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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극장] 베트남 호이안 항구의 슬픈 기적

  • 윤채근 단국대 교수

[환상극장] 베트남 호이안 항구의 슬픈 기적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피부 하얀 서방의 선원들과 깜보쟈(캄보디아) 왕국 승려들 사이에 벌어진 거친 몸싸움이 끝나자 화가 잔뜩 난 주점 주인은 남은 손님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싸움 구경을 하던 명나라 상인들은 주인에게 조금 더 머물겠다고 애걸해야만 했다. 무리 가운데 아무도 남월(진(秦) 말에서 한(漢) 초에 걸쳐 광둥(廣東) · 광시(廣西) 및 베트남 지역에 걸쳐 있던 나라) 언어를 할 줄 몰랐기에 유일하게 한문에 능통했던 조선 출신 최척이 붓과 종이를 빌려 상인들의 의사를 주인에게 전했다. 최척은 그렇게 한참 동안 상대와 필담을 주고받았다.

“뭐라 하는가?”

명나라 상단 우두머리 장건봉이 최척에게 물었다.

“더는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된답니다. 조용히 마시다 나가라는군요.”



명나라 말로 대꾸한 최척이 창 밖에 펼쳐진 항구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월 동부 호이안 항구를 밝은 달빛이 마치 탐조하듯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봄밤의 따스한 미풍이 야자나무를 스치고 그의 얼굴을 향해 불어왔다. 낮에 막 입항해 술에 목말랐던 명나라 상인들은 코코넛 술에 차츰 취해 갔지만 최척의 가슴은 이상한 예감으로 울렁거려 동료들의 잡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다른 시간 다른 곳을 맴돌며 정처 없이 떠돌았다. 이젠 아주 먼 전생처럼 아득히만 여겨지는 임진년 조선전쟁과 그의 고향 전라도 남원이 그 배경이었다.

열여섯 동갑 신혼부부의 비극

임진년에 시작된 왜란은 해를 넘겨도 그칠 줄을 몰랐다. 조선반도 전체가 전란의 참혹함에 휩싸였지만 전라도 남원성이 겪은 참상에는 미치지 못했다. 남원 성민들의 절반 이상이 성이 함락되며 학살됐고, 쓸 만한 생존자 대부분은 포로로 끌려가야만 했다. 멀쩡했던 성 하나가 뭉개지고 짓밟혀 사라진 형국이었다.

왜병들이 쳐들어오기 직전 결혼한 어린 최척 부부는 부산진에서 벌어진 소동을 처음 접하고도 멀리 피난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흔한 왜구의 침략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조총 소리가 난무하고 명나라 구원병들이 남원성을 버리고 달아날 지경이 돼서야 부부는 달콤한 신혼의 꿈에서 깨어났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부 나이 어린 성민들과 함께 남원 외곽의 산성에 미리 대피해 있던 그들은 불타는 남원성을 내려다보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양가 부모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최척이 홀로 하산하려 할 때, 아내 이옥영이 말했다.

“안부만 확인하고 꼭 돌아와야 해. 어차피 너 혼자 구할 수 없을 테니, 그냥 포기하고 바로 이리로 와야 해.”

열여섯 동갑인 아내 옥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척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마. 난 남원에서 제일 빨리 달려. 우리 집과 너희 집이 무사히 피난했는지 멀리서 엿보기만 할게. 상황 봐서 공부하던 책도 좀 챙겨 오고.”

최척의 두 손을 급히 움켜쥔 옥영이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책 따위는 신경 꺼! 과거 공부는 난리 끝나고 해도 돼!”

고개를 끄덕인 최척은 늠름한 표정으로 웃은 뒤 날렵하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수풀에 몸을 숨기며 남원성으로 다가갈수록 최척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희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잿더미가 된 성안에 살아남은 자가 있을 리 없었고, 설령 살아남았다 한들 왜병의 촘촘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분노와 낙담이 뒤섞인 탓인지 그는 방심해 왜병 초소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했다. 마침내 초병의 눈에 뜨인 최척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왔던 산성 방향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의 오판 탓에 왜병들은 산성 위의 피난민들 위치를 파악했다.

