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속옷보다 은밀한 쌍방울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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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10-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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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조사에서 北 ‘갑툭튀’한 까닭

    • 2008년 이화영·리호남 만남이 起源

    • 北 공작원 리호남=영화 ‘공작’ 속 ‘리명운’

    • 北 광물 개발 사업에 눈 돌렸지만…

    • 요동친 주가, 이익은 누가? “김성태, ‘작전’ 전문가로 통해”

    • 라임·대장동·변호사비 대납… 얽히고설킨 의혹

    • 수상한 전환사채… “양아치들이 하는 짓”

    • “김성태 체포가 의혹 해결 실마리”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쌍방울그룹은 정·재계에 걸쳐 수많은 의혹에 얽혀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쌍방울그룹 본사 사옥. [뉴스1]

    쌍방울그룹은 정·재계에 걸쳐 수많은 의혹에 얽혀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쌍방울그룹 본사 사옥. [뉴스1]

    10월 14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수원지검은 쌍방울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 차량 등 2억6000만 원가량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 전 부지사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전 부지사는 2019년 1월과 5월 중국 선양에서 쌍방울과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및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가 경제협력 사업 관련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을 도와준 대가로 쌍방울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와 외제 차 등 차량 3대를 비롯해 2억6000여 만 원을 받은 혐의로 9월 28일 구속된 상태였다. 자신의 측근을 쌍방울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임금 9000여 만 원을 받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의 자녀가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컴퍼니에 입사한 것과 차명으로 보유한 쌍방울그룹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지분 1억 원에도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2004~2008년 서울 중랑구에서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2017년 3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로 있었다.

    이 전 부지사와 함께 쌍방울그룹도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쌍방울그룹은 수많은 정치·경제계 굵직한 이슈에 이름을 올렸다. 라임 사태, 대장동 의혹, 이스타항공·쌍용차 인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화영 전 부지사 기소와 얽혀선 대북사업 유착 및 주가조작, 달러 밀반출 혐의까지 받고 있다.

    쌍방울은 사업보고서에서 “당사는 내의류 제조 및 유통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사를 소개한다. 메리야스, 팬티 등 내의류가 주력 상품이다. 내의는 겉옷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착용한 사람에게 피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쾌적함을 준다. 쌍방울도 비슷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은 아니나 알게 모르게 많이 쓰고 있는 제품을 만드는 그런 ‘보일 듯 말 듯’한 기업.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실소유주’로 여겨지는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해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를 향해선 ‘조폭’이라거나 주가조작, 이른바 ‘작전’ 전문가라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쌍방울그룹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쌍방울과 정·재계 유착의 뿌리가 깊다”고 증언한다. 이 회사, 대체 정체가 뭘까.

    이화영-리호남-아태협-쌍방울로 이어진 고리

    쌍방울은 북한 광물 개발 사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10월 4일과 6일 CBS ‘노컷뉴스’가 국정원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쌍방울은 2018년 말부터 북한의 대남 민간부문 경제협력을 전담하는 민경련과 광물자원 개발에 대한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협의했다. 국정원 문건은 남측 인사가 북측 민경련 소속 공작원 리호남과 만나 나눈 주요 대화를 정리한 요약본이다.

    문건에서 리호남은 쌍방울이 북한 광물자원 개발의 대가로 “내의 50만장을 보내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금액으로 치면 1000만 달러”라며 “우리 돈 약 100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 “상장회사 또는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를 통해 북측 사업에 투자해 발생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사업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대화는 2018년 12월 중국 선양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2019년 1월 나노스는 ‘광산 개발업’과 ‘해외자원 개발업’ 등을 신규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현대아산 출신 임원과 통일부 전 차관 등도 임원으로 영입했다. 이 무렵 이 전 부지사가 설립한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 광물자원 개발 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남북 광물자원 협력’을 주요 사업으로 선언하며 개발 필요성을 띄웠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그룹 ‘실소유주’로 꼽힌다. 5월 31일 해외로 출국해 도피 상태다. [새만금개발청]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그룹 ‘실소유주’로 꼽힌다. 5월 31일 해외로 출국해 도피 상태다. [새만금개발청]

