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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벼락거지’? 월급만큼이라도 건지자!”

[사바나] 주식시장 뛰어드는 ‘벼락거지’ 2030들의 속사정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나만 ‘벼락거지’? 월급만큼이라도 건지자!”

  • ● 2030 평균 자산으로 수도권 아파트 못 산다
    ● 부동산 대신 3000 코스피 올라탄 2030
    ● ‘네가 하면, 나도 한다’ 일일 주식 계좌 7만 개 개설
    ● 빚내서 투자도 서슴지 않아
    ● 지난해 상·하위 20% 자산 격차 167배
    ● 주식은 2030에게 남은 마지막 활로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2020년 국내 주요 증권사 6곳
(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에서 
개설된 신규 계좌 723만 개 중 
392만 개(54%)는 20·30대 
투자자 명의로 된 계좌다. [GettyImage]

2020년 국내 주요 증권사 6곳 (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에서 개설된 신규 계좌 723만 개 중 392만 개(54%)는 20·30대 투자자 명의로 된 계좌다. [GettyImage]

3년차 직장인 박모(28) 씨는 은행 예·적금으로 4000만 원가량을 모았다. ‘안전’을 중시해 그간 재테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500선까지 붕괴됐던 주가가 2000선으로 회복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회사에건 모임에서건 둘만 모이면 주식 이야기를 했다. 박씨는 그다음 달인 6월 2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박씨는 자산 대부분을 증권 계좌에 넣었다. 이후 미국 주식 공부를 하고자 책도 구입하고 주식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 단체대화방에도 들어갔다. 목표는 ‘남들 버는 만큼’이다. 박씨는 “주식은 계속 오른다는데 월급은 그대로다. 가만히 있다가 나만 ‘벼락거지’가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벼락거지’는 부동산 가격·주가 상승이 빚어낸 신조어다. 벼락부자의 반댓말로 부동산·주식 등 제테크 상품 가격이 갑자기 오르며 투자에 나서지 않은 자신만 ‘거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다. 

“친구가 2017년 6억 원에 구입한 아파트가 지금 11억 원이 됐다. 나는 벼락거지가 됐다. 친구가 차를 뭘 살지 물어오는데 괜히 나를 놀리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30대 후반이라 소개한 A씨가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다. e-나라지표 주택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2020년 수도권 지역 주택 매매 가격 상승률은 6.49%로 2006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까지 25번 부동산 정책을 내놨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가 계속되자 2030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조성됐다.



아파트 매입 고민하다 1억 원 손해

[GettyImage]

[GettyImage]

지난해 3월 결혼을 앞두고 이진우(32) 씨는 서울 노원구의 20평형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4억 원이던 아파트 가격은 6개월 뒤인 지난해 9월 5억 원이 됐다. 이씨는 노원 아파트를 포기하고 수도권 지역의 빌라를 매입했다. 이씨가 염두에 뒀던 아파트 가격은 2월 현재 6억 원을 호가한다. 이씨는 “아쉽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주위에 소위 ‘갭투자’를 해 돈을 번 사람이 많다. 형편이 달라 부동산 여러 채를 살 상황은 아니지만 부동산 매입이 늦어질수록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빌라라도 매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2030은 지난해 크게 증가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연령대별 아파트 거래 매매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20대와 30대 아파트 매매 건수는 27만2638건이다. 이는 지난해 매입 건수(13만914건)에 비해 2.1배 증가한 수치다. 

이른바 ‘영끌대출(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는 경우는 상황이 비교적 나은 편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기준 39세 이하 순자산은 2억2733만 원이다. 1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 평균 가격은 5억7000만 원(한국부동산원)이다. 주택담보대출 최대 40%(2억2800만 원)를 받는다 하더라도 수도권 평균 아파트 구입은 어렵다. 부동산 매매를 포기한 이들이 주식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각국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와 저금리로 유동성이 극대화되자 주식시장은 활황을 맞았다. 지난해 3월 19일 코스피는 1439.43을 기록하며 저점을 찍었다. 1월 25일 코스피는 3208.99에 마감했다. 10개월 만에 두 배를 넘었다. 

코스피 랠리(rally)가 지속되자 주식에 입문하는 이른바 ‘주린이(주식+어린이)’도 늘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 활동 계좌는 1월 한 달간 141만 개 증가했다. 매일 7만 개가 늘어난 셈이다. 특히 2030 비율이 높다. 지난해 주요 증권사 6곳(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에서 개설된 신규 계좌는 723만 개다. 이 중 392만 개(54%)는 20·30대 투자자 명의로 된 계좌다. 

