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⑭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 김수연│서울대 HK연구교수·중국문학 kimsy826@lycos.co.kr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4/4
그에 따르면, 서구는 일찍이 자유도시의 수공업과 가족적이고 소자본 중심의 소비경제였는데, 인생태도의 변화 결과 기계가 발명되면서 대자본 중심의 공장제 생산이 발흥했다. 동업조합인 ‘길드’와 자유도시가 파괴되고 생산 본위의 자본주의 경제와 근대국가가 출현했다. 또 분업 생산방식으로 인해 자유경쟁과 이기심을 긍정하게 되고, 노동자 처우 등을 규정한 각종 규범과 질서가 파괴되면서 빈부 격차 등의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했다.

따라서 서구문명의 현 단계는 개인본위·생산본위 경제에서 사회본위·분배본위로 전환하고 있으며, 주요 문제도 사람과 물질 사이의 문제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 물질적 불만족에서 정신적 불안정의 문제로, 물질 취득의 문제에서 물질 향유의 문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구의 학술사상도 변화하고 있는데, 이성과 의식 중심에서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의 문제로, 상호경쟁에서 상호부조 관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지식 중심에서 정서 및 의미의 추구 방향으로, 이지 중심에서 직각 중심으로, 지식 추구에서 행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인류문화는 이제 첫 번째 길을 걸은 뒤 두 번째 문제로 진입했는데, 이는 중국적 태도가 마침내 진정으로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결국 중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중국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인도의 태도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며, 서양문화도 전적으로 수용하되 근본적으로 개조를 거쳐야 한다고 봤다.

량수밍은 미래문화가 동서문화의 융합을 통해 형성될 것이라는 관점은 각 문화의 근본적인 정신 차이를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각 문화의 장점만을 서로 취하자는 주장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나 항상 일정한 태도를 취하며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량수밍은 미래문화는 하나의 태도가 요구되며, 현재 추세로 볼 때 그것은 중국적인 태도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서구문명에서 중국문명으로

량수밍의 이러한 동서문화론은 어떤 면에서 막스 베버의 세계종교론과 비교될 만하다. 우선 베버와 량수밍이 동서문명을 비교 연구한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같은 시기였다. 또 이들의 동서문명을 바라보는 두 시각은 공히 20세기 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의 문제의 출발점은 다를지 모르지만 기존의 문명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좀 더 근원적인 분석방법론을 모색한 점은 비슷하다. 특히 두 사람은 단순한 인상주의적 비평이나 단편적인 비교 차원을 넘어,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의지 같은 주관적 요인을 중심으로 한 역사철학적 성격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즉 그들은 모두 서구, 중국, 인도 등 인류의 대표적인 문명을 생활태도와 의식구조, 종교적 세계관과 연계해 적극적인 현실지배(극복), 현실적응, 현실회피 모델로 비슷하게 유형화하고 각 문명의 발전 경향을 분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구 근대문명을 중심으로 인류문명의 발전방향을 각자 다른 관점에서 고찰했다. 베버는 근대세계의 지배적인 문명 형태가 왜 동양이나 기타 비서구 지역이 아닌 서구사회에서만 나타났는지 밝혀내고자 했다. 그에 비해 량수밍은 근대문명은 왜 서구적 태도에서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서구문명의 문제점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향후 문화는 왜 중국적 태도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지 밝히고자 했다.

바꿔 말하자면, 량수밍의 동서문화론은 문제의 출발점을 베버와는 다른 역사적 시점에 두고 있다. 즉 베버가 근대의 대표적인 경제체제인 자본주의가 서구사회에서 나타났고, 근대적 기업가와 노동자의 경제윤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했다면, 량수밍은 바로 그러한 근대문명 이후에는 어떤 문명이 세계의 흐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찾아 나섰다. 따라서 베버의 주요 관심이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 시점에 있었다면, 량수밍은 ‘포스트 근대’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베버가 근대의 형성에서 왜 종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논증하는 것이라면, 량수밍은 포스트 근대에 왜 중국사상, 특히 공자사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밝혀내려고 했다.

주의할 점은 두 사람의 논의의 출발점은 바로 근대문명이며, 중심적인 비교 잣대는 바로 서구의 근대문명이라는 점이다. 동서문명, 문화론은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동등한 의미에서의 가치중립적인 비교는 아니다.

특히 베버의 종교사회학은 19세기 서구의 동양학적 관점과 자료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량수밍의 동서문화 비교도 20세기 초 다양한 근대 사회론과 동서문화 비교론의 담론 안에 위치해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시각은 서로 다르지만, 그 자체는 같은 시기 동서문명의 충돌이라는 하나의 ‘장(場)’ 안에서 이루어진 산물이다. 이들이 각각 부여잡고 있는 ‘서양’ 혹은 ‘동양’ 중심적인 가치, 그 준거틀은 20세기 근대문명의 이해에 있어 중요한 쟁점이었다. 나아가 21세기 세계의 문화 향방과 관련해 보자면, 이들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니겠는가?

신동아 2012년 2월호

4/4
김수연│서울대 HK연구교수·중국문학 kimsy826@lycos.co.kr
연재

신동아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더보기
목록 닫기

“문명의 축이 이동한다” 여전히 유효한 량수밍(梁漱溟)의 동서문화론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