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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 건조는 고급 레스토랑 요리 과정과 닮았다

해전의 승부수 군함①

  • 정재민 방위사업청 통합사업관리팀장, 작가

군함 건조는 고급 레스토랑 요리 과정과 닮았다

  • ‘신동아’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해전(海戰)과 그 승부의 열쇠가 된 군함을 소개하는 연재물을 시작한다. 필자 정재민은 군함 만드는 사업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의 통합사업관리팀장이다. 등단 작가이자 전직 판사이기도 한 그가 탁월한 글솜씨와 예리한 분석력을 더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해전과 그때 사용된 군함의 비밀, 그리고 세계정세와 국제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낼 것이다.
군함을 건조하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한진중공업 제공]

군함을 건조하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한진중공업 제공]

해전과 군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간단히 말해서 군함 만드는 일을 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의 이전 직업을 아는 경우에는 더더욱) 의아해하면서 “예에? 군함을 만들 줄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물론 내가 조선소에서 작업복을 입고 선체를 용접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가로세로 선을 무수히 그리면서 설계도면을 만들 줄도 모른다. 

그럼에도 군함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함정 사업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 통합사업관리팀(IPT·Integrated Project Team) 팀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업’은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방위사업’을 가리킨다. 방위사업은 군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획득’하는 일을 말한다. 이것을 담당하는 기관이 방위사업청(‘방위산업청’이 아니다)이다.

대한민국 무기 획득 담당자

무기체계 연구 개발 작업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레스토랑에는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방산업체, 협력업체가 일한다. 손님은 그 무기체계를 사용할 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은 고객이 원하는 음식을 맞춤형으로 만들어주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에 가깝다. 고객이 국내에 드문 정통 프랑스 요리나 근래 북유럽에서 유행한 최신 노르딕쿠진을 요구할 때가 많다. 이 경우 국내에 재료, 레시피, 셰프가 없다면 외국에 나가서라도 구해 와야 한다. 그러면 돈과 시간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고객이 주문 수준을 낮출 수도 있다. 이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것은 보통 처음 만들어보는 어려운 요리이기 때문에 조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무수히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레스토랑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재료, 양념, 소스, 화력 등을 조정한다. 

통합사업관리팀장으로서 나는 따지자면 레스토랑 총지배인과 총괄 셰프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 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함정이 만들어지는 조선소를 찾아가 사업관리회의를 주재한다. 이 회의에는 조선소의 각 부서 임직원, 군함에 들어갈 탑재장비를 만드는 업체 직원, 군함을 사용할 해군,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 방산기술센터의 함정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우리 팀에도 조선소에서 십수 년간 함정을 설계하던 엔지니어 출신 직원들이 있다. 나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면 조율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면 상급자나 부처에 보고해 조정하고, 추가 예산이 필요하면 국회나 기획재정부에 가서 예산을 따오는 일도 한다. 그 밖에 담당 무기체계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있고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연구하고, 외국에 우리 군함을 수출할 방안을 찾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국가경제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행하는 일도 한다.

군함을 만드는 시간

조선소에서 배를 용접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지호영 기자]

조선소에서 배를 용접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지호영 기자]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나면 나는 조선소 야드(작업장)에 나가 우리가 만들고 있는 함정을 둘러본다. 노란 크레인이 구름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는 광활한 야드 위에는 조립 중인 철제 블록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치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 터 같다. 얼핏 계통 없이 어수선해 보이지만 야드 위 작업장 배치는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다듬어 온 것이다. 그래서 조선소의 야드 배치는 그 자체가 영업비밀이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조선소 직원들이 블록을 둘러싸거나 블록에 달라붙어 작업에 몰두해 있다. 각각의 블록은 강판을 자르고, 자른 강판을 굽혀 필요한 모양으로 가공하는 절차를 거쳐 만든 것이다. 매달 올 때마다 이 블록들이 헬스장을 열심히 다니는 사람 근육처럼 확연하게 커지고 단단해지는 것을 확인한다. 

블록들이 완성되면 도크 안이나 물가 선대 위에 받침(반목)을 깔고 그 위에 블록들을 레고처럼 조립한다. 이때 배의 가장 아래, 배의 척추에 해당하는 블록부터 쌓고 용접하는데 이를 용골거치(Keel Laying)라고 한다. 이후에는 선미부터 시작해서 선수를 향해 블록을 수직으로 내리꽂은 다음(마치 도마 위에서 토막 낸 고등어 조각을 꼬리에서부터 다시 붙이듯이) 배 안에 들어갈 장비들을 집어넣는다. 블록 조각이 조립돼 배의 모양을 갖춰가는 현장을 보고 있으면 송아지가 황소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병아리가 거창한 벼슬을 단 닭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뿌듯하다. 그동안 조선소까지 먼 길을 오가고, 수많은 공문을 작성하고, 토의를 하고, 전화통화를 한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판사일 때는 말과 글로만 일했다. 법정에서 오가는 말과 글은 과거의 특정 사건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판결문을 쓴다는 것은 이런 말과 글을 재료로 ‘과거 사건’이라는 배를 건조하는 것이다. 이 배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오로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극장 영사기가 스크린에 비추는 화면처럼 잠시 펼쳐졌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머릿속에 기존에 뭐가 들었는지에 따라 다른 영상이 재생되곤 한다. 그러나 군함은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직접 타볼 수 있다. 그 모양이 사람들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무엇인가를 해낸 것 같은 느낌, 뭔가가 남는 것 같은 느낌이 한결 선명하다. 

