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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수’들이 말하는 직업의 세계|유통업

‘땅장사’ 기질 있으면 절반은 성공, 길목 지키면서 ‘이야기’ 만들라

  • 허 헌 자유기고가 parkers49@hanmail.net

‘땅장사’ 기질 있으면 절반은 성공, 길목 지키면서 ‘이야기’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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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서 할인점을 빼놓으면 사실 할말이 별로 없다. 백화점의 매출을 추월한 지는 이미 오래고, 전체 유통시장에서 할인점의 영향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지난해 카드업계가 수수료를 올리기 위해 가장 먼저 시비를 건 곳도 할인점이다. 할인점을 꺾을 수 있다면 그밖의 유통업체는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속셈에서였다. 실제로 유통업계가 조금 버티는 듯하다가 카드업계와 수수료 문제를 매듭짓자 백화점 홈쇼핑 영화관 등이 줄줄이 카드업계의 의도대로 수수료를 올렸다.

할인점을 이용하는 고객도 증가일로다. 예를 들어 이마트를 다녀가는 소비자는 연간 2억5000만명이나 된다. 이마트에서 경기 불황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힘들다. 지난해 국내 경기가 극심한 내수 침체로 바닥을 기고 업체 도산이 속출할 때도 이마트의 매출은 지칠 줄 모르고 올랐다.

그뿐인가. 할인점 점포 수가 늘어날수록 물가는 떨어진다.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직접 거래하면서 상품 가격이 낮아진 덕분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할인점의 유통구조 단순화로 소비자 가격이 하락하면서 물가가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예로 이마트가 제주도에 처음 입점할 때 현지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이마트가 제주도 물가를 20%나 낮춰 지역 소매상들의 손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호점을 낼 때는 오히려 제주시가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섰다. 이마트의 존재가 소비자뿐 아니라 지역 농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제주도민들이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제주도 명물인 흑돼지와 귤, 그리고 무를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할인점은 한국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며 생산성 증대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은 ‘부동산업’



그렇다면 구학서 사장이 말하는 할인점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구 사장은 할인점이든 백화점이든 유통업의 본질은 부동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에 점포를 세우느냐에 유통업 성공의 열쇠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입점 장소만 잘 선택하면 이미 80%는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마트는 1997년 계열사이던 프라이스클럽을 1억달러에 매각하고, 이마트용 부지 20여곳을 매입했다. 환란 직후 땅값이 떨어졌을 때 부지를 구입해 결국 할인점 운영비를 낮춰 뒤늦게 출발한 할인점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남들보다 먼저 좋은 목을 찾는 것이 유통업의 성공요인임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을 실천하고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국 70여개 이마트 중 매출 부문에서 전국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서울 은평점의 경우를 보자. 당초 이 지역은 백화점이 들어설 부지였지만 환란 직후 시행업체가 부도가 나서 이마트가 매입해둔 곳이다. 그러나 막상 매입해놓고 보니 주위에 백화점은 물론 대형 할인점이 한 군데도 없었다. 아파트와 주택만 빽빽하게 늘어선 지역이었던 것. 이런 곳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섰으니 얼마나 영업이 잘 됐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마트가 먼저 진출해 터를 잡아놓았으니 다른 할인점이 들어서도 장사가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이마트가 들어서면서 주변 땅값이 오른다. 그러면 할인점이 들어설 대형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설령 있다고 해도 먼저 진출한 이마트보다 비싼 가격에 땅을 매입해야 한다. 따라서 영업 초기부터 비용이 많이 들어가 이익이 줄고, 그러다 보면 경쟁업체보다 투자 여력이 줄어들어 경쟁력이 떨어진다. 누가 먼저 ‘명당’을 찾느냐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 사장은 직원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땅을 가장 많이 산 부동산업자”라고 말한다. 땅을 보는 데는 구 사장의 안목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가다. 실제로 그가 눈여겨봐둔 곳은 어김없이 할인점이 들어섰고, 가는 곳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자본회전율’이 가장 중요

길목에 따라 어떤 업종을 진출시킬 것인가도 중요하다. 백화점을 지을 것인지 할인점을 지을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구 사장은 ‘자본회전율’을 든다. 자본회전율은 투자한 자본과 비교해 얼마나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 예를 들어 100원을 투자해 연간 200원의 매출을 올리면 자본회전율은 2가 된다.

경기도 산본에 부지를 매입한 구 사장은 원래 이 자리에 백화점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결국에는 할인점을 지었다. 계산해보니 백화점을 짓는 데는 1600억원이 들어가고, 매출은 연간 1600억원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할인점은 600억원이면 짓는 데다 연 매출은 1800억원으로 예상됐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의 자본회전율은 1이지만, 할인점은 3이 된다. 백화점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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