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사바나

백경훈 “변상욱의 아버지 언급 비난에 어머니 많이 속상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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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9-23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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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로만 공평, 뒤에선 제 자식 특혜…내로남불 386에 분노”

    • “여권 지지층, 개인 SNS 찾아와 댓글로 괴롭혀”

    • “상식선 이야기를 자꾸 진영 프레임에 가둬”

    • “조국 딸, 황금 루트 거쳐 부모 속한 ‘캐슬’ 무혈입성”

    • “사회 나와 보니 유시민·진중권 말 정답 아니더라”

    • “386, 민주화 훈장 달고 같은 레퍼토리 반복, 철없어 보여”

    • “386 정치인 누구 하나 미래 어젠다 얘기 못 해”

    • “청년 몫 비례대표 요구 말고 실력으로 쟁취해야”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장대비가 요란스레 몰아치던 9월 5일. 청년단체 ‘청사진’의 백경훈(35) 공동대표는 슬림핏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에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둥근 안경테 너머로 구김살 없이 자라온 청년의 인상이 풍겼지만 실은 부침(浮沈)이 많았단다. 최근에는 일면식도 없는 언론인으로부터 ‘수구꼴통’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백 대표는 8월 24일 자유한국당이 서울 광화문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저는 조국 같은 아버지가 없다. 그래서 용이 되지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변상욱(60) YTN 앵커는 백 대표 발언을 인용하며 트위터에 “반듯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수꼴 마이크를 잡게 되진 않았을 수도. 이래저래 짠허네”라고 썼다. 변 앵커는 4월부터 매주 평일 오후 YTN에서 ‘뉴스가 있는 저녁’을 진행해왔다. 

    이후 변 앵커 표현을 두고 ‘진영논리에 매몰된 망언’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이 와중에 백 대표의 부친이 십수 년 전 작고(作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변 앵커는 8월 25일 페이스북에 “제 글로 마음을 다친 당사자 및 관련된 분들에게도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썼다. 하지만 가족이 공개적으로 조롱당해 생긴 정신적 내상은 고작 ‘SNS 사과’ 한 토막으로 치유하기 어렵다.

    청년 적폐

    변상욱 YTN 앵커가 8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글. [트위터 캡처]

    변상욱 YTN 앵커가 8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글. [트위터 캡처]

    - ‘수꼴’ 표현에 가족들이 힘들어하지는 않았나요? 

    “어머니가 좀 많이 속상해하셨죠. 어머니랑 여동생은 정치 관련 얘기를 모르고 ‘수꼴’이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변 앵커가) 아버지 얘기를 하니까 거기에 조금 안타까워하고 많이 속상해하셨죠. 그분이 그렇게 사과했다고 해서 받아주면 되는 거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저는 대승적으로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머지 과정은 저와 제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겠죠.” 



    백 대표는 전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졸업 후 ‘청사진’과 ‘청년이 여는 미래’ 등 주로 청년 NGO(비정부기구)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지금은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고용노동부 산하 청년고용촉진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총학생회장을 하고 청년 NGO 활동가의 길을 가게 된 셈인데, 계기가 있나요? 

    “사실 개인사 얘기는 잘 안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했어요. 다행히 당선이 됐죠. 스물두 살이었으니 굉장히 어렸죠. 군대도 아직 안 다녀왔을 때고.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삶의 사명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어려운 사람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학과를 갔습니다. 하지만 이 학문만 배워서는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을 온전히 할 수 없겠더라고요.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NGO 영역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서 나름의 역할을 해왔던 것 같네요.” 

    - ‘수꼴’ 표현에서는 진영논리 도구로만 청년을 바라보는 범(汎)386세대의 무의식이 읽힙니다. 

    “당연히 제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선과 악’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분노하는 청년들을 ‘청년 적폐’라고 몰고 가는 모습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저는 그전에도 386 운동권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변상욱들’과 계속 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여권 지지층 일각에서는 백 대표가 한국당 소속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걸 문제 삼던데요. 

