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인터뷰] ‘공간 설계의 미다스’ 조서윤 다원디자인 회장

“디자인은 소통과 공유… 삶의 가치 높이는 수단”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2-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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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균 180% 성장…매출 2300억 중견 기업

    • 25년 연속 흑자 경영, 전문성과 진솔함으로 승부

    •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필요 없어요”

    • “내가 남자였다면 지금보다 두세 배 키웠을 것”

    • 전문경영인 체제 100년 기업 됐으면…

    “한동안 ‘난 깍두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열심히 디자인하고 시공한 뒤 클라이언트(고객)의 불만도 해결하고…이제는 분업이 잘 이뤄져서 ‘깍두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웃음).” 

    조서윤(60) 다원디자인 회장은 막힘이 없었다. 가족 이야기부터 비즈니스 전략까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공간 설계의 미다스’라고 부르지만, 창업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업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저력은 진솔함이 아닐까싶다. 

    조 대표는 인테리어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1995년에 직원 3명과 다원디자인을 설립해 지난해 연매출 2300억 원의 중견 기업으로 키워낸 여성 CEO다. 무차입 경영을 하면서도 해마다 매출은 180%씩 증가한 셈이다. CJ, 제일기획, MBC, JTBC, 네이버, 카카오, 넥슨, LG, SK건설, 보스턴컨설팅그룹, 구글, 페이스북 등 국내외 유수 기업들의 인테리어는 그의 손을 거쳤다. 2월 7일 오후 서울 테헤란로 다원디자인빌딩에서 조 회장과 마주 앉았다. 

    -사무실이 심플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입니다. 

    “인테리어가 공간을 설계하고 꾸미는 거잖아요. 공간에 밸류(가치)와 개인 취향, 회사 이념도 넣는 거죠.”

    “나만의 길을 간다”

    다원디자인이 설계·시공한 네이버 클라우드 서비스 오피스. [다원디자인 제공]

    다원디자인이 설계·시공한 네이버 클라우드 서비스 오피스. [다원디자인 제공]

    -과거 기사를 보니 성균관대 화학과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했던데요. 

    “아버지와 오빠 등 가족 대부분이 의사여서 저도 의대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학, 영어 점수는 괜찮았는데 암기 과목 점수가 안 나왔어요. 제가 뭘 외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게다가 당시는 여자들이 재수하면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라 (성균관대 화학과에) 후기 지원해 입학했죠. 3학년 때 제가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 교수님이 ‘인테리어디자인을 한번 배워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교수가 제자 전공을 바꿔보라고 권유했네요. 

    “그분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해 알게 된 거 같아요. 아마도 제 성향을 알고 권유하신 거 같은데, 막상 알아보니 미국에서도 인테리어디자인이 생소한 시절이어서 전공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많지 않았어요.” 

    -화학과 학생이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게… 

    “한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남이 가지 않는 길, 나만의 길을 간다는 생각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더구나 순수예술과 달리 인테리어디자인 분야는 ‘커머셜 아트(상업 예술)’여서 공간적으로 느낄 수 있고, 논리적이고, 과학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잘 맞았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죠.” 

    조 대표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인테리어디자인 관련 학사·석사 과정을 마쳤다. ISP 인테리어 디자인 국제공모전, 프로페셔널 오피스 디자인 공모전, IBD 포트폴리오 공모전 등 권위 있는 공모전에서 1위를 석권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졸업 후 뉴욕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7년간 일하면서 로펌 등 오피스 인테리어디자인 실무를 경험했다. 

    -이후 현대건설(현대종합설계)에서 일했는데요. 

    “미국 생활에 싫증이 날 때쯤 현대그룹에서 인테리어 전문가 초빙 공고를 냈더라고요. 그래서 대략 3년 정도 근무하면서 국내 대기업 사정을 알게 됐어요. 퇴사해서 인테리어 전문 회사에서 몇 달 일했는데, 어느 날 큰오빠가 ‘그렇게 열심히 하려면 직접 회사를 만들어 키워봐라’고 하더군요. 국내 인테리어 디자인 시장이 이렇게 성장할 줄 모르고 ‘내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1995년 7월 직원 3명과 창업을 했죠.”

    “한강으로 뛰어내릴 생각도…”

    다원디자인이 시공한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왼쪽부터). [다원디자인 제공]

    다원디자인이 시공한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왼쪽부터). [다원디자인 제공]

    -미국에서나 대기업 직원으로서 경험한 비즈니스 환경과는 확연히 달랐겠어요.

    “그럼요. 외국 기업은 ‘포맷’으로 움직이니 (발주처 관계자들과) 밥을 안 먹어도 영업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일을 하려니 ‘단계’도 많고 여러 사람과 커피도 마셔야 했어요.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니 늘 영업이 문제였죠. 남성들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여성 기업인은 한계가 많아요. 오죽했으면 (과거 인터뷰에서) ‘내가 남자였다면 회사를 지금보다 두세 배 키웠을 것’이라고 했을까요(웃음). 그런데 진짜 밤을 새우며 열심히 한 프로젝트가 실력이 아니라 ‘영업력 탓’에 입찰에서 떨어졌을 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영업력 탓이라면…. 

