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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는 중국이 미국 넘지 못 할 것이다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외교안보 ‘퍼펙트 스톰’ 앞에 이념·정파가 문제인가

  •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우리 세대에는 중국이 미국 넘지 못 할 것이다

  • ● 中 시진핑은 이념적 순수주의자
    ● 對中 정책 차이 없는 트럼프와 바이든
    ● 미국內 중국의 투자 2년 새 90%↓
    ● 中, 정치·사회·인구학 난제 수두룩
    ● 모방할 뿐 창조·혁신 리더 아냐
    ● 성공한 중국인은 왜 미국으로 몰려드나
    ● 가치 연대만으론 부족, 실용 외교가 뒷받침해야
    ● 구한말·광복 직후 쓰린 경험 되풀이 안 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뉴시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양국 관계가 여러 분야에 걸쳐 중첩돼 있는 만큼 갈등 역시 무역통상·첨단기술·금융·군사안보·인재 확보·이념 등 전역에 걸쳐 전개되는 양상이다. 중국과 수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장기적 ‘신냉전의 초입(Foothills of a Cold War)’에 들어섰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을 외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기 집권으로 ‘위대한 투쟁’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며,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기치하에 촘촘한 입법 그물망으로 중국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포럼(IPEF), 칩(Chip)4 등 경제·안보 프레임을 만들고 동맹국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경제의 안보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티베트, 신장 등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될 뿐 아니라 대만 문제를 놓고는 군사적 충돌 위험까지 고조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인가?

미·중 간의 대립이 심화할수록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미소 간 충돌이 심각했고 1980년대에는 미일 간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냉전시대에는 자본주의-공산주의 간 진영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며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예외가 아니다.

전방위적으로 심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패러다임은 수명을 다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자유주의 가치 연대로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을까. 국제 정세와 더불어 국내 정서의 움직임도 변수다. 반중 정서가 반일 정서를 넘어 확산 일로를 걷고 있으나,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제외로 미국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는, 매우 복잡하고도 미묘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미·중 갈등의 본질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지속 여부를 파악하고 첨예화하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이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본다.



미·중 갈등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대표 논거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고대 그리스 문명 쇠퇴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군인이자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국 아테네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패권국 스파르타의 갈등에서 전쟁이 시작됐다고 서술했다. 이후 국제관계 이론에서 신흥 강국과 패권국 간의 긴장 관계를 설명할 때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이 쓰이게 됐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이 시각으로 미·중 관계를 설명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5세기 말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 충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패권국-신흥 강국 간 갈등은 16번이 있었고, 그중 4번을 제외하곤 모두 전쟁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세력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그에 따른 구조적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법칙에 가깝다는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아메리카 퍼스트’와 ‘중국몽’이 부딪치는 미·중 갈등의 폭과 깊이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다고 경고했다. 대만을 놓고 미·중 간 군사적 출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면적인 패권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첨단 과학기술 분야 등을 중심으로 경쟁과 갈등이 심화하고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제조 2025와 중국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직 중 중국과 무역 갈등을 불사했다. [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직 중 중국과 무역 갈등을 불사했다. [AP 뉴시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중 무역 갈등이 불거졌다. 그 시발점에서 중국 정부가 2015년에 내놓은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2025)’가 미국 등 서방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문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 기반을 건설하는 것은 중국의 종합 국력을 높이고(我國提升綜合國力)”, “국가안보를 지키며, 세계의 강대국이 되는 유일한 방법(保障国家安全, 建设世界强国的必由之路)”임.

강대국이 되는 ‘유일한 방법(必由之路·the only way)’이라고 명명한 데서 볼 수 있듯 이는 중국의 단순한 산업발전 계획이 아니라 사활을 건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이라는 속내를 갖는다. ‘중국제조 2025’는 빅데이터·IT(정보기술)·항공 산업·신소재·인공지능·생명과학 등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기술 도약을 추구하며, 2025년까지는 한국과 프랑스를 따라잡고, 2035년까지는 일본과 독일을 추월한 후에, 2049년에는 마침내 미국을 제치고 주요 산업에서 세계 제조업 1위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가 미국 등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논란이 되자 중국 정부는 슬그머니 이 용어를 접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2021년 양회(兩會)에서 중국 정부는 첨단기술 개발 추진 과정에서 중국의 취약점인 미국 주도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내수 확대 중심의 쌍순환(雙循環) 경제 전략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더욱 다졌다.

