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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 암 과학자가 14년 암투병하며 알게 된 것들

“몸에서 많은 게 사라진 만큼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독보적 암 과학자가 14년 암투병하며 알게 된 것들

  •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인문을 과학하다’ ⑦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
    ● 인생의 정점에서 만난 암세포
    ● 2006년 비강암 발병… 지금껏 투병
    ● 혹독한 항암 치료로 청력 잃고, 피부 괴사
    ● 쌓은 지식은 무력하고 허약했다
    ● 내 몸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것들
    ● 암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자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인문을 과학하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가 당면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을 과학하다’는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언뜻 멀어 보이지만,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섞여 있는 두 세계의 깊이 있는 소통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다.<편집자 주>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김규원(68)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를 만난 건 그가 최근 펴낸 책 ‘미로 속에서 암과 만나다’를 통해서였습니다. ‘암 과학자의 항암일지’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한때 “한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김규원”이라는 세간의 평이 있을 정도로 항암 연구에 독보적이던 한 과학자가 실제로 암에 걸린 후 걸어온 14년간의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암 과학자의 항암일지

그는 2006년 희귀암 진단을 받은 이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 후 두 차례에 걸친 재발, 피부이식까지 경험했습니다. 2017년 정년퇴임을 했지만 요즘에도 학회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학교에 나가 제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금요일이던 8월 7일 늦은 오후, 관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혹독한 항암 치료는 그의 몸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한쪽 귀 청력을 잃었고 나머지 한쪽도 보청기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눈 위쪽 피부의 괴사된 부분에는 이식으로 메운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어조로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 “변화하는 몸에 마음을 맞추니 잔잔한 기쁨과 평안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진한 체험에서 길어 올린 그의 언어들은 어떤 종교인의 말보다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와 책을 중심으로 암 과학자가 보는 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지상 강의 형태로 정리해 봤습니다.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많은 암 환자에게 자신의 투병 경험과 암 지식이 한줄기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을 담아봅니다.

유서를 쓰다

2006년 11월 코가 막히고 콧물이 많이 나와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콧속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간단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합병원에 가 조직검사를 했더니 ‘비강(鼻腔·콧구멍에서 목젖 윗부분에 이르는 빈 곳)암’이란 희귀암이었다. 게다가 증식 속도가 매우 빨라 수개월 안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내는 오랫동안 관절 류머티즘을 앓아온 사람이라 바깥일은 문외한인데 어떻게 살아갈까, 고등학교 1학년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유서를 썼다. 

의료진은 오른쪽 코 암 덩어리가 3기에 해당하는 달걀만 한 크기여서 오른쪽 눈부터 위턱뼈까지 모두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얼굴 오른쪽 절반이 무너진다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정밀 조직검사에서 ‘미분화 암종(癌腫)’으로 판정돼 수술보다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사실 ‘미분화 암’과 인연이 깊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85년 하버드 의대 암 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할 때 연구 과제가 ‘쥐의 악성 미분화 암종’이었다. 

미분화 세포는 분화가 잘 안 돼 주변 세포들과 소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스스로의 생존에만 집중하는 세포다. 분화도가 낮을수록 악성이 강하고 분열 속도도 빠르다. 보통 암세포들이 그렇지만 특히 내가 걸린 암은 분화가 더욱 더 잘 안 된 것이었다. 

1985년 암 연구를 시작한 후 21년 동안 암에 관해 무수히 많은 논문을 썼고 실험도 많이 했다. 그런 내가 암에 걸리니 암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이전까지 쌓아올린 암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암이라는 어둠의 구렁텅이에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갈 길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댔다. 

2006년 12월 12일부터 6일 동안 매일 항암주사를 맞았다. 도시탁셀, 시스플라틴, 5-플루오로유라실 세 종류였다. 

하루가 지나자 온몸 기능이 모두 막힌 듯했다. 항암제들은 내 혈관을 타고 다니며 정상세포들까지 공격했다. 혈관 속 적혈구, 백혈구뿐 아니라 입안부터 배 속 내장까지 모든 세포가 공격받은 것이다. 입안이 헐고 구역질이 나왔다. 생명의 흐름이 가슴 중간에서 정지된 듯 답답했고 식욕도 사라졌다.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퇴원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코 안에서 계속 짙은 핏덩이가 나왔다. 파괴된 암 조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콧구멍이 조금 뚫린 듯 시원했고 눈물과 콧물 양도 줄어 숨쉬기도 편해졌다. 하지만 콧물이 계속 흐르고 코도 막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치료가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근심이 겹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다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면서 세포분열을 지속해 암 덩어리를 만든다. [GettyImage]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면서 세포분열을 지속해 암 덩어리를 만든다. [GettyImage]

컨디션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샤워 중에 머리카락이 욕조 배출구를 막을 정도로 뭉텅이로 빠졌다. 암과의 싸움이 본격화됐구나 실감이 났다.
 
