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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여름 그 맛

  • 이진송 작가

여름 그 맛

봄치고 춥다 싶더니 성큼 여름이다. 무엇이든 미루고 보는 나는 아직 계절이 뒤섞인 옷장에서 옷을 뽑아 입고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잔다. 그래도 올여름 첫 콩국수는 먹었다. 설컹설컹 씹히는 오이소박이도, 신 김치 쫑쫑 썰어 넣고 참기름 한 바퀴 휙 둘러서 조물조물 무친 비빔국수도 먹었다. 천도복숭아와 백도의 장점만 합쳤다는 ‘신비 복숭아’와 입에 넣는 순간 단맛이 와글거리는 초당 옥수수를 온라인 쇼핑 플랫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매일 고민한다. 여름 특유의 쨍하고 아삭아삭한 맛은 때때로 피부에 닿는 뜨거운 공기나 콧구멍을 찌르는 습기보다 강렬하게 계절을 알린다. 여름은 그야말로 ‘빨간 맛’이다. 걸그룹 ‘레드벨벳’은 노래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그 맛.”

수도꼭지 틀면 콩국 나올 듯한 어린 시절 기억

어떤 맛, 그리고 ‘제철’ 음식이라는 개념은 손바닥만 한 내 살림을 손안에서 직접 굴리면서부터 선명해졌다. 내가 제철 음식을 알아보고 챙기는 데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맛의 경험이 한몫한다. 미화된 기억 속의 어린 시절에는 수도꼭지를 틀면 콩국이 나오고 냉장고에서는 한입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자른 수박이 화수분처럼 샘솟았던 것 같다. 그게 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보다 더 빠른 엄마의 보이지 않는 노동 덕이었는데. 

신선한 맛이 넘쳐나지만 그만큼 빨리 푹푹 시들어버리는 여름이면, 챙겨 먹는 일은 더욱 고역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비지땀이 나는 여름에 불 앞에 서는 용기를 내도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먹었으면 치워야지. ‘아 근데 나 아직 땀이 식지 않았는데…조금만 누웠다가…?’ 아차 하는 사이 싱크대에는 초파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아끼는 컵에는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그래, 쟤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싶다가도 울컥 화가 난다. 초파리에게? 아니,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 요 모양 요 꼴인 내 깜냥에. ‘엄마는 내 나이 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책의 늪에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빨리 첨벙거리며 가장자리로 걸어 나와야 한다. 

나의 엄마는 이른바 ‘전업주부’다. 주부이자 엄마의 역할과 적성도 카테고리별로 다르기 마련인데(예를 들면 드라마 ‘SKY 캐슬’의 엄마들은 사교육 특화 부대다), 나의 엄마는 ‘먹이는’ 것이 주특기다. 지금도 내 앞에는 예순이 넘은 엄마가 냄비를 수백 번을 휘저어가며 만든 살구잼이 놓여 있다. 빵에도 발라 먹고 요거트에도 넣어 먹으면 나의 허벅지와 옆구리에 토실토실하게 붙을 여름의 맛, 엄마의 사랑, 먹고 치우며 산다는 것의 집요한 악력. 심지어 잼만 먹으면 심심할까 봐 걱정했는지 살구청도 만들었다. 탄산수에 팍팍 넣어서 쪽쪽 빨아먹으며 새삼 놀란다. 인간의 뼈와 살과 피를 만들고 여럿의 일상을 지탱하는 이 엄청난 일이 계속된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런 노동을 너무나 당연한 일 취급하는 세상에.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하는 글은 많다. 가장의 고뇌, 신념과 생계의 충돌, ‘욕먹는 값’이라는 말이 돌돌 깎아가는 마음… 출판된 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그런 글을 읽을 때면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누가 해준 밥을 먹고, 누가 다려준 옷을 입고, 누가 치워주는 방에 앉아 있을까? 아동이야 보호자가 돌볼 의무가 있으니 먹이고 씻기는 것은 당연하고 아동이 그 노동을 헤아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지금쯤 물류 센터를 헤매고 있을 내 초당 옥수수를 걸고 말하자면, 성인 대부분은 여전히 타인의 노동을 빨아먹고 산다.



‘먹는다’ 앞뒤에 생략된 ‘만들다’와 ‘치우다’

[GettyImage]

[GettyImage]

먹고사는 일은 녹록지 않다. 우리 모두 잘 안다. 그런데 핵심은 ‘먹는다’ 앞과 뒤에 무심히 생략된 ‘만들고’ ‘치우고’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먹는 것은 결과에 불과하고, 삶은 과정의 연속이니 그 사라지는 과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그래야 할 것 같다. 

