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우울증, 뇌·심장질환 위기! 최 기자, 양압기로 목숨 건지다

사람 잡는 수면무호흡증 치료記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13-04-22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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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뇌·심장질환 위기! 최 기자, 양압기로 목숨 건지다

    숨수면센터 박동선 대표원장이 목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꽃 피는 봄, 극심한 졸음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왔다. 매사에 짜증이 나고 잘못된 일은 남 탓하기 바빴다. 사람들은 얘기꽃을 피우는데 나만 심드렁했다. 사는 일에, 아니 모든 일에 재미를 못 느꼈다. 갑자기 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방인이 된 느낌. 그 좋아하던 술도 별로고 일에 대한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밥만 먹으면 졸렸다. 심지어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코를 골다 후배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깬 적도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3월 중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뒷자리에 앉아 내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던 선배가 ‘정신의학적 상담’을 받아보라고 강권했기 때문이다. 손 박사는 얘기를 죽 들어보더니 “상황이 심각하니 클리닉에 들르라”고 권했다. “약을 먹어야 할 수준”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제라고 하면 향정신성의약품, 즉 마약류가 아니겠느냐는 선입관 때문에 거부감이 컸다. 실제로 미국에선 우울증 치료제를 무분별하게 장기간 복용하면 의존성이 심해지고 부작용이 적지 않아 오히려 자살충동을 부추긴다는 보고서도 나온 바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 결국 병원행을 포기했다.

    “혹시 코골이가 심해요?”

    며칠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사실 이 자리도 나가기 싫었지만 억지로 참석했다. 그중 한 사람이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나를 보고 “최 기자, 어디 아파요?”하고 관심을 보이기에 그간의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나의 증상을 놓고 의사들끼리 때 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단순한 만성피로증과 춘곤증이라고 위로하는 이부터 남성 갱년기증후군이라며 바르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을 처방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색다른 분석을 내놨다. “혹시 코를 심하게 골아요? 자면서 숨 안 쉴 때가 있다는 얘기 안 들었어요?”라고 물었다. 극심한 수면무호흡증 때문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랬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은 30대 중반 이후 살이 찌면서 시작돼 체중이 줄면 좀 괜찮아지다가 다시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옆방에서도 들릴 정도의 코골이로 아내와 각방을 쓴 지 오래고, 아이들은 자면서 컥컥하며 숨을 쉬지 못하는 아빠가 걱정돼 흔들어 깨우기 일쑤였다. 30여 년 전 내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부친도 극심한 수면무호흡증을 갖고 계셨더랬다.

    하긴 요즘 전에 없이 낮에 잠이 쏟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바짝 마르고 목에 마른 가래가 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목도 찢어지듯이 아팠다. 모두 코로 숨을 쉬지 못해 입을 벌리고 잔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젖은 빨래를 널어놓거나 가습기를 최대한으로 틀고 잤지만 별무효과였다. 이 모두가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의 증상인 줄은 알았지만 우울증까지 일으킬지는 몰랐다.

    다음 날 수면무호흡증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니 정말 최근 내게 일어난 증상이 모두 들어 있었다. 밤에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자주(2~3회) 가는 이유도, 성욕이 턱없이 감소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었다.

    3월 25일 월요일 새벽(날짜도 잊지 못한다), 뒷목이 심하게 아픈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눈을 뜬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머리를 한껏 밑으로 숙인 채 앉아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내가 일어나 앉았지?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이제 몽유병까지 생겼나? 목구멍 안이 심하게 붓고 통증도 심했다. 정신은 몽롱했다. 출근하자마자 수면무호흡증 진단과 치료에 일가견이 있다는 클리닉을 수소문했다. 이 기회에 무호흡증의 뿌리를 뽑고 내 경험을 기사로 써보리라 생각했다. 병은 소문을 내야 빨리 낫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숙면 못해 생긴 우울증

    3월 27일 아침 일찍 서울 서초구 서초동 숨수면센터(숨이비인후과 수면클리닉, www.suum.co.kr)를 찾았다. 이곳은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철 교수와 함께 국내 수면무호흡 진단과 치료의 명의로 인정받는 박동선 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대표원장으로 있다. 개인 의원이지만 자면서 수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돼 있고 치료에도 정평이 나 있다. 검사 장비는 국내 최정상급, 수면 시설은 호텔급이었다. 박 원장은 증상을 듣고 난 후 우선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의 관계를 설명했다.