산성 위를 향해 내달리던 최척은 귓가를 스치며 날아드는 탄환들을 피하려다 길을 잃었다. 정신 줄을 놓은 그는 오직 살려는 본능에 옥영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온몸이 피와 땀에 젖은 채 산야에 쓰러진 그의 뇌리로 아내 얼굴이 떠오른 건 초저녁달이 떠오를 무렵이었다. 그는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자결하려던 최척은 언뜻 옥영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젖어들었다. 누구보다 강인하고 꾀가 많았던 옥영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살고 볼 일이었다. 젊고 건강한 덕인지 산과 강을 떠돌던 그는 결국 살아남아 회군하던 명군에 의해 구조됐다. 그런데 온전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생기자 옥영을 찾아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예기치 않은 다른 두려움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아내가 왜군에게 정조를 잃고 포로가 됐다면 그녀를 어찌 대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년 최척은 어떤 자주적 결정도 포기한 채 명군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했다. 그러다 명군 주력이 기병인 북군에서 수병 중심의 남군으로 교체됐고, 최척은 귀환하는 북군을 따라 명나라로 흘러들어 갔다.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폐인처럼 살던 그는 명나라 남방의 한 항구에서 장건봉이라는 무역상을 만나 배를 탔다. 명나라 말도 잘하고 한문도 능숙해 누구와도 필담이 가능했던 최척은 문자를 모르던 건봉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

새벽녘 퉁소 소리의 주인공

중년의 주점 주인은 자신을 탕롱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남월의 수도 탕롱 출신에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꽤나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새벽녘 왜인 한 무리가 몰려들어 왔을 때 그는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해 최척을 놀라게 했다. 젊은 시절 일본 열도의 항구들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탕롱은 자신도 학문을 포기하고 한때 무역선을 탔었다는 설명을 긴 필담으로 덧붙였다.

규슈 출신 일본 상인들은 야자 술을 홀짝이며 명나라 상인들 쪽을 힐끔거리며 훔쳐보았다. 예로부터 호이안 항구는 왜국 상인으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조선전쟁의 와중에 그 수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전쟁은 비록 협상으로 마무리됐으나 국제전쟁의 도발자에 속했던 왜상들로선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퉁소 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최척은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주인공은 틀림없이 옥영이었다. 결혼하기 전 옥영은 ‘매화 노래’를 직접 지어 퉁소로 불러주곤 했더랬다. 씩씩하고 활달해 사내 같았던 그녀는 최척이 마음에 들자 먼저 접근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때 시집가고 싶은 처녀의 마음을 매화꽃에 빗대 노래한 ‘시경’의 한 구절을 낭랑히 읊조리고 나서 이를 퉁소로도 연주했다. 최척이 자기도 모르게 퉁소 가락에 맞춰 이렇게 흥얼거렸다.

“매화꽃 가지를 꺾어 그대에게 드리노니, 그대여 내 마음을 아는가.”

최척의 속삭이는 소리를 엿들은 왜상 가운데 한 명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일본말로 뭐라고 물었다. 탕롱이 이를 한문으로 종이에 적어 보여줬다. 최척이 방금 한 것과 똑같은 조선어 노래를 하는 선원이 자기 상단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급한 마음이 든 최척은 조선어와 명나라 말이 뒤섞인 질문을 상대에게 쏟아냈다. 탕롱이 다시 중간에 끼어들어 왜상과의 긴 필담이 이어졌다. 매화 노래를 부르며 퉁소를 부는 조선 출신 사내가 규슈 상단에 있으며, 지금 그가 홀로 배에 남아 퉁소를 불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벌떡 일어선 최척은 한참 동안 온몸을 떨며 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건봉에게 그가 천천히 대답했다.

“제 아내 얘기를 했었지요? 조선 땅 남원이란 곳에서 헤어진.”

