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청년의 가능성

제주 미래 이끌 人材 양성소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가다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0-05-2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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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개월 취·창업 교육, 月 150만 원 지원

    • 제주 자연의 소리로 수면 유도음 개발하기도

    • 기업·구직자 상호 만족, 외부 인재 유입도

    • “취업 서울 중심주의 극복할 것”

    • “취업 실패 청년들, 자신감 되찾아 보람”

    제주시 연북로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 참가자들이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제주시 연북로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 참가자들이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기자는 최근 제주시 연북로 ‘제주더큰내일센터’를 찾았다. 지난해 9월 24일 개소한 더큰내일센터는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핵심 공약 중 하나로, 2017년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수정계획’의 청년뱅크 프로젝트(제주도 안팎의 청년 인재에 대한 교육·취업 프로그램)를 구체화한 것이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전국 미취업자(만 15~34세, 제주 외 지역은 25%) 100명에 대해 6개월간 교육훈련과 18개월의 취·창업 과정을 지원하는 게 뼈대다. 교육훈련 기간에는 참가자 1인당 월 150만 원의 지원비도 지급한다. 

    수려한 경관 속 신축 건물 2개 층이 1기 100명이 참가한 ‘열정의 현장’이다. 탁 트인 창문으로 한라산 오름과 제주시내와 바다가 보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IT업체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와 강의실과 회의실, 스튜디오, 개방형 부엌이 눈에 띈다. 

    참가자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무색하게 각자 맡은 프로젝트 준비에 여념 없다. 한 참가자에게 무엇을 하는지 묻자 “팀별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가자들은 지난해 9월 개소 후 올해 3월까지 첫 6개월 동안 매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제주의 각 마을에 적용 가능한 신기술’ 등이 한 예다. 

    더큰내일센터 교육훈련 핵심은 ‘프로젝트’다.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개인의 막연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하는 걸 훈련한다. 프로젝트를 매개로 청년이 실제 기업 현장을 경험할 수 있게 돕는다. 기존 취업 지원은 입사 시험의 정량적 평가에 대비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취업이 성사돼도 기업은 준비가 안 된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청년들도 어렵게 취업해 허드렛일만 하니 취업 만족도가 떨어진다. 기업 현장에서 대부분 업무는 여러 조직원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뤄진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이 홀로 대비하기는 어렵다.

    제주 정착할 젊은이들 삶의 기반 마련

    제주더큰내일센터 전경.

    제주더큰내일센터 전경.

    실제 센터 안에서 만난 청년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차 한잔을 마시더라도 동료와 함께하는 분위기다. 이들이 꼽는 교육과정의 최고 장점도 ‘협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 팀원과 프로젝트를 협업하며 의사소통 능력은 물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더큰내일센터가 지향하는 제주형 ‘탐나(TAM-NA)는 인재’ 즉 ‘T(teamwork)-A(ask & answer)-M(mission)-NA(self-directed·我)’의 가치이기도 하다. 



    참가자의 25%가량은 제주 외 지역에서 온 청년들이다. 더큰내일센터가 외지 청년들을 선발해 지원하는 까닭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구성원의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 있어서는 비슷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십상. 센터는 이 점에 주목했다. 도 내외 인재들이 서로의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내게 하자는 것. 특히 제주 출신 청년들의 반응이 좋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다른 지역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어울리는 것이다. 제주로 이주하려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기회다. 

    제주도와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대비 2018년 제주 인구는 16.8% 증가했으나 청년 인구 증가세는 7.6%에 그쳤다. 청년들이 교육·취업 기회를 찾아 제주를 떠난 탓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비(非)수도권 지역 대부분이 ‘인구 소멸’ 가능성에 직면했다. 전체 인구가 늘어난 제주의 경우도 청년이 줄어들면 미래가 불투명하다. 


    프로젝트 중심 교육에 대한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80% 이상이다. [홍중식 기자]

    프로젝트 중심 교육에 대한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80% 이상이다. [홍중식 기자]

    제주의 매력에 빠져 이주를 결심한 외지 젊은이들도 서비스산업 위주의 열악한 일자리 사정 탓에 상당수가 다시 제주를 떠날 수밖에 없다. 더큰내일센터의 프로그램은 젊은 인재를 제주로 불러들이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단순 인구유입정책을 넘어 제주를 찾는 젊은이들이 정착할 기반과 삶의 터전을 닦아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센터 내 프로젝트를 마치고 4월부터 6개월 동안 기업에서 실제 현장 경험을 쌓는다. 센터 측에 따르면, 이미 제주 지역 25개 기업이 제안한 40여 개의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해녀 문화와 공연·요식업을 접목한 청년기업 ‘해녀의 부엌’이나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농업회사 ‘제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센터의 현 인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프로젝트가 쇄도했다. 센터 관계자는 “‘프로젝트심사위원회’를 통해 참여자의 훈련과 취업에 실질적 도움이 될 프로젝트를 엄선한다”고 귀띔했다. 

