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인류 대항해시대 한 축 담당한 고양이의 식탐

[동물萬事⑲] 쥐 1쌍이 1년에 얻는 자식·손자 2000마리 넘어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입력2020-09-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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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 축내고 전염병 옮기는 집쥐

    • 미키마우스처럼 재기발랄한 생쥐

    • 등줄쥐와 유행성출혈열

    • 신이 인간에게 보낸 ‘작은 수호천사’

    수만 년 동안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스스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공했다. 인류는 이 모든 성공을 자신들이 흘린 굵은 땀방울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류의 성공에는 다른 동물이 기여한 부분도 있다. 오랜 시간 많은 동물이 인류를 위해 헌신했다. 조력자 중 일부는 역할에 걸맞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과소평가된 대표적 동물이 고양이다. 고양이는 많은 일을 했는데도 놀고먹는 동물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일한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성과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라고 할 수 있다. 

    쥣과동물(Muridae)에게 고양이는 저승사자다. 생물학에서는 천적(天敵)이라고 한다. 천적은 생태계에서 먹잇감이 되는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쥐의 개체수를 적절하게 조절한다. 고양이와 먹잇감인 쥐는 모두 젖먹이동물인 포유류(mammals)다. 포유류에는 153개 과(科)가 있다. 153개 과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속(屬)이 40개, 종(種)이 650개나 되는 쥣과동물이다. 물론 개체수도 쥣과동물이 가장 많다.

    식량 축내고 전염병 옮기는 집쥐

    쥣과동물 중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동물은 집쥐(brown rat)와 생쥐(mouse)다. 녀석들은 수만 년 전 인간 세상에 잠입해 원주민인 양 정착했다. 인류와 쥐는 바늘이 가는 데 실이 가는 것과 비슷한 관계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집쥐와 생쥐가 함께한다. 



    시궁쥐속에 속하는 집쥐는 덩치가 제법 커 실물로 보면 놀라기 십상이다. 집쥐 수컷은 체중이 300g, 암컷은 200g 내외다. 집쥐는 100마리에 달하는 큰 규모의 무리를 이루고 산다. 집쥐 1마리가 보이면 주변에 100마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조선시대 때 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는 공납(貢納) 제도가 있었다. 백성들은 공납이 가혹해 고생했다. 1970년대에도 공납과 비슷한(?) 부담이 있었다. 조선시대 공납처럼 공식적 조세는 아니었지만 세금 못지않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내야 할 물건은 호랑이 가죽인 호피(虎皮)나 담비의 가죽인 돈피(豚皮) 같은 비싸고 귀한 특산물이 아니라 집쥐의 꼬리였다. 

    집쥐의 꼬리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초등학교였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숙제는 학부모 몫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구하기 어렵듯 흔하디흔한 집쥐도 학교에 내기 위해 잡으려고 나서면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부 학부모는 아라비아 연금술사(鍊金術師)를 흉내 냈다. 20세기형 공납을 제출하고자 마른 오징어를 구입해 그 다리를 쥐꼬리 길이로 자른 후 그 위에 검은 구두약을 발랐다. 이러면 외견상 쥐꼬리와 구분되지 않았다. 

    당시 학교에서 이런 이상한 과제를 낸 것은 집쥐가 주는 다양하고 심각한 피해 때문이다. 집쥐는 식량을 훔치는 도둑이며 집의 목조를 훼손시키는 문제아다. 식량 절도 과정에서 입을 댄 음식과 물을 통해 질병을 옮기기도 한다. 

    집쥐는 발열, 오한, 근육통 등의 증세를 동반하는 렙토스피라증을 옮기는 매개체다. 집쥐 소변을 통해 렙토스피라균이 배출된다. 인간이 집쥐 소변과 접촉하면 이 균에 감염될 수도 있다. 특이한 점은 집쥐는 체내에 렙토스피라균을 보유하지만 병을 앓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이 균에 노출되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집쥐처럼 전염병 매개체 노릇을 하는 동물을 매개동물(vector)이라고 한다.

    작지만 무서운 피해 주는 생쥐

    생쥐는 생쥐속에 속하는 체중 10~30g의 작은 동물이다. 집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작은 체구여서 해악이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오산이다. 작은 고추가 맵듯 생쥐의 해악은 집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생쥐는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재주를 가졌다. 수영에 능하고 나뭇가지도 잘 탄다. 식량을 가득 싣고 출항하는 배에 묶인 줄을 타고 승선하기도 한다.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불청객으로 밀항하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는 고양이를 골탕 먹이는 만능 재주꾼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를 창작했는데, 실제로도 생쥐는 재기발랄한 동물이다. 