늘 먹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봄이면 같이 쑥을 캐서 쑥떡을 하고 여름이면 끙끙거리며 반죽을 밀어 감자를 넣은 수제비가 냄비에 끓었다. 가을이면 살이 차오르는 게를 찌고 겨울이면 마주 앉아서 엄마가 직접 구운 슈크림에 같이 커스터드 크림을 채워 넣었다. 그러는 동안 지켜보았다. 흔히 ‘간단히’ 먹자고 하는 국수 한 그릇을 만들고 치우는 데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먼저 밭을 고르듯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각 식자재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장 합리적이면서 지금 내 입맛에 들어맞는 조합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생채소를 넣을지 신 김치를 넣을지, 간장 비빔국수인지 초고추장 비빔국수인지, 국물을 써서 김치말이 국수를 할 것인지, 멸치 육수를 내고 익힌 채소를 고명으로 올릴지,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계획이 서면 장을 보러 간다. 이때도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멈추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과 필요한 것, 저렴한 것과 비싼 것, 한정된 예산과 변수, 식자재의 유통기한과 앞으로 며칠간 계획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바쁘다 바빠! 

장 보고 오면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고 재료를 다듬을 차례다. 간단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표현이다. 먹는 사람은 음식이 간소해 보이니 그렇게 말할지언정 만들기는 간단하지 않다. 채소를 다듬고 익히고, 방심하면 부르르 끓어 넘치는 국수에 적당히 찬물을 부어가며 쫄깃하게 삶는 데에도 손이 간다. 삶은 국수를 박박 문질러 씻는 동안 녹말이 하얗게 말라붙은 냄비는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국수를 비벼낸 양푼이나 접시 또한 언제까지나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벌겋게 웃는다. 

최영미 시인은 말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만들고 먹고 치워야 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드는 건 힘들어도 먹는 건 잠깐이더군.” “먹는 건 쉬워도 치우는 건 한참이더군.” 설거지 역시 지난한 과정이다. 단순히 그릇에 거품을 내 씻는 것만이 설거지가 아니다. 식기를 분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싱크대의 물기를 닦아내는 마무리까지 해야 끝난다. 여기에 또 남은 식자재 분류 및 보관, 배수구 청소, 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의 잡무가 소소하게 포진한다. 그러니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내가 여름이니 볶은 애호박을 올린 국수 한 그릇 먹겠다고 까불다가 땀범벅이 돼 드러눕는 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만들고 먹고 치우는 것은 노동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상도에서 1990년대의 유년 시절을 보내며 부모로부터 사랑한다거나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최근의 육아 트렌드에서는 자연스러운 말을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철마다 부지런히 지지고 볶는 엄마 곁에 쭈그리고 앉은 덕에 나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사랑을 꿀꺽꿀꺽 잘도 삼켰다. 김애란의 소설 ‘칼자국’에도 나오는 표현이지만, 간을 보라며 집어 넣어줄 때 입안 점막에 닿는 엄마 손가락의 미지근한 맛 같은 것. 오븐 안에서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빵을 기다리는 설렘, 기껏 말끔하게 닦아놓은 싱크대에 다시 수박을 깨뜨릴 때 튀는 붉은 얼룩.

부엌이 따뜻한 집, 엄마의 사랑 표현

얼마 전 엔카 가수 김연자가 서툴게 김치볶음밥을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봤다. 나의 엄마가 노래를 가수처럼 잘 못 부르듯, 다른 일을 하거나 기질이 다른 사람은 얼마든 부엌일에 서툴 수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데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요구할까? 엄마가 요리를 못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요리를 잘하고 살림에 능한 것은 한 사람의 특성이지 엄마의 본질은 아니니까. 여러 갈래의 삶 중에서 나는 부엌이 따뜻한 집에서 자랐고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저 우연이고, 누가 더 잘했고 못했느냐는 비교는 필요 없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난 나는 이제 토실토실 나이 드는 중이다. 남에게 기대거나 나를 맡기지 않고, 좀 어설프더라도 열심히 돌보면서. 그 계절에 가장 싱싱하고 물오른 것들을 골라 먹으며 나와 세계를 지탱하는 사랑과 노동을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감각한다.



신동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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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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