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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해양대국 아테네 만든 삼단노선 파괴력

[해전의 승부수 군함③] ‘디에크플루스’ 전술과 놀라운 속도로 살라미스해전 대승

  • 정재민 방위사업청 함정사업팀장(국제법 박사), 前판사

강력한 해양대국 아테네 만든 삼단노선 파괴력

  • ● 눈부신 문명을 일군 비결, 민주주의
    ● 삼단노선은 왜 빨랐는가
    ● 뱃머리 아래 붙여놓은 충돌하는 뿔
    ● 해양강국 넘어 제국으로!
그리스 삼단노선 모형. [위키피디아]

그리스 삼단노선 모형. [위키피디아]

고대 그리스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적·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나 나일강 유역과 같이 기존 문명의 발상지로부터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낸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영국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은 명저 ‘서양철학사’에서 모든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 문명의 돌연한 발생만큼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리스의 탈레스가 시작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고도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수학과 기하학도 그리스 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인들도 수학과 기하학을 했지만 그리스 시대에 비하면 초급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 과학은 철학의 일부였으므로 그리스가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레스는 이미 천체의 운동을 연구해 기원전 585년 일식을 예측했다.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는 전쟁도 잘했다

기원전 466년 델로스 동맹과 페르시아제국의 에우리메돈 전투. [GettyImage]

기원전 466년 델로스 동맹과 페르시아제국의 에우리메돈 전투. [GettyImage]

연대기에 따른 ‘역사’ 기술 방식을 처음 시작한 것도 그리스인이다. 이 글이 2500년 전 벌어진 살라미스해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역사’ 덕분이다. 그리스인들은 회화, 조각, 희곡 등 예술과 문학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남겼다. 그 중심은 그리스 중에서도 아테네였다. 당시 아테네의 라이벌로서 강력한 군사 권력으로 시민을 통제하던 스파르타가 이렇다 할 문화유산을 남기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인구 10여만 명의 작은 도시국 아테네가 어떻게 그토록 눈부신 문명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찾은 대답은 민주주의다. 아테네는 독재자로 돌변하곤 했던 참주를 몰아내고, 평민 사이에서 추첨으로 뽑힌 의원들이 1, 2년 동안 돌아가면서 국정을 다스리도록 하며, 독재자가 될 여지가 있는 사람은 도자기의 조각에 이름을 적어 10년간 아테네 밖으로 쫓아내는(도편추방제) 등 당시로서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국가가 스파르타의 군국주의가 아니라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이를 구현하려고 숱한 땀과 피를 흘려온 것도 이러한 정치 시스템이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그토록 찬란한 문명을 일구어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놀라운 점은 전쟁도 잘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면적으로나 인구 수로나 수백 배 큰 당대 최강국 페르시아의 침공을 세 차례나 막아냈다. 지금으로 치면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미국의 총공격을 연거푸 막아낸 것과 같다. 얼핏 생각하면, 두 국가의 규모가 같았다고 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고 일사불란한 질서를 구축하고 프로페셔널 군인을 양성해 온 전제 군주국가의 군대가 평소에는 다른 일을 하던 일반 시민들이 전쟁을 기화로 참전해 결성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를 이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테네는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마라톤 전투나 살라미스해전에서 연이어 대승을 거뒀다. 헤겔은 ‘역사 철학’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그리스의 승리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편에는 한 명의 군주 아래 결집된 동방의 전제 체제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규모는 작지만 자유로운 개성이 넘치는 독립국가들이 전투 대형으로 맞섰다. 역사상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이 그토록 명백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디에크플루스’ 춤을 춘 ‘발레리나’ 삼단노선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이긴 비결로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체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 원인으로 아테네가 활용한 군사 장비와 전술을 빼놓을 수가 없다. 마라톤 전투에서는 청동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보병들이 고슴도치처럼 빽빽하게 밀집한 대형을 짰다.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보병들이 긴 창을 위쪽과 전방으로 겨눈 팔랑크스(Phalanx) 대형이 그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는 빠른 기동이 가능한 삼단노선을 활용해 ‘디에크플루스(Diekplus)’나 ‘페리플루스(Periplus)’ 같은 고난도 전술을 펼쳤다. 

고대 해전은 양측의 함선들이 서로 마주 보고 횡렬로 도열해 대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전투가 개시되면 서로 돌진해 충돌한 다음 배 위에 탄 군사들이 무기를 들고 적선으로 난입해 백병전을 펼쳤다. 이후 충각으로 적선을 들이받는 전술이 유행했다. 충각은 충돌하는 뿔이라는 뜻으로 뱃머리 아래 붙여놓은 청동과 같은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부분이다. 초기의 충각은 뾰족했으나 이것이 적선을 들이받고 나면 잘 빠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돼 후기의 충각은 뭉뚝한 형태로 변형됐다. 

아테네 해군도 기본적으로 충각으로 적선을 들이받는 전술을 펼쳤다. 다만 아군 함선의 뱃머리로 적선의 뱃머리를 마주 보고 들이받는 것은 두 배가 모두 파괴된다는 점에서 효과적 전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선의 후미나 측면을 노렸다. 해전을 유리하게 가져가려면 적선을 공격할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한편, 적선이 반격할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적선의 후미나 측면을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한 아테네 해군의 두 가지 전술이 바로 디에크플루스와 페리플루스였다. 