블록 용접이 끝나고 배가 완성되면 배를 바다에 띄운다(진수). 이후 곧바로 배가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각 선실의 인테리어나 배관 등 잡다한 공사(의장)를 하고, 시험평가나 시운전을 하고, 마감공사를 해야 비로소 군함이 완성돼 해군에 인도된다. 군에서 어떠한 군함을 만들어달라고 공식 요청한 시점부터 여기까지 보통 10년은 걸린다. 

인도식을 마친 뒤 군함이 마침내 안벽(岸壁)을 박차고 바다를 향해 첫 출발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아기가 자궁벽을 박차고 처음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불안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하다. 철과 플라스틱과 고무 같은 무생물 덩어리가 설계도면에 따라 조립된 뒤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 관련 과학기술 법칙을 따지고 보면 당연한데도, 마치 손수건이 비둘기로 변하는 마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날을 ‘배를 시집보내는 날’이라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가 여성으로 취급돼 왔고 배를 만드는 것이 마치 자식 낳고 키우는 것처럼 오래 걸리는 데다, 배가 고장 나서 수리해 달라고 ‘친정’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살라미스 해전의 서막

기원전 490년경 벌어진 마라톤 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GettyImage]

기원전 490년경 벌어진 마라톤 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GettyImage]

세계 4대 해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 유럽 동맹과 오스만투르크 사이의 레판토 해전(1571),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칼레 해전(1588),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트라팔가르 해전(1805) 중 세 가지를 꼽은 다음 나머지 하나는 자국 해전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1592)을, 미국은 일본과 싸운 미드웨이 해전(1942)을, 일본은 러시아 발틱함대와 싸운 쓰시마 해전(1904)을 포함시킨다. 이 중 어느 해전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해당국의 운명을 갈랐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물줄기를 틀어놓은 해전들이다. 이 글은 여기 거론된 7대 해전을 시대순으로 모두 다루고자 한다. 

가장 오래된 해전의 기록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역사’에 나온다. 대제국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은 자국 영토의 반란을 지원한 그리스를 정벌하려고 기원전 490년경 군함 600척에 군사 2만 5000명을 태워 그리스 마라톤 해안에 상륙시켰다. 이에 맞서 아테네의 밀티아데스 장군은 당시 가용한 최대 병력인 9000여 명의 보병을 이끌고 걸어서 마라톤 평원에 도착했다. 그러자 페르시아군은 자국 군대를 두 갈래로 나눠 1만5000명은 마라톤 평원에 남기고 1만 명은 배에 태워 남쪽 바닷길을 돌아가 아테네로 진격하도록 했다. 

아테네군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마라톤 평원에서 싸우고 있으면 그사이 배를 타고 출발한 페르시아군이 무방비 상태인 아테네로 치고 들어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와서 그냥 다시 아테네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아테네군이 이들 두 패의 페르시아 군대를 모두 막을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이론상으로는 마라톤 평원에 있는 페르시아군을 재빨리 격파한 다음 배를 탄 페르시아군이 아테네 해안에 도착하기 전 아테네성까지 뛰어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테네군이 마라톤 평원의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기도 어렵고 격파한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설사 순식간에 페르시아군을 격파한다 하더라도 투구, 갑옷, 방패로 중무장한 아테네 중장보병이 40여 km 떨어진 아테네까지 서너 시간 안에 달려가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 아테네군은 이 모든 것을 실제로 구현해내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마라톤 평원 전투에서 페르시아군 사망자가 6400명인 반면, 그리스군 사망자는 192명이었다. 아테네의 대승이었다. 당시 페이디피데스라는 전령이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0km를 전속력으로 달려 승전보를 알린 직후 숨을 거둔 것이 오늘날 마라톤 경기의 유래가 됐다고 알려졌다(그러나 사실 이 일화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페이디피데스는 페르시아군이 침공했을 때 스파르타에 도움을 구하러 간 전령으로 멀쩡하게 달려갔다가 거절당하고 멀쩡하게 돌아왔다). 당시 참패한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은 지금까지도 마라톤 경기를 하지 않는다(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때도 마라톤 경기는 없었다).

마라톤 전투와 그 후

많은 아테네인이 승리의 기쁨에 젖었지만 마라톤 전쟁에 참전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렇지 않았다. 까딱했으면 아테네가 정복당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테네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페르시아는 반드시 다시 침공해 옵니다, 페르시아를 막기 위해서는 해군을 건설해서 먼바다에부터 막아야 합니다.” 당시 보수층은 반대했다. 그 대표 격인 아리스티데스는 마라톤 전투에서처럼 그리스의 중장보병만으로 페르시아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마라톤의 대승이 불과 10년 전인데 갑옷을 벗고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던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는 계급 문제도 있었다. 중장보병은 전투장비를 살 수 있는 부유층 시민으로 구성된 반면, 해군의 노잡이는 하층민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논쟁 끝에 테미스토클레스가 다수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아리스티데스는 도편추방됐다. 마침 은광이 발견돼(기원전 483) 해군 건설에 필요한 재력도 뒷받침됐다. 이를 바탕으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짧은 기간에 군선 200여 척을 건조해 해군을 창설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예상은 곧 적중했다. 다리우스왕을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 크세르크세스가 4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기원전 480년 70여만 명의 군대와 4000여 척의 군선 및 수송선과 함께 그리스로 쳐들어온 것이다(군사 수가 16만, 36만 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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