    비록 작은 체구지만 생쥐도 집쥐처럼 여러 악행을 저지른다. 왕성한 식욕과 번식력은 집쥐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생쥐 역시 식량 절도에 능하고, 전염병 매개동물 역할도 수행한다. 집쥐처럼 소변을 통해 렙토스피라균을 인간 세상에 배출한다. 

    생쥐는 식량을 구하기 쉬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생쥐에게 가장 좋은 서식처는 지저분한 성격을 가진 인간의 집이다. 먹을 것을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하고 집을 자주 청소하면 생쥐의 침입을 줄일 수도 있다. 

    생쥐와 집쥐는 같은 서식지를 놓고 경쟁한다. 덩치가 압도적인 집쥐는 생쥐가 사는 곳이 마음에 들면 그 거처를 빼앗아 버린다. 생쥐는 덩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아 집쥐가 덤비면 영역을 넘겨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유행성출혈열과 등줄쥐

    식량을 구하기 쉬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생쥐(왼쪽)와 유행성출혈열을 매개하는 등줄쥐. [GettyImage, 위키피디아]

    식량을 구하기 쉬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생쥐(왼쪽)와 유행성출혈열을 매개하는 등줄쥐. [GettyImage, 위키피디아]

    들쥐(field mouse)는 집쥐나 생쥐 같은 특정 쥣과동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들에 사는 다양한 종류의 쥣과동물의 총칭이다. 쥣과동물의 연합체인 들쥐도 도시의 쥣과 친척들처럼 사람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 피해가 집중되는 곳은 농업이다. 

    들쥐는 농부가 가꾼 농산물을 훼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농경지 곳곳에 구멍을 판다. 집을 만들고 이동통로를 개척하는 들쥐의 행동이 둑이나 제방의 붕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의 골칫거리 들쥐를 없애고자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논둑에 불을 놓는 쥐불놀이를 했다. 그날은 공식적인 구서(驅鼠·쥐잡이)의 날이었다. 

    들쥐도 친척들처럼 전염병을 퍼뜨리는 매개동물이다. 렙토스피라균은 기본이다. 들쥐가 퍼뜨리는 대표적 악성 전염병은 고열, 복통 증세를 일으키는 유행성출혈열(HFRS)이다. 한반도, 연해주, 만주 등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등줄쥐(striped field mouse)가 유행성출혈열의 매개동물. 붉은쥐속에 속하는 등줄쥐는 분변을 통해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이 되는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를 체외로 배출한다. 한타바이러스는 먼지나 공기 등을 통해 사람의 호흡기에 침투해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킨다. 

    유행성출혈열은 6·25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다. 1951년 중부전선에서 다수의 유엔군이 유행성출혈열로 쓰려졌다. 이 일로 유행성출혈열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고 한국이 최초 발병지는 아니다. 1930년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주둔하던 일제(日帝) 관동군과 러시아군에서도 유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만 명의 병사가 감염됐고, 그중 상당수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를 인간 세상에 초대한 불청객 쥐

    고양이는 쥐를 쫓아 인간 세상을 찾았다가 야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GettyImage]

    고양이는 쥐를 쫓아 인간 세상을 찾았다가 야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GettyImage]

    고양이는 체중 3~5㎏의 작은 포식자다. 고양이가 인류의 눈에 띈 것은 탁월한 사냥 능력 덕분이다. 다만 고양이는 작은 체구 때문에 사냥 능력에 뚜렷한 한계가 있다. 얼룩말이나 영양 같은 발굽동물을 잡을 수는 없다. 고양이가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사냥감은 쥣과동물이다. 개체수도 많고 크기도 작은 쥣과동물은 하늘이 고양이에 내려준 이상적 사냥감이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한 후 보통의 동물들과 달리 식량을 비축해 놓는 독특한 습관을 갖게 된다. 창고에 쌓인 식량은 후각이 예민한 쥣과동물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인간은 식사를 마친 후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다.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확충되기 이전 인간의 거주지는 쥣과동물에 음식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천국과도 같았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먹을 것의 유혹에 약하다. 음식 냄새에 이끌린 집쥐와 생쥐의 조상은 야생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인간 세상으로 이동했다. 

    쥣과동물이 인간 세상에 정주(定住)한 사건은 또 다른 야생동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고양이의 조상들은 수만 년 동안 쥣과동물에 의존해 살아왔다. 쥐는 고양이에게 밥과 빵 그리고 고기를 합친 존재였다. 그러므로 먹잇감인 쥣과동물의 이동은 고양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고양이의 레이더는 듣는 능력이다. 개과동물에 비해 후각은 뒤지지만 청각은 월등하게 뛰어나다. 고양이는 사냥감이 내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 발생한 쥣과동물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고양이가 야생을 떠나 사람 사는 곳으로 이동한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인간 세상의 불청객인 쥣과동물이 훗날 인류의 친구가 되는 고양이를 초대한 것이다. 쥐의 초대장에 이끌려 인간 세상을 찾은 고양이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양이도 쥐와 마찬가지로 한번 발을 디딘 인간 세상에 정착한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보낸 ‘작은 수호천사’

