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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튜버로 변신한 박일환 전 대법관

“정권마다 대법관 교체… 사법부 개혁 쉽지 않다”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유튜버로 변신한 박일환 전 대법관

  • ● 유튜버 활동 5개월 만에 구독자 2만 명 돌파
    ● ‘꼰대’ 아닌 ‘법률지식 노신사’로 젊은 층에 인기
    ● “檢 위법 압수물 증거능력 무효 판결, 영장주의 기준 세웠다” 자부
    ● “폭증하는 상고심, 대법관 증원보다 임기 연장이 효과적”
    ● “이번 생에 정치는 포기!”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여기가 댓글이 너무 깨끗해서 가재도 산다는 ‘댓글 청정구역’ 맞나요?” 

한 법조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채널에 올라온 댓글이다. 채널 운영자가 법률 전문가여서인지 악성 댓글을 다는 누리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악플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 그것도 유튜브에서 청정 댓글만 올라온다니 유튜버도 시청자도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 유튜브 채널의 주인장은 바로 박일환 전 대법관(68·사법연수원 5기)이다. 

현재 그는 ‘차산선생법률상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차산은 박 전 대법관의 호(號)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법적 분쟁 사례를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를 예시로 곁들여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슈가 되는 판결 취지를 정확하게 설명해 국민의 오해를 바로잡으려 애쓴다. 현재 이 채널에는 2~3분 분량의 짧은 영상 28편이 올라와 있다(6월 10일 기준). 영상은 ‘방송 연기자의 권익 보호받을 수 있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비밀 녹음은 정당한가’ ‘강도한 돈으로 갚은 빚’ ‘보이스피싱’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판사의 꽃’이라 불리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법관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영예직으로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대한민국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뿐이다. 박 전 대법관은 1951년 경북 군위 출신으로,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8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2012년 대법관으로 퇴임하기까지 34년간 법으로 국민과 소통해왔다. 2013년 7월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 법만 알고 살던 그가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2018년 말이다. 

‘차산선생법률상식’은 상속·부동산·노동·계약 등 다소 어렵고 딱딱한 법률문제들을 다루는데도 올라오는 동영상마다 조회 수가 1만 회를 넘는다. 특히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이 정당한가’라는 내용을 다룬 동영상은 조회 수 3만 회를 웃돈다. 각종 법률 상식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어법으로 쉽게 풀어낸 덕분이다. 네티즌 사이에서 ‘주제의 핵심만 빠르게 알려주는 방송’으로 소문이 나면서 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어 현재 2만 명을 넘어섰다. 젊은 층의 반응이 특히 좋다. 전체 구독자 중 18~34세 비중이 무려 78%에 달한다. 



그의 유튜브 채널 댓글 창에는 “법조인 유튜버 ‘끝판왕’이 나타났다” “일단 잘못했습니다”처럼 재치 만점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변호사나 검사 출신 유튜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전직 대법관 출신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법리와 판례에 통달한 전직 대법관이 ‘초보 유튜버’로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 자체가 누리꾼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재능기부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배경음도 효과음도 없지만 실생활에 도움 되는 유익한 내용을 많이 알려줘 감사하다’ 등의 댓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갑자기 이렇게 주목받는 게 신기하다”며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6월 4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자택에서 만났다.


판결 취지 설명해주고자 유튜브 시작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유튜브 방송 촬영 중인 박일환 전 대법관. [박일환 제공]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유튜브 방송 촬영 중인 박일환 전 대법관. [박일환 제공]

-인기 유튜버가 된 소감이 어떤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TV 뉴스에 한 번 소개된 뒤로 구독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12월 처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는데 올해 3월까지만 해도 구독자 수가 100명이 채 안 됐다. 그러다 최근 언론 보도 후 2개월 사이에 갑자기 2만 명으로 늘어났다.” 

-유튜브는 어떻게 하게 됐나. 

“평소 대중에게 법률이나 판결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통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료 법률 상담이나 강연, 혹은 자서전을 쓰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확장성이 떨어지고, 마음에 딱 와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딸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하고 싶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다’며 유튜버 활동을 적극 권했다. 사회적으로 조명받는 판결이나 대법원 판례 취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하면 좋겠다 싶어 도전하게 됐다.” 

박 전 대법관은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원고 작성, 촬영까지 모두 자신이 도맡아 한다. 단, 편집과 자막은 딸의 손을 빌린다. 요즘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찍을까 고민한다. 

-젊은 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인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냥 평소 말하는 대로 하는데, 법을 어렵게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내 설명이 좀 더 쉽게 들리나 보다. 처음에는 방송 배경을 어디로 할까 고민했는데, 마침 응접실이 벽지가 오렌지 색깔이라 괜찮겠다 싶어 촬영했는데, 한 구독자가 그걸 보고 ‘황토방에서 촬영했느냐’고 하더라(웃음). 특별히 꾸미지 않고, 어설픈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오히려 좋게 비치는 것 같다.”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젊은 층의 요구가 많음을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을 할수록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법률 지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법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비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법리와 판례의 단면만 보고 논쟁을 벌인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판결에 대해 그 취지를 제대로 설명해줌으로써 국민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국민의 오해를 바로잡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몇 년 전 수백억 원의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로 엄청난 벌금형 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대신 하루에 수억 원짜리 노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황제노역’이라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판결을 내린 법원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제도적 특수성 때문이지, 법원의 판결 자체가 잘못된 경우는 아니다.” 