2차 치료 때는 한번 경험해 봐서 그런지 몸의 기능이 막힌 듯한 느낌이 적었지만 불면증, 구역질, 식욕 상실은 똑같았다. 3차 항암 치료 전 CT를 찍었는데 암 덩어리가 줄었다. 항암제 공격을 받은 암세포들이 옆의 조직이나 장기로 전이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징후도 없었다. 

암 환자 사망의 주원인인 전이는 악성 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암 과학자의 연구로 상당 부분 밝혀졌고, 이에 근거한 항암제 개발도 시도됐지만 아직까지 효과적으로 전이를 차단하거나 전이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이야말로 아직도 암이 미로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전이는 암세포 처지에서 보면 매우 혹독한 과정이다. 암세포는 우선 계속 증식하면서 주변 조직으로 흘러갈 능력을 키운다. 그러곤 주변 조직을 통과한 후 혈관 속으로 침투해 피를 따라 돌면서 다른 장기로 이동한다. 그 후 혈관을 빠져나와 새로운 조직에서 면역세포들의 공격을 피하며 세포분열을 지속해 암 덩어리를 만든다. 암세포 처지에서 이런 모든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혈관 속 면역세포 공격을 이겨내고 빠른 혈류를 통과해 빠져나오기가 지극히 어렵다. 

암세포는 어떻게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왜 살아남으려 할까. 암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해 온 세포가 아니라 내 몸의 세포다. 그럼에도 왜 스스로의 생존 거처인 내 몸을 파괴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할까. 암 연구자이자 투병하는 환자로서 이런 질문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같은 의문들은 아직도 암이 가지고 있는 큰 미스터리다. 

2007년 1월 25일부터 6일간 3차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항암제 투여가 끝날 무렵 온몸이 아파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극심한 통증이 덮칠 때면 미국 컬럼비아대 종양내과 의사이던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암 환자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호전되지 않으면 내 삶을 끝내줄래요?” 

196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해 환자 몸을 죽기 직전까지 내몰아 치료하던 시기였으니 그 고통은 훨씬 더했겠지만 훨씬 저용량으로 부작용까지 염두에 두는 치료를 하는 지금도 환자들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의 정점에서 만난 암세포

3차에 걸친 치료로 암 크기는 어느 정도 줄었고 전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비강 부위에 남아 있는 암세포들을 집중적으로 죽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총 30회를 했고 매주 한 번씩 시스플라틴을 항암제로 투여받았다. 시스플라틴은 세포 내 DNA 복제를 방해해 암세포 분열을 억제한다. 하지만 이후 청각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암세포는 이미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을 가진 상태이므로 지극히 소수만 살아남아도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3개월마다 MRI를 찍으며 마음을 졸였다. 

나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1978년 카이스트 생물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2년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미네소타대에서 ‘효모의 질소대사에 관한 유전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 암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석사 때 대장균, 박사 때 효모, 박사 후 과정에서 인간 질병 연구를 시작했다. 귀국해 1987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가 됐다. 신설 학과인 데다 연구실도 없었고 연구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암혈관 연구에 주목했다. 

암세포가 계속 증식하려면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해 혈관들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차단하면 암도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혈관생성 억제제를 만드는 것이 내 연구 목표였다. 암혈관 연구는 197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시작됐는데 그 결실로 2000년 혈관생성저해 항암제들이 개발됐다. 

내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혈관 연구는 드물었다. 나는 달걀을 모델로 했다. 달걀껍데기를 약간 벗겨보면 표면에 혈관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 특정 약물을 주입하면 혈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내 2002년 암조직에서 혈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HIF-1알파라는 단백질이 아세틸화에 의해 분해된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 최초로 내고는 최고 학술지 중 하나인 ‘셀(Cell)’에 발표했다. 1995년 HIF-1알파를 발견한 과학자 세 명은 201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가 정점이었다. 2003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제1회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호암상도 받았다. 세계 최고 수준 연구 결과를 연달아 발표하며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이듬해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암세포는 아마 내 몸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마침내 맹렬한 힘을 드러낸 것이리라. 그러면서 내가 쌓은 지식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약한지 단숨에 보여주었다.

