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사바나

20대에게 ‘공정'이란? "'공정한 출발선' 지켜주면 '할배'라도 지지"

  • 박원익 작가·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paxwonik@naver.com

    입력2020-03-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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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투정’ 낙인도 ‘신비화’도 곤란해

    • 저마다 진 ‘다른 짐’에 민감하게 반응

    • ‘결과의 평등’보다 “출발이라도 공정하게”

    • ‘어리둥절’ 與·착각 속 野 모두 20대 여론 오독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10월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전국대학생연합회’가 주최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0월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전국대학생연합회’가 주최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부정입시 논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한동안 20대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20대는 한국 사회 엘리트 계층 대물림의 전형으로 비친 조 전 장관 가족에게 분노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다른 세대로도 전이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논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의 탄탄했던 지지율은 최씨의 딸 정유라 씨의 대학 부정입시 논란으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역시 20대 대학생의 부정적 여론으로부터 발원했다. 20대가 여론의 첨병 노릇을 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조국 사태’는 지난해 9월 필자(33)의 ‘공정하지 않다: 90년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공저) 출간 직후 본격화했다. 주변에서 ‘20대가 생각하는 공정’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접했다. ‘조국 지킴이’를 자처한 일부 중·장년층은 조 전 장관에게 부정적인 20대를 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0대는 외계인이 아니다

    각 세대 나름의 경험이 있다. 어떤 세대의 경험도 다른 세대에 비해 우월하지 않다. 지금의 20대는 별나라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이 공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방식이 몰역사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20대 여론에 대해 기성세대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분노를 근거 없다고 치부하거나, 조 전 장관에 대한 반대 여론 조성 등 정치적 필요에 따라 20대를 과도하게 신비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연구원은 도민 1200명(19세 이상 70세 미만)을 대상으로 ‘경기도민이 생각하는 공정한 가치’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6.3%가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71.3%는 ‘공정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봤다. 응답자의 81.3%는 계층 이동을 위해 ‘자기 노력보다 부모의 재산이나 집안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률에 세대 간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설문으로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지점도 있다. ‘공정’은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 중요한 화두가 됐다. 다만 공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어떤 공정함을 바라는지 명확히 합의된 바 없다. 어떤 공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세대마다 또 개인마다 다르다. 초점을 20대에 맞춰 봐도 비슷하다. 20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맥락에서 공정을 중시하지만 이들 안에서도 공정에 대한 합의는 없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20대 여론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한 것은 바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20대의 여론 기저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더욱 가까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출발선 다르다” 항변에 말문 막힌 교수

    얼마 전 대학교수인 선배가 ‘요즘 학생들에게 적응이 안 된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성적 정정기간에 학생들로부터 성적에 대해 묻는 휴대전화 문자·e메일 세례를 받는 것이 일상다반사란다. 그중 일부는 아예 성적을 정정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 자기 경험을 토로하던 선배는 그중 인상 깊은 한 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선배의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기 중에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알바에 쫓기면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기대만큼 높게 나오지 않았다. 해당 학생은 성적에 관한 승강이를 벌인 끝에 선배에게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학생들과 자신은 출발선이 다르다’며 항변했다. 선배는 학생의 마지막 항변에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물론 선배는 끝내 성적을 원칙대로 매겼단다. 

    모든 또래 대학생이 이 학생의 항변에 공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요점은 따로 있다. 이들이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이나 자기 노력에 보상받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입학·취업 과정에서 ‘점수’로 연결되는 모든 것에 예민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경쟁 과정에서 저마다 ‘다른 짐’을 지고 있다는 점에도 민감하다. 이와 관련해 졸저 ‘공정하지 않다’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100m를 10초 안에 돌파해야 다음 경기에 진출할 수 있는 예선전이 있다. 어떤 선수들은 어깨에 잔뜩 짐을 짊어지고 있다. 국가가 할 일은 그 짐을 덜어주고 공정하게 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해지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도, 어깨에 짊어진 짐을 덜어주지도 않은 채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 중 더 힘든 사람은 기록과 무관하게 다음 경기에 진출한다’고 정한다면 함께 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108~109쪽) 