-비상식적인 노역형이 문제라는 건가? 

“맞다. 우리나라 현행 형법은 피고인이 벌금을 내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노역장 유치 기간을 정해 함께 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최장 3년으로 정해져있다. 이 때문에 벌금형이 높으면 높을수록 ‘황제노역’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4년 5월 법을 개정했다. 벌금형이 1억 원 이상일 때 300일 이상, 5억 원 이상일 때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일 때 1000일 이상 반드시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해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물론 이것이 명쾌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행 법 제도 안에서 응급처치를 한 거다. 이 내용이 방송에 나간 뒤 ‘황제노역 산정 방식이 국민감정과는 거리감이 있으니 국회에서 형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판사’ 하면 으레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일할 때는 냉철하려 애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말수도 그리 많지 않고, 말투도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한다. 사실 요즘 법조계가 정치적인 이슈로 많이 가라앉아 있어서 예전처럼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 그래도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활기를 찾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특히 나를 두고 ‘법조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해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박 전 대법관의 아내 문성옥(68) 씨 또한 “남편이 퇴임 이후 자칫 몸과 마음이 가라앉게 될까봐 걱정했지만 유튜브로 다시금 삶의 활기를 찾아 기쁘다”고 말했다.


‘소리바다 저작권 침해 인정’ 가장 기억 남아

-유튜브로 수익 창출도 가능한가? 

“변호사는 영리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광고수익을 얻을 생각은 없다.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나면 그때 생각해보려 한다(웃음). 나중에 구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방식이나 외부 인사를 초빙해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튜브 활동으로 국민의 법률적 소양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박 전 대법관은 그간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수석재판연구관,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특히 민·형사, 특허소송 분야에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지적재산권 전담재판부 부장판사로 근무하며 해당 분야에 많은 판례를 남겼다. 

“법조인 경력을 돌아볼 때 가장 자신 있게 노하우를 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지적재산권(지재권)’이다. P2P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한 것과 ‘초코파이’ 상표 사건 판례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소리바다 운영 금지 조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지적재산권자의 권리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렸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또 특허 부분에서도 특허법원이 생긴 이래, 미국의 특허법원장이던 랜들 레이더(Randall R. Rader) 판사(현 항소법원장)가 여러 번 방한했을 만큼 한국의 특허 재판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과거 인터뷰에서 김태환 전 제주지사 선거법위반 사건 판결을 가장 의미 있다고 밝혔는데. 

“당시 ‘압수수색 과정 중 검찰이 위법하게 취득한 증거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위법하게 수집된 압수물의 증거능력도 무조건 인정해오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영장주의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2006년 7월 이후 6년간 대법관으로서의 삶은 어땠나. 

“2006년 7월 대법관으로 임용됐는데, 딱 그날 하루 즐거웠고 6년 임기 내내 힘들었다(웃음). 대법관 임용 당시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다. 법관으로서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유독 책임감이 강했다.”


“대법관 수 늘린다고 사법부 개혁되지 않아”

박 전 대법관은 “대법관에 임용된 날 딱 하루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박 전 대법관은 “대법관에 임용된 날 딱 하루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법부 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건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 국회와 정치권에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을 증원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현재 대법관 1인당 1년에 맡는 사건 수가 4만 건이 넘는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법관 1인당 맡는 재판 건수가 줄어들긴 한다. 하지만 그 정도 줄어들었다고 상고심 재판이 엄청나게 빨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고 사건 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앞으로도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대법관을 증원해도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국회의원은 ‘대법관 수 늘려준다는 데 왜 반대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법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엉뚱한 소리다. 대법관 수가 많으면 우선 대법관 전체가 모여 토론하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대법관은 대법원 재판부로 불리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하고 그 합의체는 법령의 최종 해석을 담당한다. 그 해석에 따라 전국 모든 법원이 재판을 하고 행정기관들도 그 법령 해석에 따르기 때문에 대법관의 판단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일부는 독일의 경우를 들어 ‘민·형사, 노동, 행정 등 분야별로 대법원을 설치해 수백 명의 대법관이 1·2심과 똑같이 유무죄를 따지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은 1·2심처럼 유무죄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법률의 통일적인 해석을 통해 사회가 따라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다.” 

-상고 건수가 많다는 건 국민이 1·2심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원을 불신하기 때문 아닌가. 


“일부분 맞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1·2심 재판을 꾸준히 강화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여나가는 것밖에는 다른 개선책이 없다.” 

-대법원은 어떤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대법원에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경험과 직역을 거친 사람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다양성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게 흘러왔다. 대법관이 종신직인 미국과 달리 대법관의 임기가 6년인 우리나라에서는 정권 교체와 맞물려 대법원의 구성원이 수시로 바뀐다.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 모두가 똑같은 과정을 보여왔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보다 대법관 임기를 현재 6년에서 10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현재도 헌법에 의해 대법관의 임기가 끝난 후 연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대법관이 연임을 위해 정치권력자나 사법행정권자의 눈치를 보고 재판하는 폐단을 가져올 수 있다.” 

-대법관 출신의 정치인이 많다. 정치에 입문할 생각은 없나. 

“정치는 적어도 40대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0대 해도 늦다. 이번 생은 어렵다.(웃음)”




신동아 2019년 7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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