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진중권 “이준석 밑에서 윤석열‧안철수가 시험 치겠나”

[진중권의 인사이트] 현실성 없는 석패율제‧토론 배틀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6-11 11: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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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가 된 이준석 후보가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뉴스1]

    6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가 된 이준석 후보가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준석 바람’은 거대한 광풍이 됐다. 이 현상의 긍정적 측면은 그 안에 보수정당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반영돼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위험도 존재한다. 그 혁신이 외려 보수의 퇴행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공정인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가진 유일한 정치적 콘텐츠는 안티페미와 능력주의다. 그가 사회의 다른 주요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안티페미는 연령의 구별 없이 한국 남성들이 널리 공유하는 오래된 생각이고, 능력주의는 특히 젊은 남성들이 널리 공감하는 새로운 대안 이념이다.

    그의 인기는 이 두 습속을 날것 그대로 대변하는 데서 나온다. 그 둘은 ‘할당제 폐지’ 공약으로 하나가 된다. 여성할당제가 부당하다면 같은 논리로 청년할당제나 지역할당제도 부당할 게다. 실제로 그는 광주에까지 가서 당당히 지역할당제를 없애겠다고 호언했다. 이게 그가 말하는 ‘혁신’이다.

    할당제 ‘석패율제’(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해 출마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단다. 그러려면 선거법을 고쳐야 하는데, 그건 국민의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언제 가능할지 모를 선거법 개정 전까지 지역편중은 교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설사 석패율제가 도입돼도 비례대표 몇 석을 어느 순번에 둘지는 어차피 할당의 문제다.

    ‘할당제’는 구조적 불공정을 교정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지역·인종·성별 등으로 인한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할당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거꾸로 할당제가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런 전도된 사고를 하는 걸까.



    누구의 시각인가

    미국의 대학에는 인종 할당제가 존재한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도 백인이라서 낙방한 ‘개인’은 이 제도가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대학 ‘공동체’의 관점은 다르다. 학내의 인종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구조적 차별을 교정해 대학의 장기적 퍼포먼스를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선 두 시점이 부딪히고 있다. 입시의 관문을 앞둔 ‘개인’들의 시점을 대변하면, 그들에게 공감을 사고 인기도 얻을 수 있다. 반면 국가 ‘공동체’의 관점에 선다면 차별을 시정하는 장치를 함부로 없애자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선동가의 길이고, 후자는 정치인의 길이다.

    선동에는 굳이 ‘사실’이 필요 없다. 할당제가 남성의 기회를 빼앗아 여성에게 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할당제는 남녀 공히 30%로 운영된다. 그 제도로 혜택을 본 남성이 외려 여성보다 더 많다. 젠더 쿼터가 몇몇 영역에서 성비균형을 바로잡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어차피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아니라 허위에 근거해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적 어법은 타파해야 할 낡은 편견을 외려 강화해 사회를 더 불공정하게 만들 뿐이다. 그가 내놓은 당의 혁신 방안이라는 것도 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의도를 노량진으로?

    그의 방안은 엽기적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 2:2 ‘팀 토론 배틀’을 도입하겠단다. 윤석열,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이 2인 1조가 돼 서로 배틀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흥행성은 있을 게다. 하지만 이런 방안은 진지해야 할 공당의 후보 경선 과정을 오락화‧희화화할 뿐이다.

    당 대변인 및 주요당직자를 공개경쟁으로 선발히겠단다. 방법은 ‘토론 배틀’, 정책공모전, 연설 대전. 정책은 어차피 전문가들의 몫이니 결국 말싸움 잘하는 이를 뽑겠다는 얘기다. 공직자가 되기 위해 사람들이 소피스트를 찾아가 토론 과외를 받던 고대 그리스 사회로 돌아갈 모양이다.

    공천에 자격시험제를 도입하겠단다. 과목은 자료해석 능력, 독해 능력, 표현력, 컴퓨터 활용능력. 이제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술학원과 컴퓨터 학원을 다녀야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냥 ‘스카이 캐슬’이나 하버드대 출신을 쓰면 되지. 그런 다면적 평가를 통해 이미 검증된 이들 아닌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입으로 내뱉은 방안이기에 현실성이 전혀 없다. 생각해 보라. ‘이준석 시험감독’ 밑에서 윤석열과 안철수가 자격시험을 보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그가 당 대표가 됐어도 할 수 있는 ‘혁신’은 딱히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이 보수의 혁신인가?

    혁신이 아니리 퇴행

    윤석열이 입당을 해서 공직 후보 시험을 본다. 그가 과연 몇 점을 받을지 궁금하다. 커트라인은 몇 점인가? 사법고시를 무려 9수 끝에 통과한 분이라 시험이 조금 어려울 게다. 안철수의 경우는 역시 컴퓨터 활용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이 항목의 배점은 어떻게 해야 되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토론 배틀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토론 잘 하는 이와 한 편이 되고 싶을 테니, 월드컵처럼 대진표 추첨을 해야 할 게다. 리그전으로 하든 토너먼트로 하든 배틀의 승패를 판정할 심판은 누가 하나? 따로 심사위원단을 꾸려야 하나, 아니면 ARS 전화로 하나?

    결국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얘기인데, 그 점에 관한 한 한국은 이미 구원받았다. 입시와 입사시험 등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나라가 또 있던가? 9급 공무원 공채 시험 경쟁률이 무려 9:1. 그 원인은 성장을 해도 질 좋은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데에 있다. 이 근본적 원인에 대한 대책은 없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젊은이들을 그런 처지로 내몬 그 현실을 교정할 방안은 없다. 그저 젊은 세대의 운명을 공정하게(?) 기성세대에게 옮겨놓는 게 그의 해법이다. 그것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맥락에. 전 세계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선동적 해법이다. 농담이 너무 진지해졌다.

    이는 보수의 쇄신이 아니라 퇴행이다. 보수와 중도가 함께 가려면 ‘가치연합’이 필요하나 이런 식이라면 아마 둘이 같이 가기는 힘들어질 게다. 페미니즘은 인류의 미래이고, 능력주의는 보수와 진보가 손잡고 맞서야 할 편견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차라리 위선자들이 그리워지겠다.

    #이준석 #진중권 #국민의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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