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기본소득 ‘백가쟁명’ 최대 400조 vs 최소 2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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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04-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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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권은 “전 국민에 동일 금액 지원”

    • 야권은 “전 국민에 기본적 생활수준 보장”

    • 이재명案 소액이라도 일단 시행

    • 기본소득당案 月 60만 원 목표로 재원 마련

    • 윤희숙案 기본적 생활권만 보장하자

    • 오세훈案 소득 따라 차등 지원해야

    • 김세연案 기본소득, 저소득층 지원 투 트랙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월 17일 집무실에서 기본소득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월 17일 집무실에서 기본소득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일하지 않아도 전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금액이 지급된다.” 

    기본소득의 정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색 정책 정도로 치부됐을 이야기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자 정부는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사례가 생기자 파격적 정책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제 기본소득은 한국의 정당이라면 응당 생각해야 할 주제가 됐다. 

    정치권은 이 유행을 놓치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부터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여권 인사는 물론, 2020년 6월에는 야권까지 기본소득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여·야가 기본소득이라는 깃발 아래 뜻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진리가 다른 것처럼, 각 정당과 정치인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은 모두 다르다. 기본소득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야 인사들이 각자 생각하는 기본소득은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원래 기본소득은 선별적 복지의 약점을 극복하려고 만들어진 대안 중 하나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정책이 다각·다양화되면서 제도를 이용해 부정하게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거나, 제도의 미비로 지원이 절실한 사람이 수혜 대상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한다. 기본소득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정부가 복지정책 운영을 포기하고 정책 운영에 드는 비용을 전부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발상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한다는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제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복지정책

    하지만 여권의 기본소득 정책 대표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말하는 기본소득은 이와는 다르다. 전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나, 이 지사는 기존 복지정책을 정리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이 지사는 2017년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시절부터 이 같은 방식의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여권에서도 그의 주장에 의문을 표한다. 기존의 복지정책을 유지한 채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월 4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이 없다. 기본소득을 실현하려면 모든 복지혜택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2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보유 자산, 노동 여부, 소득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를 하면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를 모두 통·폐합해도 월 20만 원을 지급하기 어렵다. 기초연금, 기초생활수급제, 실업수당, 아동수당을 유지하며 기본소득을 하자는 것이라면 그건 ‘기본’ 없는 기본소득이거나 재원 대책 없는 탁상공론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단 시행해 보면 국민소득 만족할 것”

    이 지사는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을 늘려 가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적은 액수라도 기본소득을 일단 도입해 국민이 이를 체험해 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추후 국민의 동의를 얻어 증세 등의 방안을 통해 재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재원 마련속도에 따라 기본소득 지급액을 늘려가며 최종적으로는 전 국민에게 매 달 50만 원을 지급할 것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관련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는 단계별로 기본소득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은 단기, 중기, 장기 목표로 구분할 수 있다. 단기 목표에서는 국민 1인당 연 50만 원을 지원한다. 이 단계에서는 증세가 필요하지 않다. 이 지사는 2월 7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지난해 정부재난지원금 수준인 1인당 25만 원을 연 2회 지급하려면 26조 원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재정의 5%, 지난해 GDP의 1.3%에 불과한 수치다. 일반예산 조정으로 (재원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기, 장기 목표는 1인당 연 100만 원. 장기 목표는 1인당 연 60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본격적 증세가 필요하다. 이 지사는 같은 글에서 “(중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5조 원이 추가로 필요한데 연간 50조~60조 원에 이른 조세 감면 분을 절반가량 축소하면 조달 가능하다”고 밝혔다. 조세 감면 혜택철폐는 사실상 증세와 같다. 

    장기 목표 달성에는 연간 30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지사는 재원 마련 수단으로는 탄소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신설 등 새로운 세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탄소세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석유·석탄 등 각종 화석 연료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으로 국내 도입을 검토 중이다. 데이터세는 데이터를 이용해 경제활동을 한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관련 학계에서 논의하는 단계다. 국토보유세는 주택, 상가 등 땅을 소유한 모든 사람에게서 세금을 걷자는 발상이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OECD평균(GDP 대비 20.1%)의 절반 수준(GDP 대비 11%)이다. 저부담·저복지 사회에서 중부담·중복지 사회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증세는 불가피하다. 대다수 국민이 기본소득의 이점과 그 목적을 이해하기만 하면 기본소득을 위한 증세에 반대하기보다는 찬성 의견을 표할 것”이라 밝혔다.

    “기본소득은 부의 재분배 수단”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지호영 기자]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지호영 기자]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기본소득당의 기본소득 논의도 이 지사의 논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재정 부담이 다소 있더라도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단일 쟁점 정당이다. 

    기본소득당은 매달 전 국민에게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60만 원이라는 금액을 책정한 이유는 소득이 없는 사람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20년 기초생활급여는 월 52만 7168원. 기본소득당은 이보다 많은 60만 원을 지급하면 전 국민의 생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각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전 국민에게 매달 월 60만 원씩 나눠주려면 연간 약 374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2020년 사용한 정부 예산의 73% 수준이다. 