혹독한 고통 속에서 얻은 것들

암이 재발했다. 2007년 치료가 끝난 후 3년 뒤인 2010년이다. 똑같은 부위였다. 암세포들은 그 혹독한 방사선과 항암제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했다.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방사선과 항암 치료는 하지 않아 바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병원과 학교를 오가는 와중에도 연구를 뇌혈관까지 확장해 201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5회 국제뇌혈관학회에서 높은 관심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재발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년 뒤인 2012년 2차로 재발했다. 본래 위치에서 귀 쪽으로 좀 더 이동했다. 10시간에 걸친 내시경 수술로 다행히 눈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곤 다시 몇 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눈과 코 사이 암이 있던 자리에 피부가 괴사하기 시작했다. 정상세포를 죽일 수밖에 없던 방사선 치료 후유증이었다. 2년 5개월간 목과 이마 피부를 떼어내 메우는 이식수술을 열한 차례 받았다. 

암에 걸리면 몸도 고통스럽지만 당연히 마음의 고통도 따라온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두려움이 시시때때로 덮쳐 생각, 감정, 감각을 온통 부정적인 것들로 채운다. 몸과 마음이 일체라는 것과 죽음의 공포가 새삼 무겁다는 것을 절감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암은 관념이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나자 암은 내 몸의 감각과 느낌, 몸뚱아리 속에서 극도의 고통, 죽음의 공포로 구체화됐다. 

‘걷기 명상’이 큰 도움이 됐다. ‘듦-나아감-놓음’ 세 단계로 발바닥에 주의를 기울여 가능한 한 천천히 걸었다. 마음속을 꽉 채웠던 시커먼 생각 덩어리들이 미미하게나마 줄어들고 작은 덩어리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게 됐다. 암과 죽음에 강하게 고착돼 얼어붙었던 마음이 순간순간 몸의 움직임에 같이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하나의 진리에 기댔다.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암세포뿐 아니라 많은 정상세포도 대거 죽을 것이기에 그 자리를 새로운 세포가 채울 것 아닌가. 실제로 항암제 치료 전보다 머리숱이 더 많아졌으니 내 예상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은 투병도 마찬가지다. 암이 재발하면서 연구 생활은 크게 흐트러졌지만 보는 관점이 외부 연구 대상으로부터 내부로 향해 내 몸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감각과 감정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주위 사람들을 보는 마음의 폭도 넓어졌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환자의 아픔과 고통보다는 데이터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내가 환자가 되니 수많은 치료 현장에 나보다 더 심하고 위중한 환자들이 항상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에게 갇혀 있던 시야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같이하고 헤아려볼 수 있게 됐다. 

항암 치료로 생긴 극심한 후유증을 이겨낼 때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먼저 생각했다. 후각과 미각이 없어지고 이명에 청각장애, 어지럼증, 구강 건조증, 턱관절장애, 음식물 삼킴 장애까지 따라왔다. 몸무게는 46㎏까지 줄었다. 

후각과 미각이 없어지니 사는 즐거움 중 하나인 먹는 즐거움을 잃었지만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먹게 되니 자유로움도 생겼다. 턱관절장애로 질긴 것을 씹지 못하니 건강식을 하게 됐다. 

청각 상실을 견디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이명이 밤낮으로 크게 들리니 잠자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못 하고 TV도 못 보게 돼 고립감이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도 듣지 못했다. 

이제는 보청기를 빼고 적막한 고요를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무수한 세포로 이뤄진 내 몸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외부 환경과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내 몸에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새롭게 얻어진 변화에 마음도 같이 움직이니 한결 자유로움과 평온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가 연구를 계속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삶은 직진만 있는 게 아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나 병원에서 대기할 때도 연구 관련 논문을 계속 읽고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 권의 책을 냈다. 2015년 펴낸 ‘과학의 발전과 항암제의 역사’는 이듬해 영문판까지 냈고, 2017년 모든 약의 특성과 개발 과정을 집대성해 제자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약의 역사’도 펴냈다. 미래에 누군가 새로운 연구의 길을 개척하는 데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항암제 개발에 담긴 과학자들의 열정

김규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김규원”이라는 평가를 듣던 과학자다. [조영철 기자]

김규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김규원”이라는 평가를 듣던 과학자다. [조영철 기자]

18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암은 실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암흑 속에 있던 암을 과학의 빛 속으로 끌어낸 사람은 독일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다. 그는 1854년 암을 세포들이 증식해 생긴 ‘신생물(新生物·neo plazia)’이라고 명명하면서 암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그는 모든 질병의 발생 장소가 인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라고 가정했고 암세포는 비정상적 증식이 계속 일어나는 ‘이상 세포’라고 생각했다. 그의 탁월한 식견으로 사람들은 세포라는 소우주에 주목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해명됐으며 치료약도 나오게 된다. 

194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최초 항암제인 메클로에타민 이후 2017년까지 약 180종의 항암제가 개발됐다. 항암제 개발 역사는 무수히 많은 과학자의 노력과 열정, 영감의 역사다. 초기 항암제가 나오던 때는 세포 분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기 전이어서 사람에 대한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한 연구자들의 통찰과 상상력에 기반해 개발이 이뤄졌다. 

