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청해부대 집단감염 쇼크…‘촌놈들’ 떠오르는 국가경영

[노정태의 뷰파인더㊸] 안보 구멍 났는데도 靑은 “文이 특별지시”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1-07-2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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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까지 간 까닭

    • 동아시아 국가의 사실상 ‘석유 공급로’

    • 해외파병, 이미 韓의 상수가 됐다

    • 파견국 협조 등 임기응변도 없었다니

    • 이 와중에 文 혼자 멋져 보이는 ‘K-홍보’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7월 2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청해부대 장병들이 버스를 타서 이동하고 있다. 청해부대 장병 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으로 이날 전격 귀국했다. [뉴스1]

    7월 2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청해부대 장병들이 버스를 타서 이동하고 있다. 청해부대 장병 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으로 이날 전격 귀국했다. [뉴스1]

    청해부대 소속 34진 문무대왕함에 타고 해외 파병 중이던 해군 장병 301명 가운데 270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체 승조원 중 90%에 가까운 인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2020년 3월 이후 최악의 집단 감염 사례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일본의 크루즈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집단 감염과 비교하기도 한다. 배라는 고립된 환경, 병이 퍼지는 것을 제때 발견하고 대처하지 못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사건은 방역의 차원을 넘어서는 질문거리를 던진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공식 인정한 선진국이다. 하지만 정신세계는 일제 식민지 시절, 혹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 원조에 매달리던 저개발 시대에 머물러 있다.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 감염은 그러한 정신적 미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역만리로 간 문무대왕함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대체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은 왜 이역만리 아프리카 동부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걸까.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활동이 급증했다. 2008년 6월 결의안 1816호를 통해 유엔은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무역 사용을 허용하고 각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한국의 경우 2009년 3월 2일 국회에서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고, 3월 13일 청해부대를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병했다.



    2004년 이라크 전쟁 파병에 이어, 21세기 들어 또 다시 해외 파병이 시작될 참이었다.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리에 진행돼 반대 여론은 급격히 불식됐다. 청해부대는 그 후에도 계속 해적 소탕 등의 작전을 수행하다가, 2020년 1월부터는 호르무즈 해협의 한국 선박 호송까지 작전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가 넓어진 것은 변화한 국제 정세 때문이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가시화했다. 중국의 영토 내에도 석유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국 내 수요를 절대 충당할 수가 없다. 이에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기 위한 공급로 확보가 중국 처지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바로 그 ‘석유 공급로’라고 할 수 있다. 해상으로 거래되는 석유의 3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석유는 거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의 기치를 내걸고 호르무즈 해협의 제해권(制海權, Command of the Sea)을 확보하려 하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가 기꺼이 참여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이에 호르무즈 해협의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한국과 다른 나라의 상선을 수호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전략적 의미를 지니게 된 셈이다.

    석유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미국은 점점 ‘세계의 경찰’ 노릇에서 손을 떼고 있으며, 중국은 해상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청해부대 뿐 아니라 더 많은 해군력을 더 먼 바다에 보내고 작전을 수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미래다. 청해부대는 그런 면에서 ‘미래의 척후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안보’ 관련 사안이다

    청해부대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일본의 크루즈선 집단 감염과 비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이제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크루즈선은 승객이 많고 항해 기간이 길다 해도 민간인이 타는 유람선에 불과하다. 감염병이 창궐하거나,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그것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 아니다. 반면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은 안보 사항이다. 이는 21세기 대한민국 시스템에 근본적 결함과 문제가 있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대결을 통해 체제를 형성하고 성장한 나라다. 1945년 해방, 1948년 건국 이후 지금까지 유지돼온 시스템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흔히 ‘병영국가 체제’라고 비난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20세기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군대, 특히 육군을 핵심 모델로 삼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아무리 기계화, 자동화, 첨단화된다 해도 육군의 본질은 인력, 즉 ‘맨 파워’에 있다. 많은 병력을 확보하고, 명령 체계를 갖추며,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게 조율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지금도 총 50만 명에 근접한 육군 병력은 휴전선에서 북한을 노려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 땅’을 지키는 것, 그것이 육군의 본령이다.

    해군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 우리의 영해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 점에서는 육군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해군은 안보 여건의 변화로 인해,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페르시아만에서 시작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말라카 해협을 지나 우리에게 오는 석유의 바닷길을 지키는 과제가 북한의 위협에 맞서 휴전선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안보 사항이 됐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이제 한국은 해외 파병을 국가 운영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있어야 한다. 익숙하고 안전한 땅 위에서 기존에 해왔던 식으로 휴전선을 지키는 역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낯선 여건에서 우리 군대는 한국과 세계의 평화 질서 유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

    서욱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7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하고 있다. 서 장관은 이날 “해외바다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제공]

    서욱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7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하고 있다. 서 장관은 이날 “해외바다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제공]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선박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감염병은 쉽게 퍼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강의 미군 역시 감염병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2020년 4월 발생한 핵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19일 ‘동아사이언스’에 실린 ‘사상 초유의 청해부대 집단감염…선박은 왜 코로나에 취약할까’라는 기사에 따르면, 선상 호흡기 감염병 집단 감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발생해온, 해양 작전의 상수다.

    “전문가들은 선박의 규모와 관계없이 선박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활할 경우 코로나19 전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등 사람 간 전파가 잘 이뤄지는 감염병은 어김없이 선박 내에서 전파가 쉽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폐된 선상 환경은 계속해서 호흡기 감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선상 호흡기 감염병은 1966년 미 해군 구축함에서 350명이 결핵에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대형상륙함에서 H1N1 인플루엔자에 3000명이 감염되는 등 코로나19 이전에도 꾸준히 발생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고, 남에게 옮길 수도 있다. 밀집된 생활을 하는 해군 함정 내에서라면 병이 옮을 위험은 더욱 커진다. 해군 함정 내에서 감염병이 크게 번지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병에 걸릴까 두려워 해외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은 21세기 한국에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은 같은 위험에 수없이 노출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이 사안을 제대로 갈무리하고 교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정작 해군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 날씨가 덥고 운송 거리가 길어 문무대왕함에 백신을 공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청해부대 작전 범위 내에 미군 부대가 다수 존재하고 있는데, 미군에 백신을 요청하고 나중에 갚는 식의 임기응변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않았다는 소리다.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는 바로 그렇게 파견국 등의 협조를 통해 백신 접종에 성공했다.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 감염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한심한 건 청와대의 대응이다. 지난 7월 21일,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공중급유수송기를 보내 청해부대 승조원을 귀국시키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향후 우리 안보에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는 사안이 드러나 버린 이 시국에도 ‘K-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웃을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작태를 바라보며 문득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란 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2004년 이라크 파병을 보며 만들어냈던 신조어다. “제국주의이고는 싶으나 미국 눈치를 살펴야 하고, 또 아무도 한국 같은 엉성한 나라에게 기꺼이 식민지가 될 턱이 없는 이 기묘한 현상을 우리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촌놈들의 제국주의’ 49쪽)

    파병 장병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해 작전 중이던 300여 명의 승조원을 급거 귀국시켜야 하는 나라. 그것이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 와중에 해군은 변명을 늘어놓고, 청와대는 대통령 한 사람만 멋져 보이는 식으로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선진국이 됐는데,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은 여전히 ‘촌놈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청해부대 승조원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청해부대 #코로나19확진 #해외파병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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