    “전직 장관 하던 분이 발주처에 전화해 경쟁사의 디자인 선정을 청탁하는 식이죠.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어쩔 수 없었어요. 어휴, 힘든 건 다 말할 수 없어요. 차를 운전하며 한강 다리를 지나다가 ‘한강으로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죠(웃음).” 

    -그래서요? 

    “정공법, 새롭고 신선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죠.” 

    -결국 전문성이군요. 

    “그럼요. 저는 직원들에게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필요 없다’고 해요. 형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말라고 강조하죠. 시대를 뛰어넘어 공간을 창조하는 디자인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탄생한다고 봐요. 저희 회사 미션(지향점)도 ‘비 프로페셔널(Be professional)’이에요. 전문가가 되자는 거죠. 회사는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워 진정한 프로로 만들어야죠.” 

    -다원이 지향하는 공간 서비스는 뭔가요.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겁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조직과 개인 간 추구하는 바가 달라도 공간에서 소통하고 공유하는 거죠. 디자인은 결국 우리가 사는 공간을 아름답게 창조하고, 인간 삶의 가치를 높이는 거라고 봐요. 고객의 생각과 우리의 공간 서비스를 조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고객에게는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요. 그가 생각하는 공간의 개념과 요구 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다원디자인은 직원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우수 직원을 시상하고 외부강사 초청 특강, 교육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직원들의 전문성은 곧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나타났다. 고객 접견실과 상품 안내실 등 성격이 다른 공간 통합을 위해 쇼룸에 카페를 접목(네이버 클라우드 서비스)하거나, 조직원 간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부서 칸막이를 식물로 대체(카카오)하는 등 다원디자인만의 설계는 큰 호평을 받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같은 외부 환경 변화는 신생 기업에 큰 타격이었을 거 같은데요. 

    “맞는 말씀인데요, 우리로서는 새로운 기회가 됐어요. 당시 HSBC, 골드만삭스, 맥커리 등 외국계 금융·투자회사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했거든요. 암울한 분위기였지만 저희는 공격적으로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나섰어요.”

    급변하는 시장, 선제적 대처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부동산 중개업소를요? 

    “국내에 건물을 매입하거나 임대 문의를 하는 글로벌 기업을 먼저 알아내 회사 소개서와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며 영업하는 거죠.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고, 외국 기업은 회사 규모나 실적보다는 실력과 콘셉트, 아이디어를 공정하게 평가해 조건도 좋았거든요. 새로운 기회가 된 거죠.” 

    이후 조 대표는 2003년까지 외국계 기업 건물의 인테리어디자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실적이 쌓이면서 회사 인지도도 높아졌다. 국내 시장도 함께 커지면서 국내외 주요 대기업과 호텔, 컨설팅 회사들이 다원디자인을 찾았다. 맥킨지앤드컴퍼니, 모건스탠리, 한국IBM, 르메르디앙 서울호텔, 콘래드 서울호텔, IFC몰 등이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회사 설립 당시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다원디자인은 2005년 연매출 520억 원, 2011년 1117억 원, 2019년 2300억 원을 기록하며 260여 명이 일하는 중견 회사로 컸다. 조 회장은 무차입 경영을 하면서도 25년간 연평균 매출이 180%씩 증가한 흑자 기업을 일군 것이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어땠나요? 

    “그때 지레 겁부터 먹고 회사 설립 이후 유일하게 직원들 연봉을 동결했어요(웃음). 그런데 당시에는 재무 상태가 나쁜 경쟁사가 많이 사라진 데다, 재무 상태가 좋은 기업이 입찰에서 우대를 받았어요. 우리는 재무 상태가 좋아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됐죠.” 

    -무리한 수주로 적자를 보는 경우도 많은데요. 

    “우리가 디자인한 건물을 직접 시공하니까 ‘마이너스’가 적었어요. 지금도 건물 디자인과 시공을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50%는 유지해요. 2300억 매출을 올리려면 1년에 평균 230개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는데, 이 중 절반은 디자인과 시공을 함께 하는 거죠. 다른 회사들은 이미 설계(디자인)한 건물 시공에 참여하려고 저가 입찰 경쟁을 해요. 그러면 ‘마이너스’가 커요.” 

    -호텔 인테리어디자인도 꽤 하나 보군요. 

    “5성급 호텔은 대부분 해외에서 설계를 하고, 국내 업체들은 시공 입찰에 참여해요. 신라스테이 등 4성급 호텔은 우리가 설계하고 시공하죠. 전체 수주 건수 중 사무실과 호텔 비율이 5대 4 정도? 2013년부터는 베트남, 인도, 필리핀, 사이판 등 해외 법인을 설립해 해외 프로젝트도 하고 있고요.” 

    -최근 리노베이션(건물 개보수)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맞아요. 리노베이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인테리어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어요. 여기에 일반인의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죠. B2B 중심의 디자인 시장이 B2C로 옮겨가고 있고, 고령화 추세로 여가를 위한 문화 공간 수요도 늘고 있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IT와 인테리어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태어나고 있어요. 이런 시장의 흐름과 수요를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저는 회사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인 회사들이 무너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회사가 오래 존속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인수합병(M&A)도 생각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중시하는 대기업과 M&A를 하면 그룹 계열사 물량을 안정적으로 수주할 수 있고, 우리 회사는 디자인 전문 회사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죠. 그래서 100년 가는 기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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