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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버지들

아들과 서로 공경 대 이은 禮學의 사표

스승이자 친구이자 아버지 김장생

  • 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아들과 서로 공경 대 이은 禮學의 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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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禮學

아들과 서로 공경 대 이은 禮學의 사표

김장생과 아들 김집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친 연산향교(충남 논산시 연산면). [문화재청 홈페이지]

조정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김장생은 그해 8월 8일 운명했다. 향년 84세. 사람들은 김장생을 성덕군자(成德君子)라 불렀고, 학자들은 사계선생(沙溪先生)이라며 우러렀다(김집, ‘죽은 아우 참판(參判) 반(槃)의 묘표’, ‘신독재전서’, 제8권).

김장생은 17세기 예학의 우뚝한 사표(師表)였다. “(그는) 고금의 예설(禮說)을 취해 뜻을 찾아내고 참작해 분명하게 해석했다. 그리하여 변례(變禮), 곧 예법의 특수 사례에 직면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했다.”(‘인조실록’, 권 25, 인조 9년 8월 9일) 역사가들의 평가가 그러했다.

김장생의 문하에서 배운 이는 많았다. 후세의 학자들 중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김장생의 학문을 계승한 이로는 아들 김집이 손꼽힌다.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는) 선생(김장생)의 뒤를 이은 유종(儒宗)이 됐다.”(김집, ‘연보’, ‘신독재전서’)

하필 왜 예학이었을까.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시로 고무되어, 예로 일어난다(興於詩 立於禮).” 또한 그는 인(仁)이란 개념을 ‘극기복례’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인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이 예란 뜻이다.

김장생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당대 정치·사회문제의 해법을 예에서 찾았다. 그는 사적 이익에 눈이 먼 정상배들이 날뛰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의 눈에 비친 대다수 선비는 겉으로만 성현의 가르침을 따랐지, 일상의 기본 예절조차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그런 주제에 이기론(理氣論) 등 형이상학에 매달려 민생을 외면했다. 이런 현실에 김장생은 분노했다. 게다가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크고 작은 범죄가 만연하는 가운데 유교 본연의 가르침이 존립의 위기에 빠졌다. 김장생이 예의 이해와 실천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은 까닭이다.



도탄에 빠진 조선 사회를 구하기 위해 그는 실천학문으로서 예학에 주목했다.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면 국가가 혼란해진다.” 김장생의 이런 뜻에 공감하는 선비가 늘어났다. 17세기 후반, 예학은 조선 성리학의 주류로 급속히 성장했다. 김장생이 지은 예학 서적은 필독서가 됐다. ‘상례비요(喪禮備要)’를 비롯해 ‘가례집람(家禮輯覽)’ ‘의례문해(疑禮問解)’ 및 ‘전례문답(典禮問答)’도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찍부터 김집은 아버지를 도와 예학 서적을 편찬했다. ‘의례문해’ 편찬엔 그의 헌신이 결정적이었다. ‘상례비요’ 역시 미진한 부분이 많아 김집의 손질이 요구됐다. 예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이가 김장생이라면, 그 완성도를 높인 이는 김집이었다.

예학이라면 형식에 얽매인 케케묵은 학문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김장생의 예학은 실천의 학문이었다. 그의 예학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예는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통찰이다. 상황에 따라 예가 달라질 수 있다는 그의 견해는 새로웠다. 둘째, 형식으로서 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문묘 배향된 유일한 父子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초 김장생 부자의 실천적 예학은 곧 퇴락했다. 몇 차례 예송논쟁(禮訟論爭)을 겪고 나서 예학은 정쟁의 날카로운 도구로 변질됐다. 민간에서도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악습이 생겨났다. 이래저래 예학은 김장생 부자의 본의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다.

후세는 김장생과 김집의 위패를 성균관의 문묘에 배향했다. 그들 부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오직 보편적인 예법을 추구하는 ‘천하동례(天下同禮)’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유교적 이상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문묘에 모셔진 ‘동국 18현(東國十八賢)’ 중 부자가 배향된 경우는 그들이 유일하다. 도덕도 윤리도 실종된 채 탐욕의 도가니에 빠진 현대 한국에서 김장생 부자가 탐구한 예학의 의미를 되살릴 순 없을까.  


백 승 종



아들과 서로 공경 대 이은 禮學의 사표
● 1957년 전북 전주 출생
● 독일 튀빙겐대 철학박사
● 서강대 사학과 교수, 독일 튀빙겐대 한국 및 중국학과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 現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 저서 : ‘백승종의 역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등






신동아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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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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