    같은 해 5월 그룹 ‘실소유주’로 꼽히는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는 중국 선양을 찾아 민경련 관계자와 만나 나노스가 북한과 희토류 등 광물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시기 나노스 주가는 대북사업 기대감으로 5000원 선에서 9000원대로 급등했다. 실제로 사업이 이뤄지진 않았다. 10월 1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쌍방울은 2019년경 두 차례 이상 임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달러화 지폐를 밀반출했다. 이들은 중국행 비행기를 탈 때 책을 포함한 개인 소지품 속에 달러를 숨기는 수법으로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검찰은 광물 사업권 약정 대가 등의 명목으로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지불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부지사 외에 축이 하나 더 있다. 안부수 회장이 이끄는 아태평화교류협회(이하 아태협)다. 아태협은 2004년부터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사업을 해온 단체다. 안 회장과 김 전 회장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2019년 1월 안 회장은 나노스 사내이사로 영입됐다.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10년간 아태협을 후원하며 돈독한 인연을 쌓았다. 아태협은 쌍방울 본사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9월 2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 들어가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혐의로 9월 28일 구속된 데 이어 10월 14일 기소 됐다. [뉴스1]

    9월 2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 들어가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혐의로 9월 28일 구속된 데 이어 10월 14일 기소 됐다. [뉴스1]

    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에서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리명운’은 북한 공작원이자 경제 관료 ‘리호남’이 모델이다. [CJ엔터테인먼트·NEW]

    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에서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리명운’은 북한 공작원이자 경제 관료 ‘리호남’이 모델이다. [CJ엔터테인먼트·NEW]

    아태협은 2018년 11월과 2019년 7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각각 경기 고양시와 필리핀 마닐라에서 경기도와 공동 주최했다. 2018년 개회식에는 당시 경기지사 이재명 대표, 이화영 평화부지사 등과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관료가 참석했다. 경기도가 비용을 지원해야 했지만 경기도의회가 관련 예산안 통과를 반대하면서 차질이 빚어져 아태협이 비용을 부담하게 됐고, 이는 쌍방울의 기부금으로 충당됐다. 국세청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8~2020년 쌍방울그룹은 아태협에 약 13억 원을 기부했다. 10월 5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같은 기간 경기도는 북한 묘목 지원, 어린이 영양식 지원 등의 명목으로 아태협에 약 2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2018년 11월 16일 경기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왼쪽)이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해당 행사는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쌍방울그룹이 후원했다. [뉴스1]

    2018년 11월 16일 경기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왼쪽)이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해당 행사는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쌍방울그룹이 후원했다. [뉴스1]

    “김여정 평창 방문 후 리호남 재등장”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난 쌍방울 대북사업의 핵심 인물은 이화영, 리호남, 안부수, 김성태 4인으로 압축된다. 이 관계의 기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4월 2일 ‘주간동아’ ‘안희정과 3李 주연 드라마 희극인가 비극인가’ 제하 기사에 따르면 2006년 노무현 정부는 비선을 통해 남북 특사 교환 및 정상회담을 추진한다. 이에 같은 해 10월 당시 노 대통령 측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열린우리당 의원 이화영 전 부지사가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만난다. 이화영 전 부지사와 리호남 사이 인연의 시작이다. 리호남은 영화 ‘공작’(2018)에서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리명운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이다. 1953년생으로 추정된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김일성대 상급교원으로 일하면서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리철운’ ‘리철’ ‘강호진’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본명은 리철이지만 리호남으로 가장 오래 활동했다. ‘처장’ ‘심의처장’ ‘참사’ 등 직위나 소속도 그때그때 달랐다. 1990년대 후반 안기부와 신한국당·한나라당 인사가 북한을 끌어들여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북풍’,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총풍’ 사건 때 깊이 관여했다. ‘공작’을 벌이기도 했지만 ‘비즈니스’에도 밝았다. 한국 대기업 오너들을 직접 만나 사업을 논하기도 했다.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이 숙청된 후 자취를 감췄는데, 쌍방울 대북사업에 다시 활동이 포착된 것이다. 남북경협사업에 정통한 대북사업가 A씨는 “리호남과 20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공작원이라기보다 외교관에 가깝다”고 했다. A씨와 나눈 문답이다.

