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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간호복 논란에 ‘표현의 자유’는 빠져 있다

간호사 ‘性的 대상화’ ‘이미지 왜곡’… 삭제 압박은 표현의 자유 침해 측면도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블랙핑크 간호복 논란에 ‘표현의 자유’는 빠져 있다

  • ●시대착오적 복장으로 공분 일으켜
    ●간호사 분노에 5일 만에 영상 수정
    ●SNS #간호사는_코스튬이_아니다
    ●보건의료노조 “성적 대상화 멈춰라”
    ●문화콘텐츠 ‘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걸그룹 블랙핑크 신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 한 장면. 멤버 제니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있다. [유튜브 캡처]

걸그룹 블랙핑크 신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 한 장면. 멤버 제니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있다. [유튜브 캡처]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소녀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굳이 하트모자와 몸에 달라붙는 간호복, 짧은 치마, 하이힐을 신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7일 온라인 간호사 커뮤니티에 게시된 글이다. 2일 블랙핑크의 신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 논쟁이 불거졌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몸에 붙는 간호사 복장을 입고 붉은 색 하이힐을 신은 채 뮤직비디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현장에서 이와 같은 복장을 입고 일하는 경우는 없다며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콘텐츠라고 비판한다.

#간호사는_코스튬이_아니다

문제가 된 장면은 뮤직비디오 1분 33초부터 등장했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타이트한 상의와 짧은 치마의 간호사 복장을 착용했다. 하트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었다. 이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 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성적 대상화는 개인이나 집단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4일 트위터의 실시간 검색어 격인 ‘실시간 트렌드’에 ‘성적 대상화’가 오르기도 했다. 

SNS에서는 ‘#간호사는_코스튬이_아니다’ ‘#Stop_Sexualizing_nurse(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멈춰라)’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이 벌어졌다. 4일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해시태그와 함께 “언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전문성은 묻히고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하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5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성명문을 통해 “간호사는 보건의료노동자이자 전문 의료인임에도 여성이 많다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와 전문성을 의심받는 비하적 묘사를 겪어야 했다”며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책임 있는 대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대한간호협회는 YG에 공개 사과와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YG는 6일 입장문을 통해 “뮤직비디오 중 간호사가 나오는 장면은 노래 가사 ‘No doctor could help when I’m lovesick(상사병은 의사도 치료할 수 없다)’을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예술은 예술로 보자고?”

간호사들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제니의 복장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한다. 경기 고양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문모(23) 씨는 “간호복은 라인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상의와 바지로 이뤄져 있다. 그 마저도 수술실에서 입는 편한 특수복으로 교체하는 병원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에서는 간호사도 수술시 의사가 입는 반팔차림의 복장을 입고 일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서울 한 종합병원의 간호사 박모(24) 씨도 평소 반팔과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블랙핑크의 팬인 박씨는 뮤직비디오가 나온 당일 영상을 봤다. 박씨는 “제니가 짧은 간호사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마음이 찝찝했다. 많은 간호사들이 의사나 보호자와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호소한다. 예술은 예술로 보자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인스타그램에 “병동 여기저기를 바쁘게 누비며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간호사가 치마를 입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성인 대상 BJ(방송진행자)나 인플루언서들이 할로윈 데이에 간호사 코스튬(배우가 연극·영화에서 입는 의상)을 입고 사진을 올리는 등 간호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경북 청도군에서 자원봉사를 한 남성 간호사 오성훈(28) 씨는 “지금도 코로나19와 싸우는 간호사들에게 힘 빠지는 일이다. 대중매체에서 간호사를 잘못된 이미지로 왜곡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왜곡된 간호사 이미지를 전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7월 2일 MBC 드라마 ‘찬란한 내 인생’에서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네일아트를 받은 간호사가 동료 간호사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 드라마 제작진은 “사명감 하나로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계시는 전국의 간호사 여러분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관련 영상을 삭제했다.

YG 영상 삭제… 일부 해외팬은 반발

논란이 지속되자 7일 YG는 해당 장면을 뮤직비디오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YG는 “조금도 특정 의도가 없었기에 오랜 시간 뮤직비디오를 준비하면서 이와 같은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 책임감을 느낀다. 불편을 느끼신 간호사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뮤직비디오 수정 요구 및 압박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삭제 압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블랙핑크 해외 팬들은 유튜브 영상에 해당 장면을 삭제하지 말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한 베트남 네티즌은 “(간호사에게) 성적으로 모욕적인 영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영상을 보는 사람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썼다. 트위터에는 #YGDontDeleteTheScene(YG는 해당 장면을 삭제하지 말라)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들도 올라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외국에서 성적인 코드로 사용되는 복장을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것은 부주의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옷은 실제 간호사들이 입는 복장과도 다르다. 현대적 감각의 패션으로 인기를 모은 블랙핑크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특정 집단에서 삭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이는 창작에 맡겨야 할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복장을 놓고 보면 성적인 뉘앙스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중들은 과거와 달리 성인지 감수성에 민감하다. 문화콘텐츠를 둘러싸고 이와 같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성인지 감수성에 둔감했던 기존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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