    “코골이는 잘 때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저항에 의해 발생하는 거친 숨소리입니다. 공기의 저항이 심하다는 것은 기도가 조금씩 닫히고 있음을 의미하죠. 코골이가 심해지면 기도가 막히는 정도가 좀 더 심해지는데 이런 상태를 수면저호흡, 기도가 완전히 막혀 호흡이 끊기는 증상이 자주 발생하면 수면무호흡이라 합니다. 따라서 코골이가 심하다고 무조건 수면무호흡이 있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무호흡이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심한 코골이가 있습니다. 코골이는 무호흡증의 대표적 증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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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다원검사를 위해 필자에게 센서를 부착하는 숨수면센터 의료진.

    나의 우울증에 대해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수면무호흡증이 심하다는 것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는 집중력 저하와 졸음증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자그마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소외감을 느끼며 대인기피증까지 생긴다고 한다. 중증 수면무호흡증 환자에게 우울증이 찾아오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잠을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풀어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충전의 시간, 에너지원”이라고 정의하며 잠이 정서적 신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해 설명했다.

    “걱정이라는 흐트러진 번뇌의 실타래를 곱게 풀어 짜주는 존재이자 그날그날의 생의 적멸입니다. 괴로운 노동의 땀을 씻고,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는 영약이자 대자연이 베푸는 제2의 생명이지요. 생의 향연에 펼쳐진 최대의 자양분이기도 하고….”

    박 원장은 문진을 마친 후 이학적 검사를 시작했다. 수면무호흡이 발생한 신체구조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내시경을 콧구멍에서 기도까지 넣어 호흡기 상태를 살펴본 후 상부 호흡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알기 위해 3D CT도 찍었다. 비만도도 측정하고 폐 X레이도 찍었다.

    “해부학적으로 수면무호흡증이 나타날 모든 조건을 골고루 갖췄네요. 목이 짧고 굵으며 아래턱이 작고 안으로 들어가 있어요. 기도가 좁은 대신 편도와 목젖은 크고 긴 데다 부어 있기까지 합니다. 혀 뒤공간은 좁은 반면 혀 아래 부위는 튀어나와 있어서 누우면 중력 때문에 혀와 목젖이 기도를 바로 막아버리는 구조입니다. 코 안의 점막도 부어 있고(약간 비염이 있다) 코를 양분하는 비중격도 약간 휘어 호흡이 곤란해지는 겁니다. 거기에다 가족력까지 있고 복부비만도 심각하네요.

    자기도 모르게 앉아서 잔다는 건 누워 있으면 도저히 숨을 못 쉬니까, 다시 말해서 죽을 것 같으니까 뇌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강제로 기도를 열게 한 거죠. 수면다원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중증 상태로 보입니다. 갈 때까지 간 거죠. 방치하면 고혈압이나 당뇨는 물론, 뇌혈관질환이나 심근경색 협심증 등 심장질환 발생률을 최고 8배 높일 수 있습니다. 무호흡증 자체만으로도 수명이 단축되고 삶의 질이 떨어질 겁니다.”

    주범은 복부비만

    우울증, 뇌·심장질환 위기! 최 기자, 양압기로 목숨 건지다

    양압호흡기를 쓴 상태에서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이 극심했던 부친(83)도 50대 이후 뇌출혈로 3번이나 쓰러진 뒤 4년째 외상성 치매를 앓고 계신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철 교수는 최근 50~79세를 대상으로 수면다원검사와 뇌자기공명영상 검사를 실시한 결과 중강도 수면무호흡이 있는 경우 뇌졸중(뇌경색, 뇌출혈) 발생위험이 일반인보다 2.44~7.86배(뇌기저핵부위)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보다 몸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지 않는가.

    박 원장은 “비만이 꼭 수면무호흡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살이 많이 찐 사람은 호흡기 계통이 비대해지면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 몸은 뚱뚱해도 코를 심하게 골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비만이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을 심화시키는 원인임은 분명하며, 특히 복부비만이 심한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면무호흡증은 폐에 이르는 공기 흐름의 통로가 막히기 쉬운 신체구조(구강·호흡기구조)와 가족력,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이죠. 최 기자처럼 기도가 막히기 쉬운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많이 늘면 대부분 수면무호흡증이 온다고 봐야 합니다. 비만은 총의 방아쇠 구실을 하죠. 총알에 해당하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 비만은 수면무호흡의 결정타를 날리는 격발자인 셈입니다.