    리호남은 현재 북한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알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안보수석실 고문 정도라고 할까.”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과 같이 숙청된 것 아니었나.

    “아니다. 다만 장 전 부장이 살아 있을 때 전면에서 활동하다 사후에 일이 싹 끊긴 건 사실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 김여정 부부장이 방남한 후 다시 대남 라인과 접촉을 재개했다. 그때 리호남이 이화영과 접촉한 것 같다. 내게도 사업을 제안했다. ‘남북관계가 풀렸을 때 뭘 하면 좋겠느냐’며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닥치며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대남활동을 하는 건가.

    “지난해 은퇴한 듯하다. 우리 나이로 벌써 일흔이니 그럴 때도 됐다.”

    또 다른 대북사업가 B씨도 “평창올림픽이 리호남과 쌍방울이 연결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의 설명이다.

    “안부수 회장은 원래 남북경협 업계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낸 사람은 아니다. 아태협 자체가 본업이 ‘경제’는 아니었으니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중엔 당연히 현재 북한 지역 출신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북한과 연을 맺게 됐을 것이다. 북한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던 인물이 평창 올림픽에서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온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다. 김여정이 평창올림픽을 찾으며 안 회장의 위상이 올라갔는데, 이것이 이화영-리호남-아태협-김성태 라인을 형성했다고 본다. 쌍방울은 대북사업에서 편의를, 이화영 전 부지사는 사업체를 원했을 것이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아태협과 같은 민간단체를 이용하면 사업이 수월하다.”

    A씨와 B씨는 공통적으로 쌍방울의 대북사업 진정성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실제 목적은 ‘호재’를 통한 주가 부양, 이를 통한 차익실현에 있다는 것. B씨는 “경기도와 같은 공식적 단체와 맺어지면 주가에 좋은 ‘재료’가 된다. 당시 쌍방울이 대북 관련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김성태 전 회장은 업계에서 이른바 ‘작전’ 전문가로 여겨진다. 호재를 터뜨려 주가를 올려서 이득을 챙기고, 이를 통해 정치권과 인맥을 맺는 수법을 자주 써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사채업으로 재산 불려”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한 의혹은 그가 쌍방울그룹을 인수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쌍방울그룹의 기원은 1954년 전북 익산시에서 이봉녕-창녕 형제가 설립한 ‘형제상회’다. 1964년부터 ‘쌍방울표’ 브랜드를 썼고 1977년 쌍방울로 사명을 바꿨다. 1980~1990년대 중반까지 무역·전자·리조트 분야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때 재계 50위권까지 올랐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독이 돼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중 분해됐다. 애드에셋, 대한전선 등으로 손바꿈되다 2010년 김성태 전 회장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 ‘레드티그리스’에 인수됐다.

    인수 자금의 원천은 ‘고리대금업’으로 전해진다. 9월 16일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전주에서 활동하다가 상경해 업소를 운영했고,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인수 후엔 활발한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주가를 부양한 후 시세차익을 통해 다시 자금을 마련하곤 했다. 현재 쌍방울그룹 계열사로는 광림(특장차·크레인·소방차 제조·판매업체), 쌍방울(속옷·잠옷 제조업체), 비비안(여성 속옷 제조업체), 디모아(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아이오케이컴퍼니(영화·방송프로그램 제작 관련 업체), SBW생명과학(모바일 광학부품 제조업체), 미래산업(반도체 장비업체) 등이 있다.

    지난해 이스타항공, 올해 쌍용차 등 대어급 기업이 매물로 나왔을 때도 인수 의지를 드러내며 적극 참전했다. 그때마다 쌍방울, 광림 등 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인수 ‘진정성’도 의심받았다. 지난해 쌍방울그룹의 연간 매출은 4400억 원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1000억 원을 밑돌았다. 쌍용차가 3665억 원에 최종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다. 특히 쌍용차 인수 핵심 고리로 내세웠던 광림은 5년간 매년 200억~300억 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김성태 전 회장의 ‘전력(前歷)’이 의혹을 부추긴다. 2014년 김 전 회장은 2010년 쌍방울 인수 과정에서 조폭 등 조직을 동원해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업계에서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배상윤 KH그룹 회장도 이에 동참해 당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쌍방울 2대 주주 지분을 인수한 배 회장과 공모해 80개의 차명계좌로 수천여 차례에 걸쳐 고가·물량 소진 매수, 허수 매수 주문 등으로 시세조종을 했으며 이를 통해 350억여 원의 이득을 챙겼다. 특수부 검사 출신 C 변호사는 “전형적 ‘기업형 조폭’의 행태”라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이다.