    “저는 진영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청년들이 왜 이 문제에 분노하고 있는지 이야기할 기회라고 생각해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제 과거 행적을 검색하고 제 개인 SNS에 들어와 댓글로 괴롭히는 분들이 있어요. 페이스북뿐 아니라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까지 들어와서 그러시는데요. 참 놀랍습니다.” 

    백 대표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영의 프레임에 가둬버리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야 “조국을 비호하는 이들이 상황을 타개할 출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내로남불’과 유시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8월 29일 tbs방송에 출연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를 두고 “왜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집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tbs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8월 29일 tbs방송에 출연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를 두고 “왜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집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tbs 유튜브 캡처]

    - 조국 장관의 딸 조모 씨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어떻게 비교하나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봐요. 부모 도움으로 다른 친구들이 갈 수 없는 꽃길을 간 거잖아요. 부모가 속한 ‘캐슬(castle)’에 무혈입성하게 된 셈 아닌가 싶어요. 청년들은 또래가 걸어온 황금 루트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무엇을 했나’ 자괴감이 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많이 분노하는 것이고요.” 

    - 조국 장관 일가는 인적 네트워크를 자녀 세대로의 계급 재생산에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명문대 출신 386세대가 다양한 자원을 통해 신분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상위 20%층이 교육을 매개로 현재 가진 기득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사다리를 주고 부를 대물림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남의 자식도 딛고 설 수 있는 사다리와 공정한 그라운드를 만들어줘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사다리를 없애가며 모두 평등한 출발선에 서야 한다고 주장해놓고, 뒤에서는 자기 자식들을 외국 유학 보내거나 자사고·외고에 진학시켜 여의주를 하나씩 물게 합니다. 이런 ‘내로남불’에 청년들이 지금 분노하는 겁니다.” 

    - 호남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반(反)민주당 노선을 타는 건 ‘소수파’의 길을 자초한 셈인데요.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민주당과 가까운 시민단체로 갔으면 활동이 더 순탄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 대학교 때 교수님들이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죠.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대학생활 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사고가 갇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뭐가 옳은 길이냐 고민하는 데 소수파냐 다수파냐 하는 기준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에서 이야기하는 국가의 방향과 비전, 미래가 제 생각과는 맞지 않았어요.” 

    1986년생인 인터뷰어(interviewer)와 1984년생인 인터뷰이(interviewee)의 대화는 자연스레 동시대를 살아오며 겪은 공통 경험으로 흘러들어갔다. 

    - 회고해보면 저희 세대에서 유시민, 진중권 씨 같은 진보좌파 진영 지식인이 큰 인기였습니다. 대학에서 강연하면 청년들이 몰려들기도 했고. 백 대표는 그들의 세계관에 심취한 적이 없나요? 

    “유시민, 진중권 씨가 학교에 오셔서 강연한 기억도 나요. 청년들이 크게 호응했죠. 제 또래들을 보면 30대가 돼서도 그 분들 하는 얘기에 여전히 공감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저는 그분들 이야기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생활하고 다른 정보를 접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유시민, 진중권 씨나 386 운동권들은 대체로 유토피아 얘기를 많이 합니다. 목적성을 좇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분들은 ‘좌표 찍고 일단 가야 한다’면서 강한 목적을 갖고 드라이브를 걸잖아요.”
     
    - 길을 정해놓고 간다? 

    “그렇죠. 우리 사는 세상에서 좌표 찍고 갈 수만은 없잖아요. 목적성이 있으면 합리성도 있어야죠.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목적성과 합리성의 황금 균형을 찾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386 운동권들이나 유시민 씨는 ‘이것이 옳으니 이렇게 가야 한다’며 좌표 찍고 가자고만 이야기하니까요.” 

    - 유시민 씨가 ‘조국 반대 서울대 집회가 물 반 고기 반’이다, ‘조국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 출신이 많은 기자들이 분기탱천했다’고도 했더군요. 

    “이번 일을 계기로 유시민 씨와 젊은 세대 간 연결고리가 끊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이분도 어쩔 수 없이 선악 프레임에 빠진 386 운동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분의 한계를 명확히 봤죠.”

    운동의 추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시인(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 ‘운동의 추억’에 이렇게 썼다.

