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불닭볶음면 ‘산파’ 김정수 횡령 유죄 받고도 경영권 틀어쥐고 승승장구

[거버넌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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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02-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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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양식품 부회장 겸 ESG 위원장 겸 대표이사 겸 해외영업본부장

    • 추미애가 족쇄 풀어준 후 경영 복귀… 맡은 직함 4개

    • 소액주주 반발·국민연금 견제했지만…

    • “미국·유럽에선 웃음거리 될 일”

    • 삼양식품 “노력한 만큼 주주들도 납득할 것”

    지난해 9월 김정수 부회장이 삼양식품 창립 60주년 비대면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삼양식품]

    지난해 9월 김정수 부회장이 삼양식품 창립 60주년 비대면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삼양식품]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수(58) 전 삼양식품 총괄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회장은 전인장(59) 삼양식품 회장의 부인으로 창업주 고(故) 전중윤 전 회장의 며느리. 김 부회장은 2020년 1월 회삿돈 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경영권을 내려놓았다가 같은 해 10월 법무부의 취업 승인으로 경영에 복귀한 바 있다.

    부회장 겸 ESG 위원장 겸 대표이사 겸 창업주 며느리

    2018년 4월 15일 김 부회장은 남편 전 회장과 함께 검찰로부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2008년 8월~2017년 9월 삼양식품 계열사 내츄럴삼양(현 삼양내츄럴스)과 프루웰(현 삼양프루웰) 등으로부터 라면 등 식품을 제조·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기자재를 납품받은 뒤 물품 대금을 빼돌렸다는 것. 김 부회장 부부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대금을 지급받는 방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 횡령한 돈은 주택 수리비용, 승용차 리스료·보험료, 신용카드 대금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됐다.

    2020년 1월 21일 대법원은 김 부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80시간의 사회봉사, 전 회장에겐 징역 3년형을 확정했다. 전 회장은 2019년 1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후 수감돼 올해 1월 석방됐다. 특경법 14조는 징역형은 집행 종료로부터 5년, 집행유예형은 집행 종료로부터 2년간 범죄행위와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김 부회장은 2020년 3월 16일 대표이사에서 사임하며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이때 40억6600만 원의 퇴직금도 받았다.

    김 부회장은 취업제한 해제로 2020년 10일 12일 총괄사장직을 맡아 경영에 복귀했다. 취업제한 해제는 법무부 장관의 승인으로 가능하다. 삼양식품 관계자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해외 사업이 성장하는 중대한 시기에 김정수 부회장이 경영의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취업제한 해제를 요청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이를 승인해 김 부회장의 취업제한은 해제됐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3월 26일 주주총회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내이사 자리를 되찾았다. 같은 해 12월 17일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단독 대표이사와 해외영업본부장을 겸했다. 이로써 김 부회장이 맡은 직함은 부회장, 대표이사, ESG위원장, 해외영업본부장 4개가 됐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16년 26%에서 2020년 57%로 성장했고 지난해엔 60%를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사업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김 부회장이 회사의 실권을 틀어쥔 셈이다.



    “회삿돈 횡령 경영인 복귀 어불성설”

