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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무분별한 간식, 과잉보호… 죄책감이 개를 망친다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무분별한 간식, 과잉보호… 죄책감이 개를 망친다

  • “개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반려견에게 간식을 지나치게 많이 주는 보호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산책을 충분히 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할 때 상당수 보호자가 고칼로리 간식을 준다. 그 행동이 개를 진짜 ‘불쌍하게’ 만든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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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다. 반려견에게 가장 좋은 보호자는 백수 보호자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 인생에서 반려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다. 반면 반려견의 견생에서 보호자는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나에게 애타게 매달리는 반려견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보호자도 더 잘해주고 싶다. 처한 현실 때문에 더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마음껏 놀아주지 못할 뿐이다. 이 때문에 보호자 대부분은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안고 산다. 이 감정이 잘못 표현되면 반려견과 보호자, 둘 다 힘들어질 수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할 것이 비만이다. 물론 반려견 비만 원인은 다양하다. 호르몬성 질환 탓에 보호자가 음식을 잘 조절해줘도 살이 찌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은 제외하자. 그 외 비만은 대부분 보호자가 유발하는 것이다. 개는 스스로 음식을 찾아먹지 않는다. 보호자가 제때 알맞은 양을 제공하면, 의학적 문제가 없는 한 과도하게 살이 찌지 않는다.


비만, 만병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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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인 개를 보면, 대부분 보호자가 사료를 자율배식 한다. 자율배식은 밥그릇 가득 사료를 채워놓고 다 먹으면 다시 채워주는 방법을 말한다. 매끼 정해진 양을 배식하지 않고 개 눈앞에 사료를 가득 쌓아두는 게 왜 문제일까. 

사료가 이렇게 풍족하면 개가 사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안 먹는다. 그러면 보호자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고칼로리 간식 또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기 시작한다(사람이 먹으려고 간을 해 조리된 음식을 말한다). 개가 살이 찌는 건 보통 이런 사료 외의 음식 때문이다. 



굶는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밥 안 먹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간식만 주나. 고칼로리 간식 또는 간한 음식을 개에게 주는 것은, 밥을 잘 안 먹는 어린아이에게 피자나 햄버거만 계속 주는 것과 같다. 

주식과 간식은 다르다. 주식은 그것만 계속 먹어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간식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반려견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비만이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비만인 개는 호흡기, 순환기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또 호르몬성 질환과 관절 질환 등 때문에 수명이 평균 2~3년 단축된다. 개의 수명에서 2~3년은 사람으로 보면 10~15년이다. 

특히 수의사가 많이 보는 비만의 부작용은 관절 질환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 반려견은 작은 강아지를 선호하는 문화, 아니 악습 때문에 슬개골 탈구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개가 비만이 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젊을 때는 그럭저럭 버티지만 노견이 되면 다리를 절고 십자인대가 끊어져 발을 땅에 딛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엔 한쪽 다리에만 문제가 생겨도 그 영향으로 반대쪽 다리에 무게가 더 많이 실리면서 결국 양쪽 다리를 다 못쓰게 된다. 급기야 앉아서 배변, 배뇨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가 바라는 산책 및 놀이 등의 활동을 바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해주지 못한 보호자가, 죄책감을 덜고자 먹을 것으로 보상해주는 것. 이것이 가장 나쁜 행동이다. 보호자 마음 편하자고 개한테 장기간 독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규칙과 리더십

보호자의 잘못된 죄책감 표현이 개를 힘들게 하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행동 문제다. 많은 보호자가 개에게 무엇인가 가르치는 것, 또는 개 행동에 제약을 두는 것을 꺼린다.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개가 불쌍해서’다. 그러나 적절한 교육은 개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과거 개가 가혹한 ‘훈련’을 받은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목을 조이는 초크체인, 전기충격기 등을 이용해 개를 체벌하며 훈련했다. 요즘은 다르다. 최근엔 잘한 일을 칭찬해주며 말 그대로 ‘교육’을 실시한다. 개 관점에서 보면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올바른 방법을 통해 개를 교육해본 보호자는 개가 그 과정을 즐긴다는 걸 알게 된다. 또 교육을 통해 반려견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개가 무엇을 배우는 건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서 개가 싫어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에 개의 행동을 방치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보호자의 리더십이 떨어지고, 개는 쉽게 불안을 느낀다. 개를 교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벌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도구가 먹을 것이다. 개에게 먹을 것을 그냥 주지 말고, 무엇이든 보호자가 요구하는 과제를 잘 수행했을 때 보상으로 주는 게 좋다. 이때 개는 자신이 잘한 행동에 보상을 받는다고 느끼고, 성취감을 얻는다. 이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나는 이것을 ‘아·세·공’, 즉 ‘아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교육법으로 소개한 일이 있다. 

어찌 보면 매정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개는 보통 스스로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가 있으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게 훨씬 편한 경우가 많다. 리더가 없고, 규칙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의 경우, 이 과정에서 때때로 인간 세상에 부합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문제 행동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보자. 차선 없는 왕복 8차선 도로를 운전한다면 어떨까. 차선은 국가에서 만든 규칙이다. 중앙선은 절대 넘어가면 안 되고 하얀색 점선은 깜빡이를 켠 뒤 조심히 넘어가야 한다. 이런 규칙은 우리 자유를 제약하지만, 그런 규칙과 제약 덕에 우리는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다. 차선이 없으면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큰 불안을 느낄 것이고, 도로는 곧잘 마비될 거라고 확신한다.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호자가 올바른 규칙을 정하고, 이를 잘 가르쳐주면 개는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 보호자가 “개가 불쌍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아무 규칙을 만들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그 반려견은 차선 없는 8차선 도로를 운전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무분별한 간식, 과잉보호… 죄책감이 개를 망친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신동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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