    그러니 살을 뺀다고 무호흡증이 근본적으로 치료되는 건 아닙니다. 질량지수(BMI지수·체중㎏/키㎡)가 30이 넘는 고도비만 환자에게서 유의미한데, 이런 사람이 정상지수인 23 정도로 줄인다고 해도 개선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호흡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전체적 비만보다는 복부비만이지요.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 폐의 확장을 방해하거든요. 그만큼 호흡이 힘들어진다는 거죠. 과식해서 배가 부를 때 호흡에 곤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숨도 못 쉴 만큼 배부르다’고 하잖아요.”

    그간 무호흡증이 있어도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은 아니었는데 지난해 하반기 이래 체중이 가장 덜 나갔을 때보다 20㎏쯤 살이 찐 데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게 무호흡증을 “갈 데까지 가게” 만들었고, 그 증상 중의 하나로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결론이었다. 몸무게 100kg에 체질량지수가 33.4에 이르는 나는 31㎏ 이상 빼야 무호흡증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 원장은 “비만은 무호흡증의 합병증, 즉 성인병과 뇌질환, 심장질환을 유발하고 심화시키기 때문에 무조건 치료해야 한다”며 “담배 등 호흡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무호흡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슬프게도 “호흡기관의 급격한 노화도 무호흡증의 큰 요인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 마흔다섯에 ‘노화’라니….

    1분당 평균 15초 ‘호흡 정지’

    4월 1일 숨수면센터를 다시 찾아 수면무호흡증이 얼마만큼 심각한지 알아보기 위해 수면다원검사를 받았다. 저녁 무렵 센터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식사를 마친 후 1시간 정도 적응과정을 거치고 잠을 청했다. 검사실은 호텔 객실처럼 꾸며져 있었고 CCTV와 온갖 검사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잠을 자기 전 머리, 이마, 눈, 코, 입 주변과 다리, 심장 근처 등 온몸에 센서를 부착하는 데만 10여 분이 걸렸다.

    수면다원검사에선 이런 장비를 통해 수면 중의 뇌파, 안구운동, 아래턱 근전도, 다리 근전도, 심전도, 코골이, 호흡운동, 동맥혈 산소포화농도, 잠을 자는 자세 변화 등 잠을 잘 때 나타나는 여러 생리적 신호를 기록한다. 수면다원검사를 제대로 받아야 수면무호흡증이 중추성(central)인지 폐쇄성(obstructive)인지 알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평가하고 그에 맞는 치료법도 도출할 수 있다. 박 원장은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대부분이 폐쇄성 또는 혼합성 환자”라고 설명한다.

    “호흡의 모든 과정은 뇌 자율신경계의 명령에 의해 이뤄집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가 명령을 내리면 폐가 확장되면서 목이 열리고 공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거죠. 그런데 뇌신경계의 호흡 담당 센서가 망가지면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호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를 ‘중추성’이라 하죠. 일반적으로 노화나 해부학적 요인, 비만 등 뇌신경계 외적 요인들에 의해 기도가 서서히 막히면서 생기는 무호흡증은 ‘폐쇄성’이라고 하고요. 폐쇄성이 지속되면 거꾸로 뇌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호흡 담당 센서를 서서히 망가뜨리는데 이걸 ‘혼합형’이라 합니다. 결국 계속 방치하면 중추성으로 가게 되죠.”

    의료 선진국에서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후군 치료 시 수면다원검사를 반드시 실시하라고 권장하고 있으며, 수면다원검사 결과를 통해 치료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과 유럽에선 수면다원검사에 보험급여가 적용되지만 우리는 아직 실시하지 않고 있다. 수면무호흡증이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고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정부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증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으로 판명 났다. 박 원장의 말을 빌리면 중증 중에서도 “너~무 심한 중증” 축에 들었다. 의학적으로 수면무호흡지수(AHI) 5~15는 경증, 15~30은 중등증, 30이 넘으면 중증으로 구분하는데 나는 86.7에 달했다. 총 6시간 1분, 즉 361분의 수면시간 중 실제로 잠을 잔 시간은 306분, 이 중 정상적인 깊은 수면 상태를 가리키는 램(REM) 수면시간은 2차례에 걸쳐 35분에 불과했다. 총 4차례, 총 수면시간의 20% 이상은 돼야 하는데 그 절반에 불과했다. 코를 곤 시간도 200분에 달했다.