페리플루스는 아군 진영의 좌우 끝부분에 있는 함선들이 상대 진영 좌우 끝의 바깥쪽으로 돌아들어 가서 적선의 후미나 측면을 충각으로 들이받는 것이다. 디에크플루스는 여러 척의 아군 함선이 종대로 줄을 지어 적선의 대열을 정면으로 돌파하다가 다시 180도 돌아 나오면서 적선의 후미를 공략하는 것이다. 이때 아군의 함선들이 적선과 적선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며 돌파하는 과정에서 적선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노들을 부러뜨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적선의 노잡이들은 잡고 있던 노로 인해 타격을 받거나 부러진 노에 몸이 찔리게 된다. 노가 파괴된 적선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데 이때 뒤따라오던 함선이나 180도 회전한 함선이 충각으로 들이받아 격침시킨다. 

디에크플루스는 페리플루스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고 현란한 기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살라미스해전’의 저자 베리 스트라우스는 “발레만큼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요하는 죽음의 춤”이라고 표현했다. 적선을 돌아들어 가거나,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가 재빨리 빠져나오거나, 충각으로 들이받기 위해서는 아군의 함선이 적선보다 훨씬 더 빨라야 한다. 이렇게 빠른 속력을 실현한 것이 바로 삼단노선이다. 

삼단노선은 빨랐다. 고전 기록에 따르면 순항속력이 6~8노트(1노트는 시속 1853m)였다고 한다. 투키디데스는 삼단노선이 하루 300㎞를 항해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함정 전문가들은 삼단노선이 기존의 기술적 한계를 여러 측면에서 뛰어넘은 혁신적 함선, 조선술의 일대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삼단노선은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 있었을까. 기존에 쓰던 1단노선인 펜테콘토로스(노잡이 50명이 탄다는 의미로 ‘오십노선’이라고도 한다)와는 무엇이 다르던 것일까.

삼단노선은 왜 그리 빨랐던가

배가 빨리 가려면 추진력은 크고 저항은 작아야 한다. 오늘날에도 배의 속력을 높이려고 추진력이 큰 엔진을 사용하면서도 배의 선형, 구조, 흘수(물에 잠긴 선체의 깊이), 소재 등 여러 측면에서 저항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 노선시대에 엔진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노잡이들의 힘이다. 따라서 추진력을 높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노잡이의 수를 늘리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다. 

오늘날 조선공학에서 언급되는 저항의 종류는 다양하다. 배가 전진할 때 선체 주변 수면이 파동을 형성하면서 생겨나는 저항(조파저항), 파도가 밀려와 선체에 부서지면서 생기는 저항(쇄파저항), 수면 선체 부분이 공기로부터 받는 저항(공기저항), 물의 점성으로 인해 생기는 저항(점성저항), 조타수를 직선 방향으로 유지하면서 생기는 저항(조타저항) 등이 있다. 노선과 같은 비교적 느린 배의 속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저항은 마찰저항이다. 마찰저항은 선체가 전진할 때 물속에 잠긴 부분이 점성을 띠는 물과 부착됨으로 인해 방해받는 것을 말한다(전신 수영복은 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마찰저항은 물에 잠긴 선체의 표면적이 클수록 커진다. 기존의 배에 노잡이를 더 많이 태우려면 1단노선의 경우 배가 앞뒤로 더 길어져야 하는데 이 경우 선체가 물속에 잠기는 부분의 표면적이 커지기 때문에 그만큼 마찰저항도 커진다. 1단노선 위로 이층주택처럼 노잡이들이 앉을 공간을 한 층 더 만들어 놓은 2단노선의 경우에도 선체가 무거워지는 만큼 물속에 잠기는 부분이 많아지므로 그만큼 마찰저항도 커진다. 요컨대 1단노선이든, 2단노선이든 노잡이가 늘어나는 만큼 마찰저항이 커지기에 기대만큼 속력이 빨라지지 않는다. 

반면 3단노선은 하나의 공간에서 3단의 노잡이를 모두 공존하되, 각단의 노잡이들이 다른 단의 노잡이들과 상하, 전후, 좌우의 측면에서 나란히 붙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입체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노를 저을 때도 3단의 노잡이들이 각기 다른 신호에 따라 노를 젓도록 함으로써 노끼리의 충돌과 비효율을 회피한다. 이런 방식으로 추진력을 3배 확보하면서도 마찰저항은 별로 키우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배보다 훨씬 더 빨랐다. 삼단노선의 혁신적 면모가 드러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삼단노선은 건조도 빨랐다. 테미스토클레스가 해군을 창설하기로 한 것이 기원전 483년인데 살라미스해전이 480년 발발했다. 3년 안에 당대 최신 함선 200여 척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삼단노선 한 척을 제작하는 데 6000 Man-Date라는 노동력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Man-Date는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일하는 정도의 노동력을 말한다(실무에서는 ‘공수’라고 칭한다). 삼단노선 한 척을 만드는 데 6000 공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한 사람이 6000일 동안 일해야 삼단노선 한 척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산술적으로는 20명이 일하면 1년 만에 한 척을 만들 수 있으며 2000명이 1년 동안 일하면 100척을 만들 수 있다. 2년이면 200척이다.