중국이 역점을 두는 첨단기술 분야인 드론·인공지능·안면인식 기술 등은 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 군사 기술 분야에도 응용될 수 있다. ‘군-민간 협력(軍民融合)’을 책임지는 ‘군민융합발전위원회(軍民融合發展委員會)’ 위원장이 바로 시진핑 주석이다. 즉, 국가 최고 지도자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야심만만한 도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22년 양회에서 시진핑은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도 오히려 중국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조건(戰略性的有利條件)’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몽(中國夢)’에 더해 ‘강군몽(强軍夢)’ 실현을 위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군 기계화와 정보화에 기초한 현대화 전략 추진을 밝혔다. 경제성장률 저하에도 불구하고 국방 예산은 오히려 7.1% 늘렸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2021년 7월 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100주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됐다. [베이징=AP 뉴시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2021년 7월 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100주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됐다. [베이징=AP 뉴시스]

시진핑의 성정을 분석하는 연구자들은 그를 ‘이념적 순수주의자(ideological purist)’라고 부른다. 사회주의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국 부상의 역사적 ‘기회 의식’과 사회주의를 21세기에 다시 구현하려는 ‘소명 의식’으로 무장한 시진핑은 미국과 갈등을 빚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 지도자들과 다르다. 시진핑은 10월 1일(현지 시간) 당 이론지 ‘추스(求是)’ 기고에서 “역사적 어느 때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졌고 이를 실현할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며 “위대한 투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 총서기직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를 2주 앞둔 시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미국과의 경쟁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이룩한다는 시대정신(Zeitgeist)을 기반으로 경제적·군사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1등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몽’의 완성 시점을 2049년으로 설정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에 승리하고 이른바 ‘신중국(新中國)’을 건설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시진핑이 19차 당대회에서 2050년까지 ‘사회주의 선진국’을 건설하겠다고 한 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중국의 도전은 야심만만하고,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미국 우선주의와 메이드인 아메리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대통령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의 최대 타깃은 중국이었다. 중국 때문에 미국 내 일자리가 감소했으며,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시장 개입과 무역 관행으로 미국이 커다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당선됐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대폭 감소한 미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백인 블루칼라층의 대대적인 지지를 획득하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곳은 미국 선거 구도에서 중요한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지역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대중 강경 노선을 추진했다. 실례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추진한 ‘5G 보호 법안(H.R. 2881: Secure 5G and Beyond Act)’은 찬성 413, 반대 3으로 하원을 통과한 후, 2020년 3월 6일 상원을 통과했다. 법안의 취지는 ‘모든 정부 부처 및 기관’을 동원해 전 세계 5G 네트워크 출시를 주도하는 화웨이, ZTE 등 중국 정보통신 회사로 인한 국가안보 위협으로부터 미국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지켜내는 데 있다.

