 줄여 교환의 매개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으로 평가받던 ‘테라USD(UST)’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동아DB]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동아DB]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5월 13일 ‘테라 생태계 부흥 계획(Terra Ecosystem Revival Plan)’을 발표, 단 2주 만인 5월 28일에 ‘테라 2.0’을 출시했으나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 예전처럼 성장할지는 미지수다.

    테라의 도전을 지지하며 루나와 UST에 돈을 넣은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금은 대부분 날아간 상태다. 기존 루나 코인(Luna Classic·LUNC) 보유자에게 새로운 루나가 무상 지급(에어드롭·airdrop)됐지만, 1만 루나 이상 보유자에겐 시장에서 바로 팔 수 없도록 보호예수(lock-up) 조건이 붙었다. 1만 루나 이하 소액 보유자 역시 30%만 팔 수 있고, 70%는 2년에 걸쳐 나눠 팔아야 한다. 앞으로 루나의 가격이 오르리라는 보장도 없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개인 투자자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곱씹으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암호화폐 업계의 발전 속도, 우후죽순 등장하는 신규 프로젝트 숫자 등을 고려하면 언제든 비슷한 사례가 등장할 수 있다.

    크립토 투자자 위한 세 가지 교훈

    ① 권위에 의존하지 말라

    5월 28일 테라 생태계 부흥 계획 일환으로 테라 2.0이 출시됐다. [테라폼랩스]

    5월 28일 테라 생태계 부흥 계획 일환으로 테라 2.0이 출시됐다. [테라폼랩스]

    한국에서 탄생한 테라는 최초에 어떻게 글로벌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았을까. ‘탈중앙화 경제에는 탈중앙화 화폐가 필요하다(A decentralized economy needs decentralized money)’는 매력적인 비전, ‘UST 예치 시 20%의 고정 이자를 제공한다’는 약속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명 벤처캐피털· 투자자의 지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판테라 캐피털(Pantera Capital), 코인베이스 벤처스(Coinbase Ventures), 애링턴 XRP 캐피털(Arrington XRP Capital),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 블록타워 캐피털(BlockTower Capital), 해시드(Hashed) 같은 쟁쟁한 크립토 펀드가 테라에 투자했다. 2021년 7월 테라폼랩스가 밝힌 투자 유치 라운드의 규모는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수준이다.

    올해 2월에는 점프 크립토(Jump Crypto), 3AC(Three Arrows Capital), 디파이언스 캐피털(DeFiance Capital) 같은 크립토 캐피털이 1조 원 상당 루나를 매입해 LFG(Luna Foundation Guard)에 자금을 조달해 주기도 했다.

    암호화폐·블록체인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테라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암호화폐 전문 트레이더뿐 아니라 관련 경험이 적은 일반 개인투자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티몬 창업자 출신 신현성 의장,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권도형 대표가 공동 창업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유명 투자자, 창업가가 뭉친 프로젝트니 믿을 만하겠지’하고 생각하기 쉽다.

    이 같은 ‘권위’에만 의존해 암호화폐에 투자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전문 투자자의 경우 계약상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보호장치를 설정해 두는 경우가 있고, 보유한 정보의 품질과 양도 개인투자자보다 우월해 한발 앞서 움직일 수 있다.

    트레이딩 전략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 트레이더들은 위험 회피 차원에서 다양한 선물, 현물을 다루고 매수-매도(롱-숏) 포지션을 동시에 취한다. 개인이 일부 노출된 정보만 가지고 따라 하기엔 역부족이다. 투자자를 위한 별도의 보호장치도 없기 때문에 모든 투자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한다.

    또 한 가지 기억할 사실은 아무리 유명한 투자자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으로 알려진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사태를 떠올려 보자. 2015년 소량의 혈액으로도 검사할 수 있는 키트를 발명했다는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대표의 말에 모두가 속았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월마트를 설립한 월튼 패밀리,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등이 테라노스에 투자했고, 투자금 규모도 9억45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약 11조3000억 원)였다. 실험 결과를 조작해 가짜 키트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0달러가 됐다. 이처럼 유명 투자자, 창업가도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팔로어 47만 명을 보유한 유명 크립토 트레이더 애시WSB(Ash WSB)는 “투자하기 전 꼭 스스로 조사해야 하며 거래했다면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며 “부디 누가 언급(tweeted about it)했다는 이유로 코인을 사지 말아달라”고 했다.



    ②경고 시그널을 확인하라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의장. [Shutterstock]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의장. [Shutterstock]

    이번 테라 사태를 돌아보면 과거에 위험 요소를 알리는 경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UST에 앞서 ‘엠티셋달러(Empty Set Dollar)’ ‘아이언 파이낸스(Iron Finance)’ 등 알고리듬 기반 스테이블 코인(Algorithmic Stable coin)이 무너진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안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