    재정에 부담이 되지만 기본소득당은 증세를 하더라도 기본소득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기본소득을 부의 재분배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금·사업·양도 등 각종 소득에 대한 세금과 데이터세, 탄소세를 통해 기본소득에 드는 재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이러한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뿐만 아니라 현재 당면한 부동산 불평등과 기후위기, 데이터 독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지원 놓칠 수도

    이 지사는 기존의 복지정책을 정리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다고 봤으나 기본소득당의 생각은 달랐다. 기본소득당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그간 선별적으로 지급하던 기초생계급여, 기초노령연금, 아동수당,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현금 급여는 전부 기본소득으로 통합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도 이 지사와 마찬가지로 단번에 전 국민에게 월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기본소득당은) 월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바뀔 수 있다. 정책이 현실화되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소득분위 하위 70%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시작해 차츰 수혜층을 늘려가는 방식도 사용할 수 있다. 일단 기본소득을 도입한 뒤 정치권과 합의를 통해 지원 대상과 금액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혔다. 

    경제학자들은 이 지사나 기본소득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7월 한국경제학회는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논거8개를 정리해 34명의 경제학자에게 동의·비동의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논거 중 ‘사회의 공공재원을 국민소득을 통해 배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응답자의 73%가 이 논거에 반대의견을 표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기본소득으로 전 국민에게 유의미한 금액을 지원하려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 부채나 증세로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최하위 계층에게 지급하던 복지예산을 일부 사용해 기본소득으로 지급해서도 안 된다. 최하위 계층으로 가는 금액이 줄어들어 빈곤층은 더 빈곤해지고 일반 국민은 푼돈만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취약계층 지원으로 빈곤탈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당 경제혁신위원장 시절 기본소득안을 만들었다. [홍중식 기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당 경제혁신위원장 시절 기본소득안을 만들었다. [홍중식 기자]

    한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기본소득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전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은 포기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전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윤 의원의 기본소득안이다. 

    윤 의원이 제시한 취약계층의 기준은 중위소득 50%선이었다. 중위소득은 대한민국의 국민의 소득을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중간의 소득을 말한다. 2020년 기준 4인 가족 중위소득은 연간 5700여 만 원. 중위소득 50%의 연간 소득은 2850만 원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610만 명, 328만 5000가구. 필요한 예산은 약 21조 원이다. 

    윤 의원은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 원을 지원하려면 매해 202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매달 100만 원을 버는 4인 가구에 30만 원을 지원해도 이들의 소득은 여전히 빈곤선 아래다. 빈곤층만 선별 지원한다면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원은 현금지원 복지제도를 정비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제도인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4.3조 원), 기초연금(13.2조 원), 근로장려금(4.5조 원), 자녀장려금(0.7조 원) 등을 통폐합해 소득지원 재정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도 지난해 6월 비슷한 기본소득안을 내놨다. 기본소득안의 이름은 ‘안심소득’. 기준소득을 정하고 그 이하의 소득을 올린 계층에 일정액을 하후상박(下厚上薄)으로 차등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오 후보 측이 정한 4인 가구의 기준 소득은 연 6000만 원. 연 소득이 2000만 원이면 기준소득과의 차액(4000만 원)의 반액을 지급한다. 필요 예산은 약 53조 원이다. 재원 마련은 윤 의원 안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지원예산을 이용할 계획이다. 오 후보는 2월 18일 안심소득을 서울시장 선거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다.

    기본소득 하려면 국가행정 시스템 고쳐야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자신의 기본소득안인 ‘안심소득’을 서울시장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7월부터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해 왔다. [동아DB, 조영철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자신의 기본소득안인 ‘안심소득’을 서울시장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7월부터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해 왔다. [동아DB, 조영철 기자]


    윤 의원과 오 후보의 기본소득안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이 금액을 바탕으로 저소득자에게 지원을 해 주는 정책이다. 

    김세연 전 의원은 ‘마이너스 소득세’와 여권의 기본소득을 섞은 방안을 만들고 있다. 김 의원 의 기본소득안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국민 한 명당 월 30만 원을 지원한다. 여권의 국민소득과 비슷한 형태다. 김 전 의원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적용 대상 1인 가구의 생계급여 평균 지급액이 29만9600원, 65세 이상 노년층에 대한 기초연금 1인당 지급액이 30만 원이다. 기본소득이라면 이 정도의 금액은 지원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단계는 1단계 제도 도입 10년 후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저소득층 지원에 나선다. 골자는 윤 의원의 기본소득안과 같다. 마이너스 소득세 방식을 이용해 중위소득 50%에 미달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소득을 보장한다. 김 전 의원의 주장대로 1, 2단계가 완료된다면 자연히 전 국민은 매달 기본소득 30만 원 이상을 받게 된다. 동시에 전 국민이 중위소득 50% 이상의 소득도 보장받게 된다. 김 전 의원은 이 상태를 3단계로 봤다. 

    성질이 다른 두 가지의 기본소득이 동시에 지급되니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김 전 의원은 “기본소득 3단계에 돌입하면 최대 연 500조 원 가량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 이유는 복지정책을 정리해 재원을 마련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기본소득과 취지가 동일한 복지 정책은 통합 운영할 수 있으나 주거, 의료, 교육 등의 공적 서비스는 (기본 소득 시행 뒤에도) 계속 별도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김 전 의원의 주장에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기본소득에 드는 예산이 막대한 데다 김 전 의원이 아직 세부안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의) 기본소득안이 실질적으로 정치권의 구체적인 입법이나 정책 논의로 이어지려면 많은 단계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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