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밖’에서는 효용 증명했으되 ‘안’에서는 가치 입증 못 해”

[정치 인사이드] 정치인 안철수에게 열린 길, 막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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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2-05-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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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보선 승리는 기본, 여당 대표 올라야 대권 도전 가능

    • 범진보로 정치 입문, 중도 찍고 범보수 품으로

    • ‘가치’ 연대 아닌 ‘집권’ 위한 실용적 동거 중

    • 국민의힘, 舊보수-新보수-중도·개혁보수로 재편

    • ‘이재명’ 인천 출마로 ‘안철수’ 주목도 상대적 약화

    3월 30일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를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3월 30일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를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정치 역정을 보여준 이는 단연 윤석열 대통령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이후 대구고검, 대전고검을 전전하며 한동안 좌천성 인사를 경험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2016년 하반기 불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검찰총장 재직 때 불거진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그를 일약 대선주자로 성장시켰고, 총장직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했다.

    극심한 부침 겪은 비운의 정치인

    윤 대통령이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통령에 오른 한국 헌정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고속 집권 케이스라면, 최근 10년 동안 줄기차게 대권 문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 비운의 정치인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정치 입문 때만 해도 윤 대통령만큼, 아니 그보다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한 그는 1년 뒤 치러진 2012년 대선에는 박근혜·문재인 후보와 3강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후보 등록 직전 흔쾌하지 않게 대선의 꿈을 접었고,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합당하며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돼 ‘제1야당 대표’에 올랐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난 그는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의 의석을 확보, 대권 재수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2017년 5월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TV토론에서 ‘MB아바타’ 논란 등이 불거져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결국 3위로 낙선했다. 이듬해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 때는 7년 전 자신이 양보했던 박원순 후보의 3선을 저지하겠다며 서울시장에 나섰다가 패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는 고작 3석을 얻는 데 그쳤고, 지난해 4·7 재보선에는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가 오세훈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 패해 무릎을 꿇었다. 이후 20대 대선에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사전투표 직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며 대선 도전의 꿈을 유보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정권인수위원장을 맡아 새 정부 출범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그는 6·1 재보선에 경기 분당갑에 출마함으로써 네 번째 대권 도전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이 출마하고, 여러 번 패배를 경험한 정치인 안철수는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실력과 세력을 키워 차기 대선에 도전할 수 있을까.

    마지막 기회는 남아

    3월 3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후보단일화 합의를 발표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3월 3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후보단일화 합의를 발표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3월 3일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 합의는 결과적으로 정치인 안철수가 다시 한번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기회를 유보한 것이다. 대선을 완주해 당선권과 거리가 먼 한 자릿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해 정치적 밑천이 훤히 드러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정권교체’에 기여함으로써 차기 대선 도전에 나설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 그러나 차기를 꿈꾸는 정치인으로서는 내상도 적잖이 입었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보단일화와 국민의힘 합당 과정에 기존 당원 동의 없이 불투명하게 독단적으로 의사 결정한 것은 정치인 안철수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며 “국민의힘 내부에 기반이 약한 그가 독자 세력을 구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1년 전 범야권 지지를 받아 정치에 입문한 그는 중도를 표방하며 국민의당 창당으로 다당제 가능성을 엿보였으나 현재는 범여권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즉 국민의힘과 합당한 정치인 안철수가 다음 대선에 도전할 무대는 국민의힘 뿐이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가 더는 없다.

    정치인 안철수의 재기 여부는 1차적으로 6·1 재보선 결과로 판가름 난다. 재보선에서 승리해 원내에 재입성하는 것은 정치인 안철수의 부활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현재로서 낙선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재보선에서조차 실패한다면 그의 정치적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재보선에 승리하더라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인수위원장 활동은 물론 윤석열 정부 첫 조각 때에도 정치인 안철수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가 추천해 인수위에 참여한 인사 가운데 대통령실이나 내각에 참여한 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대통령실 개편 때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과학기술 수석’ 신설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마저도 실현되지 않았다. 김관옥 교수는 “인수위원장 시절 자신만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도 정치인 안철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독단적이고 불투명한 후보단일화 결정으로 ‘정직하다’는 정치인 안철수의 자산을 상당히 잃었다면, 인수위원장 시절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정치인 안철수의 국정 운영 능력에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6·1 재보선 공천도 마찬가지다. 7곳에서 치러지는 재보선에 안 후보를 제외하고 국민의당 출신은 아무도 공천받지 못했다. 형식은 합당이지만 결과는 사실상 국민의힘에 국민의당이 흡수된 형국이다.

