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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⑨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역사적 질문’의 발견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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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묻는 거야?

다수 질문의 오류. 이 유형의 오류는 몇 가지로 다시 세분할 수 있다. ① 하나의 질문에서 두세 개의 질문을 섞어놓고 하나의 답변만 요구하는 방식, ② 다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 ③ 잘못된 전제를 만들어내는 질문을 설정하는 방식, ④ 복합적인 질문을 설정하고 네, 아니오 식의 단순 답변을 요구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 “이제 아내를 때리지 않나?”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이 질문은 비열할 뿐만 아니라 오해할 수 있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이 질문은 “아내를 때린 적이 있는가?” “지금은 때리는가, 어떤가?”라는 두 질문을 하나의 질문으로 만들어버린 사례다. “이제 마누라를 때리지 않나?”라는 질문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는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영국 찰스 2세는 종종 박식한 신사들과 왕실 사교 모임에서, “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물이 가득 찬 대야에 넣으면 물이 넘치지 않는데, 죽은 물고기를 넣으면 넘치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차마 찰스의 질문이 오류라고 지적하지는 못하고 온갖 어리석은 답변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역사가나 역사적으로 사유하려는 사람들도 의도하지 않게 종종 이런 오류에 빠진다. 이런 진술이 있다. 중국 세관(稅關)에서 근무했던 루이스 알링턴(Lewis Arlington)은 중국 형벌의 공개처형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중국인들은 평상시에는 얌전한 편이지만, 흥분 상태에 이르면 완전히 악마로 돌변한다. 그들은 반쯤 성장한 아이들 같아서, 곤충에 물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순수하게 짓궂은 장난으로 곤충의 날개, 다리, 그리고 해부하기 편한 다른 부위를 떼어낸다…1904년 나는 쑤저우(蘇州)에서 한 모자(母子)가 근친상간과 남편 살해죄로 체포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이 처형장으로 호송되었을 때 수천 명의 중국인이 처형장에 모여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이를 안고 나온 여자도 많았다. 엄청난 교육 아닌가! 그토록 어릴 때부터 가장 가혹한 혹형을 지켜봐온 중국인들이라면 온갖 고통에 대하여 무신경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티모시 브룩, 박소현 역, ‘능지처참’ p.398, 너머북스, 2010)



그의 말에서 우리는 바로 “정말 중국인들이 어려서부터 보아온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혹형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이 질문을 낳은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각 주를 합중국에 통합하던 이른바 재건시대(Reconstruction ·1865~1877)의 역사 서술과 관련해, 페렌바하(Don E. Fehrenbacher)는 ‘특히 묻고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① 재건은 가혹했는가, 관대했는가? ② 대통령의 재건 계획은 건전한 것이었는가? ③ 존슨(Johnson)이 실패한 데서 링컨(Lincoln)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④ 존슨은 형편없이 서툰 사람이었는가, 영웅적인 희생양이었는가? ⑤ 급진 공화파의 기본적인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⑥ 카펫백(carpetbag) 정부는 얼마나 나빴는가? ⑦ 해방노예(freedman)들은 그들의 새로운 책임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 ⑧ 남부의 구세주들(the Southern Redeemers)의 궁극적인 승리에 테러리즘이 얼마나 기여했는가? ⑨ 인종차별이 언제 정교한 양상으로 강화되었는가?

페렌바하의 오류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오른쪽). 그러나 그는 가혹한 탈주노예법에 대한 공식적 비난을 거부했다. 존슨(왼쪽)은 아예 흑인단속법을 만들어 해방노예를 대농장 농노로 만들어버렸다.

링컨은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령을 발동해 노예제 폐지를 공식화했다. 남북전쟁(1861~1865) 뒤 남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무상 공교육을 도입했다. 헌법 수정조항 13조는 노예제를 불법화했다.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 아래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또 14조에서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은 모두 미국시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인종평등 정책을 천명했다. 이런 배경에서 남부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그리고 플로리다 주 등을 다시 연방에 편입시키는 과정이 재건이었다. (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미국민중사1, 9장 복종 없는 노예제, 자유 없는 해방, 이후, 2006)

①의 질문에서, 재건 과정이 평범하거나, 합리적일 수 있었음에도 페렌바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며 다른 평가는 배제했다. ②의 질문은 대통령의 재건 계획이 마치 하나인 듯 묻고 있다. 우선 복귀한 남부 주에서 링컨 후임 대통령인 존슨 재임 기간에 흑인단속법(Black Codes)을 실시했는데, 이는 상·하원 의원들이 자유 흑인의 평등권과 투표권을 지지했던 정책과 대립했다. 결국 존슨은 흑인표 70만 표를 얻은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에게 30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런 변화를 포함한 크고 작은 정책 변화를 고려할 가능성이 페렌바하의 질문에는 배제되어 있다. ③은 ‘허구(虛構) 질문의 오류’이므로 아래에 다시 논의한다.(앤드루 존슨은 부통령이었다가 링컨이 암살당한 뒤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허구적 질문이다.)

④의 질문은 ①과 같은 오류에 빠졌다. ⑤의 질문은 링컨을 당선시켰던 신생 공화파에 무슨 명백한 ‘기본적인 동기’가 있던 것으로 가정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역사 서술에 보통 등장하는 동기의 일원론(monism)을 부추기고 있다. ⑥의 질문은 카펫백 정부가 ‘어느 정도는’ 나빴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⑦의 질문은 해방노예들이 실제로 당면한 새로운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제하고 있다. ⑧의 질문은 마치 ‘남부의 구세주들’(남부 민주당 중심의 정치세력. 테러리즘이란 백인 테러단체인 KKK단의 테러)이 궁극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⑨의 질문은 인종차별, 또는 인종 분리가 정책으로든 실제로든 흑인들의 저항운동과의 역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질문들만 남겨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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