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20대 리포트

20대에게 인기 있는 재래시장

동묘시장·광장시장 | “뉴트로 열풍 진원지”, 망원시장 | “망리단길 후광효과”

  • 구아모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손민지 고려대 대학원 미디어학부 2학년

    mdkah111@naver.com, smj2166@naver.com

    입력2019-10-10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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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래시장은 중년층이 주로 찾는 곳으로 여겨져왔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서울 시내 몇몇 재래시장엔 20대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뉴트로 열풍의 성지로 뜬 동묘 구제시장과 광장시장, 주택가 카페촌인 망리단길의 후광을 누리는 망원시장을 탐방했다.
    동묘 시장 풍경. [동아DB]

    동묘 시장 풍경. [동아DB]

    1990년대 유행한 패션이 요즘 10대·20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뉴트로(Newtro)’ 열풍이다.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로 ‘새로운 복고’를 의미한다. 레트로가 과거의 것에 대한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뉴트로는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과거의 것에 대한 10대·20대의 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묘 구제시장과 광장시장은 요즘 이 뉴트로의 성지로 뜨면서 젊은 층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하철 동묘역 3번 출구. 거리로 나서면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들려온다. 이어 한 무더기의 옷 무덤이 시야에 펼쳐진다. 이 속에서 괜찮은 옷을 건지려는 중년들 사이에서 젊은 고객들도 자주 목격된다.

    “1년 전부터 빈티지 편집숍 몰려”

    시장 쪽으로 더 들어가면 길이 50m 남짓한 골목의 양편으로 ‘빈티지(vintage) 편집숍’이 즐비하다. 편집숍(編輯과 shop의 합성어)은 다양한 브랜드의 의류 및 잡화를 판매하는 가게를 일컫는다. 이 중 J 편집숍 직원 이모(23) 씨는 “1년 전부터 이 일대에 20대를 겨냥한 빈티지 편집숍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 가게가 그 시작일 것”이라고 말했다. 

    매대엔 무지개색의 화려한 하와이 셔츠에 날염 티셔츠, 가수 ‘소방차’가 입었을 법한 작업복, 체인이 주렁주렁 달린 카고 팬츠가 널려 있다. 가게 안엔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이 신중히 옷을 고르고 있다. 동묘 구제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백모(여·25) 씨는 “요즘 동묘가 홍대처럼 변했다”며 “젊은 세대의 감성을 겨냥한 옷가게가 어느 순간 많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골목 양편의 빈티지 편집숍엔 10대·20대 고객이 월등히 많았다. 

    동묘에서 버스로 15분 남짓한 거리의 광장시장도 1020세대로 활기가 넘쳤다. 1층 원단 시장의 틈새에 ‘비밀의 문’이 있다. 이 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미로 같은 통로 양쪽으로 구제 가게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단종된 운동화와 닥터마틴 워커가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가게도 있고, 버버리 블라우스로 가득 찬 매장도 있다. 세월의 때가 묻은 패션의 보고다. 가게 직원들은 “한번 보고 가라”고 호객행위를 했고 몇몇 고객은 가게 직원과 가격 흥정을 하다 가벼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친구 둘과 함께 방문한 김모(여·23) 씨는 “미로 같아서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유명 쇼핑몰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광장시장의 40년 ‘터줏대감’으로 최근 빈티지 대열에 합류한 K 옷가게의 직원 박모 씨는 “요즘엔 단종된 모델을 찾으러 오시는 고객이 많다. 저렴하고 희귀하고 개성이 있다고 여긴다. 고르는 재미도 있어 단골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미로에서 나만의 아날로그 감성 찾기’

    동묘 구제시장과 광장시장을 찾는 20대들은 이 시장 빈티지 패션숍의 가장 큰 매력으로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없다”라는 점을 꼽는다. 물론 최근 백화점에서 보는 신상품처럼 이 옷들도 과거엔 공장에서 대량생산됐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희소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광장시장을 찾은 한 20대 고객은 “발품을 들여서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찾았을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이 빈티지 의류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빈티지숍을 둘러보는 동안 겹치는 패턴의 옷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과감한 배색의 바람막이, 워싱 흔적이 뚜렷한 청바지 등 개성이 넘치는 옷이 많았다. 패션을 전공한 조세연(25) 씨는 “백화점이나 SPA 브랜드에서 보기 힘든 매력이 있어 구제시장을 찾는다. 유행하는 디자인에 구애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뉴트로 관련 광고 캠페인을 진행한 이노션 비즈니스의 이성헌 팀장은 “빈티지 의류는 ‘옛날 것이면서 동시에 새롭고 신박한 것’으로 젊은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패션의 개인화가 요즘 추세에도 맞다. 그래서 폭발력이 배가된다”라고 지적했다. 

    편모(18) 군과 최모(18) 군은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을 보고 끌려서 동묘 구제시장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의 박모(23) 씨는 “빈티지 옷을 소개하는 개인 유튜버들이 요즘 광장시장에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래시장의 뉴트로 열풍에 대해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아날로그 감성의 디자인이 새로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빈티지 의류는) 낡고 흠집이 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정신적인 충족감을 준다”라고 했다. 

    반면, 마포구의 재래시장인 망원시장은 요즘 부쩍 뜬 망리단길의 후광효과를 누리면서 20대를 붙잡고 있다. 용산구 경리단길 주택가의 카페촌에 이어 마포구 망원동 주택가 카페촌이 인기를 끌자 사람들은 이곳을 망리단길로 부른다. 

    평일 오전 11시, 망원시장은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한 상인은 “시장 방문객이 꾸준히 느는 추세다. 망리단길의 등장으로 젊은 방문객이 대거 합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소 가게 주인인 김모(56) 씨는 “인터넷으로 검색해 망리단길 맛집에서 식사하고 산책 삼아 망원시장을 둘러보는 게 데이트 코스가 됐다”라고 말했다.

    ‘망리단길~망원시장’ 코스

    젊은이들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인 망원시장 입구.

    젊은이들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인 망원시장 입구.

    시장 초입에서 매콤달콤한 냄새가 행인들의 코를 자극했다. 닭강정 등을 파는 이들 업소는 20대와 장년층 모두의 발걸음을 끌어들였다. ‘나 혼자 산다’ 같은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몇몇 가게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측에 따르면, 망원시장의 한 돈가스 판매점은 최근 매출이 142% 급증했다. 

    망원시장이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핫플레이스’가 된 또 다른 이유로는 ‘100% 신용카드 결제’ 환경이 꼽힌다. 망원시장의 경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특성화시장 육성사업지원 대상에 선정되면서 시장 내 거의 모든 업소가 신용카드 가맹점이 됐다. 또 가격표시제 등이 정착됐다. 

    그러나 적지 않은 상인은 “재래시장이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활성화되는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임대료가 오르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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