    한 시간에 몇 번 호흡이 멎는지를 따지는 호흡곤란지수(RDI) 결과는 더 놀라웠다. 93.2회/시간, 즉 한 시간에 평균 93.2회 호흡이 멎거나 멎기 직전까지 갔다는 뜻이다. 호흡이 멈춘 시간은 1분에 평균 15초간이었다. 총 수면시간 중 25% 동안은 숨을 못 쉬었다는 얘기다. 박 원장은 “1분당 1~2회 호흡이 멎었음을 의미하며, 1분에 최장 32초 동안 숨이 멎은 적도 있다. 5시간 자는 동안 1시간 30분은 물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우울증, 뇌·심장질환 위기! 최 기자, 양압기로 목숨 건지다
    ‘목 졸린 상태의 수면’

    건강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은 체내 산소농도였다. 호흡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산소농도가 최하 79%까지 떨어져 있었다. 박 원장은 “이는 누군가 목을 졸랐을 때 나타나는 수치로 대단히 위험한 상태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라면 응급 벨이 울리고 산소마스크가 씌워져야 한다. 다행히 뇌가 위험수준에 도달하면 이를 인지하고 잠을 깨우니까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일까. 뇌가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시간당 18.8회나 됐다. 호흡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뇌가 일부러 잠을 깨운 것이다. 각성 상태란 본인은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뇌가 깨어 활동하는 상태다. 아무리 오래 자도 다음 날 졸리기는 마찬가지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수면무호흡증이 고혈압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도 산소농도와 관계가 깊다. 호흡을 하는 주목적은 폐로 들어온 산소를 몸의 각 기관과 조직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때 산소운반 담당은 혈관이고, 혈관에 산소를 싣고 밀어내는 임무는 심장이 맡는다. 수면무호흡으로 혈중 산소농도가 떨어지면 심장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한 번 뛸 걸 두 번 뛰게 된다. 심장이 많이 움직이면 심장근육 즉 심근이 두꺼워지다가 결국 괴사하게 되는데 이것이 심근경색이다. 심장이 빨리 뛰다 늦게 뛰다 하면 박동 리듬이 깨지면서 부정맥이 찾아온다.

    우울증, 뇌·심장질환 위기! 최 기자, 양압기로 목숨 건지다
    심장이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많은 양의 혈액을 혈관에 한꺼번에 공급하면 혈관의 압력이 올라가고(고혈압), 그 상태가 지속돼 임계점에 도달해 터지면 뇌졸중이 온다. 뇌혈관은 혈관 구조상 우리 몸의 모든 혈관 중에서 압력에 가장 취약하다. 수면무호흡이 심한 사람이 고도 비만이나 성인병 등에 의한 관상동맥질환을 갖고 있다면 협심증이 발생할 수도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살을 빼고 반드시 무호흡을 치료해야 한다.

    수면다원검사 결과지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던 내게 박 원장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위로하면서 지속적 기도 양압호흡기(Continuous positive airway pressure, CPAP, 이하 양압기) 치료를 권했다. 양압기는 전자 기계장치에서 만든 공기와 습기를 특수 제작된 마스크를 통해 코로 밀어 넣어줘 수면무호흡과 코골이를 치료하는 것으로 비수술적 치료법 중에선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산소마스크처럼 호흡을 대신해주는 것은 아니고, 공기를 들이마실 때 환자의 기도를 열어줄 정도만 공기의 압력을 만들어준다. 이때 공기의 압력은 환자의 수준에 맞게 병·의원에서 맞춰준다. 작은 가방에 휴대할 수 있어 간편하다. 다만 마스크 부분과 가습기통을 매일 물로 씻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중성세제로 호스와 각 장비를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박 원장은 “권투선수가 끼는 마우스피스처럼 생긴 구강 내 장치는 경증이나 중등증 환자에게 쓰이는 것이고, 턱의 위치를 수술로 조정해 혀 뒤에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줌으로써 막힌 기도를 열어주는 양악수술, 목젖과 혀, 편도의 크기를 줄여주는 수술도 최 기자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추천하지 않았다. 이런 수술은 턱 구조나 목젖, 혀 크기 등 어느 하나 또는 두 가지가 문제가 됐을 때 하는 것인데 내 경우는 이들 대부분에 해당된다는 것. 그렇다고 모든 수술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중 어느 하나를 시술한다고 무호흡증이 없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양압기를 써보고 개선효과가 없으면 그때 다시 고민해보자고 했다.