    [GettyImage]

    [GettyImage]

    인간 세상에 정착한 고양이는 거리를 순찰하며 본능에 따라 쥐를 사냥했다. 정착 초기 고양이에게 찾아온 변화는 활동 무대가 수풀이 아닌 마을로 바뀐 것밖에 없었다. 고양이의 삶은 인간 세상에 사는 다른 동물과는 크게 달랐다. 가축이라고 불린 대부분의 동물에 자유는 사치였다. 가축들은 그저 인간이 시키는 일만 했다. 

    고양이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일했다. 인류가 고양이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은 쥐 때문이었다. 먹이를 찾아 계속 돌아다니는 쥐를 잡으려면 고양이의 몸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 결과 고양이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야생의 본능을 버리지 않고 쥐를 사냥할 수 있었다. 

    쥐는 번식력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이다. 한 쌍의 쥐가 1년에 얻을 수 있는 자식과 손자가 2000마리가 넘는다. 그래서 쥐는 십이지(十二支)에서 쥐를 뜻하는 서(鼠)가 아닌 아들을 의미하는 자(子)로 표시된다. 다만, 구서(驅鼠) 분야 생태계 최고 전문가 고양이의 활약으로 쥣과동물은 인간 세상에서 과잉번식에는 실패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신이 인류에게 보내준 작은 수호천사(Guardian Angels)다. 지금도 길고양이들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순찰을 돌며 쥣과동물을 사냥한다. 고양이의 조상들과 인류의 조상들이 맺은 암묵적 계약은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양이가 없는 인간 세상은 쥣과동물의 천국이 될 수도 있다. 

    다른 동물들의 자유를 속박한 인류는 고양이에게 예외적으로 많은 자유를 주었다. 놀라운 사실은 작은 체구의 고양이가 인류에게도 자유를 줬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인류에게 준 자유는 더 큰 세상으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자유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 거래(去來)의 원칙인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가 작용한 것이다. 

    사람은 다른 대형 동물에 비해 이동 능력이 떨어진다. 신선한 풀을 찾으려 동아프리카의 초원지대를 수백㎞씩 이동하는 얼룩말이나 누(Wildebeest) 같은 대형 발굽동물은 물론 먹잇감을 추격하며 수㎞ 이상을 질주하는 늑대나 리카온(African wild dog) 같은 갯과동물과도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말과 낙타를 이동수단으로 삼았다. 말과 낙타의 등에 직접 오르거나 물자를 싣고 다니면서 한계를 넘어섰다. 고대 문명의 발전과 문화의 교류에는 이 두 동물의 공헌이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낙타가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 발전은 지금보다 훨씬 뒤처졌을 것이다. 

    그런데 말과 낙타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 동물이다. 강이나 바다 같은 큰물을 건너는 능력이 없다. 말이나 낙타가 수륙양용 차량처럼 바다에서도 기동할 수 있었다면 인류는 구태여 배라는 거대한 운송수단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말처럼 인류는 배를 건조한다.

    인류에게 원양항해의 자유를 준 고양이

    고양이가 인류의 원거리 이동에 기여한 것은 말과 낙타가 한 방식과 전혀 다르다. 말과 낙타가 육체의 힘으로 사람을 도왔다면 고양이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큰 도움을 주었다. 고양이의 공헌은 선내(船內)에서 쥐를 사냥한 것이다. 

    출항을 앞둔 배는 기착지(寄着地)에서 식량을 포함한 많은 물자를 싣는다. 먹을 것이 풍기는 냄새의 유혹에 빠진 쥐는 운명을 건 도박을 한다. 부두와 배를 연결하는 밧줄을 타고 배에 잠입하는 것이다. 쥐는 선내의 창고에서 식량을 축내기 시작한다. 

    쥐가 배에 타면 식량을 축내는 것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번지고 선체 곳곳에 상처가 난다. 갉는 습성을 가진 쥐에게 배는 최적의 놀이터다. 배는 갉을 것이 많으며 먹을 것도 지천이다. 또한 미로 같은 선내에는 작은 몸을 숨길 곳이 부지기수다. 

    인간은 안전과 행복을 위해 불청객을 박멸해야 했다. 쥐는 체구가 작아 비좁은 선내에서 잡기가 쉽지 않다. 인류가 제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구서 작업에서 전문가는 아니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는 따로 있다. 

    배에 탄 고양이는 인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 단순한 행동이 원양항해의 안전성을 높여줬다. 배에서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함재묘(艦在猫)라고 한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인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고양이는 대항해시대를 여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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