크게 고개를 끄덕인 건봉이 다시 물었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요. 살아 있었나 봅니다. 저 악기 음률은 제 아내가 만든 겁니다. 세상에 우리 둘만 아는 음률입니다.”

최척의 말을 들은 건봉이 호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동료 상인들도 다들 떠들썩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최척이 이를 중지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남자라는군요, 저 연주자가.”

주점 안에 갑작스러운 정적이 감돌았다. 최척은 탕롱을 통해 규슈 상단의 배가 정박한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퉁소를 부는 자가 옥영이든, 아니면 옥영과 함께했던 다른 사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규슈 사쓰마번 상단의 조선인 선원

산성 아래로부터 조총 소리가 울리자 유일한 여자였던 옥영은 품에 지니고 있던 가위로 긴 머리카락부터 잘랐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한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피난민 중 한 남자아이의 옷을 빌려 갈아입었다. 왜군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항복한 산성의 대피자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어서 살해되지 않고 부대 막사 건립에 동원됐다.

남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옥영은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왜병들과 싸우다 죽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살아만 있다면 남편도 찾아낼 수 있다는 용기도 샘솟았다. 틈틈이 근력을 단련하며 진짜 남자처럼 행동한 그녀는 가끔 스스로도 한때 여자였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숙련된 노동자가 돼 왜군 포로로 살아남은 옥영은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 쓰시마번 부대에 배속돼 반도 곳곳을 옮겨 다녀야 했다. 마침내 일본군이 조명연합군에 의해 남해안으로 쫓기며 수세에 몰리자 쓰시마번 부대가 퇴각하는 일본군 본진의 안전을 도모하는 후미 부대가 됐다. 쓰시마 출신의 많은 왜병이 바다에 닿기도 전에 전사했다. 불행히도 탈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옥영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쓰시마섬 이즈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즈하라 시미즈산성에서 토호인 소 가문의 몸종으로 지내던 그녀는 외교 업무로 부산을 향하다 우연히 산성에 묵은 규슈 출신 장수의 눈에 들었다. 막부의 실력자였던 장수는 조선과 종전 협상을 벌이고 귀국하는 길에 다시 산성에 들러 옥영을 자신의 시종으로 삼았다. 규슈 지역 자신의 저택에 당도한 첫날 저녁, 그가 옥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 왜 총애하는지 아느냐? 물론 우리말을 잘 구사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던 옥영이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널 통역으로 쓰는 일은 없을 거다. 그저 뭐랄까, 넌 내 은밀한 전리품 같은 것이다.”

“전리품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이 몸이 조선반도에서 벌였던 행동에 대한 산 증거라고나 할까? 난 조선인들을 주로 죽여버려야만 했었다. 코나 귀를 베는 건 상대를 더 모욕하는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죽여 없애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진짜 예의일 수 있지. 그래야 빨리 다음 생으로 윤회해 제대로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눈을 게슴츠레 뜬 장수가 한 마디 덧붙였다.

“넌 남자로서 미모가 뛰어나다. 마치 조선의 도자기처럼 완상하기 참 좋다.”

치미는 분노를 가슴 깊이 여민 옥영은 어쩌면 머잖아 자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전에 장수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반대해 서군에 가담했던 규슈의 다이묘 시마즈 가문이 동군에 패배한 뒤 상대에게 내놓은 전리품 가운데 휘하 장수들의 목들도 포함된 것이다. 주군을 잃은 장수의 부관과 몸종들은 모조리 시마즈 가문 소유물로 편입됐고, 옥영은 새로 세워진 규슈 사쓰마번의 무관 시종에 임명됐다.

도쿠가와 막부에 굴복한 사쓰마번은 오히려 번창을 거듭했고, 번주인 시마즈 가문은 남방 진출 정책을 통해 부를 쌓고자 했다. 옥영이 번의 관속으로서 오래 봉사한 점을 인정받아 자유의 몸으로 상단 선원이 된 건 그 무렵이었다. 비록 번이 구사한 교묘한 방식의 인력 재활용이었지만 귀환을 열망하던 옥영에게는 가슴 뛰는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진 셈이었다.