또 중국 유학생과 방문 학자들에 대한 비자 심사 강화, 미국 대학에 퍼져 있는 ‘공자학원’ 폐쇄 움직임, 중국 기업인들의 미국 첨단기업 투자나 인수·합병 및 산·학 협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배경에는 전반적 국력 면에서 미·중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미국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현 추세로 가면 2030년에서 2035년 사이에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쳤던 트럼프는 물러갔지만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추구하는 바이든의 대중 견제망은 오히려 더욱 촘촘해졌다. 정치적으로 트럼프와 대척점에 선 바이든이지만 대중정책에선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최근 두 달 동안에만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바이오 분야에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내용으로 한 입법·행정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반도체·과학법(8월 9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8월 16일), 생명공학·바이오산업 관련 행정명령(9월 12일)은 중국 부상 견제와 미국 첨단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산업에 총 527억 달러(약 73조4270억 원)를 투자하고, 세액공제 등으로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제조시설 확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할 수 없도록 했다. 후술하는 대로 IRA는 한국 전기차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련의 국내 입법 조치에 더해 국제적으론 다자주의를 추구한다. 이 점은 양자주의를 선호했던 트럼프와 다르다. 바이든은 IPEF, 칩(Chip)4 등 경제·기술 동맹을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지식재산권, 중국의 불공정한 행위, 기술력 강화, 국제사회에서의 규범 강화 등을 통해 중국을 미국 주도의 틀 속에 넣으려 한다. 워싱턴에 비해 반중 정서가 크지 않은 이곳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중국인들의 첨단 분야 기술 유출과 지식재산권 탈취에 대한 경계심과 우려가 크다. 스타트업 회사들은 중국계 자본의 투자를 받는 데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국 내 중국의 투자를 보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6년 46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2018년에는 50억 달러로 약 90%나 급감했다.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비(非)호감도도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중국 비호감도는 2018년 47%에서 2019년 60%로 급상승했고, 2022년 3월 현재 82%에 달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지속될 것인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본격화한 1945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한 경우가 세 번 있었다. 냉전시대의 소련, 1980년대의 일본, 그리고 지금의 중국이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팽팽히 맞대결하던 소련 제국은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80년대 말 붕괴했다.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듯했던 일본도 경제 거품이 터지면서 1990년대 초 ‘잃어버린 20년’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미국과 치열한 과학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과거 소련과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넘어설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세대에는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왜 그런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중국이 2010년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고, 2014년 세계 1위 무역대국이 됐으며, 같은 해 미국 GDP의 60%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구매력평가지수(PPP)로 보면 이미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현재의 수치 못잖게 지난 십수 년간 추격해 온 흐름을 따라 미래를 예측해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위에서 언급한 전략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육성하면 중국이 제시한 2049년까지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건 큰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한참 뒤처지는 군사력(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볼 때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중국이 미국의 대학 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왜 추월할 수 없는지는 신동아 9월호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참조).

우선 중국은 내외부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와 도전에 봉착해 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쌓인 경제적 거품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도 정치·사회·인구학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시진핑 주석이 주도했던 반부패 캠페인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정 정국’인데 그만큼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또 사회적 불평등의 급속한 심화와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 인권 문제, 팔룬공(falungong) 등 종교 문제, ‘남중국해(South China Sea)’를 둘러싼 주변 국가와의 갈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아직도 중국에서 3T(Taiwan, Tibet, Tiananmen)를 거론하는 건 금기 사항이다. 2만2000㎞에 달하는 국경을 14개국과 마주한 중국은 주변국과 빚는 영토 갈등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진핑은 10월 16일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독재정권의 아킬레스건이 권력 승계인데,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국민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서구식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최고지도자가 5년 연임을 하고 후계자를 미리 지명하는 등 집단지도체제하에서 그 나름대로 투명성과 예측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을 이루고 미국과 맞설 힘을 갖췄다. 한데 시진핑은 이러한 관행을 깨고 21세기 중국의 황제로 남으려 하고 있다.

중국이 제국의 DNA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제국의 리더가 되려면 패스트 폴로어 (fast-follower)로서는 역부족이다. 퍼스트 무버(first-mover)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가 돼야 하는데 과연 중국이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중국이 빠르게 미국을 따라잡고 있지만 아직은 ‘모방’을 통해 ‘스케일업’을 하고 있을 뿐 창조나 혁신의 리더는 아니다. 샤오미가 삼성을 따라잡을지는 몰라도 애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알리바바나 바이두도 거대한 국내시장 덕에 급성장했지만 아마존이나 구글을 벤치마킹한 것이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 플랫폼을 만든 건 아니다. 중국의 인재들이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일한 경험을 중국에 이식해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는데, 점차 중국이 자국의 문을 닫으며 혁신의 리더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다른 나라들의 롤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야심만만하게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아프리카나 일부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곤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오히려 유럽과 북미, 아시아를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심화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30년 동안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했고 ‘기회의 나라’이긴 했지만 아직도 세계 각국의 인재들은 중국보다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고 싶어 한다. 과거 소련이 구축했던 공산권 블록이나 일본을 배우자는 ‘재팬 붐’도 찾아보기 어렵다.