    ‘혈혈단신’ 정치인 안철수가 국민의힘에서 독자 세력을 형성해 생존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회의적 시각이 싹트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여권 내에 친(親)윤석열 인사들이 신주류로 부상하는 상황에 정치인 안철수의 입지가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친문재인 인사들에 둘러싸여 세력 형성에 실패하고 2016년 총선 직전 탈당해 독자적으로 창당해야 했던 전철을 2024년 총선 직전에 다시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치컨설팅사 ‘민 기획’ 박성민 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민주당에 몸담았다가 제3정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합류한 안철수가 다시 국민의힘을 뛰쳐나가는 것은 정치적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좋든 싫든 차기 대선까지 안철수는 국민의힘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할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직전 ‘단일화’로 정권교체에 기여했다는 ‘안철수 효과’는 ‘인수위 해체’와 함께 사실상 사라졌다. 정치인 안철수의 재기 여부는 6·1 재보선 승리와 이후 당내 입지 강화 여부에 달렸다.

    가치 연대 아닌 일시적 실용 연합

    6·1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경기 분당갑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가 5월 1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뉴시스]

    6·1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경기 분당갑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가 5월 1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예현 시사평론가는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힘 관계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연대라기보다는 ‘정권교체’를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실용적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손잡은 오월동주 성격이 강하다”며 “따라서 대선 승리 이후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효용성은 크게 낮아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는 “재보선에서 안철수가 승리하고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등 지도부에 입성해 구심점이 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은 재보선 승리로 원내에 재진입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재보선 이후에는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에 도전해 당권을 잡을 수 있느냐가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 입문 이후 안철수는 여러 차례 당대표를 지냈지만 ‘여당 대표’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올라 당정 협의를 주도하는 ‘힘 있는 여당 대표’에 오르는 것은 정치인 안철수가 다시 한번 유력 차기 주자로 도약할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안철수의 국민의힘 내 기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을 계기로 친윤 인사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장제원 의원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원조 ‘윤핵관’과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친윤 신주류 인사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과정에 고작 3석으로 합당한 국민의당 출신 안철수가 단시간 내에 자신의 입지를 넓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성민 대표는 “국민의힘은 크게 나경원·김태호 등 구(舊)보수와 이준석 등 신(新)보수, 그리고 오세훈·원희룡·안철수 등 개혁·중도보수가 차기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라며 “안철수는 기성 정당 ‘밖’에 있을 때는 ‘연대’의 대상으로 효용성을 증명했지만, ‘안’에서는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며 “국민의힘 안에서 앞으로 안철수가 어떤 위상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정치인 안철수는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소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점이 정치인 안철수의 생존 기반이자 효용가치였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중도 소구력’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핵심 요소가 아니다. 이제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달라는 ‘정권 밀어주기’와 대선 패배 두 달도 안 돼 재보선에 출마한 ‘이재명 심판’ 구도로 지방선거를 관통하는 큰 전선이 형성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재명 참전은 안철수에게 악재?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선거 표심은 기본적으로 ‘정권 힘 실어주기’와 ‘정권 견제’로 나뉠 공산이 크다”며 “여기에 대선에서 패한 이재명 후보가 곧바로 재보선에 출마하면서 ‘이재명 심판’ 여론도 표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엄 대표는 “지방선거가 윤석열 대 이재명 대립 구도로 비치면서 김동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힘 경기 분당갑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덜 모이고 있다”고 풀이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안철수 효과를 봤다’는 평가보다는 ‘윤석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거나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경기도를 떠나 인천에 출마한 것에 반발해 경기도민이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는 평가가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돼 있다. 김동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승리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후보가 경기 분당갑에 출마했지만 경기지사 승리를 가져오는 데 큰 효과가 없었다’는 박한 평가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즉 이재명 참전으로 지방선거와 재보선이 대선 연장전으로 흐르는 상황은 안철수 후보에게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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