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임금도 죽인 게장과 생감의 궁합

  • 입력2010-07-06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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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도 죽인 게장과 생감의 궁합
    경종의 죽음과 관련된 게장과 생감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역사의 한 토막이다. 영조 31년 5월20일 신치운은 이렇게 자백한다. “신은 영조 즉위년인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역심입니다.” 이에 영조는 분통하여 눈물을 흘리고 시위하는 장사들도 흥분해서 손으로 그의 살을 짓이기고자 하였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영조 31년 10월9일 영조는 경종 독살설에 대해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해명한다. “인원왕후 김씨께 이 사실을 아뢰었는데 자성의 하교를 듣고서야 그때 경종에게 게장을 진어한 것이 대비가 보낸 것이 아니요, 곧 어주(御廚)에서 공진한 것을 알았다.” 경종은 그 후 5일 만에 죽었는데 영조는 무식한 하인들이 지나치게 진어했다는 말로 사실을 숨기고 바꾸어 조작했다.

    게장과 감이 상극이라는 점은 한약물의 고전 ‘본초강목’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감나무 편에 “대개 게의 경우 감과 함께 먹으면 사람을 복통하게 하고 설사하게 한다. 감과 게는 모두 찬 음식이다”고 하면서 실제적인 경험까지 기록해놓았다. 왕구의 ‘백일선방’에는 “혹자가 게를 먹고 홍시를 먹었는데 밤이 되자 크게 토하고 이에 토혈하게 되었으며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목향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는 대목이 있다.

    게의 성질이 찬 것은 옻의 독을 해독할 때 쓰는 약성으로 알 수 있다. 옻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줄기가 빨갛다. 붉은 것은 뜨거운 성질을 갖고 있다. 속이 찬 사람은 옻닭을 고아 먹으면 설사가 멈춘다. 성 능력이 약해도 옻닭을 먹으면 양기가 솟는다고 보양식으로 먹기도 한다. 맵고 더운 성질이 있는 만큼 차갑게 응결하거나 막힌 것을 녹여서 치료하는 데 자궁종양을 잘 치료한다. (‘명의별록’)

    옻을 먹고 피부염이나 두드러기가 생길 때 게장을 바르면 사라진다. 게는 겉은 딱딱하고 내부는 부드러우며 뱃속 부분이 달(月)의 크기에 따라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므로 달처럼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다. 게에 옻을 갖다대면 게가 물로 변해버리고 다시 응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옻이 알려진 것은 낙랑고분의 칠반명문(漆盤銘文)에서이며 당나라 이후 우리나라 옻 품질의 우수성이 중국에 알려져 중국에서는 신라칠이라 했다. ‘계림지(鷄林志)’에는 ‘고려황칠은 섬에서 나는데 절강사람들이 이것을 신라칠이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그 섬이 바로 지금의 완도다.



    게장과 감을 함께 먹으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위험에 처할 정도로 독약과 같은 것은 아니다. 평소에 지병이 있었거나 특히 소화기 계통이 약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경종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희생자다. 14세 무렵에 생모인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후 벌어진 정치상황은 보통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을 주어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 경종 4년 8월2일 기록에는 이런 일면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서 드디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이 생기게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욱 고질이 되어 화열이 위로 오르면서 때때로 혼미하기도 했다.”

    화열(火熱)은 배를 차게 만든다

    임금도 죽인 게장과 생감의 궁합

    조선 21대 영조대왕.

    외부로 열이 흘러나오면 내부는 차가워진다.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오면 오히려 배탈이 난다. 여름에는 차가운 음식보다 삼계탕을 먹거나 개장국을 먹는 이유도 화열은 배를 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종의 치료를 담당한 어의는 이공윤이다. 그는 주로 열을 없애기 위해 설사를 하게 만들거나 아주 찬 약 위주로 공격성 강한 약물을 처방했다. 도인승기탕, 시호백호탕, 곤담환 등의 약물이 기록에 나타나는데 이 약물에는 석고처럼 아주 찬 약이나 설사를 하게 만드는 대황 같은 것이 들어 있다. 비위가 약했고 설사가 잦았던 경종의 증상에는 맞지 않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위장의 기운마저 깎아내리는, 처방하면 안 되는 위험한 약물이다.

    특히 경종에게 게장과 감을 진어한 것은 암살 의도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영조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종의 최후는 영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영조가 마지막으로 인삼, 부자를 투여한 것은 타당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종은 8월20일 게장과 생감을 먹고 나서 밤에 복통이 있었다. 21일에는 곽향정기산을 복용하며 22일에는 황금탕을 복용한다. 23일에는 설사로 혼미하고 피로해 탕약을 먹지 않고 인삼율미음을 마셨다. 24일에는 더욱 맥이 느려지고 음성이 미약해졌는데 이공윤이 나서서 설사를 그칠 수 있다고 하면서 계지마황탕을 처방한다. 마황은 허약한 사람에게는 결코 투여할 수 없는 약물이다. 마황의 별명은 청룡이다. 용처럼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땀을 내는 무서운 약이다. 마황을 잘못 쓰면 폐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고 근육이 떨리며 가슴이 두근거려 심장을 감싸안으며, 위장이 허약한 사람이 먹으면 밥맛이 없어지는 위장의 기능을 꺾는 무서운 약이다.

    임금도 죽인 게장과 생감의 궁합
    李相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한의학 박사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경종에게 이러한 처방을 하자 금방 부작용이 나타난다. 저녁때가 되어 더욱 위급해지다. 영조는 인삼, 부자를 쓰도록 하여 양기를 북돋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공윤은 반대 입장을 강력히 견지한다. 영조의 주장대로 삼다(蔘茶)를 복용한 후 병세가 잠시 안정되는 듯하던 경종은 결국 8월25일 승하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공윤의 처방보다는 영조의 처방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영조가 고의적으로 경종을 해쳤다면 삼다를 주장해 끝까지 경종을 살릴 이유가 없다. 그럼 게장과 생감이라는 깊은 암수는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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