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국가 원수가 출산한 나라에서 벌어진 일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11-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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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2018년 재임 중 첫딸을 낳았다. [뉴시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2018년 재임 중 첫딸을 낳았다. [뉴시스]

    선남선녀 부부가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라고 하면 직업 탓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녀가 없는 둘만의 삶이 훨씬 행복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늦은 결혼과 계획 임신의 실패 혹은 유산으로 원치 않는 딩크족이 된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그랬을지 모른다. 김건희 여사는 대선후보 부인 시절, 공개석상에서 힘들었던 유산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예쁜 아이를 얻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됐다”며 울먹인 적이 있다. 윤 대통령 부부 역시 어쩔 수 없이 딩크족이 돼야 했던 것이다.

    간혹 주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대통령) 아내가 젊고 건강한데 임신, 출산이 가능하지 않으냐”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과연 62세(男)와 50세(女) 부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식이 생길 운명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지만 의학적 통계로 따져보면 힘들고도 힘든 일이다.

    출산 의지 자극

    흔히 “남성은 걸어서 문지방을 넘을 힘만 있으면 수태력이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술, 담배에 찌든 남성은 불혹만 넘어도 정력은 물론 수태력까지 급하강 곡선을 그린다. 세상의 시름과 스트레스에서 열외로 사는 60대라면 모를까 현대를 사는 걱정 많은 60대라면 수태력이 좋을 리 없다. 물론 사람 일은 모른다. 운명적으로 건강한 정자가 배출되고 난자와 만나는 타이밍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임신에 성공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신이 주는 기적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50대(초반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수태력은 어떠할까. 후하게 점수를 줘도 가능성이 1% 미만이다. 여성은 난소에 200만 개의 원시 난자(난원세포 주머니)를 갖고 태어나지만 초경이 시작되면서 40만 개로 줄어든다. 이 원시 난자들은 일생 동안 500여 개의 성숙 난자를 배란시킨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광화문의 대들보는 아름드리 금강송으로 만들어졌다. 성숙 난자가 천년을 내다보고 짓는 한옥의 대들보라면, 금강송은 난소라는 저장소의 원시 난자에서 성숙이 일어나고 있는 미성숙 난자인 셈이다. 금강송(미성숙 난자)이 산중에서 한양으로 옮겨진 후 다듬어져 대들보(성숙 난자)로 상량(上樑)돼 ‘광화문’이라는 국보가 탄생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50세쯤 되면 원시 난포(난원세포 주머니)가 1000여 개가 남는다지만 이때까지 아름드리 금강송(미성숙 난자)이 남아 있기는 매우 어렵다. 금강송(미성숙 난자)으로 출발했던 소나무라고 해도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구부러지고 휘어져 대들보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고을의 장승이나 솟대로 전락하거나 땔감으로 쓰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 간혹 50대 여성의 출산 소식이 들리긴 한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50대 여성이 시험관아기 시술(IVF)로 임신하고 싶어 하면 “IVF에 매달리지 말고 운명에 맡긴 후 부부 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설득한다. 50대 여성이 IVF로 아이를 낳았다면 대부분 난자 공여를 통해 임신에 성공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적 같은 자연임신이 대부분이다. “50대 여성이 자연임신이라니”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인체의 신비이고 저마다의 팔자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출산했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은 아내의 출산에 함께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공무를 보다가 출산이 임박한 아내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당시(2011년) 사르코지 대통령은 56세였고, 브루니 여사는 43세였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윤 대통령 부부의 재임 중 출산을 기대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임 중 출산 덕분에 프랑스 내 출산 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혹은 정치인의 출산 소식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는 것에 일말의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는 출산 후 가족정책(탁아소 설치 등)에 정열적으로 힘썼다. 2012년 약 35만 개의 아동 관련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성 정상의 재임 중 출산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90년 베나지르 부토 당시 파키스탄 총리가 둘째 아이로 딸을 낳았고, 2018년에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첫딸을 낳았다. 특히 아던 총리의 출산과 출산휴가는 전 세계 여성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많은 국가에서 출산휴가 제도가 개선됐으며 출산휴가를 당당히 누리는 여성 수가 부쩍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출산 의지를 자극하는 ‘선구자’가 필요하다. 역대 정부에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리 좋은 출산 정책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 먹고사는 문제와 미래에 걱정이 없는 맞벌이 부부인데도 자식을 안 낳겠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일수록 출산에 적극적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일수록 출산에 관대하다. 프랑스 정부는 출산 여성에게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자식을 낳는 일에 비혼 여성까지 동참한다. 프랑스에서는 전체 신생아 중 60.1%가 혼외 출산이다. 혼외 출산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미 조성돼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혼 남녀에게만 출산을 기대하지 않는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다자녀 가구에게 더 많은 세제 및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인구 절벽에 계단 쌓는 마음으로

    필자는 출산 후 복지 혜택보다는 출산을 유도하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누구라도 임신 장려를 위해 선구자가 돼야 한다. 계획 임신 실패 혹은 난임이나 유산 경험자가 아이를 낳으면 더더욱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이제는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국민 정서에서 벗어나 출산율을 올릴 최선의 결단(사회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난자의 수명(수태력)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난임 전문의가 겪는 딜레마다. 어려웠던 시절 다산(多産)은 삶의 고단함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러기에 아기를 갖는 것이 사치라며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운동도 벌였다. 이제는 영양 과잉을 걱정할 정도로 부유해졌고 산업 발달로 선진국이 됐다. 6·25전쟁 이후 70년가량 평화의 시대를 살면서 삶의 질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결혼을 꺼리고 혼인해도 딩크족이 되거나, 자식 키우는 걸 버거워한다. 이러한 시절의 대통령이기에 어떤 정책보다 출산 장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구 절벽에 계단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방안을 짜내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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