    양압기가 바꾼 삶

    과연 양압기는 절체절명의 수면무호흡증을 얼마나 잡아줄 수 있을까. 다음 날인 4월 2일 밤 숨수면센터를 다시 찾았다. 센터 측은 내게 맞는 양압기 공기압력 검사를 한 후 수면다원검사를 할 때 붙였던 모든 센서를 내 몸에 다시 부착했다. 양압기를 썼을 때와 쓰지 않았을 때의 수면 상태나 무호흡지수, 호흡곤란지수 등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양압기를 썼을 때는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10여 분쯤 지나니 적응이 됐다. 공기와 습기가 코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입을 조금 벌렸더니 ‘컥’ 하고 도리어 숨이 막혔다. 구강호흡을 원천적으로 막는 구조였다. 거기에다 입에 반창고까지 붙여놓았으니 입을 벌리기는 더 어려웠다. 구강호흡은 수면무호흡 환자들의 전형적 증상으로 아침에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통증과 가래가 동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응시간이 끝나자 5분도 안돼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중간에 화장실도 한번 안 가고 내리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의료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양압기 장착 결과가 대성공으로 나왔다”며 축하해줬다. 그러고는 양압기를 가방에 넣어 건넸다. 우선 2주간 빌려 쓰며 1차 적응훈련을 하고, 그 다음 2주간 2차 적응훈련을 거친 뒤 본인에게 맞는 기구를 구입하게 돼 있다. 그러고 보니 목이 전혀 안 아팠다. 가래도 안 나왔다. 그날 바로 출근해서 하루 꼬박 열심히 일했는데 피곤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졸지도 않았고 기분이 좋았다. 말수도 부쩍 늘었다. 후배들이 “선배 온천 갔다 왔어요? 피부가 좋아졌네?”라며 놀렸다. 한 선배는 “최 차장이 말수가 느니 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농담을 건넸다.

    며칠 후 양압기 장착 상태의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나왔다. 86.7까지 올라갔던 수면무호흡지수(AHI)는 0으로 떨어졌고, 391분의 총 수면시간 중 램 수면은 2차례에서 4차례로 늘었으며, 35분에 불과했던 램 수면 시간은 123분(31.1%)으로 증가했다. 한 시간에 몇 번 호흡이 멎는지를 따지는 호흡곤란지수(RDI)는 93.2회/시간에서 0.2회/시간으로 줄었다. 호흡이 멈춘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코를 곤 시간은 200분에서 3분으로 줄었다. 최하 79%까지 떨어졌던 산소농도는 최하치가 92%까지 올라갔고 최고치는 99%, 평균은 96.4%였다.

    박 원장은 “이제 남은 건 양압기를 계속 쓰면서 체중을 줄이는 일이다.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살이 더 찌거나 빼기가 힘든데 무호흡을 치료하면 살이 더 잘 빠진다. 이론적으로는 평생 양압기를 써야 하지만 상태를 보니 몇 년만 쓰면 될 것 같다. 무호흡증이 없으면 부어 있거나 염증이 생긴 호흡기관이 다 제자리를 찾아오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했다.

    유전자 치료법 기대

    열흘 남짓 집에서 양압기를 사용했더니 일상이 확 달라졌다. 자신감을 되찾고 소외감도 사라졌다. 가족들도 좋아한다. 일단 코를 골지 않으니 집이 조용해졌고 아빠가 짜증을 내지 않으니 아이들 낯빛도 밝아졌다. 마스크를 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주는 웃음은 덤이다. 박 원장은 “이런 모습도 5~10년 후에는 추억이 될 것”이라며 양압기 사용을 독려했다.

    “양압기의 개념이 확립된 게 1981년이고,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2000년대에 보편화됐죠. 아마 향후 5~10년 안에 무호흡을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거나 뇌신경계를 조절하는 바이오칩이 나올 겁니다. 결국 유전자 문제에서 비롯됐으니 유전자 치료법도 곧 개발될 거고요. 이미 논문들은 다 나와 있고 연구가 막바지에 도달한 것으로 압니다. 조금만 고생하세요. 그리고 이건 팁인데, 술 마실 때 꼭 양압기 하세요. 저도 하는데 숙취가 훨씬 빨리 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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