만일 그대가 나의 사람이라면

[GettyImage]

[GettyImage]

사다리를 타고 왜선의 선교 쪽으로 올라 퉁소 소리가 나는 이물 쪽을 향해 내달리던 최척의 눈에 달빛을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마침내 눈에 들어왔다. 체구는 작았지만 어깨는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고, 차림새나 머리 모양 어디를 봐도 여성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최척이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이 조선인이라 들었소. 혹시 어디 출신이오?”

천천히 몸을 돌린 상대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최척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가늘게 한숨을 내쉰 그가 거칠고 퉁명스럽게 조선어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람? 댁은 어디 출신인데?”

몇 걸음 더 다가가며 최척이 말했다.

“나? 나는 전라도 남원 사람 최척이라 하오. 그 퉁소 소리, 내 아내 이옥영이 불던 음률이오. 이옥영이라고 들어봤소?”

멈칫한 상대가 퉁소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상대 바로 코앞에까지 이른 최척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신은 옥영의 새 남편이오? 옥영이 살아 있소?”

최척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상대가 갑자기 설움에 복받친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강인하게만 보였던 그의 어깨가 차츰 무너져 내리더니 더는 서 있기 힘든 사람처럼 비틀대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상대 얼굴을 가만히 관찰하던 최척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혹시 당신 여자 아니오? 그렇다면 자네가 옥영이로군! 그렇지?”

대답도 듣기 전에 상대를 와락 끌어안은 최척은 달빛을 우러르며 웃다가 통곡하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갈피를 잡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소중한 걸 되찾은 자의 행복이 그의 가슴에 복받쳐 올라왔다.

“산성으로 돌아간단 약속을 못 지켜 미안했어. 내가 잘못했어. 너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어. 용서해 줘, 옥영아!”

다시 10대 소년으로 돌아간 최척은 상대를 옥영이라 단정한 자신의 믿음이 다른 증거로 인해 무너질까 너무 겁이 났다. 반드시 옥영이어야 하는 상대는 자신의 품안에서 이미 틀림없는 여성임이 확인됐고, 여기서 다른 의문은 더 필요 없었다. 그가 깨지기 쉬운 그릇을 쥐듯 상대 손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살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손은 어쩌다 이리 거칠어진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어서 이 배를 떠나자. 우리 조선으로 같이 돌아가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최척을 올려다본 상대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옥영일 것만 같은 그녀가 뭐라 말하려 하자 이를 급히 제지하며 최척이 속삭였다.

“그대가 나의 사람이라면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아.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탕롱의 마지막 질문

주점으로 돌아온 최척은 건봉 일행에게 옥영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 옥영입니다. 그동안 남장을 하고 버틴 것 같습니다.”

건봉과 동료 상인들은 진심으로 최척 부부의 기적 같은 해후를 축하해 줬다. 이를 옆에서 바라보던 왜상 일행도 덩달아 박수 치며 축하 행렬에 동참했다. 명나라 말과 일본 말이 뒤섞인 축배사가 길게 이어진 탕롱의 주점은 잠시 전쟁의 상흔을 잊은 곳이 됐다. 옥영을 지긋이 바라보며 최척이 읊조리듯 흥얼댔다.

“매화꽃 가지를 꺾어 그대에게 드리노니, 그대여 내 마음을 아는가.”

슬픈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본 옥영이 힘껏 웃으며 화답했다.

“담장 넘어가 남의 단향목 망친 죄 크지만 다 그대 탓이라오.”

둘은 번갈아 주고받으며 노래했다. 퉁소를 꺼낸 옥영이 연주를 시작하자 명과 일본의 상인들이 다투어 자기 나라 돈을 두 사람 발아래로 던졌다 건봉이 최척에게 외쳤다.

“그대들은 이제 다시 혼례를 올리는 셈이니, 우리가 오늘 하객이 돼주겠네.”

