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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軍神 이순신 뒤에 천재 멘토 류성룡 있었다

닮은꼴 두 친구의 우국충정 리더십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軍神 이순신 뒤에 천재 멘토 류성룡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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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神 이순신 뒤에 천재 멘토 류성룡 있었다

현충사에 보관된 보물 제326호 충무공 이순신 장검.

그 시대에 이순신처럼 문무를 겸비한 장수는 드물었다. 이순신은 북방의 함경도에서 여진족과 실전을 치렀고 남방에서 수군으로도 복무했다. 그런 이순신이 류성룡이 보내온 병법서 ‘증손전수방략’을 보고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증손전수방략’은 1591년 여름, 선조가 비변사에 내사한 ‘전수도(戰守圖)’를 류성룡이 정리하고 증보한 병법서다.

류성룡이 병법서를 편집·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장자방’이라는 표현처럼 병법에 탁월했기 때문이다. 류성룡이 임진왜란 때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과 같은 도체찰사(都體察使), 국무총리와 같은 영의정으로 활약하면서 고대 중국의 병법은 물론 당시의 최신 병법인 척계광의 병법까지 받아들여 훈련도감(訓練都監)을 설치하고, 속오법(束伍法)을 실시한 것에서도 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전시(戰時) 행정가로도 천재적 역량을 발휘했다. 이순신이 서남해에서 실시한 둔전(屯田), 섬을 활용한 염전(鹽田) 개발 노력도 부국강병을 위한 조치였다. 그 과정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은 군사전략은 물론 전시 경영 노하우까지 공유하며 서로에게 싱크탱크가 됐다.

知己知彼와 知彼知己

류성룡이 이순신에게 전한 병법은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는 ‘손자병법’을 상징하는 그 유명한 문장 ‘지피지기(知彼知己)’가 두 번 나온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已知彼, 百戰不殆)! -1594년 9월 3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고(知己知彼, 百戰百勝),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질 것이다(知己不知彼, 一勝一負).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不知己不知彼, 每戰必敗).

-1594년 11월 28일 일기 뒤의 메모



손자병법의 ‘모공(謀攻)편’과 ‘지형(地形)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공’에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은 모르지만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게 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라고 했다.

그런데 난중일기와 손자병법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다. 난중일기에서는 ‘지기지피(知己知彼)’라고 했는데, 손자병법에서는 ‘지피지기(知彼知己)’라고 했다. ‘나와 적’‘적과 나’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순신이 잘못 기억하고 메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손자병법에도 두 번씩 동일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순신이 두 번씩이나 잘못 기억하고 썼을 리 없다.

그 배경엔 류성룡이 있다. 류성룡은 병법에 무지해 패전하는 장수들을 위해 자신이 과거에 쓴 ‘증손전수방략’을 복기하고 다시 정리해 1594년 6월 선조에게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라는 이름의 병법 요약집을 올려 장수들에게 배포하도록 했다. 바로 그 ‘전수기의십조’에 손자병법과는 다른 이순신의 ‘지기지피(知己知彼)’가 나온다.

병법에 이르기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고, 나를 알지 못하고 적을 알지 못하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진다(知己知彼, 百戰百勝. 不知己不知彼, 百戰百敗)’고 했다. 이른바 나를 알고 적을 안다는 것은 적과 나의 장단점을 비교해 헤아린다는 뜻이다(所謂知己知彼者, 較量彼己長短).

-‘전수기의십조’

류성룡은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지기지피(知己知彼)’라고 썼다. 이순신과 같다. 난중일기의 날짜와 메모의 순서로 보면 이순신이 ‘전수기의십조’를 읽고 메모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순신이 류성룡의 표현을 따른 것은 ‘나를 아는 것’을 우선시하는 류성룡의 시각에 동의했음을 보여준다.

劍銘에 얽힌 사연

난중일기에는 이것 말고도 이순신이 류성룡의 지혜를 활용한 증거가 무수히 많다. 두 사람은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그 단적인 사례를 하나만 더 보자. 현충사에는 1594년 4월에 제작된 약 2m 길이의 장검 두 자루가 있다. 보물 326호로 지정된 이 칼에는 이순신의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결의가 담긴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다. 소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이 소설을 쓰기 전에 매일 찾아가 보았다는 그 칼이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바다가 떤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과 바다를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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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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