리치 만다린(Rich Mandarins)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지역은 미국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싼 곳에 속한다. 조그마한 방 한 칸짜리 콘도미니엄(한국의 아파트)이 100만 달러를 넘는다. 필자가 스탠퍼드대에 부임한 지난 2001년 이후 이곳 부동산 가격은 3차례에 걸쳐 크게 올랐다. 처음 두 번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상장하면서 벼락부자가 된 실리콘밸리의 젊은이들이 집값을 올렸다. 그런데 세 번째 급등의 원인은 중국인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현찰’로 고급 주택을 사들인 이들을 이곳에선 ‘리치 만다린(Rich Mandarins)’이라고 부른다.

회사 창업자나 투자 전문가가 많고, 회사를 뉴욕에 상장시킨 기업인들도 있다. 대체로 나이는 50대로 중국 개방 이후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성장을 이끈 역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성공했으나 중국의 미래, 특히 정치적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언제 기업과 재산이 정부에 의해 침탈당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가족들은 이미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본인들은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일한다. 아예 중국을 떠나 제2의 커리어와 삶을 모색하는 사람도 적잖다.

성공한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한 중국이 결코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 중국보다 미국이 낫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의 말대로 “미국이 쇠퇴했다는 증거는 비자를 받으려고 미 영사관 앞에 서 있는 줄이 더는 길지 않을 때”인데 아직은 어림없다.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중국의 상류층조차 중국의 미래 특히 점점 더 독재화하는 시진핑 체제하의 중국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질서를 주도하려면 반대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즉, 중국의 엘리트들이 미국으로 밀려드는 게 아니라 미국의 엘리트들이 중국으로 몰려가는 시대가 와야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도래를 논할 수 있다. 또 미국이 아닌 중국의 모델을 선호하는 국가가 늘어나야 한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20~30년 안에 일어날까? 적어도 내 지식과 경험으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다음 세대에도 팍스 아메리카나가 지속되리라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전망이라면, 한국이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는 분명해진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DNA

미국은 분명 패권주의 내지는 제국주의적 DNA를 갖고 있다.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때론 경제 원조나 자원봉사를 통해, 때론 경제적 압박이나 무력행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기구나 평화봉사단, 풀브라이트 같은 비정부기구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글로벌 테러’와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은 최근 100여 년간 35번의 크고 작은 전쟁에 가담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팍스 로마나’나 ‘팍스 브리태니카’보다 더욱 강력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진보 진영에선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며 친중 노선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아닌 중국이 21세기의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게 더 나은 대안일까. 팍스 차이나가 팍스 아메리카나보다 나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냉정히 따져보면 그래도 미국이 옛 소련이나 중국보다는 세련된 제국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에 비해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건 미 제국이다. 세계질서가 평등과 평화를 기반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누가 초강대국이 되건 그들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려 하며 이를 위해 물리력을 포함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것이다. 제국을 운영하는 데 하드파워는 물론 소프트파워, 스마트 파워를 가장 효과적으로 혼합해 활용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역사적 경험과 현실론에 비춰볼 때 팍스 시니카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단하거나 미·중 간에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위험한 발상이다. 안미경중도 그 시효가 지났다.(신동아 6월호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참조)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 등 자유 진영과 가치 연대를 하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한 점은 바람직하다. 한국처럼 미국과 군사동맹, 자유무역협정으로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도 이스라엘, 캐나다, 호주 등 소수에 불과하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자산이다.

그럼에도 미국 내 정치 상황이나 국가 간 경제·안보적 이해관계를 간과한 추상적 가치 외교 또한 위험하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SK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올해 260억 달러(37조 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은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토록 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한국산 전기차가 불이익을 받게 되자 적잖은 한국인이 실망하며 분노하고 있다. 거칠게 표현하면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정부 실책의 대가를 기업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의 자유 연대를 추구하며 안미경중에서 ‘경중’을 포기한다면 이를 대체할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IRA의 경우처럼 경제의 안보화로 한국 기업에 손해가 생겨선 안 된다. 또 안보와 관련 있는 첨단기술 분야는 미국과 함께 가더라도, 그렇지 않은 유통·소비재나 제조업 분야에선 중국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 가치 외교가 빛을 발하려면 실용 외교가 뒷받침돼야 한다.