항암제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사람은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시드니 파버다. 1948년 소아백혈병 치료약물로 DNA 합성을 차단할 수 있는 아미노프테린을 개발했다. 이보다 2년 전인 1946년에는 예일대 굿맨과 길먼이 ‘질소겨자의 혈액암에 대한 항암효과 연구’로 화학약물 치료 개념을 도입했다. 이 개념에 따라 세포독성 항암제 개발이 본격화된다. 이것들이 ‘고전적 항암제’로 194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주로 개발된 것들이다. 

초기 고전적 항암제들은 세포 증식에 필수적인 DNA 손상이나 복제를 억제하는 것으로 암의 복잡성, 다양성 같은 기초적인 생물학적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한계가 많았다. 혈액암과 같은 한정된 종류의 암을 제외하고는 악성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암, 폐암, 대장암 등의 고형암에 대해서는 기대만큼의 치료 효능이 나타나지 않았고 정상세포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래서 1980년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표적항암제’다.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차이를 타깃으로 한 개념이다. 고전적 항암제가 무차별 대량살상 폭탄이라면 표적항암제는 정밀 미사일탄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적항암제는 호르몬 항암제, 분자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셋으로 나뉜다. 이 중 2000년대 이후 가장 큰 항암제군을 형성한 것들이 분자 표적 항암제다. 대표적인 게 우리 귀에 익숙한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분자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를 분자 수준에서 해석하는 유전자 연구가 기반이 됐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도 1984년부터 대규모 암분자생물학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분자 표적항암제는 개별 암이 갖고 있는 특이적인 분자 표적에 초점을 맞춰 기존 치료법보다 암세포를 좀 더 정밀하게 공격해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내성을 가진 암세포들이 출현하고 여러 부작용이 나와 여전히 암이 미로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면역항암제는 2010년부터 급속히 활성화하고 있는 항암제군으로 체내 면역계를 활성화해 암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면역세포 자체를 항암제로 사용하는 치료법도 개발됐다. 


암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자

현대 생명과학의 출발은 세포 연구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돼 있고 세포가 분열하면서 새로운 세포가 형성돼 생명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이후 연구 대상은 세포핵, 세포핵 내 염색체, 염색체 구성 성분인 핵산과 단백질로 점점 더 미세하고 정교하게 세분화돼 갔다. 세포 속 물질인 단백질과 핵산 연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DNA를 중심으로 분자 수준에서 세포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도 나오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분자생물학자이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자크 모노는 1954년 단세포 생명체인 대장균을 분자 수준에서 알게 되면 크기가 압도적으로 큰 다세포 생명체 코끼리도 파악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세포설에 근거해 진행된 180년간의 눈부신 연구에 의해 생명과학이 오히려 세포 속에 갇힌 측면이 있다. 치료되지 않는 질환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사람 같은 다세포 생명체가 발현하는 독특한 시스템적 특성을 도외시하면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환계, 신경계, 면역계 연구가 그것이다. 

악성 암은 말기 단계에서 혈관계와 림프계를 통한 전이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하게 한다. 암세포의 전이는 체내에 구축된 여러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에도 지금까지 연구들은 분자 수준 또는 단일세포 차원에서만 단백질과 유전자 기능을 규명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면역계통 질환(관절 류머티즘, 루푸스, 알레르기) 피부질환(아토피, 건선) 염증질환(크론병) 등의 치료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제는 암 환자 개개인의 특정 암세포의 유전적 변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암세포를 비롯한 정상세포들이 이루는 조직 차원을 넘어선 시스템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조직 내 세포 간 정보가 어떻게 공유되며 작동하는지, 정보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미생물과의 정보 교환 흐름은 무엇인지 등이 연구 과제가 될 수 있다. 

이 지구상 생물의 거의 대부분은 미생물이다.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 생명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내 세균이 인간의 다양한 질병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몸 구석구석의 특정 세균을 어떻게 제거할지에서 지구상의 모든 곳에 퍼져 있는 미생물과 어떻게 공생할지로 관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균을 병원균으로만 파악해 박멸해야 한다는 좁고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내 몸과 미생물이 서로 연결된 고리 모양 관계라는 인식을 가질 때가 됐다. 

나는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내 암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전이는 얼마나 잘 되는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암을 경험함으로써 암의 실체를 내 몸의 세포와 감각, 감정을 통해 알게 됐다. 치료 과정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개발한 수술법과 방사선치료법, 항암제도 체험했다. 치료 후 내 몸에서 많은 게 사라졌지만 그만큼 마음의 자유로움도 얻었다.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것들에 감사하면서 어둠 속 암의 이면에 한줄기 빛을 더 비추고 싶다.



신동아 2020년 9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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