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장강명, 독특한 한국형 범죄·철학 소설 탄생시키다

[책 속으로] 재수사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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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11-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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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수사 1, 2.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1권 408쪽·2권 412쪽, 각 1만6000원

    재수사 1, 2.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1권 408쪽·2권 412쪽, 각 1만6000원

    시작은 도스토옙스키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이내 22년 전 서울 신촌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의 범인이 회고한다. “당시에는 나는 금방 경찰에 붙잡힐 거라 생각했다. (중략) 나는 경찰의 용의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이야기는 두 축이다. 홀수 장은 범인이 남긴 원고로 구성됐다. 짝수 장은 강력반 형사 연지혜가 과거 수사 기록을 다시 검토하면서 범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으로 짜였다. 이어달리기를 하듯 소설이 이어진다.

    홀수 장에서 범인은 문명과 사회에 관해 제법 철학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현학적이라고도 느껴진다. 장강명은 자신이 202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라고 진단한 공허와 불안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이 공허와 불안은 시스템이 야기했다.

    범인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에 관해 논하고 계몽주의의 실패를 지적한다. 그러곤 ‘신계몽주의’라거나 ‘신의 재발명’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런 식이다. “이 사회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면 먼 훗날 역사학자들은 우리 시대가 계몽사상에, 인권 개념에 갇혀 있었다고 평가할 거다. (중략)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꿈꾸고 시험할 수 있다. 내 생각은 새 시대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내 고통의 의미다.”

    짝수 장에는 잘 짜인 수사 스토리가 있다. 여러 형사를 만나 고증에 고증을 거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장강명은 “한국 형사들이 수사하는 과정을, 과장된 액션이나 초능력 같은 도구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보자”는 목표가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책 말미에는 강력계 형사 여럿의 실명이 거론된다. 그들을 심층 인터뷰한 덕에 강력계 형사들이 일하는 방식과 직업 세계를 생동감 있게 그리는 데 성공했다. 정의와 복수, 범죄자의 인권에 관해 내적으로 갈등하는 형사들의 내면이 오롯이 담겼다. 아이템 회의의 특징 등 디테일도 살아 있다. 기자로 단련된 취재력 덕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짝수 장과 홀수 장을 떼어놓고 보면 각각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둘이 한 뭉텅이가 됐을 때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한국형 범죄·철학 소설이라는 아주 독특한 라벨을 붙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삶이 묻고 지혜가 답하다
    전근룡 지음. EBS BOOKS. 320쪽. 1만8000원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얼마만큼 잘해 줘야 할까. 상대의 마음을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될 때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까. 고민을 줄이는 방법은 있을까. 살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일상생활 속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역사와 고전에서 찾아낸 책이다. 저자는 “고민을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보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수처작주라는 고사성어처럼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내 마음을 지배하려 드는 고민을 노예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반드시 고민하는 사람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어맨다 고먼 시집. 정은귀 옮김. 은행나무. 248쪽. 1만5000원

    어맨다 고먼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축시를 낭송한 미국 최초 청년 계관시인이다. 슈퍼볼 역사상 최초로 축시를 낭독하는 등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1년을 빛낼 인물 100인에 그를 포함했다. 시집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어맨다 고먼이 경험한 슬픔과 고통의 기록이자 앞으로 살아갈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채롭고 창의적인 형식의 그의 시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축가’ ‘독창적 문학의 부활’이라는 찬사가 뒤따른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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