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공부하지 않는 당신, 내일의 꼰대[신동아 에세이]

  • 최준영 작가

    입력2021-10-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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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과 결핍의 삶이었다. 달릴 때마다 고꾸라졌고, 벌이는 일마다 실패했다. 특정한 시기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성년 이후 내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글쟁이로 사는 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냐’며 대학을 뛰쳐나와 고생을 자초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고 나섰다가 난데없이 영화제작에 뛰어들어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최좌절’이라는 별명(영화전문지 ‘씨네21’ 제8호, 특집기사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좌절’이 빌미가 됨)을 그때 얻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새로운 일에 매진하자 IMF외환위기가 닥쳤다. 잠시 논술강사로, 공공기관의 중간 간부로 안정된 삶을 살 기회를 얻었지만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하면서 안온한 삶을 포기했다. 그사이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최결핍’이다.

    그쯤 정신을 차릴 법도 했지만 치기 어린 도전은 계속됐다. 3년 전 인문학 공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설립했다. 1년 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팬데믹의 시대, 이제 책고집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도리 없이 다시 좌절하고, 다시 결핍의 수렁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좌절과 결핍의 시기, 심하게 흔들리는 내 정신을 붙잡아 준 것이 있다. 오늘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공부, 공부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좌절과 결핍의 시기마다 몸과 정신을 지탱하게 해준 건 공부였다. 내 허기진 결핍의 마음을 채워준 건 끊임없이 탐독한 책이었다. 숱하게 망하고 수시로 고꾸라져 신음하던 때,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도처에 빚을 지는 바람에 아무도 만나주지 않던 때 책을 잡았다. 내 몸 누울 공간이 없어서 밤새 PC방을 전전하면서 쓴 글로 기어코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순탄한 삶에는 공부가 필수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Ego sum operarius studens)”라는 글을 ‘라틴어 수업’(한동일 저, 흐름출판 펴냄)에서 만났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해 반갑게 읽었다. 노동이 곧 공부이고, 공부가 다시 노동이 되는 삶, 지나온 나의 삶이 그러했고, 앞으로의 삶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공부는 단발적인 행위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과 같은 장기 레이스가 그렇듯이 공부에 대한 강약 조절과 리듬 조절을 해야 합니다. 이것에 실패하면 금방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가 지치지 않도록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조절해야 합니다.”(‘라틴어 수업’ 83쪽)

    노동을 마라톤에 비교하는 건 적절하다. 노동으로서의 공부 또한 다를 바 없다. 공부든 노동이든 왕도가 있을 리 없다. 일취월장이나 횡재의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쉽게 얻으면 악이다. 어렵게 얻어야 선이다. 공부가 그렇고 노동이 그렇다. 오랫동안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저절로 살아지는 세상이 아니다. 순탄한 삶을 살려 한다면 도리 없이 순탄치 않은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깃든 평온은 얼핏 그럴싸하게 보여도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평지풍파를 감내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GettyImage]

    [GettyImage]

    공부 놓는 순간, 아집의 노예

    불교에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인’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응하는 외적인 것이 ‘연’이다. 인간의 삶은 인연에 지배되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것, 가까운 친구에게서 배운 것,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로 자기 자신 속에 축적돼 ‘인’을 만든다. 그 ‘인’이 외부 환경과 작용하는 ‘연’을 거쳐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길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살아 있음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이 그러했다. 혈기왕성하던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는 혁명을 꿈꾸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고, 좌절과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40대는 30대에 저질렀던 실패와 사고를 뒷수습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40대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공부하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됐고 실천하고 있다.

    젊어 공부가 성취와 발전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나이 들어 하는 공부는 내려놓고 비우기 위한 노력이다. 그걸 못 해서 애를 먹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젊어 한때 공부로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했지만 나이 들어 마땅히 해야 할 공부를 등한시 한 탓에 순식간에 허명이 까발려지고, 허름한 생각의 표피가 벗겨져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학자니 교수니 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젊어 공부를 평생 우려먹으며 사느라 아집과 권위의식만 키운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처세의 요령뿐이다. 그게 무에 자랑스럽다고 큰소리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지 모르겠다. 근래 들어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다.

    ‘공부하는 바보’ 되지 않으려면 비워내야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를 읽으면서 ‘공부로서의 독서와 글쓰기’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공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나 나름의 기준도 세우게 됐다. 글쓰기로 예를 들자면 과거에는 쓰는 기술이 얼마나 늘었느냐에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글이 담은 내용의 깊이가 중요함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자신의 공부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바보 전문가’(Fạchidiot·독일어)가 돼서는 안 된다. 자기의 전문 영역에만 빠져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말이다. 망치만 가진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못으로만 본다. 그런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한다. 한 종류의 나무만 심어서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내 청춘의 8할은 좌절과 결핍이었다. 그것들이 나를 공부하는 삶으로 이끌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공부하는 노동자로 산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덜 내려놓았고 덜 비웠다. 더 내려놓고 더 비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공부 #꼰대 #바보 전문가 #신동아



    최준영
    ●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 부문) 당선
    ● 2002년 경기문화재단 편집주간
    ●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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