    누구를 위한 전환사채인가

    10월 6일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설립한 사단법인 동북아경제평화협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 전 부지사 재임 시절 쌍방울그룹과 북한 사이 광물자원 개발 합의 자리에 동석했다는 진술을 확보해서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여의도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사무실 모습. [뉴스1]

    10월 6일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설립한 사단법인 동북아경제평화협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 전 부지사 재임 시절 쌍방울그룹과 북한 사이 광물자원 개발 합의 자리에 동석했다는 진술을 확보해서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여의도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사무실 모습. [뉴스1]

    “대개 조폭은 고리대금업으로 자금을 불린다. 이를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에 꿔주고 ‘투자’라는 명목으로 M&A를 단행한다. 버젓한 사업가로 ‘신분 세탁’을 하는 셈이다. 신분을 세탁하고 나면 정계에 줄을 댄다. 정계 유력 인사와 연결되면 사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M&A라고 해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경영진이 M&A 등 호재를 흘리고 주가가 폭등하면 주식을 처분해 이득을 챙기는 행위는 주식시장에서 흔하다.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는, 해선 안 될 일이지만 위험 대비 수익이 훨씬 크니 자주 벌어진다. 전문적 지식이 있는 회계사, 변호사 등의 조력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정치 영역에서도 쌍방울그룹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먼저 1조6000억 원의 금융 피해를 초래한 ‘라임자산운용 사태’다. 2020년 10월 서울남부지법은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에게 현금 5000만 원을 받고 2019년 9월 라임에 대한 금감원 검사가 조기 종료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는 엄모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엄씨는 김 전 회장 비서실에서 일하며 이후 쌍방울 계열사 사장을 맡기도 한 김 전 회장 측근이다. 엄씨의 1심 판결문에는 “김성태를 통해 이종필을 소개받은 뒤 이씨의 부탁으로 현금을 수수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혔다.

    20대 대선 국면에서 불거진 ‘대장동 의혹’과도 얽혔다. 2018년 11월 쌍방울이 발행한 전환사채(CB)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의 자금과 연관돼 있다는 것. 또 지난해 10월 14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구치소를 나설 때 최우향 씨가 취재진에 둘러싸인 김씨를 호위해 차량에 태워 보냈는데, 최씨는 2013년 쌍방울 대표를 지내고 이후 쌍방울그룹 부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최씨는 당시 취재진에게 “만배 형님하곤 20년 가까이 됐다”며 우애를 자랑했다. 또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최우향을 통해 김성태 전 회장을 알게 됐다. 전화 통화하는 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쟁점이 되는 사건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다. 이는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2018년 10월부터 2020년 9월까지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1·2·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에 이르기까지 약 2년에 걸친 재판에 얽힌 사건이다.

    당시 이 대표는 30여 명의 변호인을 선임했다. 화우, 중원, 김앤장 등 10여 곳 로펌 소속에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사장 출신도 포함돼 있는 ‘매머드급’ 변호인단이었다. 수임료만 수십억 원에 달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난해 10월 18일 이 대표는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선임한 변호사들은) 대부분 사법연수원 동기거나 대학 친구들”이라며 “수임료는 2억5000만 원”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로 이뤄진 정당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이하 깨시민당)은 이 대표를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출신 이태형 변호사가 이 후보 사건을 맡아 수임료로 현금 3억 원과 3년 뒤에 팔 수 있는 주식 20억 원어치를 받았는데도 이 지사가 거짓 해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쌍방울과 사건의 연결 지점은 이곳이다.