    할당제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20대 여론의 단면을 보여주려 쓴 대목이다. 동시에 ‘짐을 덜어주고 뛸 수 있도록’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은 선배의 강의를 듣던 학생의 반응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의 불만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이상사회 요원… 당장 공정한 출발선부터

    지금의 20대는 바로 윗세대인 30대보다 더 치열한 입시 경쟁을 겪었다. 한국의 교육열은 원래부터 강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행동 하나 하나가 점수화되는 지금의 경쟁 강도는 기성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졸업 후에도 이들은 노동소득의 저하와 일자리 불안정 그리고 집값 상승으로 인해 앞 세대에 비해 실질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첫 세대마저 될 수 있다. 

    이런 환경 속 청년들에게 ‘기회의 평등’보다 ‘결과의 평등’ 혹은 ‘연대(連帶)’를 강조하는 일부 선인(善人)들의 주장도 핵심을 놓치긴 마찬가지다. 20대도 결과적 형평, 세대·계층을 초월한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그런 이상사회가 아닌, 적어도 공정한 출발선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불만을 제대로 해소하려면 근본적 사회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답을 내놔야 한다. 이를 위해 풀어야 할 부동산 가격, 노동의 기회와 질, 교육공공성 문제 등은 하나같이 만만찮은 주제들이다. 

    요점은 20대의 젊음과 패기를 과도하게 낭만화하거나, 반대로 부정적으로 낙인찍지 않는 것이다. 이들을 같은 사회의 동료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소통하고 설득해야 한다. 소통과 설득에 성공한 정치 세력이 미래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보수 야당은 자신들이 20대의 견해를 대변한다고 자처한다. 조 전 장관 사퇴 국면에서 20대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보수 야당에는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최근 2030세대 여론에서 조 전 장관 이슈는 그다지 첨예하지 않다. 누구보다 더 빨리 점화된 젊은이들의 여론이 그 어느 세대보다 빨리 식은 것이다. 

    아직 20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정치권의 논쟁은 누가 더 도덕적인지를 둘러싼 기성세대 내 인정투쟁에 가깝다. 그러나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당파성이 옅다. 대신 정당·정치인의 일관된 행보를 중시한다.

    20대 오독하는 여야, ‘인정투쟁’만

    1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성 앰브로즈 대학에서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 유세에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1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성 앰브로즈 대학에서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 유세에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그런 점에서 올해 11월 예정된 미국 제46대 대통령선거를 위한 민주당 당내 경선 추이가 흥미롭다. 현재 8명의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기 위해 각 주별 선거인단 선거에 나섰다(현지 시간 2월 13일 기준).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NBC방송이 공동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등 주요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27%). ‘백인 오바마’로 불리는 부티지지 전 시장과 엎치락뒤치락 팽팽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샌더스 의원의 노익장이 무섭다. 

    그는 80대를 바라보는 ‘할배’다. 더군다나 소싯적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운동권’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샌더스 의원의 인기 이면에는 그를 지지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젊은이들이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의 나이에 있지 않다. 불평등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패기와 일관된 삶의 행보 때문이다. 

    한국은 어떨까. 여야는 진작 물러난 조 전 장관의 샅바를 붙들고 20대 여론을 오독하고 있다. 일부 보수 세력은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운동권에 대한 20대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세대론·색깔론만으로 청년 여론을 호도할 수 없다. 지금 청년의 눈에는 출발선부터 자기 삶의 짐을 덜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위해 일관되게 싸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노인은 모든 것을 믿고, 중년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반면, 젊은이는 모든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2020년 한국에 적용하면 이렇다. “청년들은 누가 일관된 선택을 해왔는지 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지지한다. 이때 그 인물의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박원익
    ● 1987년 출생, 필명 ‘박가분’
    ● 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 호원논집 우수상, 창작과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
    ● 저서 : ‘일베의 사상’ ‘포비아 페미니즘’ ‘공정하지 않다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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