    추억으로 운동을 이야기하는 사람 많다.
    운동한 기간보다
    운동을 이야기하는 기간이 더 긴 사람이 있다.
    몸으로 부닥친 시간보다 말로 풀어놓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운동
    현재가 없는 운동을 현재로 끌어오는
    그들의 공허함


    - 386 운동권이 ‘운동한 이야기를 하는 기간’이 30년을 넘은 것 같습니다. 

    “민주화를 이루는 데 한국 정치를 이끌던 지도자들과 대학생들의 공이 있었죠.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치러낸 일반 국민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에너지의 총합이 민주화라는 과제를 수행해냈다고 봅니다. 화염병을 들었던 대학생들의 역할도 있었지만 그분들만의 공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1987년 항쟁 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민주화라는 훈장을 달고 똑같은 레퍼토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죠. 권력이 없다면야 자기만족 하며 살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분들이 국정을 주도하고 있잖아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찌 보면 철없는 짓을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요.” 

    - 386 운동권은 ‘아직 민주화가 덜 됐다’ ‘지금 20~30대도 전두환만큼의 거악은 없지만 기득권을 향해 돌 던지고 싸워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 국가 중 공동체 곳곳에 그렇게 민주화가 완벽히 뿌리내린 곳이 있을까 싶네요. 민주주의 DNA가 공동체 곳곳에서 더 잘 발현되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386세대는 한국당이나 일본처럼 타도해야 할 대상을 두고 ‘더 민주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자꾸 전선을 거기다만 긋는 겁니다. 이분들이 진화하지 못했다는 증거 같아요. 민주화 공로로 제도 정치 영역에 들어왔으면 이제는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비전과 어젠다를 얘기해야죠. 하지만 386 정치인 중 그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속 시원히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 경제 등 민생 문제보다는 정치개혁 이슈에 매몰돼 있다? 

    “그렇죠.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이라든지 경제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반면) 정치나 사법개혁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강경해지고 드라이브를 걸고요. 대통령을 둘러싼 참모 중 전대협 등 운동권 출신이 많잖아요. (대통령이) 그들에게 ‘혁신성장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으면 이분들이 과연 답할 수 있을까요?” 

    화제는 이내 ‘미래 세대’로 이어졌다. 그는 “자꾸 정부가 ‘뭘 더 하려는 게’ 문제”라면서 “정부 역할이 비대해질수록 재정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늘어나는 빚은 미래 세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고, 이 문제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혜택은 현 세대가 누리고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부담과 책임은 미래 세대가 짊어지게 되는 꼴이죠. 이건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젊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총선 시계와 대기업 입사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정년 연장 이야기가 나오는 데 자칫 ‘연금 폭탄’을 후세대가 떠안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청년 정치인이 선제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이슈 아닌가요? 

    “정권은 조국 장관을 임명해야 할 이유가 검찰개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필요하죠. 하지만 검찰개혁이 이렇게까지 온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가면서 당장 해결해야 할 1번 국정과제냐? 저는 도리어 연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답을 내놔야 할 시점이라고 봐요. 연금 개혁에 관해 여러 안이 나와 있긴 합니다만, 대체로 현 세대에 부담을 덜 주려는 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이 받으려면 더 많이 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불편한 이야기도 하고 더 공정하게 (연금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 여권에서는 기금이 고갈되면 그해에 다시 걷어서 주면 된다고 하더군요. 전제는 출산율이 유지돼 돈 낼 사람이 유지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도 아닌데요, 정작 청년들의 발언권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대변해줄 국회의원도 없을뿐더러, 젊은 의원들이 있지만 청년 목소리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3섹터에서라도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요. 청년단체의 청년 리더들도 나이가 들잖아요. 그러면 본인의 일을 찾아 단체를 나가니 축적이 잘 안 되죠.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에너지가 국회에 몰려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러니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더 많이 들어가고, (그렇게 선출된) 의원들이 청년단체와 연대해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당에 들어간 청년들을 보면, 전부 그런 건 아닙니다만 ‘누구 라인’ ‘무슨 파’로 분류되고, 또 청년들도 그렇게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청년이 유력 정치인 라인을 잡으려 한다? 