    당시 깨시민당과 국민의힘은 ‘3년 뒤에 팔 수 있는 주식’이 쌍방울이 발행한 전환사채라고 봤다. 10월 21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감사에서 “쌍방울이 5명의 개인투자자에게 수익을 몰아준 정황이 있다”며 “이들이 이재명 대표의 변호인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근거는 이화영 전 부지사(쌍방울),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 회장(SBW생명과학), 이태형 변호사(비비안) 등 이 대표 관련 인물들이 쌍방울그룹 사외이사로 대거 활동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근거는 ‘전환사채의 흐름’이다. 2020년 4월 2일 쌍방울은 45억 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전환사채는 기업이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데, 쌍방울은 이 돈으로 별다른 사업을 하지 않다가 지난해 3월 4일 전환사채 전부를 회수했다. 6월 10일 개인투자자 5명이 이를 48억6000만 원에 모두 구입해 오후 주식으로 전환 청구했다. 당시 쌍방울 주가는 이스타항공 인수 이슈와 맞물려 급등한 상태였다. 이날 주식 가치는 약 1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쌍방울이 주식을 보유하거나 매도했다면 발생할 이익을 개인투자자 5명이 가져간 셈이다. 배임 시비가 불거질 수 있으며 개인투자자 5명이 쌍방울 내부인이라면 횡령이 될 수 있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융통하려면 주주총회와 각종 인허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전환사채 발행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환사채를 나눠준 뒤 호재를 터뜨리면 손쉽게, ‘합법’의 외관을 쓴 채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양아치’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김성태 체포 어려워… 내부고발·심리전 이용해야”

    6월 23일 검찰은 쌍방울 본사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해 쌍방울의 전환사채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7월 18일 쌍방울그룹은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과 관련한 호소문을 통해 “이재명 대표와 당사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9월 1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나와 쌍방울의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김성태 전 회장이 의혹의 ‘키 맨’으로 거론되지만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8월 30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5월 24일 쌍방울그룹의 주요 피의사실을 포함한 계좌 압수수색 영장 등이 유출됐고, 김 전 회장은 이로부터 일주일 뒤 출국해 동남아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인터폴에 김 전 회장에 대해 적색 수배를 내리고 여권을 무효화했지만 김 전 회장은 이를 비웃듯 ‘호화 도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9월 18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한국 음식을 즐기며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쌍방울 임직원을 통해 김치와 횟감 등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태국까지 공수받았다. 또 9월 30일 조선일보는 김 전 회장이 서울 강남의 고급 유흥업소, 이른바 ‘텐프로’ 여성 종업원을 자신의 도피처로 수차례 오게 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은 ‘장기 잠적’을 위한 현금도 확보했다. 9월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에 따르면 광림의 최대주주 칼라일홀딩스는 소유 주식 1443만8354주(15.92%) 전량을 주식회사 제이준코스메틱에 매각했다. 제이준코스메틱의 최대주주는 쌍방울그룹 계열사 아이오케이컴퍼니다. 내부거래다. 거래액은 225억 원에 달한다. 김 전 회장은 칼라일홀딩스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억 원이 훌쩍 넘는 현금을 얻게 된 셈이다.

    C 변호사는 “현재 조치로선 김 전 회장을 체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일단 내부고발을 기대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인터폴 적색 수배는 대개 수배 대상자가 공항이나 항만 등 여권을 사용해 출입국해야 하는 신원 확인 장소에서 주로 작동한다. 잠적하거나 여권을 위조할 때에는 소용이 없어진다. 그는 “아무래도 외국 수사기관은 자국의 일만큼 적극적으로 임해주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국내 기관이 직접 나서 사법권을 행사하면 국권 침해가 되니 어려운 문제”라며 “측근 및 조력자 체포·수사가 방안이 될 수 있다. 측근이 하나둘씩 체포되면 자신에 대한 비밀을 폭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 이는 범죄자에게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준다. 김 전 회장이 체포되면 모든 의혹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쌍방울그룹 및 김 전 회장 관련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쌍방울그룹에 수차례 연락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1일 이민구 깨어있는시민연대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현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의혹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1일 이민구 깨어있는시민연대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현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의혹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신동아 11월호 표지.

    신동아 11월호 표지.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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