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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586칼럼

누가 대한민국 시원(始原)을 교묘히 부정하는가

  •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대표mkw1972@hanmail.net

누가 대한민국 시원(始原)을 교묘히 부정하는가

  • ● 탈레반 집권이 일제에서 해방된 광복절?
    ● 정치적 주사파는 청산, 정신적 주사파는 여전히…
    ● 아프간 사태 이후 주목해야 할 국제질서는 美中 대립
8월 16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탈출에 나선 시민들이 카불 국제공항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고 있다. [뉴스1]

8월 16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탈출에 나선 시민들이 카불 국제공항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고 있다. [뉴스1]

중앙아시아의 변방 국가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이 다시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2021년 8월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모습은 1975년 4월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장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미군 철수 이후 불과 보름여 만에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고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아프간 사태는 연쇄적으로 세계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사태를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보는 일련의 생각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살펴볼 것은 아프간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다. 8월 31일 북한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미국이야말로 세계지배 전략과 강도적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침략과 살육, 약탈도 서슴없이 감행하는 세계평화와 안정파괴의 주범이라는 것, 미국의 반인륜적 침략 행위를 반대하여 과감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철리를 다시금 새겨주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이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원론적이다. 8월 16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아프간 국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면서 “중국은 아프간 국가 주권과 각 정파의 염원을 충분히 존중하는 기초 위에 아프간 탈레반 등과 연락과 소통을 유지해, 아프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발휘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탈레반 정부를 승인하겠느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하고 “건설적 역할 발휘”란 입장만 반복했다.

북한 시각 공유하는 대한민국 급진파

대한민국 급진파는 북한의 시각을 공유한다. 자주시보, 4·27시대연구원, 민플러스 등에는 1980년대를 기원으로 하는 고색창연한 분석들이 잘 드러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야생초편지’로 유명한 황대권의 분석이다. 황대권은 8월 16일 페이스북(페북)에 올린 ‘아프가니스탄 해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인 오늘 아프가니스탄이 미제로부터 해방되었다. 탈레반 지지자도 이슬람교도도 아닌 내가 오늘의 역사를 기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민족의 자주권 옹호 차원에서다”라고 쓰고 있다. 이 글은 페북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적지 않은 식자층이 이 글에 동감을 표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승리를 반제 또는 민족자주의 승리라고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탈레반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및 테러와 연루돼 있고, 여성 인권과 같은 초보적인 인권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대권의 분석은 또 다른 극단주의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아프간 사태를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련의 경향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맥락과 맞닿아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광활한 세계에 무수한 독립국가가 등장했다. 중국에는 마오쩌둥, 인도에는 네루, 이집트에는 나세르 정권이 들어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세속적 이념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보면 종교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인류 역사를 풍미했던 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세속 정권이 만족할 만한 경제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1970년대를 고비로 차례로 정치적 격랑에 휩싸였다. 여기서 세상은 다양한 갈래로 분화한다. 이 시기 정치 지형은 보통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1세계와 소련 사회주의권의 2세계, 중국·인도 등 미국이나 소련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제3세계로 구분됐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아프간 사태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은 방향을 선회해 1세계와의 연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한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1986년 베트남의 도이모이, 1991년 인도의 개혁개방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3세계를 대표하는 나라들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을 앞선 대국이었고, 베트남은 미국과 단독으로 맞서 싸운 저력을 가진 나라였다.

반면 나머지 광범위한 나라들에서 고만고만한 군소 국가들은 방치 또는 유기됐다. 여기에는 1990년대 초반 보스니아 내전,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위기, 200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 경제위기 외에도 짐바브웨, 시리아 사태 등이 있었다. 2010년대 중반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석유 의존도가 감소한 것도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저개발 국가의 전략적 지위가 구조적으로 하향된 것이다.

이들 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보는 것은 일면적인 생각이다. 상황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아니라 내부의 정치사회적인 역량 부족이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보듯 상황을 수습할 안정된 정치 역량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외 진출이 가능한 상태였다.

아프간 상황은 더욱 그러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테러 때문이다. 아프간의 집권 세력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과 혈연적 연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아프간에 대단한 이권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벌인 깜짝쇼,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9·11 테러 수준의 충격이 아니었다면 미국이 아프간을 점령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수 있다.

집권 탈레반이 테러에 대한 적절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이를 단속, 통제하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군사적 충돌의 상당 부분은 억지할 수 있었다. 상황을 근본에서 좌우한 것은 원시적 부족주의와 종교적 열정이었다. 이것이 9·11 테러를 감행한 동기이자 9·11 테러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정치적 외교적 조치 없이 대책 없는 전쟁을 이어간 이유가 됐다.