어설픈 가치 연대, 반미 감정 부를 수도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강당에서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강당에서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근 한국 진보와 보수의 대표적 논객들의 칼럼이 주목을 끈다. ‘한겨레’ 박현 논설위원의 ‘미국에 농락당하는 윤석열식 외교’라는 9월 20일자 칼럼과, ‘문화일보’ 이미숙 논설위원의 ‘미국 IRA, 동맹 신뢰 허문다’라는 9월 26일자 칼럼이다. 모두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고 비교적 미국의 속내를 잘 아는 언론인이다. 박 위원의 칼럼은 현 정부 비판에, 이 위원의 칼럼은 동맹의 약화에 대한 우려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법이 국내 반미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박 위원은 “미국은 동맹·우방국들을 경제안보라는 기치하에 자신이 주도하는 경제블록 안에 묶어 패권 도전국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한편으로 자국 제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며 “우리 같은 개방형 통상국가엔 이런 보호무역주의가 매우 불리하다”는 전제를 깔았다. 불리한 상황임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이 바이든 대통령의 투자 요청에 100억 달러 이상을 약속한 건 “미국 정부의 보조금 수혜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홀대’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대통령실이 혼돈에 빠져” 7월 27일 법안 최종안이 공개된 직후 방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이것이 ‘윤석열식 외교’라고 일갈했다.

이 위원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트럼프 시대에 위기로 내몰렸던 한미동맹을 다시 위태롭게 만드는 화근이 될 조짐”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명시된 내국인 대우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못 받게 된 것은 미국의 저변에 깔린 한국 경시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번지는 기류”라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보조금 문제를 넘어서 자존감을 할퀴는 문제로 악성 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급하다고 IRA를 고수한다면 한국인들이 견지하는 동맹 신뢰가 흔들리게 되고, 나아가 운동권 출신 좌파들에 의해 반미 캠페인 소재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며 “미국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동맹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 진영 공히 미국의 한국 ‘홀대’와 ‘경시’를 경고하고 있다. 윤 정부에서 한미동맹 강화와 자유주의 가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미국도 이러한 노력에 화답할 것을 설득해야 한다. 가령 이 위원의 지적대로 미국의 FTA 대상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도 보조금 혜택을 받도록 법안을 수정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윤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수 있다. IRA로 인한 전기차 보조금 문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경우 비슷한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올 수 있다.

냉혹한 안보 상황을 헤쳐가려면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외교안보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비공개로 움직여야 할 사안도 있으므로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이끄는 게 맞다. 그러나 외교안보 사안이 전문가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쟁의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지엽적인 사안이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거나 조롱과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국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만 해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이처럼 나라가 떠들썩한 정쟁의 대상이 되는 점을 미국에선 이해하기 어렵다. 외려 한국 정치의 후진성만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안보 사안에 대해서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는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이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여론 수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은 어느 나라건 국민 여론을 외교 전략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가 없을 때 외교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에서 전략적으로 최대한 국력을 모아 힘을 발휘해야 한다.

미·중 갈등으로 유발되는 외교안보의 ‘퍼펙트 스톰’은 언제 올지 모르고 또 예고 없이 올 수도 있다. 중국 전문가인 할 브랜드와 마이클 벡클리가 ‘Danger Zone: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에서 경고한 대로 미·중 갈등은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스프린터이고 최대 위험은 2020년대에 닥칠지도 모른다. 19세기 말 친중·친러·친일 등으로 갈라져 싸우다 나라를 잃었고, 광복 후엔 이념적 대립으로 분단이 고착화됐던 쓰라린 경험을 또다시 되풀이할 건가.


신기욱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
● 미국 아이오와대, UCLA 교수
●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 저서 :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등



신동아 2022년 11월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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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는 중국이 미국 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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