때마침 발견한 은광에서 비용 조달

테미스토클레스가 살라미스해전에서 승리한 후 월계관을 쓰고 있다. [GettyImage]

테미스토클레스가 살라미스해전에서 승리한 후 월계관을 쓰고 있다. [GettyImage]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은 인력 혹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함선 건조는 야외에서 대규모로 이뤄지는 공사이기에 오늘날에도 비나 눈이 많이 오거나 그 밖에 무수한 돌발 상황으로 작업이 멈춰 설 때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위 6000 공수는 설계공수를 제외한 것이다. 오늘날 군함의 공수를 논할 때는 크게 설계공수와 건조공수를 나눠 이야기한다. 설계가 완성된 뒤에 그에 따라 건조가 이뤄진다. 처음 만드는 함정의 경우에는 설계공수가 건조공수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한다. 3단노선은 최신 함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설계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군함 만드는 일을 관리하는 나로서는 그리스 해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해군을 이긴 것보다 3년 안에 최신 함선 200척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군함을 연구·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군함 건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까닭은 투명성을 확보하고 각 기관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취합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아테네인들은 몇 척의 배가 필요하니 만들겠다는 결심만 하면 족할 뿐 그 계획을 국회, 기획재정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해군 등을 통해 심사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해마다 예산의 결산을 국회나 기획재정부로부터 심사받을 필요도 없고, 사업타당성조사나 소요검증을 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소를 선정하기 위해 복잡한 경쟁 입찰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별도로 비용분석이나 원가검증을 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도합 2~3년씩 걸리는 시험평가와 시운전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소송·수사·감사·국회·언론의 지적에 대응할 필요도, 수많은 행정 문서를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체제가 나쁘고 아테네 체제가 더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래 민주적 방식은 비효율적이고 독재적 방식은 효율적이다. 후자가 부패하기 쉬울 뿐이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 해군을 처음 창설하면서 200여 척의 함선을 최신예 삼단노선으로 건조한 것은 어느 작은 나라가 공군을 처음 창설하면서 주력 전투기를 최신예 스텔스기 F-35로 장만한 것에 비견할 만하다. F-35가 비싸듯이 최신 기술의 집약체인 삼단노선은 비싸다. 그런데 마침 그리스에 은광이 발견돼 돈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됐다. 그는 운도 참 좋은 사람이다. 

삼단노선은 전장에서 비상한 전투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삼단노선은 아테네 시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그 비용을 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박 제작 비용은 아테네가 국가 차원에서 댔지만 삼단노선의 유지비는 선장이 알아서 해결했다. 그래서 선장은 부유한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노잡이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될 수 있었다. 살라미스해전 때도 아테네 시민 수만 명이 삼단노선과 오십노선 안에서 노를 저었다. 이 과정에서 개성이 강한 아테네인들이 사회화되고 하나로 뭉치게 됐다. 

살라미스해전 승리 이후 아테네는 기원전 477년 150여 개 그리스 도시국가를 이끌고 ‘델로스 동맹’을 결성했다. 델로스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에게해(海)에 있는 섬 이름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치던 국가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델로스 동맹이 466년 에우메리돈 전투에서 지중해에 잔존하던 페르시아군을 완전히 꺾어버림으로써 아테네는 지중해의 패권을 거머쥐고 강력한 해양국가로 도약한다.

삼단노선 타고 해양강국 넘어 제국으로!

해양강국 지위를 유지하고자 더 많은 삼단노선이 필요하게 된 아테네는 동맹국에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조공처럼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치느라 힘들어하던 국가들은 이제 아테네에 조공을 바치느라 고달픔을 느꼈다. 아테네는 점점 페르시아제국을 닮아갔다. 아테네 정치인들은 동맹국들을 ‘피지배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테네의 상류층은 페르시아풍 의상과 예술을 애호했다. 동맹국들이 아테네에 반기를 들면 아테네의 군인들이 함대를 이끌고 가서,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력으로 진압한 다음 반란자들을 처형하거나 노예로 예속시켰다.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를 만든 아테네가 불과 두 세대 만에 비민주적 제국이 됐다. 

그사이 수많은 그리스 사람이 페르시아로 망명했다. 그 속에는 도편추방제로 추방된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것과 같다. 독재자가 될 사람의 이름을 적으라고 나눠준 도편에는 이미 처음부터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약 70년 뒤 동맹국들이 하나둘 아테네를 떠나면서 델로스 동맹은 와해됐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정복당해 그동안 건설한 해군 함대를 내주고 멸망했다. 오히려 살라미스에서 진 페르시아가 더 오래 존속했다.



정재민 |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국제법 박사,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이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혼밥판사’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세계문학상 대상작)가 있다.



신동아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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