    2021년 12월 암호화폐 투자자 프레디 레이놀스(Freddie Raynolds)가 내놓은 경고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10억 달러(1조2500억 원) 정도를 보유한 부유한 투자자가 조지 소로스 방식으로 테라를 공격할 수 있다”며 “이 방식의 공격이 성공하면 그는 큰돈을 벌고, 테라 시스템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공격 방식은 조지 소로스가 실제로 진행해 큰돈을 번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을 의미한다. 소로스는 달러를 담보로 파운드화를 빌려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파운드화 가격 하락을 유도했다.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사들이며 필사적으로 가치를 사수하려 했지만, 거대 헤지펀드들이 동원된 머니게임에서 밀리고 말았다. 이론적으로는 영란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영국 경제에 가해질 충격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다. 결과는 금융시장 패닉, 영국의 유럽통화제도(EMS) ‘환율조절메커니즘(ERM)’ 탈퇴였다. 1992년 9월은 ‘검은 9월’로 불리며 최악의 유럽 통화 위기 중 하나로 기록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번 테라 사태 때 소로스 공격을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2022년 5월 7일 커브 파이낸스(탈중앙화거래소) 유동성 풀(Liquidity pool)에서 UST 유동성이 약해진 시점에 신원 미상의 누군가가 풀에서 8500만 달러(1066억 원) 규모의 UST-USDC(골드만삭스 자회사 서클이 개발한 스테이블 코인) 스와프(swap·교환)을 한 후 매도를 실행, UST 가격 하락을 촉발했다. UST는 미국 달러화에 상응하는 가치(1달러=1UST)를 유지(페그·peg)하도록 설계됐는데, UST 가격이 과도하게 하락하며 일시적으로 균형이 깨져(디페깅·depegging)버린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UST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차익 거래자들이 유동성 풀 차익거래(arbitrage·코인을 제공하고 수익을 얻는 방식)에 참여하지 않고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는 UST 가격 하락을 더 부추겼고, 시장의 신뢰를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UST 가격 유지용 코인 루나가 동반 하락,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
    테라 측(LFG)이 UST 가격 방어를 위해 별도로 마련한 준비금(비트코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LFG는 비트코인을 일부 매도해 그 돈으로 UST를 매수, 가격을 방어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LFG가 비트코인을 매도하면 비트코인 가격 하락 압박이 생기는데, 이런 시나리오를 예측한 공격자가 비트코인을 미리 공매도한 후 이익을 취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앞서 2020년 12월, 2021년 5월에도 UST 디페깅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전조가 있었고,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 유지 기제에 대한 의문, 문제 제기도 계속 있었다. 한 암호화폐 투자 전문가는 “증권 등 기존 금융시장과 비교하면 크립토 투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경고 시그널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③수익률 너머 가치 창출을 보라

    유동성 풀에서 테라(UST)와 다른 스테이블 코인 간 균형이 깨진 것은 5월 7일부터다. 이 흔들림은 더 큰 파장으로 커져 테라 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렸다. [Duce.com]

    유동성 풀에서 테라(UST)와 다른 스테이블 코인 간 균형이 깨진 것은 5월 7일부터다. 이 흔들림은 더 큰 파장으로 커져 테라 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렸다. [Duce.com]

    마지막으로 ‘투자하려는 프로젝트가 창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테라가 커뮤니티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앵커프로토콜이 지급하는 20%의 고금리 이자였다.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UST와 루나의 시가총액은 빠르게 증가했다.

    문제는 UST로 할 수 있는 게 앵커프로토콜 예치 외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높은 이자를 받을 가능성이 떨어질 경우 UST를 보유할 유인이 사라진다. 용도가 다양한 일반 법정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UST 디페깅으로 가격이 떨어질 무렵 큰손들의 급격한 이탈이 발생했다. 5월 7일과 8일에만 28억6000만 달러(약 3조6000억 원) 규모의 UST가 인출됐다. UST는 ‘교환의 매개 수단’이라는 화폐의 가치를 대체하려고 했지만, 불안정한 가격 유지 구조와 부족한 용처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용가치가 떨어지면 수요가 줄어드는 건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USDC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이 실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 기반 데빗카드(한국의 체크카드) 서비스(예: Onjuno)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테라폼랩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고, 사용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도 했으나 충분하지 못했다. UST 수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력이 앵커프로토콜이라는 점은 테라 생태계의 큰 약점이었다.

    1~2월 테라(UST)의 예비금 보유액. 테라 개발진은 20%의 금리를 지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예비금을 사용했다. [a41 Ventures, Mirror Tracker]

    1~2월 테라(UST)의 예비금 보유액. 테라 개발진은 20%의 금리를 지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예비금을 사용했다. [a41 Ventures, Mirror Tracker]

    UST를 앵커프로토콜에 예치해 이자를 받으려는 수요는 많지만, UST를 빌리는 수요는 적어 앵커프로토콜은 ‘예대마진’을 창출할 수 없었다. 결국 앵커프로토콜은 20%의 금리를 지급하기 위해 따로 비축해 둔 일종의 예비금(Reserve)을 사용했는데, 2월 리저브가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LFG가 나서 4억5000만 달러(5600억 원)를 긴급 투입했다. 이처럼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생태계 구조는 이번 테라 사태의 뇌관이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더 안전한 크립토 투자를 위해서는 해당 프로젝트가 수익률이 아닌 실질 가치를 창출하는지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실질 가치 창출이야말로 해당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핵심 요건 때문이다.

    블록체인 핵심 가치는 용처

    세계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설립자 창펑자오(Changpeng Zhao)는 5월 13일 테라 사태와 관련해 “(수익률 같은) 인센티브는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인센티브는 시스템 초기 가동을 위한 기제(mechanism)일 뿐”이라며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에인절 투자자이자 이더허브(EthHub) 공동 창업자 앤서니 사사노(Anthony Sassano)는 “폰지(Ponzi scheme), 일드 파밍(Yield Farming, 탈중앙화금융 플랫폼에 암호화폐를 예치해 보상을 얻는 행위) 같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실험을 중단하라”며 “공공재 자금 조달(public goods funding), 다오(DAO·탈중앙화자율조직), 분산 신원(decentralized identity), 회생 금융(regenerative finance), 개인정보 보호 도구로 실험을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이더리움 설립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사사노의 주장에 “강력하게 동의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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