    김종현 센터장은 바쁜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정기 설문조사에서 참가자 만족도가 8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며 “불만이 있다면 ‘과제가 많아 힘들다’는 건데, 이는 어느 정도 의도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 센터장
    “기업 혁신은 결국 인재가 하는 것…기업과 인재 매개 역할 기대”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예전에 다니던 회사 본사가 제주도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레 제주 지역과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역 청년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직접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융합한 ‘로컬 푸드’ 브랜드를 창업했다. 이런 경험을 후배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 

    지난해 9월 초대 센터장으로 부임한 김종현 센터장은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다. 2004~2007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재직 중 서울 역삼동 본사를 제주시로 이전하는 ‘제주 프로젝트’ 팀장을 맡았다. 2009년에는 게임업체 ‘넥슨’ 지주회사 NXC로 이직해 대외사업본부장으로서 자회사의 제주 이전을 추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더큰내일센터 출범 배경은 뭔가. 

    “제주도의 고용률 자체는 높다. 청년 취업률도 낮지 않다.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관광업 등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상 아무래도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많다. 반대로 중소·중견업체가 대부분인 지역 업체들은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청년들이 잘 모르는 기업에 취업을 꺼리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를 위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혁신적 기업이 필요하다. 결국 혁신을 이끄는 인재가 관건 아니겠는가. 우리 센터가 기업과 인재를 매개하는 셈이다.” 

    -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일부 팀은 창업 준비까지 나서 센터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가령 한 팀은 제주 자연의 소리를 토대로 맞춤형 수면 유도음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척이 어려운 기존 텀블러의 문제점에 착안해 모듈형 텀블러를 고안한 팀도 있다. 사업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전폭 지지하고 있다. 매주 과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도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 주목할 만한 성과? 

    “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를 제주 4·3사건 유가족의 트라우마 해소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유가족이 간직한 사진을 바탕으로 망자의 모습을 AI로 구현해 만나게 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부 유가족도 센터를 직접 방문해 해당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제주의 역사와 신기술을 접목해 사회적 의미도 크다고 본다.”

    “인재 끌어들이는 관문 될 것”

    김 센터장은 프로젝트 성과 외에도 참가자들의 태도 변화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부연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참가자들의 태도가 입소 전과 달라진 게 눈에 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학창 시절 이후 정기적으로 출퇴근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낙방해 좌절한 경우도 많았고, 면접 과정에서 자신감 없는 친구들이 적잖아 안타까웠다. 이들이 활동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고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어 뿌듯하다.” 

    - 제주도에서 볼 때 정부와 기관의 인재 육성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구직 시장과 인재 육성의 ‘서울 중심주의’를 바꿔야 한다. 우선 취업 교육훈련 기회가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거다. 더큰내일센터의 출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특정 지역에 특정 인재만 필요하다는 것도 선입견이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서울 중심 사고에서 지방은 분업 체계의 고리다. 어느 지역은 제조업, 또 다른 지역은 관광업을 육성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실제 각 지역의 기업에 갈급한 인재는 기획·마케팅·디자인 등 경영 일반에 필수적인 핵심 인력이다. 제주 내 한 기업은 연매출이 100억 원이 넘는데도 마케팅을 전담하는 직원 1명 구하기가 어렵다며 하소연한다. 그래서 우리 센터의 프로그램에 많은 지역 기업이 관심을 보인다.” 

    - 향후 계획은. 

    “이미 75명을 선발하는 상반기 2기 모집에 250여 명이 지원했다. 올 하반기에 75명을 추가로 뽑는다. 향후 수년 동안 센터에서 교육받은 청년 수백 명이 모이는 네크워크가 가능하지 않을까. 혁신적 아이디어로 창업에 성공한 이들이 다시 센터 출신자를 고용하는 선순환 구조도 기대된다. 우리 센터는 제주 청년을 잘 키워내 밖으로 진출시키는 동시에 제주에 필요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관문 구실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지역 청년들의 성공적 취업 지원, 중장기적으로는 제주의 혁신 성장을 위한 엔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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