    전문가들은 김정수 부회장의 행보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기업 측에선 흔히 ‘경영 공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회삿돈을 훔친 사람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부부를 동시에 구속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관행으로 이미 김 부회장의 편의를 봐준 셈이다. 법무부가 특경법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했다. 기업과 기업인을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성후 ESG중심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김정수 부회장이 ESG 개념을 사내이사 복귀 도구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든다. ESG 경영은 반드시 외부의 평가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회삿돈을 횡령한 전적이 있는 사람이 ESG 위원장이라면 ESG 경영에 설득력이 생길지 의문이다. 미국, 유럽의 선진국에선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경영 복귀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김정수 부회장이 지난해 사내이사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자 일부 삼양식품 소액주주들은 주주명부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해 3월 11일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부터 허용 결정을 받았다. 주주명부 열람 등사 청구는 회사 측에 주주명부의 열람과 등사를 요청하는 행위로 통상 경영권 분쟁이나 주주 집단소송을 앞두고 행사된다. 당시 소액주주 측은 법무법인 창천을 통해 “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지 고작 1년이 지난 김정수 총괄사장이 일선에 복귀해 ESG 경영을 강화한다고 선언한 것은 주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2020년 10월 김정수 부회장이 당시 총괄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하자 같은 해 11월 삼양식품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며 견제 신호를 보냈다.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경우 지배구조, 배당, 이사 선임 및 해임 등 주요 경영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국민연금은 지분 5.98%를 소유한 3대 주주였다.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은 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주주명부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 이후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제기되진 않았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주주들 대부분은 주식을 매도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민연금도 김 부회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민연금은 주식 비중을 5.43%로 낮추며 다시 ‘단순투자’로 주식 보유 목적을 변경했다. 약 한 달 후엔 주식 비중을 4.36%로 더 낮췄다.

    김우찬 교수는 “소액주주들이 경영진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소액주주들은 필히 연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한다. 결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주근 대표는 “국민연금의 견제를 기대하긴 힘들다. 주주총회의 표결 싸움으로 가면 오너와 그에 대한 우호 지분이 훨씬 많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 국민연금이 투자 목적을 변경해도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삼양식품 본사. [삼양식품]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삼양식품 본사. [삼양식품]

    무소불위 권력 가능케 한 ‘지배구조’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배구조’가 꼽힌다. 문성후 소장은 “한국은 오너 일가가 다량의 지분을 소유해 자신들의 이익 위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박주근 대표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는 지분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형태다. 지배구조가 취약해 횡령·배임 등 일탈 행위가 빈번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양식품의 지배구조는 33.26%의 지분을 소유한 지주사 삼양내츄럴스를 1대 주주로 김정수 부회장(4.33%), 전인장 회장(3.13%) 등 오너 일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한 형태다<표1 참고>.

    삼양내츄럴스는 사실상 ‘가족 회사’다. 2021년 4월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수 부회장이 42.2%, 전인장 회장이 21%, 에스와이캠퍼스(현 아이스엑스)가 26.9%로 90.1% 지분을 취득하고 있다. 에스와이캠퍼스는 개인 회사로 지분 100%를 전인장 회장의 장남 전병우(28) 삼양식품 전략운영본부장(이사)이 소유하고 있다<표2 참고>. 즉, 삼양식품의 지분 중 약 46%를 오너 일가가 온전히 소유한 셈이다.

    “윤리보다 제도에 기대해야”

    삼양식품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김정수 부회장은 당사의 해외 매출 중 약 90%를 차지하는 ‘불닭볶음면 시리즈’를 개발한 당사자다. 회사 경영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2020년 10월 김 부회장이 회사에 복귀한 이후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0월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경영 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했다. 비판적 시각을 이해하지만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주주들에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주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말보단 성과로 보이려 애썼다. 실적, 사회공헌 등 대내외적인 면에서 회사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끔 노력했다. 주주들도 충분히 납득하리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강화로 거버넌스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성후 소장은 “ESG의 초기 개념에서 G는 원래 E(Ethical·윤리)였다. 기업인에게 윤리 경영을 강조한 것인데, 현실에서 이뤄지기 어려웠다. 경영자의 윤리 의식보다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 G로 바뀐 것이다. 개인의 윤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주근 대표는 경영진 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로선 처벌이 너무 미약하다. 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경우 ‘엔론 사태(2001년 미국의 천연가스 기업 ‘엔론’에서 벌어진 분식회계가 밝혀진 사건)’ 때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했다. 물의를 일으킨 경영진의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다.”
    김우찬 교수는 “특경법 및 상법에 임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함이 바람직하다. 사내이사의 자격도 사외이사 자격만큼 까다롭게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소액주주들을 대표해 물의를 일으킨 경영진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국민연금 대표소송’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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