대학생도 주식 투자에 나선다. 대학교 3학년 신모(24) 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3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연 1%대 금리를 주는 적금에 돈을 넣어두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신씨는 “대학생들끼리 ‘오늘 장이 안 좋다’ ‘어디 들어갔나’ 대화를 주고받는 일은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코스피가 3000을 찍은 올해 초부터 투자에 나선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시드’ 키우려 ‘빚투’

1월 7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전광판의 코스피 지수. 코스피는 이날 처음 3000선을 돌파했다. [뉴스1]

1월 7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전광판의 코스피 지수. 코스피는 이날 처음 3000선을 돌파했다. [뉴스1]

빚을 내 주식 투자를 하는 ‘빚투’도 흔하다. 이른바 ‘시드(종잣돈)’를 키우기 위해서다. 직장인 최모(28) 씨는 최근 2000만 원을 신용대출로 받아 증권 계좌에 넣었다. 지난해 3월 모아둔 1500만 원으로 마스크·5G 관련주에 투자해 40%대 수익률을 거뒀다. 최씨는 “주식 투자를 해보니 ‘시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열심히 공부해 높은 수익률을 거둬도 시드에 따라 벌 수 있는 돈이 너무 차이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인이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금액인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2월 5일 기준 20조9857억 원으로 1년 사이 약 11조 원 증가했다. 

주식시장은 호황이지만 모두가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4년차 직장인 유모(27) 씨는 지난달 8월 애플과 엔비디아(NVIDIA) 주식을 사놓으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회사 동기의 말에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 개인 투자자)’가 됐다. 모아둔 예금에서 500만 원을 빼 투자했는데 현재 수익률은 –10%다. 지난해 12월 16일 NH투자증권이 발표한 연령별 수익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연초 대비 20대 투자자 수익률은 –1.17%다. 30대는 0.5%, 40대는 6.1%를 기록했다. 


유튜브로 공부하라, 돈을 요구하는 곳은 피해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 매대에 주식 관련 책이 놓여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대형 서점 매대에 주식 관련 책이 놓여 있다. [뉴스1]

올 1월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을 출간한 염승환 이베스트 투자증권 E-biz 영업팀 부장은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공신력 있는 유튜브로 공부할 것”을 추천했다. 염 부장은 “과거에는 발품 팔거나 증권사 VIP 고객이 돼야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증권사뿐 아니라 개인 애널리스트들도 유튜브를 통해 시장 상황을 설명하고 투자 정보를 공개한다. 처음 주식 투자를 해보면 주식 등락에 따라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을 겪기도 하는데 공부를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주식 정보를 준다며 돈을 요구하는 곳은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주식 열풍이 불자 재테크 서적도 불티나게 팔린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 1년간(지난해 1월 26일~올해 1월 25일) 부동산·주식 등 재테크 서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5.9% 늘었다. 직장인 박모(28) 씨는 “최근 미국 주식 투자 책을 사서 퇴근 후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한다.
따로 공부할 만큼 주식 투자에 열정적인 청년 세대는 주식이 벼락거지를 면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유씨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주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근로소득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모님만큼 돈을 버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주식으로도 월급만큼이라도 벌자는 생각이다. 장기투자를 하다 보면 큰돈을 벌 기회도 생기지 않겠나.”

“커지는 양극화에 주식은 마지막 희망”

부동산·주식 가격 상승은 자산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17일 발표한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상위 20% 순자산은 11억2481만 원으로 2019년에 비해 3.7% 상승했다. 반면 하위 20% 순자산은 675만 원으로 2019년(864만 원)과 비교해 21.8% 감소했다. 상위 20%와 하위 20% 자산 격차는 166.6배 차이를 보인다. 앞으로 집값 상승과 코스피 랠리가 이어지며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 몰리는 청년 세대의 상황을 “씁쓸하지만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쉽게 돈 벌려고 주식에 뛰어든다며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수소전지·전기차 등 미래 산업에 대한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고, 만일 수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금융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주식을 통해 희망을 보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로소득으로 내 집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혼과 육아조차 힘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식이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부에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 됐다”고 진단했다.



신동아 2021년 3월호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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