진짜 혼례식처럼 떠들썩한 시간이 지난 새벽녘, 최척 부부는 탕롱이 주선한 한 민가에서 잠을 청했다. 두 손을 마주 잡은 최척이 옥영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절대 묻지 않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옥영이 대답했다.

“나도 묻지 않을게.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지난 일들일랑 다 잊고 살면 돼.”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다독이며 각자 통과했던 쓰린 기억들을 어루만졌다. 자신의 팔을 베고 누운 옥영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던 최척이 뭔가 말하려다 문득 멈췄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옥영이 속삭였다.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해. 마음에 담아두면 더 힘들어.”

침을 꼴깍 삼킨 최척이 희미한 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

“난 명나라 군대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었어.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었지. 널 찾을 생각은 차마 못 했어. 너무 두려웠거든.”

“내가 죽었을까 봐?”

“응. 그리고 말이야, 실은 더 생각하기도 싫었던 건, 그건 네가 왜놈들에게, 그놈들에게.”

“왜놈들에게, 뭐?”

“더럽혀질까 봐 너무 무서웠어. 널 지키지 못한 내가 너무 미웠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은 옥영이 최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습기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난 여태 남자로 살아왔어. 좀 전에 봤잖아?”

고개를 끄덕인 최척이 다시 옥영을 와락 껴안고 울었다. 옥영이 최척 등을 쓸며 속삭였다.

“주점에 퉁소를 놓고 왔어. 가져올래?”

옷을 입은 최척은 탕롱의 주점으로 되돌아가 퉁소를 찾았다. 밤을 새우려는 선원들과 상인들로 주점은 여전히 북적이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려던 최척을 불러 세운 탕롱이 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필담을 하기를 원했다. 탕롱이 적은 글을 묵묵히 읽던 최척의 눈빛이 흐릿해져 갔다.

주점 밖을 나온 최척은 하늘에서 달을 찾았다. 갑자기 달이 보이지 않았다. 탕롱은 최척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는 왜상들이 떠나기 전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다고 했다. 잔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침묵했지만 배에는 옥영 이외에 또 한 명의 조선인 상인이 있었으며, 퉁소는 원래 그의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퉁소를 같은 조선 출신 벗에게 물려준 그는 한 달 전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 했다. 탕롱은 물었다. 그녀가 진짜 너의 아내냐고.

그날 밤 바다에서

류큐 왕국에서 출발한 규슈 상단의 배는 남월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갑판에 서서 퉁소를 불던 옥영은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서 남장을 하고 살아남은 정읍 출신 배정향에게 속삭였다.

“정향아, 나 이제 지쳤어.”

정향은 늘 자신보다 굳세고 낙천적이었던 친구 옥영이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옥영아. 난 너만 보며 버티고 살아왔어. 규슈의 미천한 노예였던 날 네가 번의 무관에게 힘을 써서 풀어줬잖니?”

정향을 돌아보며 미소를 띤 옥영이 힘없이 말했다.

“나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해서 그랬을 뿐이야.”

유난히 쓸쓸해 보이던 옥영은 다시 애써 웃으며 활기차게 말했다.

“먼저 선실로 돌아가. 아참 그리고 이 퉁소는 너에게 줄게. 더 연주하고 싶지 않으니 가끔 네가 대신 연주해 줘. 노래와 주법은 이미 다 알고 있지? 마지막으로 매화 노래나 혼자 실컷 부르고 싶어.”

뭔가 불길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향은 옥영의 씩씩함을 믿기로 했다. 옥영은 비록 얼마 전 무역 일로 들른 고향 남원에서 일가붙이나 남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어 괴로워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살아만 있다면 세상 어디선가 기적처럼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또 옥영은 그런 작은 희망의 끈을 결코 놓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랫소리는 갑자기 그쳤고, 그 뒤로 옥영은 선실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이 작품은 조위한이 실화에 기반해 지은 ‘최척전’ 일부를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22년 2월호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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