탈레반 집권이 갖는 의미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뉴시스]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뉴시스]

미국의 철군 이후 아프간을 지배하게 된 탈레반의 승리를 민족자주라는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자. 그것이 갖는 문제는 북한 또는 남한 급진파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명과 문명, 부족과 부족이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항상 우여곡절이 따르게 마련이다. 강한 문명, 강성한 부족이 약자를 침략, 복속할 수도 있고 약한 문명, 약소한 부족이 강자를 따를 수도 있다. 일제와 조선, 미국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균형을 찾고자 했다. 일제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되 일제로부터 독립하고, 미국으로부터 배우되 미국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 등이다.

1970년대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중시했다. 주한미군이 주둔했고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였다. 한국은 그렇게 (인도)태평양 지역을 배경으로 번영하고 성장했다. 1917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난 필자의 부친도 어눌한 어투로 미국과 일본의 학문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늘 역설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1970년대 후반 이색적인 세계관이 출현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민족의 자주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려다 실패했다. 이들을 보통 주사파, NL, 자민통(자주민주통일)이라 한다. 주사파, NL, 자민통은 지하당을 만들고 북한에 충성하는 사람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주사파는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가 친일파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것 때문이고, 일본에 이어 양키(미국)들이 조선을 분단시켰다고 보는 일련의 역사관과 교집합을 이룬다. 정치적 주사파는 청산됐지만 문화적 주사파, 정신적으로 파생된 주사파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세월이 흘러 2010년대가 됐다. 우리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죽창가’를 부르고 토착왜구를 강조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그들은 여야 정치 대결을 한일전으로 몰아가 모든 것을 반일로 돌린다.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영화 중에 하나가 ‘봉오동 전투’다. 2021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성대히 맞이했다.

500만 명 가까이 관람한 영화 ‘봉오동전투’는 터무니없이 잔인하다. 영화는 조선은 옳고 일본은 틀렸다, 조선은 착하고 일본은 악하다는 신념에 기초해 만들어진 듯하다. 조선이 일본에 반대하거나 저항한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조선이 일본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유가 조선이 건설해야 할 나라의 방향과 철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을 예로 든다면 미국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나라를 옹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 사태를 두고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미·중 대립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인도 태평양 지역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지역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의미는 문명과 문명, 민족과 민족의 충돌 국면에서 민족 자주보다는 개혁과 개방에 어울리는 단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서방세계가 새삼스럽게 한국에 이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9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이른바 앵글로색슨계 5개국으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한국, 일본, 독일을 포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8월 31일 영국의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한·미·영 연합 군사훈련을 진행했는데, 이 훈련에 네덜란드 군함 한 척이 참여했다. 배의 이름은 ‘에버트센’이고 같은 이름의 배가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했다.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서욱 국방장관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네덜란드 국방장관이 한국의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유튜브에 공개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메시지 내용인데, 대략 이렇다.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의 방식을 지지하며, 양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법치주의 및 인권을 존중한다. 그런데 최근 안보 불안정과 긴장은 질서와 균형을 위협하고 있다. 불행히도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이 지역 내 안정과 안보를 위한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우자

한국이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유지되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동맹국과 함께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에버트센의 방한은 인도 태평양 지역, 특히 대한민국에 대한 네덜란드의 의지를 보여준다.”

1975년까지 유엔 창립일인 10월 24일이 한국에서는 공휴일이었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대한민국이 건설되는 데 유엔의 보증이 큰 몫을 했다. 유엔은 유엔군을 조직해 6·25전쟁에서 북한, 중국과 맞서 싸웠다.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네덜란드가 그 유엔군의 일원이었음을 환기시키며 대한민국에 그 길에서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우자고 강조한다.

시대정신은 해당 시기의 과제와 사람들의 지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021년의 역사는 중국을 포함한 그의 동맹국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인도를 하나로 엮는 세계의 대립과 갈등으로 요약된다.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시진핑의 중국에 맞서 후자의 세계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태평양 세력을 배경으로 태어난 대한민국은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 즉 자유와 개방, 법치주의와 인권의 틀 안에서 번성해 왔다. 그 토대 위에서 민족과 통일,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진출을 논해야 한다. 그럼에도 민족과 통일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시원을 교묘히 부정하려는 일련의 경향과 맞서 싸워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주사파 #자유와개방 #신동아


민경우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신동아 2021년 10월호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대표mkw19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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