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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 마지막회

권좌 등극까지 13년, 6세대 4인의 승부수는?

  • 하종대│동아일보 사회부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권좌 등극까지 13년, 6세대 4인의 승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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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 등극까지 13년, 6세대 4인의 승부수는?
사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산시(陝西)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에서 85중을 다니던 고교시절 그는 줄곧 반장을 맡았다. 주위 사람을 끌어 모으는 조직능력도 탁월했다. 고교 1, 2년 때 그의 반주임(班主任)이었던 구밍친(顧銘琴) 선생은 “다른 동료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스스로 외부에서 원로 음악선생님을 모셔와 동료들과 함께 노래수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수업이 끝나고 화학실험실 화장실의 청소가 잘 안 됐다고 질책했는데 그가 자원자를 모으자 곧바로 전 반의 동료들이 모두 호응했다는 것.

국어 수학에서 체육까지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평소 동료 학생을 가르쳐주고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급우들이 ‘어린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샤오라오스(小老師)’라고 불렀다. 85중의 배구부 코치를 맡았던 정주펑(鄭九峰) 교사는 “어린 시절의 루하오는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며 “배구팀에서는 상대방의 전술 변화를 읽어 우리 팀의 전술을 수시로 바꿔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아주 탁월하게 수행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곤 했다”고 회상했다.

정치적 감각과 리더십도 뛰어났다. 고교시절 이미 시안 공청단 위원회의 유일한 중고생 위원이었던 그는 발이 넓고 모범생이었던 덕분에 고교도 졸업하지 않은 1985년 5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었다. 공산당원이 된 시기가 아버지인 루훙성(陸鴻生) 시안건축과기대 교수보다도 1년이 빨랐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베이징대에 들어가서도 그의 독보적인 위치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만 20세이던 1987년 그는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직선제로 선출하는 학생회 주석에 당선됐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학교와 사회를 넘나들었다. 대학시절에는 베이징시 학생연합회 부주석을 맡았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1990년 8월부터는 베이징시 칭허 방직공장의 공장장 조리(助理)로 들어갔다. 부공장장을 거쳐 1995년 공장장으로 승진한 그는 과감한 개혁 끝에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던 이 국유기업을 단번에 흑자로 전환해 2년 연속 우수공장장 영예를 얻었다. 베이징시 제3기 ‘10대 걸출 청년’ 선정은 덤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기 효익과 국유기업의 존망’이라는 학술논문 겸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유기업의 채무 문제를 다룬 이 보고서 내용은 후일 그대로 채택돼 시행됐다.

공업경제와 식품 등 제품의 안전 및 품질감독 업무를 맡았던 베이징시 부시장 시절에는 풍부한 경제학 소양과 현대경영관리 경험을 잘 결합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번은 베이징시내의 대형매장 주인들이 주차장을 빨리 확보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꾸물대자,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시단(西單) 등의 주요 업장에 직접 차를 몰고 가 시간을 잰 뒤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며 이들을 설득해 관철시켰다.



그가 벼슬길에서 이처럼 독보적인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6년간 베이징시장과 당 서기를 지낸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 정협) 주석의 후원이 컸다. 특히 중관춘과기원구 관리위원회 주임과 베이징시 부시장에 발탁되는 데는 자 주석의 힘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 주석의 정치계파인 장쩌민(江澤民) 계열 인사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의 계파 성향이 짙은 것은 아니다. 그는 베이징대에서 중국 유명 경제학자인 리이닝(?以寧) 교수의 마지막 수제자였다. 리커창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도 모두 리 교수의 수제자들이다. 198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점찍은 왕자오궈(王兆國) 제2자동차 부공장장을 공청단 제1서기로 발탁한 이후 26년간 계속 내부 승진하던 공청단의 인사 관행을 깨고 그가 외부에서 최고책임자로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청단 출신 핵심 권력자들과의 인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그가 여기까지 이처럼 잘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가진 정치자본이 풍부하기 때문이지만 파벌관계에서 비교적 중립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며 “상급자들은 그가 계파 사이의 의사소통과 지도부 단결에 나름대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정치분석가는 “루 서기는 현재까지 너무 잘 나왔는지도 모른다”며 “괄괄한 성미와 독단적인 성격을 고쳐야만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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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동아일보 사회부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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