    “눈앞에 떡이 있는데 모른 체하기 쉽지 않겠죠. 하지만 먼 미래를 준비해가려면 위만 쳐다볼 게 아니라 옆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또래와 연대하며 실력을 쌓아가야 합니다.” 

    - 청년 정치인의 발언에서 ‘청년이 고달프다’ ‘공정이 중요하다’는 총론만 있고 ‘각론’은 안 보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청년은 어떤 언어와 어젠다, 비전, 콘텐츠를 갖고 얘기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는데 아직 농익지는 않았죠. 여의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의원과 어른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기 쉽지 않고, 꺼내놔도 주목받기 어렵죠. (다만) 지금은 굳이 여의도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상 혹은 페이스북 메시지 하나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 채널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 청년들이 정치를 스타트업처럼 하면 좋을 텐데, 대기업 입사처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총선 시계가 가까워질수록 더 기존 정당으로 에너지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 스타트업 따로, 정당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죠.”

    진영논리에 빠진 어른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낸 성한용(59) 한겨레 선임기자는 9월 1일 ‘분단 기득권 세력의 세대갈등 노림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386세대’가 기득권층이 된 것은 ‘연령 효과’에 따른 당연한 일입니다. (중략) 20년 뒤에는 지금 30대가 기득권층이 될 것입니다. (중략) 조국 후보자 논란을 자꾸 386세대의 문제로 환치시키려는 이른바 보수 세력의 시도는 그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이는 정치 공작입니다. (중략) 이념과 가치, 계급의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물타기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분단 기득권 세력의 갈라치기 음모에 걸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한겨레’의 고참 언론인이 386 비판을 ‘정치공작’이라고 표현했더군요. 

    “기성세대식 진영논리에 빠진 대표적인 어른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386 운동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나 장·노년층뿐 아니라 386세대 안에도 있습니다. 특히 같이 운동했던 분들이 지금 국정을 주도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조국 사태’를 통해 많이 표출됐어요. 이철승 교수는 386세대 전체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했어요. 여러 측면에서 386에 대한 진단이 이뤄지고 있는데, 모두를 싸잡아서 보수진영의 책략이라고 해버리면 뭐….(헛웃음) 더는 할 말이 없죠.” 

    백 대표는 “세대전쟁으로 비치는 것이 썩 유쾌한 건 아니”라면서도 “필요하다면 불편해도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연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386 운동권이 1980년대식 철 지난 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갑갑해합니다. 국가의 미래 전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386세대는 조직 안에서 연공서열식 인사와 임금체계로 기득권을 쥐고 (조직 바깥에서) 노조 등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득권을 강화합니다. 청년들은 일자리 재난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더 팽창하기 어렵다면 일자리가 선순환되는 구조라도 만들어져야 하는데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출발선이 막혀 있으니 청년들은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답답한 상황입니다.”

    행간의 의미

    - 여권과 공공부문,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뭉친 진보 진영 386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도 상위 20%에 드는 상층 정규직이 많습니다. 좌우 공히 조금씩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실력을 길러 쟁취해야 합니다. 자꾸 청년 몫으로 비례대표를 달라거나 젊으니까 뭘 주라거나 해서는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워요. 정치, 산업,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젊은 사람들이 한계를 뚫고 가면서 쟁취해나갈 수밖에 없어요. 양보해달라고만 할 게 아닙니다.” 

    - ‘조국 사태’는 청년 정치의 역사에서 후대에 어떤 의미로 기록될 거라고 보나요? 

    “조국으로 상징되는 386 운동권의 민낯과 실력을 확실히 확인한 계기였다고 봐요. 특히 식자층과 언론인, 소위 개념 연예인이라고 불린 이들이 입을 닫고 있는데요. 묵언도 행간의 의미가 있는 겁니다. 정의당이 이렇게 입 닫고 있는 데도 행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까 생각하게 된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9월 3일. 변상욱 앵커는 방송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제46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백 대표는 “(변 앵커가) 빛나는 그 상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셨으면 어땠을까도 싶었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게 멋진 어른 아닐까 하는데 여전히 또 거기서…”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줄임표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386세대가 성찰적 태도로 되새겨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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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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